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51화 (151/227)

151화 절밥

“그, 그러고 보니, 그 병장이라는 사람이 자기 레벨이 30이 넘는다고 했잖아.”

“스님들이 정확한 레벨을 알려주진 않지만, 승주 스님도 20레벨 후반대 정도일 텐데.”

“……일개 병장이 이 절에서 가장 강한 승주 스님보다도 고레벨이라고?”

“그럼, 그 부대의 간부들은 얼마나 레벨이 높다는 거야.”

그때.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 때문이야.”

“뭐?”

“각성자들은 포인트 모아서 강해진다고 들었는데. 저 군인들은 군부대에 속해 있었잖아. 편안하게 포인트를 모으고 성장했겠지.”

“…….”

“반대로 스님들은 모은 포인트로 우리를 먹여야 했으니, 성장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스님들이 군인들에게 패배한 것.

“어찌 됐든. 확실한 건 하나뿐이군요.”

“뭔”

“지금 상황에서, 약해빠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

“…….”

그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한 채.

시간은 천천히 지나갔다.

* * *

결국.

아침에 펼쳐졌던 회의가 끝난 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저녁이 되었다.

스님과 각성자들은 따로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절 주변의 보초를 서는 이들 외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시주님들.”

“……?”

이 절의 가장 큰 어른.

주지 스님이 생존자들 앞에 서며 말했다.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같이들 드시지요.”

“식사…… 말입니까?”

“예. 절밥이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너무도 뜬금없는 얘기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아침의 일로 충격받은 사람들은 뭐라 이의를 제기할 만한 의욕도 없었다.

얌전히 스님들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

그곳에는.

“……우와.”

“이, 이게 다 뭡니까?”

엄청나게 호화로운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절인 만큼 육류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

심지어 양도 엄청나서,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을 것 같은 양이었다.

물론.

‘갑자기 이런 식사라니……. 말이 안 되잖아.’

무언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으나.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리겠습니다.”

“설명이라니.”

“이상한 음식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니, 안심하고 드셔도 될 겁니다.”

꿀꺽.

지난 수개월.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맛없고 딱딱한 호밀빵만 먹어야 했던 이들.

“에라이!”

“이, 이봐! 진짜 먹을 셈인가!”

“이상한 게 있어 봐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결국.

참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군인들이 각성자들 징병해 갈 거라며. 아무것도 못 하는 난 천천히 죽을 목숨인데, 먹고 죽지 뭐!”

그렇게, 차려진 요리를 한 입 입에 담는 순간.

음식을 삼킨 남자가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마, 맛있어……!”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맛있어, 맛있어……!’ 하면서 음식을 입에 쑤셔 넣는 남자.

“그, 그 정도라고?”

“……끄응.”

그냥 차려진 음식만 봤다면 참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 저렇게 신나게 젓가락을 놀리는 모습을 보고도 참기란 힘든 법.

“제길.”

“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님들이 나쁜 짓을 하진 않겠지.”

결국.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 역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뭐, 뭐야. 진짜 맛있잖아……!”

“최근에 호밀빵만 먹어서 그런가. 크흑. 입에서 살살 녹네.”

“뭐, 뭔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것보다도 맛있는 거 같은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기분 탓이겠지.”

군인들이 다녀간 뒤.

긴장감과 무력감에 힘을 잃었던 사람들.

하지만 맛있는 요리가 배를 채우자.

기분이 좋아진 이들이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식사에 몰입했다.

그 광경을.

스님들은 그저 웃으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 * *

“……꺼억.”

그렇게.

모든 식사가 끝난 뒤.

‘……막상 먹어보니 더럽게 맛있어서, 정신없이 먹기는 했는데.’

‘그래서 결국 뭐였던 거야? 이 요리.’

‘절밥치곤 너무 말도 안 되게 맛있었는데. 뭐 이상한 거라도 탄 거 아냐?’

식사를 마친 이들이 눈치를 보며 속닥거리자.

주지 스님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맛있게들 드셨습니까.”

“예, 예에.”

“정말 잘 먹었습니다만…… 그래서 결국 뭐였던 겁니까? 이거.”

“다 먹고 나면 설명해 주시기로 하셨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주지 스님.

“말씀드렸던 대로. 이상한 음식은 아닙니다.”

“그럼 이만한 요리를 할 식재료가 대체 어디서.”

“그 군인들이 주더군요.”

“……!”

애써 잊고 있었던 그 군인들이 다시 언급되자.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린다.

“군인들이 이런 걸 왜……?”

“저희 각성자 숫자가 100명쯤이란 걸 알고는, 3일 뒤에 자신들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먹으라고 건네주더군요.”

100명의 각성자가, 하루 세끼.

3일을 먹는다고 하면 대충 900인분.

천여 명의 생존자를 먹이기에 적당한 양이었다.

“그러면서 말하더군요. 자신들 아래로 들어오면 이렇게 충분한 식량이 제공되고. 저희보다 강한 각성자들도 많으니, 쉽게 힘을 키울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 식량을 왜 저희에게.”

“허허. 탁발을 받아 온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허허 웃으며 가벼운 말투로 입을 여는 주지 스님.

“참으로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갑자기 터져 나온 거친 말에 사람들이 당황했으나.

주지 스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식량을 줄 것이면 모든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 줄 것이지, 각성자들에게만 따로 전해 주다니요. 얘기를 나눠보니, 저들은 각성자만 인간으로 취급할 뿐. 그 외에는 마치 벌레를 보듯 대했습니다.”

“끄응.”

“그래서. 저희는 얘기를 나눠 본 결과…… 저항하기로 했습니다.”

“저, 저항이요?”

“싸움을 거부하는 이들조차 강제로 전장으로 내몰며, 이를 거부하는 이들은 인간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니. 불도에 어긋나는 일. 아니,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벗어난 일! 그런 단체에 합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스, 스님들……!”

사람들이 스님들을 보며 격한 감정을 느꼈다.

이 생존자들을 지키기 위해.

스님들은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거기에.

이제는 자신들을 버리기만 한다면 좋은 취급을 받으며 힘을 기를 수 있는 기회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스님들은 그 기회를 거부했다.

이런 세상이 되었음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본래 절의 생존자들 다수는 향화객 출신.

그 숭고한 모습에 감명받은 이들 몇몇이 눈물을 흘렸다.

“방금 식사는 마지막 만찬입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저희는 약합니다. 저항을 선택하기는 했으나…… 아마도 큰 의미는 없겠지요.”

“그럴 수가. 스님들은 엄청나게 강하지 않습니까! 어지간한 약탈자 그룹의 각성자들은 상대가 되지도 않을 정도로……!”

“저희도 그런 줄 알았으나, 저 군인들을 만나고 나서야 그게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 말에.

사람들은 아침에 보았던 투구를 떠올렸다.

머리를 통째로 으깨 버리려는 듯 손 모양으로 찌그러져 있던 투구.

“저들이 산문을 넘는 것을 막아 보려 했으나, 그 과정에서 혜연 스님이 크게 다치셨습니다.”

“……!”

“저항한다 한들, 결국은 저들의 힘에 굴복하게 되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들을 지켜 드릴 여유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도망치십시오.”

“도망이라니.”

“식사 맛있게들 하시지 않았습니까? 굶주린 상태로는 멀리 가지 못할 테지만, 지금은 다들 어느 정도 기운이 생기셨겠지요.”

그제야.

스님들이 식량을 푼 이유를 알게 된 사람들.

“이 절은 저희가 지키고 있었기에 안전했던 겁니다. 저희가 끌려가는 순간, 괴물들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겠지요. 그러니…… 숨어 지낼 수 있을 만한 안전한 장소를 찾아가셔야 합니다.”

그때.

주지 스님의 뒤에 서 있던 스님 중 한 명이 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각성자가 조금만 더 많았더라도.”

작은 목소리였으나.

몰려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잖습니까. 각성자가 조금 더 많았다면 뭐가 달라지는 겁니까?”

그 얘기에.

승주 스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 한 명 한 명은 저들에 비해서 크게 꿀리지 않습니다. 저희는 특별한 무예를 익혔고. 저들은 포인트를 투자해 압도적인 능력치를 얻었지요. 아마 평균적인 전력은 비슷한 수준일 겁니다.”

“아까 하신 말이랑은 다른 것 아닙니까? 분명 못 이길 거라고.”

“문제는 숫자입니다.”

후우.

한숨을 내쉬는 승주 스님.

“우리가 꽤 강하다는 건 저들도 알지만, 우리 인원이 너무나도 적습니다. 사람만 조금 더 많았더라면 저들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지는 못했겠지요.”

“……!”

“아니. 그 전에 포인트로 능력치를 키우기만 했더라도, 저런 무뢰배들은 이겨낼 수 있었을 텐데.”

스님들이 능력치를 키우지 못한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생존자들을 어떻게든 먹이기 위함이었지.

그렇다면.

“그, 그럼. 지금부터라도 늘리면 안 됩니까?”

“예?”

“저희가 각성해서 스님들한테 힘이 되어 드리면 되는 거 아니냐, 이 말입니다.”

“나쁜 얘기는 아니긴 한데.”

“그게 되겠어? 각성자들도 각성 직후에는 그렇게까지 강한 건 아니라던데.”

다른 생존자들이 조금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을 때

승주 스님은 턱을 주억이며 말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예?”

“처음 각성한 사람들은 능력치가 낮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익힌 무예는 조금 특별하지요. 능력치가 낮은 사람이라도, 이 무예를 익히면 능력치의 몇 배의 전투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 군인들 상대로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저 군인들은 서북부의 대규모 몬스터 세력을 억누르느라 인력을 빼지 못하는 상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지금의 묘양사 정도라면.

군인들이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희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저들로서도 부담이 커질 겁니다. 저들이 가진 전력을 모두 동원한다면 모를까. 그 전력의 대부분은 괴물을 막는 데 쓰고 있으니.”

“그, 그렇다면.”

“정말 가능할지도.”

“아니. 아마 높은 확률로 가능한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승주 스님이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려면 생존자분들이 각성을 거치셔야만 합니다. 그 후에는 제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구요. 괴물을 상대로 싸우며 힘을 키워야만 할 텐데…… 두렵지 않으십니까.”

애초에.

그 두려움 때문에 아직까지 각성을 거부하고 있던 이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군인들한테,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진수 아버님?”

그 때 말을 꺼내 든 것은.

지금까지 스님들이 하는 일마다 반대 의견만 세우던 남자.

진수 아버님.

즉, 홍정수였다.

“우리는 스님들한테 의지하기만 하느라,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지. 이미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적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님들을 상대로 언제나 언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스님들을 이용해야한다는 말을 밥 먹듯 했던 그였으나.

지금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더없이 점잖은 것이었다.

“……진수 아버님까지 그렇게 생각하실 정도라면. 알겠습니다.”

그 얘기에.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승주 스님.

“그럼, 이제부터 생존자분들의 각성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예!”

“저들은 3일 뒤에 온다고 했으니. 그전까지 최대한 많은 분들이 각성하고, 무예를 익혀야만 할 겁니다. 꽤 강행군이 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하, 무슨 나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저희도 각오는 했습니다. 늦은 만큼 더 빡세게 달려 보죠, 뭐.”

그렇게.

절 안의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구분 없이 한 마음으로.

그리고.

저 멀리 있는 또 다른 산봉우리에.

“잘된 것 같군요.”

“으. 안 하던 연기를 해서 그런가. 왜 이렇게 빡세냐.”

절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한 취사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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