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돌고 돌아 취사병이냐.
전투 뒤처리가 어느 정도 끝난 뒤.
“일단 임시로 지급해 드린 장비 말입니다만.”
이번 방어에 협력해 준 각성자들.
그들에 대한 보상을 지급할 차례가 되었다.
“그대로 가져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오오……!?”
[군단제 보급 전투복]
[군단제 보급 장검]
이번 전투에 대비해, 급하게 탄약대대 쪽에 연락을 해 만든 장비들.
급조한 장비들이긴 하다만.
그동안 생산직 부대원들의 실력도 꾸준히 올랐다.
내가 봐도 꽤 쓸 만하다 싶은 수준.
이상아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장비들과 비슷한 급이었다.
“이걸 정말로 그냥 준다고?”
꽤 쓸 만한 장비긴 하다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부대원들한테 지급되는 장비에 비하면 애매한 것도 사실이니까.
“장비들은 어디까지나 감사 표시입니다. 본래 약속했던 대가도 치를 예정이니.”
“이, 이런 장비를 그냥 주면서 따로 보상까지 챙겨 준다고?”
전투식량이나, 그 외에 군단에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능한 선에서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우리 입장에서야 전투식량 같은 건 넘쳐 나기에 가능한 일.
물론 저들의 능력을 감안하면 전투 한 번에 주기엔 과한 보상인 것도 사실이었다.
나름대로 생각한 이유는 있다.
‘앞으로 우리 길드만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 많아질 거야.’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도 있을 테지.
도시를 버리고 도망쳐도 됐을 텐데, 협력을 약속하고 끝까지 싸워 준 이들.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둬서 나쁠 것은 없다.
‘부대원들도 외부인들한테는 영 까칠하지만, 한 번이라도 같이 싸워 본 사람들한테는 꽤 호의적이고.’
당장은 조금 퍼 주는 느낌도 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조금 퍼 주더라도 이들을 성장시키는 게 군단에도 이득이 되겠지.
* * *
자세한 보상에 대한 것은 다른 병사들에게 맡기고.
나는 내게 배정된 방으로 돌아가 의자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첫 점령전 승리에 대한 보너스로, 보상이 지급됩니다.]
[단체 스킬 - 전쟁 노래]
점령지를 가지고 있는 다른 세력과 처음으로 벌인 전쟁.
그 전쟁에서 승리한 보상으로 얻은 단체 스킬.
그 이름은 꽤 익숙한 것이었다.
‘이거 아마 그거겠지?’
저 괴물들이 부르던 노래.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자, 그 노래가 하나의 피어가 되어 적들에게 버프를 부여했었다.
그것과 비슷한 스킬인 셈인데…….
“……미필들한테는 군가도 가르쳐야겠네.”
아무튼 유용한 버프가 생긴 셈.
아마도 광역 버프일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좋은 스킬이었다.
이건 그렇다 치고.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그다음으로 받은 보상.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이것 자체는 뭐.
흔히 보던 메시지다.
괴물을 처치할 때마다 나타나던 메시지.
이번에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레벨이 상승합니다.]
[중급 요리사 Lv.30]
저 보상으로.
내 레벨이 30에 도달했다는 것.
[승급이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이 게임이라고 한다면.
10레벨 단위는 일종의 전직 포인트였다.
‘20레벨 찍은 지도 꽤 됐으니까.’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도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늘이 될 줄이야.
“중급 다음이면 역시 고급이려나?”
지금 내 직업은 ‘중급 요리사’
길드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게 나다 보니, 다음 단계의 직업명이 무엇일지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것도 나였다.
견습, 하급, 중급.
지금까지 거쳐 온 단계를 생각해 보면, 다음은 고급이나 상급 같은 게 아닐까?
[요리사의 경지가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요리사들은, 자신만의 색채를 지니게 됩니다.]
[중견 요리사라 할 만한 단계를 지나, 이제 요리사로서 일가를 이룬 당신!]
[당신이 걸어온 요리사로서의 길이, 그 색을 이룰 것입니다.]
[플레이 로그를 분석합니다.]
[……분석 중.]
[승급이 완료되었습니다!]
[Lv.30]
[전쟁 요리사]
내게 주어진 새로운 직업명은…….
전쟁 요리사였다.
[당신의 요리는 무엇보다 전장에서 그 빛을 발했습니다.]
[전투와 관련된 요리 효과가 배가됩니다.]
[대규모 요리의 효율이 대폭 증가합니다.]
[…….]
[…….]
[모든 특성이 고급으로 진화합니다.]
[스킬을 획득합니다.]
[스킬 - 보조 셰프]
레벨업으로 인해, 직업의 경지가 한 단계 올라갔다.
모든 특성이 강화된 것은 물론, 새로운 스킬까지.
여러모로 많은 걸 얻었으나.
“전쟁 요리사…….”
내 새로운 직업명.
뭔가 기분이 묘했다.
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니, 조금 있어 보이긴 한다만.
이거 암만 생각해도.
“취사병 아니냐?”
……뭐랄까.
돌고 돌아 제자리라는 느낌.
일개 취사병 병장으로 시작했다.
괴물들을 처치하면서, 참 여러모로 개같이 구르기도 했다.
그 결과, 나름대로 시스템이 인정하는 고레벨 구간에 들어선 것 같다만.
‘그 결과가 취사병이라니.’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눈앞에 나열되는 효과를 읽어 보니.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전투에 관련된 요리 효과나, 대규모 요리 효율이 대폭 증가된다라…….’
요리사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중요하단 것은, 얼마 전에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평범한 요리사들의 목표가 손님들의 전투 능력을 올리는 것에 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난 대부분의 요리를 전투 목적으로만 만들었다.
그 결과, 전투에 특화된 요리사로 전직하게 되었단 거겠지.
“괜찮네.”
어차피 앞으로도 전투 목적으로 요리를 제작하게 될 일이 많을 테니까.
그쪽으로 특화된다는 건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확인할 것은, 스킬.
10레벨 단위로 전직을 거칠 때마다, 새로운 스킬이 하나 공짜로 지급된다.
[보조 셰프]
이번에 얻은 스킬은 이것.
[훌륭한 요리사들은, ‘셰프’라는 명칭으로 불리고는 합니다.]
[치프와 어원을 같이 하는 이 단어는, 주방의 요리사들을 지휘하는 수석 요리사.]
[즉, 주방장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많은 요리사들을 거느리고 지휘하는 헤드 셰프로서의 자질 역시, 요리사의 필수 소양!]
[보이지 않는 보조 셰프들이 당신의 작업을 보조합니다.]
“?”
설명에 의하면.
내 요리 작업을 돕는 보조 요리사가 생긴다는 뜻인데.
뭐.
직접 써 보면 알겠지.
그런 생각에 스킬을 사용해 봤는데…….
“……이게 된다고?”
아무리 나라고 해도.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 * *
이번 전투로 인한 보상들의 확인이 끝난 뒤.
나는 생활관의 한 방을 찾아갔다.
문을 노크하고 잠시 기다리자.
“뭐하냐?”
“아, 신 병장님…….”
방 안에서 궁상을 떨고 있던 거구.
전광일 상병이 문을 열고 나왔다.
“할 거 없으면 면담 좀 하자.”
예?
전광일 상병이 인상을 썼다.
부대 대장이 와서 면담하자고 하면 일단 경계심부터 드는 게 당연하겠지.
“혹시 지난번 일 때문이라면 걱정 안 하셔도……. 아시잖습니까. 광기 효과.”
“알긴 아는데.”
그때 한 말이 광기 효과가 전부는 아닐 것 같아서.
라고는 말 못 하겠고.
“그거랑 별개로. 부대원들 면담 한번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김 중위님이 어느 정도 하고 있는 일 아닙니까? 무슨 예전 대대장님도 아니고 갑자기 왜…….”
“나 얼마 전에 죽을 뻔했다.”
“예?”
갑작스러운 말에.
전광일 상병의 눈이 크게 떠졌다.
“쪽팔려서 말은 안 하고 다녔다만. 아무튼.”
“어, 언제 말입니까? 이번 방어전에서 제가 기절해 있을 때…….”
“그때 말고. 저놈들이 암살자 보냈을 때.”
“아.”
그때.
광일이 녀석은 상처 없이 적을 격퇴했던 걸로 기억한다.
반면 나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가 꽤 잘 살아남고 있잖냐.”
“그렇죠.”
“그동안 위기도 잘 헤쳐 나갔고. 슬슬 길 지나가다가 괴물한테 죽을 위험은 없겠다 싶어져서…… 방심했거든.”
“…….”
“그때 딱 그 암살자 놈들이 오더라. 까망이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시체가 됐을 거다.”
광일이 녀석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역시 그 뱀파이어들 외에도 호위병을 따로 두시는 게.”
“그것도 고려해 보긴 해야겠지. 지금 여기에 내 얘기하자고 온 건 아니고. 나처럼 해이해졌다거나, 다른 문제가 있어서 그쪽에 신경이 팔려 있다거나. 그런 놈들이 있을 수 있잖냐. 혹시 모르니 해결해 두고 가려는 거지.”
“……으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의 광일이.
저런 상태여서야, 듣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듣기 힘들겠지.
하지만.
“광일아.”
“예.”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야. 대충 넘어가면 나중에 큰 사고가 될 수도 있는.”
“그건 이해합니다만. 전 딱히 문제랄 게…….”
“그리고 난, 부대가 살아남기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다.”
“……?”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광일이.
난 그 앞에, 두 종류의 음식들을 내려놓았다.
한쪽에 있는 것은, 간단한 볶음밥과 고기볶음.
그리고 반대쪽에 있는 것은, 종이컵에 든 작은 사탕 하나.
[전쟁 요리사의 솔직한 감정의 알사탕]
“이건…….”
“먹으면 아주 약간 솔직해지는 사탕.”
“……허.”
다른 말로는, 음.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자백제라고도 한다.
[특별 소스]를 통해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나를 제외하면 민재 형뿐.
광일이 녀석은 조금 놀란 눈치였으나.
“역시 신 병장님. 이런 것도 가능하시군요.”
“내가 좀 잘났잖냐.”
대충 ‘이 사람이면 이런 것도 가능한가 보다’ 하고 넘기는 눈치였다.
“맛은 보장한다. 사탕이지만 건강에도 좋고.”
“…….”
“먹고 말할래, 그냥 말할래.”
“허. 말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는 겁니까?”
“여유롭게 멘탈 클리닉 할 시간은 없어서.”
내가 생각해도 조금 과격한 방법이긴 하지만.
알사탕을 바라보던 광일이 녀석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냥 말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난 알사탕을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남겨진 요리를 본 광일이가 물었다.
“그럼 이 요리들은 뭡니까?”
“아, 이거?”
씨익.
“그냥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입 심심하잖냐.”
* * *
과거에도 한 번.
이 녀석과는 꽤 진솔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보다 친해지면 친해졌지.
거리가 멀어지진 않았다 보니.
한번 말하기로 마음먹은 녀석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민을 스스럼없이 풀어놓았다.
다만.
그 얘기를 듣는 나는.
‘이게 무슨 소리야.’
싶어진 게 문제지만.
“그러니까.”
“예.”
“……내가 너무 잘나서, 무슨 문제든지 다 해결해 버리니까. 너나 다른 병사들은 쓸모없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드셨다?”
고개를 끄덕이는 전광일 상병.
“대충 그렇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강해졌는데,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안 되고. 나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느낌에 자괴감이 들었다. 맞냐?”
“옙.”
내가 잘못 이해한 건 아닌가 보군.
이야기를 모두 정리한 나의 감상은, 간단했다.
‘그건 어디 사는 초인이야…….’
병사들이 날 과대평가하는 건 알고 있었다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이 녀석은 말 그대로 나를 무슨 초인처럼 알고 있었다.
너무 대단한 나머지, 자신들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될 뿐인 초인.
대표적인 게 바로.
“내가 싸움에 안 끼는 이유가, 너희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양보하기 위함이라고……?”
“그럼 아닙니까?”
“…….”
내 직업은 [요리사].
원래가 후방 지원직이다.
전면에서 싸울 때도 있기는 하다만.
비전투직이 전투에 끼는 게 효율이 좋을 리가 있나.
당연히 대부분의 경우에는 요리로 지원하는 데에 그쳤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것마저 이상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 나서면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는 적들.
그런 적들을, 부대원들의 성장을 위해 양보하는 것이라고.
‘돌겠네.’
스트레스에 미간을 매만지고 있자.
광일이가 말을 이었다.
“전 신 병장님 덕에 살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든 갚고 싶다는 생각도 있구요.”
“어어, 그래.”
“하지만 은혜를 갚기는커녕…… 민폐만 끼치는 꼴이니.”
“여러모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긴 한데. 일단 이해했어.”
병사들이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일단은 내가 길드장…… 군단장이라는 위치에 있기도 하니.
‘그런 오해가 아주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
부담스럽게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이니까.’
언제, 어디서 죽음이 다가올지 모르는 세상.
그렇기에.
리더는, 언제나 강한 인물로서 존재해야만 했다.
자기들 대장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속원들은 안심할 수 있게 되는 법이니까.
그래서 조금은 일부러 방치해 둔 것도 있다만.
“누굴 탓하겠냐. 방치해 둔 내 잘못이지.”
“예?”
“됐고.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내가 몸을 일으키자.
광일이 녀석이 의아한 듯 말했다.
“일어나자니. 여기가 제 방인데요……? 어디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는 얘기십니까?”
“훈련장.”
“훈련장은 왜…….”
신장 2.3미터에 달하는 거구.
앉은 상태에서도 나와 눈높이가 비슷한 녀석에게.
“식후 운동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말했다.
“스파링 좀 해 보자고.”
* * *
[Lv.2 훈련장]
포인트를 투자해 만든 시설이다.
이곳에서 훈련을 하면 효과가 증대된다거나.
훈련만으로도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다거나.
뭐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만.
그건 지금은 중요하지 않고.
“전광일 상병님 오셨습니까.”
“어, 신 병장님도 같이 오신 겁니까?”
안쪽에서는 열심히 훈련을 진행 중이던 전사들이 보였다.
전사로 각성한 이들은 성장판도 각성을 하는 것일까.
죄다 엄청난 키와 근육을 자랑하는 헬창들뿐이었다.
‘나도 키가 작은 편은 아닌데.’
이 사이에 껴 있자니, 영락없는 난쟁이가 되어 버렸다.
조금 민망해진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광일이랑 할 일이 있어서. 미안한데 잠깐만 비켜 줄래?”
“아, 예. 뭐어.”
“안 그래도 거의 끝나가던 참이었슴다.”
병사들이 자리를 비워 주자.
나는 말 없이 구석으로 가서 목제 단검을 주워 들었다.
“스파링이라…….”
전광일 상병 역시 글로브를 끼며 중얼거렸다.
“병사들을 내보내신 건, 저를 배려해 주신 거군요.”
“응?”
“아무래도 제가 전사장 역할을 하고 있으니, 얻어맞는 모습을 남들한테 보이면 안 된다는 거겠죠.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역시 대단하십니다.”
“어, 뭐. 그렇다고 치자고.”
난 헛소리를 하는 녀석 앞에 선 뒤.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해라.”
“압니다. 전력으로 하지 않으면 금방 결판이 나 버릴 테니.”
툭툭.
서로의 무기를 두 번 부딪힌 뒤.
스파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분쯤 지났을까.
철푸덕.
바닥에 쓰러진 것은.
“지, 진심으로 하란다고 진짜 선임을 개 패듯 패네.”
“…….”
“야 이 양심도 없는, 으웨엑.”
당연하지만.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