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1)
그렇게 상행에 참여하는 것이 결정되었으나.
당장 떠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일.
저쪽도 이쪽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우와아.”
“얘기로는 들었지만. 진짜 엄청난 요새네요……!”
그렇게 상행에 떠날 준비가 진행되고 있던 중.
우리 길드의 요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저기 걸어 다니고 있는 것 좀 봐.”
“저게 그 용아병인가 그건가 봐.”
요새의 모습을 둘러 보며 막 도시에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흥분한 모습.
그들은 모두 우리 부대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부대원이니, 당연한 일.
“오셨습니까.”
“아! 군단장님.”
[재봉사] 이상아와 [대장장이] 박씨 할아버지.
거기에 [공병]들까지.
탄약대대에 머무르고 있던 생산직 각성자들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예.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각성을 한 뒤로는 잔병치레도 잘 안 한다. 솔직히 젊었을 때보다도 건강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게야. 그런데…….”
이상아가 탄약대대 자체의 관리를 맡았다면.
생산직들의 리더 같은 역할을 맡고 있던 것은 박씨 할아버지.
“우릴 부른 건 좋다만. 용건이 뭐냐?”
그가 조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들이 여기에 온 이유.
내가 불러서 그런 거거든.
춘천으로의 원정 당시.
대부분의 생산직 각성자들은 인제군에 잔류했다.
이유는 간단.
“[공방]을 통해 물건을 만들고 보내 주는 쪽이 네놈들에게도 낫지 않느냐?”
“그러게요. 저쪽이 공방도 설치돼 있고 하니, 뭘 만드는 데는 더 좋았던 것 같은데.”
원정을 나가게 되면, [공방]을 이용할 수 없게 되니까.
인제군의 탄약대대에는 박씨 할아버지와 공병들이 만든 공방이 있었다.
생산직 각성자들은 이런 공방이 있냐 없냐에 따라 작업 능률이 크게 달라진다.
나만 해도 밖에서 야전 취사를 하는 것보다는 식당에서 하는 편이 요리의 질이 올라가니까.
“뭐. 따라와 보면 아실 겁니다.”
그런 그들을 지금 여기로 부른 이유는 하나.
[대장간 Lv.2]
[가죽공방 Lv.2]
[직물공방 Lv.2]
더 좋은 공방들이 여기 있거든.
“맙소사. 진짜 대장간이잖아.”
“……우리가 만든 공방하고 비교가 안 되는 것 같은데?”
공방 계열의 건물들은 일부러 요새의 한쪽에 몰아서 지었다.
이쪽은 일종의 생산지구가 되겠지.
공병들이 여러 생산 시설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대장간이라…….”
박 씨 할아버지는 [대장간 Lv.2]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건물에 손을 대며 말했다.
“진짜로구나.”
“……그야 뭐. 가짜는 아니죠?”
“크흠. 그 소리가 아니라.”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는 박씨 할아버지.
“저번에 말했잖느냐. 우리가 탄약대대에 만든 공방은 간이 공방……. 진짜 공방에 비하면 성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아.”
“이 공방은 ‘진짜’다.”
대장간의 풀무를 매만지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 박씨 할아버지.
“우리가 만드는 장비들도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될 것이야.”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클클. 이런 공방을 선물 받고 기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탄약대대에 잘 적응한 이들을 이곳으로 부를 때는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만.
이렇게 기뻐하니 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럼. 마침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음?”
저렇게 기분 좋아 보이시니.
뭘 부탁하려면 이런 때 아니겠냐.
나는 이번 요새 방어전에서 주웠던 물건 하나를 가져왔다.
[하라-발의 머드 혼 엑스]
[강대한 힘을 가진 마수, 머드 혼의 뼈로 만들어진 대형 도끼입니다.]
[녹색갈기 부족의 전사들에게는 스스로 사냥한 마수의 부산물로 자신의 무기를 만드는 전통이 있습니다.]
[강인한 전사가 직접 사냥한 마수로 만들어진 무기.]
[그 전사의 손에 들려 수없이 많은 전투를 거듭한 끝에, 질 높은 마력이 깃들었습니다.]
“이건……?”
“이번에 있었던 전투에서 지휘관 역할을 하던 괴물이 있습니다만. 그놈이 가지고 있던 도끼입니다.”
지금까지는 몬스터들의 부산물들만 재료로 사용했지만.
저렇게 스스로 만든 무구를 사용하는 괴물을 만난 적은 드물다.
그중에서도, 이렇게 있어 보이는 설명을 가진 무구를 가진 놈은 또 처음.
“하긴. 괴물들도 좋은 무기는 탐낼 테니. 저쪽에도 나름의 무구 장인이 있나 보군.”
“예. 그래서 말인데, 이걸 이용하면 괜찮은 무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요.”
“흠. 좋은 요리사들은 여러 칼을 다루는 법이니. 네놈도 무기가 늘어날 때가 되긴 했지.”
지금 내가 사용하는 무기는 두 가지.
일식도, [독고구식].
중식도, [검정중식].
탄약대대를 점거하고 있던 흰거미들의 여왕.
그 양 앞발을 재료로 만든 두 자루의 식칼들.
만든 지 시간이 꽤 지나긴 했다만, 워낙 재료가 좋았다.
여왕의 원혼이 들어가 있어 치명타 확률이 증가한다던가?
꽤 많은 효과들이 붙어있기도 해서, 아직까지 모자람을 느껴본 적이 없는 명품.
이놈들은 아마 앞으로도 애용하지 않을까 싶다만.
사람이란 게,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하나씩 더 마련하고 싶어지는 거 아니겠냐.
슬슬 새로운 무기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좋은 재료가 들어온 셈이고.
“흠. 알겠다. 재료가 나쁘지 않으니 쓸 만한 물건을 만들 수 있겠어.”
“그리고…… 사실은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물건들이 더 많거든요.”
“음?”
“크흠. 칼도 칼이지만. 왜 있잖습니까. 냄비라든가, 국자라든가.”
“…….”
박씨 할아버지의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하니.
이때다 싶어서 질러 보았으나.
‘역시 주문량이 너무 많았나?’
영 꺼림칙하단 표정.
그가 조금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 네놈이 군단장인데, 나야 명령하면 따라야지. 내 전공은 칼 쪽이기는 하다만……. 다른 물건들도 만들어 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 하지만.”
“아, 예.”
“그만한 물건들을 만들려면 재료들이 꽤 많이 필요할 텐데?”
박씨 할아버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허접한 재료로 대충 만들어서 줄 생각은 없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건 내 자존심이 용서 못 해. 하나하나 질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들 것이야.”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나도 작업을 하면서 눈이 높아져서 말이다. 내 기준을 만족시킬 만한 재료는 구하기 힘들 텐데. 그만한 재료가 있기는 한 거냐?”
박 씨 할아버지는 장인 중에도 장인.
대충 아무 재료나 주워서 만들어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무기를 만들 수 있을 테지만.
그런 것은 용납하지 못하는 부류의 인물이었다.
말마따나, 그가 요구하는 수준의 재료들을 구하는 건 쉽지 않겠지.
하지만.
씨익.
“뭐 그건, 직접 한번 보시겠습니까.”
“……?”
나는 생산직 각성자들을 이끌고 요새의 한쪽으로 이동했다.
[창고 Lv.2]
우리 부대가 모은 괴물의 부산물이나 재료들을 모아 놓은 장소.
그 문을 열자.
“이, 이건……!”
“세상에.”
부대원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게.
“구, 군단장님. 이 양은 대체……?”
“네놈들. 그동안 이렇게 많은 재료를 모았단 말이냐.”
창고 안에 쌓여 있는 몬스터의 부산물들.
그 양이 너무 많아, 창고에 산처럼 쌓여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어떻습니까. 이 정도 양의 재료들이면, 박 노야의 기준을 채울 만한 것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으, 으음. 확실히. 저만한 양이라면…….”
당연히, 창고에 있는 모든 재료가 양질의 재료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저 안에서 양질의 재료들을 골라내기만 해도 상당한 양이 나오겠지.
“잠시 둘러봐도 되겠느냐.”
“예. 편하신 대로.”
내가 [식재료 감별]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공병이나 대장장이와 같은 이들은 [소재 감별] 특성을 지닌다.
박씨 할아버지의 시선이 창고 내부를 훑었다.
“오오. 이 특성은…….”
“이것도 나쁘지 않군. 잘만 사용한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허어. 저쪽 공방에서 작업할 때도 이 재료가 있었더라면!”
쌓여 있는 재료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 박씨 할아버지.
아무래도 생산직 각성자들은 재료에 민감한 편이니까.
나만 해도 좋은 식재료를 얻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박씨 할아버지라고 오죽할까.
“확실히 나쁘지 않구나. 아니, 솔직히 말해 아주 훌륭해.”
“헤헤. 기뻐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Lv.2 대장간]에 이어, 이 재료들까지.
장인으로서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무뚝뚝하던 박씨 할아버지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히죽거렸다.
“이 양은 좀.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반면.
창고에 쌓인 재료의 양을 본 이상아는 경악하며 말했다.
“상아 양. 우리가 탄약대대에서 원하는 물건이나 만들며 편하게 지내는 사이, 원정을 나간 병사들은 엄청난 고생을 했다는 걸세. 딱 보면 느껴지지 않는가. 이만큼의 재료를 쌓으려면 얼마나 많은 전투를 거듭해야 했을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재료들을 보는 이상아.
“이건, 노력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양이 아닌데요?”
쳇.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감이 좋은 사람은 이래서 싫다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테지만.
아무래도 쉽게 납득할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닌 것 같으니.
그냥 설명을 해 주기로 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저희끼리 사냥해서 모은 물건은 아니니까요.”
“네?”
“그러면. 이만한 양을 대체 어떻게 모았다는 게냐?”
이상아의 말대로.
우리 부대가 사냥만 해서 모으려면 최소한 반년은 더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양.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얘기가 조금 길어지는데……. 제가 도시의 각성자들에게 전투식량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아, 네. 그건 저번에 길드 메시지로 들었죠.”
“으음. 도시의 시민들에게도 좋고, 우리 부대도 이득을 볼 수 있는 일. 안 그래도 네놈이 참 머리를 잘 썼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왜?”
크흠.
나는 작은 헛기침과 함께.
저 재료들의 출처에 대한 설명에 들어갔다.
“그 전투식량이란 게. 다른 사람들이 괴물의 시체를 가져오면, 그 고기를 가공해서 전투식량으로 만들어 주는 식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수료의 개념으로 완성된 전투식량의 일부를 우리가 가져가고요.”
“……어. 설마?”
그 순간.
무언가 눈치챈 듯.
‘아, 아니.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고 중얼거리는 이상아.
반면 박씨 할아버지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게냐?”
“그게,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전투식량의 양이 맞는지는 엄청나게 확인합니다. 혹시나 저희가 더 가져가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그래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뼈나 뿔, 이빨 같은 걸 돌려 달라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구요?”
“…….”
“하하.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 순간.
묘한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이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군단장님? 이 재료들, 설마…….”
잠깐의 침묵이 끝난 뒤.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이상아.
“삐, 삥땅 치신 거예요?”
“어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뭐.
……맞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