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50화 (150/227)

150화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쯧.”

산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가 경직되었다.

사람을 향해 권총을 쏘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니, 그보다는 짜증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

신영준 병장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에.

-바, 방금 진짜로 쏜 거야?

-그럼 가짜로 쏜 거겠냐.

-조, 조용히 해요! 괜히 자극하지 말고.

그때.

신영준 병장이 말했다.

“그 뭐냐. 진수 아버님이라 했습니까.”

“저, 저 말입니까?”

“제가 존댓말로 대해 드리니까, 군인이 아주 쉽게 보이셨나 본데.”

“…….”

불과 수십 초 전까지만 해도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였던 홍정수였으나.

아무리 그런 그라고 한들, 다리 사이에 총알이 한 발 박힌 상황이다.

다음은 빗나가지 않을 거라는 경고까지 들은 마당에 당당할 수가 없었다.

“오래 살고 싶으시면 조용히 계세요.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예, 예에. 죄 죄송합니다.”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이미지가 떠올랐다.

세상이 멸망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면 높은 확률로 나오는 존재.

‘타락한 군인들.’

군부대의 강력한 힘을 악용.

사람들을 약탈하거나, 노예처럼 혹사시키거나 하는 이야기.

“어디까지 말했더라……. 후. 그러게 왜 끼어들고 난리야.”

“…….”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신영준 병장은, 그런 이미지를 그대로 옮긴 듯한 존재였다.

‘저, 저 군인이 저렇게 날뛰는데 스님들은 대체 뭘…….’

사람들의 시선이 슬쩍 다른 곳을 향했다.

본래라면 이런 이들을 막아줬어야 했을 각성자들.

그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었으나.

“……크윽.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후우!”

“다들 참으시게. 괜히 도발했다가는 큰 화를 입을 테니.”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분한 한숨을 내쉬며, 패악질을 지켜보고 있는 각성자들.

‘저 군인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당황스럽지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무튼. 말씀드렸다시피 많은 군부대가 괴멸한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저희 군단은 현재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군인의 수가 크게 모자란 상황이죠.”

“…….”

“당장은 서북부에 발생한 대규모 몬스터 집단을 견제하느라 전력의 대부분을 쏟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전선도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만. 전선이 무너지는 순간 그 괴물들이 강원도 전역으로 퍼져 나갈 테니 병력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죠.”

그때.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저, 저기.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예. 하시죠.”

“그. 저희한테 이런 말을 하시는 이유가 뭔지……?”

그 말에.

신영준 병장은 권총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말했잖습니까. 여유가 없고, 특히 군인이 많이 모자란 상황이라고.”

“……예, 예에. 거기까진 이해했습니다.”

“그럼 결론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저희가 여기에 온 것은 군인을 징병하기 위해서입니다.”

“……!”

“무, 무슨!”

갑작스럽게 던져진 한마디에.

동요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용!”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총을 든 신영준 병장이 소리치자, 순식간에 침묵하는 사람들.

“징병이라고는 했지만, 가만 보니 대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군요. 저희 징병 대상에 일반인은 포함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 그럼 누굴 징병한다는 뜻입니까?”

“각성자들만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스님들과, 스님들에게 협력해 각성을 거친 사람들.

“평범한 인간들은 전력으로 쓰기도 힘드니까요. 예전이었다면 어떻게든 훈련시키기라도 했겠지만…… 지금 저희는 일일이 병사를 훈련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괴물을 죽여 본 경험이 있는 각성자들만 징병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영준 병장 역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징병이라고 하니 안 좋은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나쁜 얘기는 아닐 겁니다.”

“그게 어떻게 나쁜 얘기가 아닐 수 있단 말이오.”

“저희는 많은 양의 식량과 무기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몇몇 농지를 안정화시킨 뒤에는 농사를 지어 장기적인 식량 보급책도 마련한 상태죠. 적어도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겁니다.”

“…….”

“게다가, 저희 군단에는 이미 수많은 각성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말을 있던 그가 슬쩍 고개를 숙이더니

바닥에 있던 돌 하나를 주웠다.

파사삭…….

그 손안에 쥐어진 돌이, 가루로 변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레벨이 30이 넘는 각성자죠.”

“강한 각성자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전투에서 사망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뜻이로구려.”

징병이라는 단어가 문제일 뿐.

확실히 나쁘지 않은 조건.

각성자들이 정말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생존자들 사이에 공포가 확산되었다.

“그,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냐니. 뭘 말입니까.”

“저 각성자들이 우리를 지켜 줘서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단 말입니다. 저 사람들이 떠나면…….”

그러자.

말을 꺼낸 남자를 바라보는 신영준 병장.

그 시선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딴 걸 저희가 신경 써 줘야 합니까?”

“그, 그딴 거라니.”

“말했잖습니까. 서북부에 대규모 몬스터 집단이 자리 잡고 있다고. 그놈들을 막고 있는 전선이 뚫리는 순간 근방의 생존자들은 모두 몰살되고 말 겁니다. 우리는 그걸 막기 위해 전력을 확충하려고 하는 거고요.”

“…….”

“그런데 뭐? 너희들 살겠다고 이걸 막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알 바 없다 이거냐?”

퉷.

신영준 병장이 바닥에 거칠게 침을 뱉었다.

“아니. 오히려 궁금하군. 혹시 당신들은 각성자가 되는 법을 모르나?”

“아, 알고는 있습니다. 괴물을 사냥하면 된다고…….”

“그럼 왜 아직까지 일반인으로 남아 있는 거지? 각성자가 30명 이상 모여 있는 단체라면 각성자를 늘리는 게 어렵지 않았을 텐데.”

“그건.”

“큭큭. 뻔하군. 당신네들이 거절했겠지. 괴물들하고 싸우는 건 싫으니, 얌전히 보호나 해 달라고 말이야. 당신 같은 이들이 한둘이었을 것 같나?”

마치 벌레라도 보는 것 같은 눈빛.

“세상이 이 꼴이 됐는데도,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새끼들……. 그러면서 치열하게 싸워온 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기를 바라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벌레와 다를 바 없는 쓰레기들.”

“…….”

“우리 군단은 강원도 지역 방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쓸모없는 인간 몇 명이 도태되는 것까지 신경 써 줄 여유는 없어.”

“쓰, 쓸모없다니……!”

“맘 같아선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은 걸 참고 있는 거다. 제발…… 더 이상 날 화나게 하지 마.”

생존자들의 반발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각성자들을 바라보는 신영준 병장.

“우리는 각성자를 결코 소홀히 대하지 않습니다. 저 쓰레기들과 달리,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해 오신 분들이니까요. 저희와 함께한다면, 강해지기 위한 모든 지원을 약속드리겠습니다.”

“…….”

“물론. 가볍게 내리기 힘든 결정임은 이해합니다. 3일 뒤에 다시 방문 드리도록 하죠.”

“3일이라…….”

“현명한 선택,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굳어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떠나가는 신영준 병장.

그 뒤를 따라, 군단의 병사들이 절을 떠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덩치 큰 병사 한 명이, 생존자들을 보며 물었다.

“당신들은 이 근처에서만 활동하던 겁니까?”

“예. 일단은…….”

“역시.”

거구의 병사가 한숨을 내쉰다.

“당신들. 우리 부대에게 발견된 걸 행운으로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려고 했으면서!”

“하지만 실제로 죽이지는 않았죠. 강제로 끌고 가지도 않았고.”

진심으로 안쓰럽다는 듯.

가여운 눈빛으로 말을 잇는 거구의 남자.

“우리가 아닌 다른 세력이었다면…… 이렇게 점잖게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게 점잖다고?

무슨 소린가 싶은 생존자들이었으나.

그 의미는 간단했다.

“우리는 민간인을 존중하고 괴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저희 군단장님의 의향을 따른 결과죠.”

“…….”

“진지하게 묻겠습니다만. 다른 이들도 그럴 것 같습니까?”

신영준 병장과는 달리.

그나마 온순한 성격으로 보이는 거구의 군인.

“저희는 괴물과의 전투를 위해 각성자만 징집해 가지만. 다른 이들이라면 평범한 민간인들도 그냥 두지 않아요. 전투 인원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뿐, 노예나 장난감으로써의 가치는 충분하니까.”

그는 이들이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

사람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평생 이 절에 숨어서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신 모양입니다만. 우리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른 세력에게 발각되었을 겁니다.”

“그, 그런.”

“세상이 점점 변하고 있습니다. 각성자가 생산과 무력을 모두 담당하는 세상이 왔어요.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구분이 시작되고…… 머지않아 얼마나 강한 각성자인지에 따라서 지위가 결정되는 세상이 되겠죠.”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두려운 건 이해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 변화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차라리?”

“빠르게 결단을 내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그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자는 도태될 뿐이니 말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등을 돌려 산문 밖을 향하는 군인.

사람들은 그 등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후.”

“이게 대체 뭔 일이래.”

군인들이 떠나고.

거처로 돌아간 각성자들과 달리, 생존자들은 충격으로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여전히 앉아 있었다.

“아, 아직 모르는 일이오.”

그사이에 앉은 중년의 남성

홍정수가 말했다.

“모르다니? 뭘 말입니까.”

“말했잖소. 스님들이 지금 상황을 바꾸려고 탈영병들을 데려온 걸지도 모른다고.”

“……아직도 그 얘깁니까?”

“아까는 제대로 못 물어봤지만, 저들이 진짜 군인이라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지 어떻게 알아!”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그 얘기를 들은 중년 여성 한 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짓말이라고 해도. 정말 스님들이 우리를 배신하려고 하는 거라면, 우리가 막을 방법은 없는 거 아니에요?”

“그, 그건. 그렇긴 하지…….”

사람들 사이에 무력감이 퍼져 나갔다.

“아주머니가 말한 것도 맞지만, 아마 저 군인들이 거짓말하는 것도 아닐 겁니다.”

“음?”

“아시잖습니까? 저 얼마 전까지 남쪽 근처에서 숨어 지내다가 얼마 전에야 이쪽으로 왔다는 거.”

“아…… 그랬지.”

“사실. 스님들에게 구출되기 전에는 더 남쪽으로 내려갈 생각이었습니다. 그쪽에 대규모 군부대가 남아 있다는 소문이 있었거든요.”

“……!”

“어디까지나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한테 들은 소문이긴 했지만. 그 도시는 진짜로 각성자만 천 명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군부대에서 식량을 풀어서 적어도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한다던가.”

저 군인이나 스님들이라면 모를까.

생존자들 사이에 섞여 지낸 지 몇 주가 되는 남자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소문이란 건 실제로 퍼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뜻.

그 실체가.

방금 전 그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고.

“그, 그럼 군인은 맞다고 치고. 스님들이 그놈들을 왜 들여보냈냐 이거요. 일부러 우리를 적대하려고 한 게 아닌 이상, 애초에 스님들 선에서 막았어야-”

“아마 스님들도 원하지 않았을걸요.”

“뭐?”

“제가 지내는 텐트. 스님들 갑옷 보관하는 창고랑 가까운 거 아시죠.”

이번에 나선 것은 또 다른 남자였다.

“이거. 오늘 거기에 버려져 있던 물건입니다.”

사내가 가져온 물건은.

기괴한 모양으로 찌그러진 철제 투구였다.

“이 자국. 보이세요?”

“이건.”

“사람 손자국입니다. 조금 크긴 하지만.”

“…….”

투구는 머리에 쓰는 것.

그 투구에 이런 자국이 있다는 건.

“……설마.”

“그대로 머리를 터트려서 죽일 셈이었다는 거예요……?”

“아마도 그렇겠죠.”

꿀꺽.

잔인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머리를 한 손으로 쥐고 터트리려고 했다는 것은.

투구를 쓰고 있던 자와.

거기에 손자국을 남긴 자.

그 둘의 힘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뜻.

“이 투구. 각성자들 중에서도 두 번째로 강하다던 혜연 스님 겁니다. 오늘 산문의 경비를 서던 분이셨는데, 지금은 병실에 누워 있답니다. 전신에 타박상을 입은 채로요.”

“그렇다는 건.”

“스님들은 군인들을 막아보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가 이거구요.”

그 얘기를 듣자.

홍정수는 등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낮에 반말했던 군인. 그게 저 병장이라는 놈이었지.’

그가 군인을 향해 따지고 들자.

승주 스님이 그를 말렸었다.

‘그때 만약 내가 계속해서 시비를 걸었다면…….’

자신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권총을 쐈던 병장.

그 무감정한 표정을 다시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잠깐. 그렇다는 건.’

당시에는 스님들이 무언가를 꾸미기 위해 외부인을 들여왔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접근하는 것을 본 승주 스님의 표정이 썩어 들어갈 때도.

‘잘 걸렸다’라고만 생각했었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승주 스님은…… 저 군인을 보호하려 한 것이 아니었구나.’

그 표정이 썩어들어간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위험한 짐승에게 겁 없이 다가가는 어린아이를 보면.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것.

상대가 괴물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채.

뭣도 모르고 덤벼들던 남자.

‘……나를 지켜주려 하신 거였어.’

불심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호구같이 착해빠진 스님들을 이용해 먹을 생각뿐이었던 남자, 홍정수.

‘계속 방해만 됐을. 나를.’

그 마음에.

커다란 빚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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