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이대로 가면 망할 겁니다.
“이거 좀 싸한데.”
“예? 뭐가 말입니까?”
“그냥 혼잣말. 신경 쓰지 마.”
그 와중에도.
여전히 스님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중년인.
“중요한 일을 정할 때는 사람들끼리 상의하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또 스님들은 멋대로……. 각성자들이 하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라, 뭐 이런 겁니까? 사람들 생각은 하지도 않냐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그런 게 아닙니다. 타 지역에서 오신 각성자분들이신데.”
“각성자라고?”
자신과 대화하던 승주 스님을 제치고.
우리 쪽을 향해 삿대질하는 장년인.
“어이, 거기 아저씨!”
하필이면.
그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아저씨. 각성자시라고?”
아니.
우리 아빠랑 형님 동생 할 만한 나이로 보이시는구만.
언제 봤다고 나보고 아저씨래.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뭐, 각성자라면 직업이 있을 거 아니에요? 직업은 뭔데.”
그 말에 나는 조금 불쾌함을 느꼈다.
각성자들 간에 상대의 직업을 묻는 것은 실례다.
상대는 각성자가 아니니, 그런 것도 모르는 거겠지.
“……요리사입니다만.”
“허, 요리사?”
뭐, 레벨이나 스탯까지는 실례라고 쳐도.
직업 정도는 알려 줘도 되겠다는 생각이었으나.
“각성자들 중에 그런 직업도 있나? 마귀인 걸 속이려는 건 아니고?”
“이제 그만 하시지요. 진수 아버님.”
“내가 세상이 이 꼴 나기 전에는 식당을 몇 개씩 운영했는데 말이야. 아주 우리 가게에서 일하던 주방 아줌마들도 다 각성자라고-”
“……시주님!”
승주 스님이 장년인의 말을 끊었다.
“그만하십시오.”
“허. 이제는 외부인을 싸고 도는 겁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물러나 주십시오.”
“……쯧.”
짧게 혀를 차더니.
몇 걸음 물러나는 남자.
“그렇게까지 말하니 이번엔 넘어갑니다만.”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스님들이 또 외부인을 들여왔다는 거, 내일 회의에서 언급하게 될 테니.”
“…….”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장년인은 그런 말을 남기고 멀어져 갔다.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은 승주 스님.
그가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진수 아버님이 저렇게 남한테 막말을 하는 분은 아니셨는데. 세상이 이렇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셨나 봅니다.”
“아니 뭐. 전 괜찮습니다. 스님께서 사과하실 일도 아니고.”
“……시주님께선 마음이 넓으시군요.”
정말 별생각 없어서 한 말이었으나.
스님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각성한 직업이 요리사라고 하셨지요?”
“……예.”
“괴물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비전투직으로 각성한 것만 해도 힘든 일이지요. 거기에. 식재료 하나 구하기도 힘든 이 세상에서 다름 아닌 요리사……. 분명 고난이 많으셨겠죠.”
많다고 하면 많기는 했다만.
아마 이 스님이 생각했던 그런 느낌은 아니었을 건데.
“어. 뭐, 그렇죠?”
“안 그래도 쌓인 것이 많으셨을 텐데. 그럼에도 저런 모욕적인 발언을 참고 넘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스님.
“저는 출가한 몸임에도 화를 참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만……. 시주님을 본받아야 할 것 같군요.”
이 양반.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저 중년인의 말에도 내가 화나지 않은 이유.
그건 딱히 내가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다.
‘너무 같잖으면 화낼 생각도 안 들어서.’
각성조차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남을 까내리는 것에 바쁜 사람의 말 따위에 흔들리기에는…….
나는 내가 걸어온 길에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내 직업이 하찮은 것이었다면 또 모르겠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이쯤 되면,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거든.
* * *
“그래. 거래를 하러 오셨다고?”
잠시 뒤.
우리는 이 절의 주지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예. 스님. 저는 이상협이라고 하고, 직업은 상인입니다.”
“상인이라. 그건 각성자로서의 의미겠지요.”
“예? 아아. 물론입니다.”
물론이라는 말에 묘하게 쓴웃음을 짓는 주지 스님.
“아무튼, 거래라면 저희도 환영입니다. 마침 식량이 없어서 곤란해하던 참……. 저희가 충분한 대가를 치를 수 있을지가 문제겠군요.”
“그게, 사실 문제가 하나 더 있긴 합니다만.”
“예?”
가방을 연 상협이 그 안에 있던 전투식량을 꺼내 보였다.
작은 종이에 쌓여 있는 육포.
“그게. 제가 가져온 식량이 이거라서.”
“육포, 로군요.”
“예. 그게. 여기가 절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지라.”
혹시나 거래가 불발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상협이었으나.
“과연. 무슨 걱정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정작.
주지 스님의 반응은 꽤 무난한 것이었다.
“고기……인데요? 고기를 드셔도 되는 겁니까?”
“하하. 사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육식을 금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예?”
“오히려 탁발을 하며 받은 것은 가리지 않고 먹으라 가르치셨죠. 그 과정에서 고기를 받았다면 육식을 해도 상관은 없었던 겁니다.”
“그, 그렇습니까?”
“육식을 금하게 된 것은, 훗날 계율 중의 하나인 불살계를 더 중히 여기게 되며 생긴 변화였습니다만.”
싱긋.
가볍게 웃는 주지 스님.
“저희는 이미 불살계를 어긴 땡중들인지라.”
“…….”
과연.
그 말대로였다.
[식재료 감별(강화)]
[각성자 : 법현]
[직업 : 하급 사제 Lv.17]
이곳에 오면서 봤던 수많은 사람들과 달리.
스님들은 모두 각성을 마친 상태였다.
그냥 각성자인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전원이 상당한 고레벨.
‘레벨만 따지면 423대대 출신 병사들하고 비슷한 수준…….’
우리 병사들이 각성 후에 쉬지 않고 괴물을 사냥하며 레벨을 올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 역시 ‘멸망의 날’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각성을 마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옛날부터 각성법을 알았던 이들인데도, 각성자 숫자는 많지 않다는 게 문제지.’
그렇기에.
아까부터 느낀 싸한 느낌에 더더욱 확신이 생겼다.
“저희는 이미 생명을 해한 땡중들. 그 생명이 마귀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들 이미 계율을 어긴 셈이니, 고기를 먹는다고 더 문제 생길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아아. 그 말도 맞네요!”
아무튼.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상협은 더없이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면 거래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게 사실 그냥 육포가 아니거든요. 특히 각성자분들한테 참 좋은 건데, 이게 말로 설명하기가 참.”
아니나 다를까.
바로 작업을 치기 시작하는 상협.
“으음. 그런 귀한 물건일 줄이야……. 우리가 가진 물건 중에 교환할 만한 것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에이. 걱정하지 마십쇼. 이런 시기인데 같은 사람들끼리 도와야죠. 제가 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오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아마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가격이 되지 않을까 싶다만.
뭐, 그건 상협이 알아서 할 일이고.
“사실. 그런 일은 저보다 잘 아는 스님이 따로 계십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눠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산 주변의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나가 계신 상황이라. 빨라도 3일 뒤에야 뵐 수 있을 것 같군요.”
상협과의 대화는 일단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주지 스님이라고 해도 물품 관리까지 모두 도맡아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3일 뒤에 온다는 그 스님하고 대화를 나눠 봐야겠지.
* * *
그렇게 상협이 떠나고 난 뒤.
나는 여전히 방에 남아 있었다.
“……시주분께서는 다른 용건이 있으신지?”
그런 나를 보고 주지 스님의 의아한 듯 물었다.
‘용건은 스님들이 나한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자세를 바로잡은 뒤 입을 열었다.
“거래는 저 상인과 진행하면 될 겁니다. 제가 찾아온 건 저 거래도 거래지만, 다른 이유가 있거든요.”
“다른 이유?”
“남쪽에 군부대가 살아있다는 얘기는 들으신 걸로 압니다.”
“음……. 그쪽에서 왔다는 각성자를 만난 이들이 종종 있었지요. 헛소문일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했지만.”
춘천이 던전에서 해방된 뒤.
그대로 도시에 남은 이들이 대부분이긴 했으나.
고향을 찾아 이동한 이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을 통해 우리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퍼져나간 거겠지.
인터넷이고 뭐고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소문이 퍼지는 게 느릴 만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저희 부대의 위치는 좀 멉니다만. 아무튼 춘천과 인제군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최근에 어떤 괴물 세력과 교전하게 되었죠.”
녹색갈기 부족에 대한 얘기.
습격을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소규모 교전은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만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적이라는 점까지.
나는 숨김 없이 털어놓았다.
“허어.”
“으음. 다른 지역은 그런 상황이었다니.”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지금 세상에는 괴물들이 넘쳐납니다. 반면 인간의 숫자는 너무 많이 줄고 말았구요.”
“……많은 이들이 죽었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살아남은 이들끼리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저들의 영역은 이 도시하고도 겹쳐 있으니, 원래는 같이 힘을 합쳐서 대응하자고 제안하려고 했었죠.”
“동맹을 맺자. 그 얘기로군요.”
“일단은 그랬었습니다.”
그때.
얘기를 듣던 중 승주 스님이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부터 과거형으로 말씀하시는군요……?”
“예. 맞습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보며 말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이상할 정도로 적은 각성자.
산문을 지나 여기에 올라오기까지.
많은 걸 본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동맹을 맺으려고 해도. 그럴 만한 단체여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요!”
“실례였다면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사람들이 많더군요.”
“…….”
“각성자는 얼마 없고.”
여기 오기 전에 만난 약탈자 그룹을 떠올렸다.
30여명 중에 20명 정도가 각성자였던 그룹.
각성법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던 과거.
20~30여 명의 그룹당 각성자가 한두 명 정도 보통이었으나.
이제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나, 각성법도 많이 알려졌다.
그 결과가, 저 그룹.
살아남은 이들은 적지만.
그들은 천천히 강해지고 있다는 거다.
“당신들만 빼고 말입니다.”
“……!”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못 해도 이 절에 머무르는 사람이 천 명은 되는 것 같던데. 그중에 각성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산문에서 만난 갑옷남의 강함.
그 정도 강자가 소속된 그룹에, 이만한 숫자가 모인 단체라면.
근처 일대에서 약탈자 그룹이 활동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강한 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약탈자 그룹의 습격을 받았다.
그렇다는 건.
‘이 단체. 나사가 빠져 있다는 거겠지.’
내가 생각해도 조금 무례하긴 했던지라.
승주 스님은 내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 왔다.
“뭘 묻기 전에 우선 예의를……!”
하지만.
“승주 스님.”
“주지 스님?”
“그만합시다.”
승주 스님을 붙잡은 것은 주지 스님이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시주님께선, 저희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계신 것 같군요.”
“예. 저희도 비슷한 꼴이 날 수도 있었던지라.”
“허허. 질문하신 게 각성자의 숫자였습니까. 알려 드리지 못할 것도 없지요.”
한숨을 내쉰 그가 말했다.
“이제 막 100명을 넘긴 정도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멸망의 날’ 초기.
우리 부대는, 살아남기 위해 각성자를 늘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었다.
그때 당시.
내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시한 것이 하나 있었다.
‘총원 각성. 열외는 용납할 수 없다.’
모든 부대원들을 억지로라도 각성시켜야 한다는 것.
겁 많던 광일이 녀석을 억지로 각성시켜 광전사로 만든 게 그 예시.
만약 한 명이라도 각성에서 열외되는 것을 허용한다면, 각성하고자 하는 이가 줄어들 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한 단체가 각성자와 비각성자로 나뉜다면.
‘분열이 생길 수밖에 없지.’
단체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
내 직업은 혼자서는 살아남기 힘든 요리사.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
어떻게든 막아냈던 상황이었다만.
“아마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들은 우리와 달랐다.
그 상황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
“이 절. 이대로 가면 망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