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힘을 다루는 법
“으음.”
“저렇게 보내줘도 되는 건가 싶습니다만.”
약탈자들을 몰아넣은 건물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병사들이 중얼거렸다.
“나름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걱정하진 말고.”
“아, 그렇습니까?”
“신 병장님 말이라면 뭐 틀림 없겠죠.”
“…….”
당연히 설명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납득하는 녀석들.
“크흠. 문제는 다른 거지.”
“예? 뭐가 문제라는겁니까?”
“우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에 도착하고 아직 반나절도 안 지났어. 그런데 벌써 약탈자들하고 조우했잖냐.”
내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병사들은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되물었다.
“뭐…… 요즘 세상에 저런 놈들이 한두 명은 아니지 않습니까?”
“신 병장님은 순찰까지는 안 하시니까 모를 수도 있습니다만. 병사들은 순찰 중에 약탈자들 토벌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건 아는데. 춘천에서는 그런 놈들도 얼마 없었잖아?”
“그건…….”
“그렇긴 하죠.”
우리가 자리 잡는 데도 바빴던 인제군과 달리.
춘천은 어느 정도 세력을 키운 다음에 진출한 땅이기에 가능한 일.
춘천에서 약탈자들이 보이지 않았단 건.
그만큼 우리가 강하니까, 다른 놈들도 눈치 보느라 바빴던 것이 주된 이유.
“여기 자리 잡은 세력은 우리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단 뜻이지.”
“아아……. 확실히. 그렇겠군요.”
우리와 비등한 세력이라길래 조금 기대하긴 했다.
적어도 그 지역의 치안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마자 조우한 약탈자.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놈들이 딱히 약탈을 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그룹일 경우.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그놈들이 약탈자 그룹일 수도 있지.”
“으음.”
“다른 하나는, 그냥 우리 기대 이하로 무능한 단체라는 거고.”
“둘 다, 저희 입장에서는 썩 좋은 상황은 아니겠군요.”
“그렇지.”
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조금 불안하긴 하다만. 뭐. 모든 일이 잘 풀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어째 묘하게 동맹 구하기가 어렵다.
저번에는 뱀파이어에, 이번에는 만나기도 전부터 기대치가 팍팍 떨어지는 상황.
‘우리가 너무 앞서나가고 있는 탓인가.’
어쩌면.
내가 다른 세력을 보는 눈이 지나치게 높아진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한 지역 전체에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정말 우리하고 동등한 단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할 것 같고.
‘적어도 동맹을 맺을 만한 가치가 있는 단체였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상협이 다가오며 말했다.
“대, 대단하십니다.”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뭐.”
“군인분들이 평범한 각성자들보다 강하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 차이라니……!”
상협은 직접적인 전투를 겪어본 적이 거의 없는 인물.
우리가 10명이란 것만 보고 실망했던 시점에서 그런 건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머릿수가 전부가 아니란 건 이런 의미였군요…….”
“좀 안심이 되십니까.”
“물론이죠!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호위 병력이 적다는 불만은 금세 사라진 듯.
상협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부대원들을 칭찬했다.
슬쩍 보니.
칭찬을 들은 광일이 녀석이 조금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게 생겨버린 녀석.
이번에 전투는 나는 끼어들기도 전에 끝났으니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기뻐하는 거겠지.
다만.
나는 병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생각했다.
‘더할 나위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
고작 30명.
아무리 저쪽이 유리한 지형이었다고 한들.
그중에 각성자는 20여 명에 불과했음에도 불구.
제압에는 3분 정도의 시간이 들었다.
‘역시 모자라.’
서북부에 위치한 ‘녹색갈기 부족’을 토벌하기에는.
너무나도 모자랐다.
저 괴물들에 비하면 숫자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니.
한 명 한 명의 힘을 키울 수밖에 없는데.
‘그런 방법이 있을까.’
일단은, 그런 정예화에 한계를 느끼기에 선택한 것이 이번 동맹.
동맹 상대가 생각보다 강력한 세력이라면, 이런 걱정도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 * *
“아. 저기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더 이동한 뒤.
상협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멀리 있는 산.
난 그 산을 보며 상협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쯤 왔으면 설명해줘도 되는 거 아닙니까?”
“예? 뭘 말입니까?”
“그 거래 상대라는 단체가 뭐 하는 사람들인지, 저희도 대충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 상인.
상행에 동참한 것도 그 점 때문이었다만.
“그게. 저도 잘 모릅니다.”
“?”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보니. 그냥 이곳에 상당히 큰 세력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거든요. 제 입장에서도 사실 좀 도박이었죠.”
결국 상협도 저 단체에 대해서 아는 건 없다는 뜻.
‘아~ 불안해지는데.’
정말 이번 원정에서 아무것도 못 얻는 게 아닐까.
그런 불안을 가지고 산을 올랐다.
“신 병장님.”
“음?”
“저기 보십쇼.”
산을 오르는 길.
산 안쪽에 늘어져 있는 괴물들의 시체가 보였다.
‘……오?’
일일이 처리하기도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니 저기에 쌓아둔 것 같다만.
생각보다 약한 세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달리, 꽤 많은 양의 몬스터 사체들.
‘상처를 보아하니, 사냥하는 데 딱히 고전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주변 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꽤 강한 각성자가 포함된 세력이란 점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게 한참 산을 올랐다.
그러자.
“멈추시오!”
“……!”
저 위쪽에서 들려오는 경고음.
그와 함께.
산 위에서부터 한 사람이 걸어 내려왔다.
전신을 덮는 플레이트 메일로 무장한 사내.
우리 전사조와 비슷한 정도의 덩치를 자랑하는 전사였다.
“더 이상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겠소!”
갑옷을 입은 장성이 외치는 모습.
꽤 위압감 있어 보이긴 했다만.
“신 병장님.”
“어.”
“저거. 상점산 장비입니다.”
멋들어져 보이는 풀 플레이트 메일.
그건 상점에서 판매하는, 뭐랄까.
기성품이었다.
‘생산직 각성자는 없다는 건가.’
우리가 입은 군복의 경우.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성능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어지간한 철판 갑옷을 몇 겹 겹친 것과 비슷한 방어력.
거기에 더해 여러 가지 부과 효과를 제공하는 장비.
반면.
저 남자가 입은 것은 상점산.
겉보기엔 그럴싸해 보이지만, 아무런 능력치도 제공하지 않는다.
두꺼운 철판인 만큼 나름대로 방호력을 제공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뿐이라는 것.
그 전신 갑옷에 투구까지 끼고, 상점에서 파는 긴 장봉을 든 사내.
그가 우리를 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탈영병들이 이곳엔 무슨 일이오.”
아.
그놈의 탈영병 타령 진짜.
이 정도면 질린다는 생각을 하며.
해명을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으나.
“착각하시는 건 이해합니다만, 저희는 탈영병이 아니라…….”
“갈!!!”
괴성과 함께.
사내가 우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이곳을 떠날 수 없어 패악질을 듣고만 있어야 했다만!”
“아니, 사람 말을 좀.”
“내 눈에 모습을 보인 이상 그냥은 보내주지 않겠다!”
“아.”
별 이상한 오해와 함께.
나를 향해 봉을 휘두르는 갑옷남.
‘귀찮게 하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수도 없는 일.
나도 일단은 칼을 뽑아 대응하려 했으나.
“신 병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어? 어어.”
“신 병장님 스타일은 너무 과격하잖습니까. 뒤에서 쉬고 계십쇼.”
허허 하고 웃으며 내 어깨를 뒤로 당긴 것은, 전광일 상병이었다.
내가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신체에 무리가 간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예전보다도 나를 더 감싸고 도는 녀석.
솔직히 약간은 부담스럽긴 하다만.
‘뭐 상관없겠지?’
보아하니.
저들은 제대로 된 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
녀석의 말대로, 내 ‘손질’을 통한 전투는 지나치게 살벌한 면이 있으니까.
광일이는 기본적으로 순한 성격에, 단단한 건틀릿을 낀 주먹을 통한 무투술을 사용한다.
적당한 선에서 상대를 제압하기에는 나보다 제격이니까.
광일이라면 빠르게 해결해 주겠지.
그런데.
“……어?”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광일이와 갑옷남의 싸움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 * *
팡!
“크윽……!”
전광일 상병이 건틀릿을 낀 주먹을 내뻗자.
그 위력에 당황한 듯 약간의 신음소리와 함께 밀려나는 남자.
“……!”
하지만.
방금의 교환에서.
더 큰 충격을 받은 쪽은 광일이 쪽이었다.
‘이걸 막다니.’
광일이 녀석이 봐줬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다.
첫 일격에 힘의 차이를 보여 준 뒤, 상대가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 의도에 내뻗은 공격.
그걸 막아낸 것은 순전히 상대의 역량이었으니까.
“타, 탈영병 주제에, 제법 힘이 강한 것 같구나!”
확실히 상대도 그 힘을 느끼긴 했는지.
조금 당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래 봐야 힘만 셀 뿐!”
그 전의가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투.
퍽!
“크윽, 무식하게 힘만 센 녀석이.”
콰앙!
“커헉.”
쿠웅!
“뭐, 뭐 이리 무식하게 세!?”
전투의 흐름 자체는 시종일관 광일이의 우세였다.
갑옷을 입은 남자는 그 공세에 밀려 방어를 하는 것이 고작.
그러나.
그런 전황과는 별개로.
“전광일 상병님하고 저렇게 겨룰 수가 있다니…….”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중얼거리는 병사들의 말에 나 역시 어느 정도 공감했다.
‘굉장하다.’
분명 광일이 녀석이 어떤 버프도 두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만.
그렇다고 해서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장비 차이가 있으니까.’
저쪽이 입고 있는 장비는, 아무런 능력치도 붙지 않은 상점산 장비.
반면 광일이는 이상아와 박 노야.
두 생산직 각성자가 심혈을 다해 만든 군단원 용 장비를 착용한 상태였다.
‘움직임을 보면 알아.’
내뻗는 무기에 담긴 힘.
몸을 움직이는 속도.
스탯 면에서는, 전광일 상병이 압도하고 있다.
본래라면 이런 교전이 성립되지 않아야 정상일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길어지고 있는 이유.
그건 아마도.
“……기술의 차이.”
봉을 휘두르는 갑옷남.
그 속도는 분명 평범한 편이었으나.
기교 면에서는 차원이 달랐다.
힘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리지만.
그럼에도 광일이의 공격을 모두 흘려 내고 있는 남자.
평범한 호신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기예.
“하하! 힘만 세지, 그 힘을 다루는 법은 하나도 모르는 것 같구, 케흑.”
전광일 상병은 우리 부대에서 몇 안 되는 격투기 경험자.
부대원들 간의 스파링을 통해 그 실력을 계속해서 갈고 닦아 온 녀석이다.
상대가 말하는 ‘힘을 다루는 법’은, 평범한 무술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마도…… 각성자의 힘을 다루는 법.’
그렇기에.
그 기예를 지켜보며, 나는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저 남자의 말대로, 우리가 아직 각성자의 힘을 다루는 법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 방법을 익히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강해질 수 있다는 걸까.
* * *
갑옷을 입은 남자의 기술을 보며 신영준 병장이 희열을 느끼고 있을 때.
전광일 상병은 깊은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날파리 같군.’
자신의 모든 공격을 최소한의 피해로 흘려 넘기는 남자.
속도는 느리지만, 기묘한 몸놀림으로 인해 상대하기가 극히 까다로웠다.
작은 피해는 분명 꾸준히 누적되고 있다.
그 피해만 해도 상당하겠지.
하지만…… 제압하기에 충분한 유효타는 입힐 수가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맡겨 달라고 해 놓고선, 고작 이런 놈 하나 처리하지 못하다니.’
까득.
부대에서는 최고의 전사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들.
실상은 언제나 더 강한 괴물을 만나 얻어터지기만 하는 꼴.
그것만으로도 자괴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는데.
이제는 자신보다 약한 적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나는 이렇게도 나약하다.’
나약함이 자괴감을 불러오고.
자괴감이 분노를 일으켰다.
‘아니. 난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광기를 억누르고 사는 전광일 상병이었으나.
광기란.
본래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기에 광기라고 불리는 것.
‘전력을 다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대를 제압하는 선에서 그치려던 첫 의도와 달리.
그의 몸을, 광기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놈을 쳐 죽이는 데 5초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