137화 먹잇감을 보는 눈
하라-발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광전사’는 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강자였다.
벌레로만 여겼던 토착종들 사이에서 나타난, 엄청난 강자.
주술사들이 겁에 질려 경고를 한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래 봐야 자신의 재능을 모두 꽃피우지도 못한 존재.
나중이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당장의 강함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한 공격은 아니었다.
‘공격을…… 당한 건가? 언제?’
고통이 몸을 엄습하기 직전까지.
누군가가 그를 향해 접근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부족의 암부들조차 불가능한 일…….’
하라-발 정도의 전사라면 공격이 이뤄지기 직전에는 눈치챌 수 있어야 정상.
그의 시선이 자신의 옆구리를 향했다.
오른쪽 어깨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부분.
그 넓은 부분의 살점이…….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얼마나 깔끔한 손질이었는지, 새하얀 뼈가 그대로 비쳐 보일 정도.
하라-발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앞의 토착종을 바라보았다.
“쓰읍. 한 번에 내장까지 손질하려고 했는데. 이게 갈비뼈가 안 잘리네. 역시 중식도로 베어야 했나.”
한 손에 쥔 중간 정도 길이의 도를 흔들며 인상을 찌푸리는 토착종.
다른 손에는 도끼처럼 널찍하지만 길이는 짧은 도를 쥐고 있었다.
그는 앞서 싸운 토착종과 비슷한 의복을 하고 있었으나.
훨씬 작고, 왜소했다.
전사보다는 암살자에 어울리는 모습.
‘부족의 암부보다도 뛰어난 암살자가 있었나.’
자신을 바라보는 토착종의 시선에서.
하라-발은 소름이 끼치는 기분을 느꼈다.
‘나를…… 생명체로 보고 있지 않은 건가.’
공허하기까지 한 눈.
살아 있는 생명을 바라볼 때 저런 눈빛을 하는 존재는 없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전사.
하라-발은,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직감할 수 있었다.
죽은 것.
혹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
‘먹잇감을 보는 듯한 눈.’
하지만.
상대가 암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하라-발은 오히려 안심했다.
‘암살자에게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몸을 숨기고 적에게 접근하는 데에는 능하지만.
그쪽을 단련한 만큼, 전면전에서는 전사들을 이길 수 없는 법.
그렇기에 암살자들은 일격에 적의 목숨을 끊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이 실패한 이상.
승패는 이미 갈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를 여러모로 놀라게 하는구나. 저 전사에 이어, 이토록 뛰어난 암살자라니.
첫 일격에 목숨을 잃지 않은 이상.
하라-발은 자신이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소 지쳤다고 한들.
암살자를 상대로 질 만한 그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모자라다. 진정한 암살자라면 방금 일격으로 내 목숨을 끊어야 했어. 그게 실패한 이상, 네놈 역시…….
“뭐라는 거야 얘?”
하지만.
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하라-발의 옆구리를 베어 낸 인간.
그는 암살자 따위가 아닌.
[각성자 : 신영준]
[중급 요리사 Lv.29]
[적용 중인 요리 목록 - 4]
[파란의 물방울 젤리 - 특성, 환경 동화]
[리자드 육포 - 모든 능력치 상승, 방어력 상승, 특성, 강철 비늘]
[혼마르 사골국 - 힘 능력치 대폭 상승, 특성, 야생의 감각]
[코스 요리, 전쟁 - 전투와 관련된 모든 행위에 보너스 부여.]
[특성 -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중급 요리 비결 - 녹색갈기 치프틴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요리사라는 것.
* * *
강철 군단 최고의 전사.
전광일 상병.
전광일 상병은 신영준 병장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있었다.
그가 평생을 짊어져야만 했던 나약함을 없애고.
그곳에 용기를 불어넣어 준 은인.
‘나는 신 병장님 덕에 다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존경심은 날이 갈수록 더해져만 갔다.
처음 각성할 때만 해도, 전투 면에서는 자신이 앞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더 강해졌고.
이제는 요리사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전광일 상병 자신으로서는 이길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전광일 상병은 쓰러진 채로 눈앞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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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개시끄럽네.”
자신을 쓰러트린 녹색의 거인.
그 거인이, 이번에는 신영준 병장과 싸우고 있었다.
신영준 병장이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는 후방 지원에 머무를 뿐.
자잘한 전투는 부대원들이 치르는 게 일반적이니까.
후방에서 요리와 버프에 집중한다는 부분에서, 부대의 엄마처럼 여겨질 때도 많다.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대원을 친근하게 대한다는 점 역시 그런 부분에 일조했겠지.
하지만, 가끔 그가 칼을 들고 전투에 나설 때.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있다.
‘지나칠 정도로 잔혹하다.’
신영준 병장의 전투법은 간단하다.
[요리사의 눈]을 통해 적의 정보를 파악.
‘손질법’에 따라, 적을 처리하는 것.
문제는 이 ‘손질’이라는 단어였다.
일반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쓰는 말은 아니니까.
‘신영준 병장은 말 그대로…… 적을 손질해 버린다.’
숨통을 끊고.
살과 뼈와 내장을 분리해 내는 작업이, 손질.
그걸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적용한 결과.
신영준 병장의 전투법은 그 누구보다도 잔혹했으며.
살상력이 높았다.
“어우 씨. 뼈가 단단하니까 한 번에 손질이 안 되네.”
-커, 커허…….
“읏차!”
-크, 크으읍……. 쿨럭.
바로 저렇게.
고통에 겨운 신음을 흘리고 있는 괴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광일 상병과 승부를 겨루던 [녹색갈기 치프틴].
하라-발이었다.
다른 [녹색갈기 전사]보다도 거대했으며.
전투 능력은, 다른 전사들과의 덩치 차이 그 이상으로 뛰어났던 괴물.
그 전광일 상병을 패퇴시킨, 진정한 강적.
-끄르륵…….
“야야, 엄살 그만하자.”
그 강적이,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전광일 상병의 시선이 괴물의 상처 부위를 향했다.
‘등의 살점이…… 산 채로 [손질]됐군.’
등의 근육과 살점이 통째로 잘려 나갔다.
얼마나 깔끔한 손질이었는지, 새하얀 등뼈가 고스란히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처음에 베인 것은 옆구리……. 그다음에는 오른팔.’
그 후에 왼쪽 허벅지.
가슴, 귀.
그리고 이번에는 등.
많은 병사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신영준 병장의 전투법.
정작 본인은 스스로의 전투법에 별다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 더 소름 끼친다는 병사들도 많았다.
“어디 보자. 다음은 목살로 갈까.”
살아 있는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손질하는 모습.
그 모습에서, 모든 걸 식재료로만 바라보는 것 같은 광기가 느껴진다던가.
모든 병사들과 친근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
군단장이라는 그의 지위에 의문을 품는 자가 없는 데에는, 공포가 한몫을 하고 있었다.
서걱.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 주변의 살점이, 모조리 손질되어 나간다.
-끄르륵…….
아무리 강력한 전사라고 한들.
전설 속의 ‘광전사’가 아니고서야, 저런 상처를 입고도 서 있을 수는 없다.
쿵…….
[녹색갈기 치프틴].
하라-발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저, 저게, 신영준 병장님.”
“우욱.”
괴물의 시체를 보는 데에는 이골이 난 병사들조차 마른침을 삼켰다.
전투를 많이 겪어 보지 못한 도시의 각성자들은, 산 채로 손질된 괴물을 보며 구역질을 참지 못했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영준 병장은 쓰러진 괴물을 보고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더니.
“광일아.”
전광일 상병의 앞에 섰다.
* * *
“광일아.”
“……예. 신 병장님.”
“고생했다.”
전광일 상병은 말없이 신영준 병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신 병장을 존경했다.
그 존경심은, 아마 죽기 전까지 변하지 않겠지.
하지만.
자신을 쓰러트린 괴물이, 신 병장의 칼에 해체되어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울컥하는 감정이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엉?”
“크륵……!”
평소라면 참고 넘어갔을 감정이었으나.
광기에 휩싸인 지금은, 감정을 절제할 수 없었다.
“전사들의 싸움에 끼어들다니!”
“?”
“싸움에 끼어든 것도 모자라, 암습이라니. 저와 놈의 대결을 모욕하신 겁니다……!”
그 말에.
신영준 병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뭐야. 네가 죽게 내버려 두라고?”
“놈과 저.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여기서 패할지언정, 영광스러운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야.”
신영준 병장이, 그 말을 끊었다.
“전광일 상병.”
“……상병, 전광일.”
신영준 병장은, 대부분의 병사를 친근하게 이름으로 부른다.
그가 병사의 이름에 계급을 붙이는 경우는 둘 중 하나.
공적인 자리라 계급을 명시해야만 할 때.
그리고.
‘신 병장님이, 진심으로 분노했을 때.’
싸늘한 시선이 전광일 상병을 향했다.
“착각하지 말자. 너 전사 아니다.”
“저를 모욕하실-”
“군인이지.”
“…….”
“내 후임이기도 하고.”
쓰러져 있는 전광일 상병의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은 신영준 병장이 말했다.
“그 대단하신 전사님들한테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 같은 군바리들한테는 말이지. 명예로운 죽음? 그딴 건 있을 수가 없어요.”
“크륵……!”
“알잖아. 군대에서 죽으면 다 개죽음이라는 거.”
전광일 상병은, 신 병장이 분노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멸망의 날’ 초창기.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났다.
‘살아남기 위해.’
신영준 병장은 누구보다도 생존에 집착하던 병사였다.
그런 그인 만큼, 죽음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단 거겠지.
전광일 상병 역시.
이성으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날 살려 주려고 하신 일이다. 탓할 이유가 없지.’
하지만.
그럼에도 이 감정은 가라앉지 않았다.
애초에, 싸움에 끼어들었다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방해했다느니.
그딴 이유로 분노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부대 최고의 전사라……. 고작 나 따위가?’
그의 몸을 뒤덮은 것은, 전투를 방해받은 전사의 분노가 아니었다.
지독한 패배감.
괴물한테 진 것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구차하게 목숨을 구원받은 것으로 모자라.
자신을 압도한 괴물이, 신영준 병장의 손에 가볍게 손질되는 것을 보았다.
‘나도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힘은, 진짜 강적 앞에서는 언제나 무력하기만 했다.
그런 진짜 강적들을 처리한 것은…….
언제나, 신영준 병장이었고.
“야. 전광일 상병.”
“……예.”
“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 네가 잘나서 그런 것 같냐?”
그 질문에, 전광일 상병은 생각했다.
‘내가 잘나서? 그럴 리가 있나.’
나약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언제나 하나였다.
“전, 신 병장님 덕에…….”
“내가 아니라. 다른 부대원들 덕이겠지.”
“…….”
한숨을 내쉰 신 병장이 말을 이었다.
“리자드 치프틴. 기억나지.”
“……예.”
“그놈 잡겠다고 너랑 같이 덤빈 게 대원이랑 한일이었지. 그 둘은 그대로 시체가 될 뻔했고. 벌써 잊었냐?”
“안 잊었습니다.”
전광일 상병 혼자서 상대할 수 없었던, 처음 만난 강적.
같이 붙은 두 전사는 죽기 직전까지 몰렸고.
급하게 의무병과 군종병을 각성시켜야만 했지.
“저 뱀파이어들은 어때? 그놈들을 토벌할 때는, 진짜 시체가 된 병사들도 있었지.”
“…….”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건. 다른 부대원들이 그렇게 목숨 걸고 같이 싸워 준 덕분이다. 난 아직도 죽은 병사들 얼굴이 잊히지가 않아. 그런데 뭐? 영광스러운 죽음? 너 그 말 진심으로 하는 거냐?”
신영준 병장의 분노는 이해가 갔다.
하지만 동시에.
전광일 상병은 생각했다.
“리자드 치프틴도, 뱀파이어 퀸도. 결국은 신 병장님이 토벌하셨잖습니까…….”
“뭐?”
전광일 상병도.
다른 부대원들도, 목숨을 걸고 열심히 싸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저나 다른 부대원들이 열심히 싸운 게, 정말 의미가 있긴 한 겁니까?”
“너, 뭔 소리를…….”
그들이 적당히 힘을 빼고 싸웠다면.
저 전투들의 결과가 달라졌을까?
“어차피 신 병장님이 다 해결하셨겠죠.”
전광일 상병은 여러 상황을 상상해 보았으나.
어떻게 해도, 결국은 신영준 병장이 해결하는 모습만이 머리를 채웠다.
저런 대단한 사람이 아군이란 것은, 더없이 든든한 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다.
신영준 병장이 어떤 대단한 일을 해도, ‘역시 신 병장님’ 하고 넘어가는 게 불문율이 되었지.
하지만.
전광일은 거기서 그치고 싶지 않았다.
도움을 받기보단, 도움을 주고 싶었다.
오랫동안 노력해 왔고, 피나는 노력 끝에 힘을 키웠다.
‘그 결과가 이거라.’
괴물에게 패배하고.
신 병장에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해지는 결말.
‘넘을 수 없는 벽.’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억눌러 왔으나.
이 패배감은 꽤 오래된 것이었다.
“차라리, 죽게 두시지 그러셨습니까.”
“…….”
“그러면, 열심히 싸우다 죽을 수라도 있었을 텐데. 싸우다 진 놈이, 선임 도움으로 목숨만 건진 꼴은 벗어났을 텐데…….”
이윽고.
전투의 흥분으로 인한 광기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이성이 돌아온 뒤.
전광일 상병은 고개를 꾸벅였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광기] 탓에 그만.”
“……그래. 네 특성이 그런 거니까. 이해한다.”
“죄송합니다.”
신영준 병장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나중에 부대에서 얘기하자고. 의무병 불러 놨으니까 지금은 푹 쉬고.”
“예.”
“고생했다.”
고생했다.
과거.
겁 많던 그에게, 처음 사적인 요리를 해 주면서 해 줬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은혜를 갚기는커녕 민폐만 끼치는구나.’
광기가 줄어들고, 이성을 되찾았으나.
새어 나오던 감정을 참아 내는 데 성공했을 뿐.
전신을 뒤덮은 패배감은 여전했다.
의무병의 치료를 받으며, 전광일 상병은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
……너무 아팠다.
* * *
“……광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광일이 녀석에겐 쉬라고 했지만.
떠나면서도 묘하게 찝찝했다.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착해빠진 녀석이라 혼자 끙끙거리는 것 같단 말이지.’
맘 같아선 자백제……가 아니라.
[솔직한 마음]의 요리라도 먹여 놓고 묻고 싶다만.
“지금은 바쁘단 말이지.”
요새에서의 전투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다른 전투에 합류해야 할 상황.
게다가.
[적용 중인 요리 효과 - 4]
지금 나는 요리를 무려 4개나 중첩해서 먹은 상태였다.
[절대 미각]의 효과로 요리의 효과가 중첩되는 것은 대단한 효과지만.
이렇게 버프를 중첩하면 몸에 부담이 상당하다는 게 문제.
‘어떻게든 뽕을 뽑아야지.’
솔직히 말하면, 효과를 4개나 중첩시키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냐.
“어지간한 괴물보다도 괴물 같은 광일이를 쓰러트린 놈이니.”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광일이 녀석과 정면 승부를 펼쳐, 기어코 이겨 낸 괴물.
말이 정면승부지, 내 요리와 김 중위의 함성 등.
온갖 버프를 다 때려 박은 광일이와의 대결이다.
평균 전력이 높을 뿐, 특별하게 강한 괴물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다른 병사도 아니고 만전의 상태였던 광일이를 쓰러트리다니.
“요리 한두 개만으로는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급하게 전투식량들을 죄다 씹어 삼켰다.
중첩된 4개의 버프.
심지어 그 효과 중에는 [환경 동화] 특성도 섞여 있었다.
‘몰래 접근해서 암습까지 갈겼는데도 못 죽였을 땐…… 솔직히 식겁했다.’
다행히, 놈은 광일이와의 전투로 꽤 지친 상태였다.
거기에 암습으로 옆구리 살점을 모두 베어 내기까지 했으니.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이길 수는 있었다.
4중첩 버프가 아니었다면…….
아니, 광일이 녀석이 체력을 깎아 둔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 도끼질이 나를 두 동강 내 버렸겠지.’
제기랄.
도무지 방심할 수가 없는 세상이다.
나도 조금은 강해졌나? 싶을 때면.
그 오만을 순식간에 겸손으로 바꿔줄 만한 괴물이 등장해 버린다.
강적을 함께 해치워 줬더니 오히려 화를 내던 광일이 녀석에겐 조금 놀랐다만.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광일이 녀석이 뭔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지금 눈치채지 못했다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
생각해 보면 정신 상태가 해이해져 있던 나도 그렇고, 저 광일이도 그렇고.
병사들 멘탈 케어에 조금 소홀해졌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조만간 전 부대원들 상대로 면담 한번 해야겠어.’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 전장에서 살아남고 나서의 얘기.
나는 몸을 돌려 전장으로 향했다.
요새를 넘어오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고 하나, 숫자는 저쪽이 더 많다.
전력을 다해 상대해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적들.
‘미안하지만. 또 방심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다짐하며 놈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