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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53화 (153/227)

153화 트레이너 NPC

“그곳으로 안내하는 순간, 전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다 보니.”

죽을 확률이 높다니.

이게 뭔 소리야.

내가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여는 승주 스님.

“아까의 대련,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절의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

부대원들과 승주 스님 간의 간단한 대련이 있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저희 절에 소속된 각성자들 말고도 이렇게 강한 이들이 있을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싸웠던 덩치 큰 시주님의 움직임이란…….”

전광일 상병을 말하는 거겠지.

녀석이 좀 대단하긴 하다.

“정말 굉장한 힘이었습니다. 금강역사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충분할 정도의 강함이냐 한다면, 그건 또 아니다.

승주 스님 역시 그 부분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강한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승주 스님과 우리 부대원들 사이에 펼쳐진 대련.

그 결과는…….

‘우리 부대원들의 참패였지.’

그나마 광기를 해방하지 않은 상태의 광일이가 동수를 이룬 정도.

우리 부대를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개고생을 해온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허무할 정도의 결과였다.

‘이 아저씨. 엄청난 실력자다.’

산문 앞에서 만났던 혜연 스님이라는 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강자.

부대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능력치에도 불구.

그 정도의 전투 능력을 보여 준 거다.

우리 부대에서 만들어진 장비 등을 착용한다면.

광기를 해방한 전광일 상병과 자웅을 겨뤄 볼 만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치열하게 투쟁해 온 우리 부대의 최정예와도 비견될 정도의 강함.

그 근원이 바로.

“무예……라고, 일단은 상태창에 등록은 되어 있지요.”

이 절의 스님들이 익히고 있는.

바로 그 기술이다.

“아마 시주님께서는 이 힘을 공유받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슬쩍 손을 뒤로 뻗어.

등 뒤에 있던 상점산 철봉을 꺼내는 승주 스님.

“아까의 대련에서도 보셨겠지만. 저희가 익힌 무예는 기본적으로 봉술입니다.”

“예. 그건 저번에도 얘기하셨죠.”

“저희는 사람들을 각성시키기 전에, 기본적으로 이 ‘승병 무예’를 먼저 어느 정도 가르칩니다. 각성하기 전에는 그다지 큰 의미는 없는 무술이지만, 이 방법을 쓰면 각성 후에도 봉술 숙련 특성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더군요.”

과연.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 효율적인 각성을 위한 노하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문제는.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겠죠.”

“그야 뭐.”

나만 해도, 직업은 ‘요리사’.

가지고 있는 무기 특성은 ‘단도 숙련’이다.

스킬북을 통해 새롭게 익힐 수 있는 스킬과 달리.

특성은 새로 익히기도 어렵다.

“익힐 수만 있다면, 시주 님들의 능력이 몇 배는 훌륭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만. 제가 가진 것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군요.”

이 스님이 가진 ‘무예’라는 게 아무리 특별하고 뛰어나다고 한들.

관련 특성도 없는 상태에서 냅다 봉을 쥘 수도 없는 일.

“그러니, 제가 기술을 익힌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이라면 군인분들께 필요한 무예를 얻을 수도 있을 테지요.”

뭐, 그거까진 좋다.

애초에 어디서 얻었는지까지 알려 달라고 요청했던 건 나니까.

“거기 가면 죽을 확률이 높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문제는.

왜 갑자기 이 양반이 유서를 쓰고 자빠졌냐는 거다.

“함정이라든가, 괴물이라든가. 그런 거라면 말씀하십쇼. 우리 부대가 그런 거 해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하하…….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군요.”

자세 고치고 말하는 스님.

“일단 준비는 끝났으니,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여전히 의문은 남았지만.

나는 승주 스님을 따라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주님.”

“예에…….”

“절에서 다른 스님들이 저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셨습니까?”

그 말에 조금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이 절에 오래 머물러 있던 건 아니다 보니.

많은 걸 보지는 못했다만.

“음. 산문에서 광일이랑 싸웠던 스님도 아주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고, 주지 스님도 많은 신뢰를 보내는 것 같더군요. 그때도 뭐, 승주 스님 덕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든가, 공덕이 엄청나든가.”

“하하…….”

“처음으로 각성한 사람이라고 하셨죠? 게다가 저 [무예]라는 걸 익히고 사람들한테 전파한 것도 스님이라고 하셨으니, 실제로 많은 사람을 구한 거 아닙니까. 저 사람들이 각성을 반대한 게 문제였지.”

그 말에 민망하다는 듯 쓴웃음을 짓는 스님.

“솔직히 말하죠. 전 그 평가가 부끄럽습니다.”

“아~ 그 기분은 저도 좀 이해합니다.”

내가 여러모로 노력해 온 건 사실이긴 하다만.

너무 지나치게 치켜세워 주면, 이게 또 부끄럽긴 하단 말이지.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

“제 경우엔, 정말로 부끄러워해 마땅한 얘기라서.”

그런데.

승주 스님의 경우는, 나와는 조금 다른 얘기라는 모양.

이윽고.

승주 스님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산의 높은 곳에 세워진 절.

그 절에서도, 가장 구석진 장소.

“여긴…….”

“보시는 대로, 절벽입니다.”

그곳에 펼쳐진.

가파른 절벽이였다.

“세상에. 실수로라도 발을 디뎠다간 바로 죽겠는데요. 일단 떨어지지 않게 막아 뒀으니 다행이긴 한데.”

“의외로 그렇진 않습니다.”

“예?”

“보기보단 경사가 그렇게 심하지 않거든요.”

……응?

“암벽등반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일반인이라도 어찌어찌 살아서 내려갈 수는 있지요.”

“그렇습니까?”

“예. 이 사실을 아는 건 아마 절에서도 저뿐일 겁니다.”

어.

뭐라고 해야 하나.

“내려가 보신 것처럼 얘기하십니다?”

“예. 실제로 내려가 봤으니까요. 두어 번 정도.”

“여길 굳이 왜……?”

“처음엔 실수였습니다.”

묘한 눈빛으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승주 스님.

“그 괴물들이 나타난 날. 제가 뭘 했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주지 스님 말로는, 첫날에 실종돼서 죽은 줄 알았다던가.”

“여기로 도망쳤습니다. 괴물들이 무서워서.”

“……!”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승주 스님을 쳐다보았다.

도망이라니?

“괴물들도 절벽을 거슬러 오르는 건 힘든지, 대부분 산문 쪽으로 오더군요. 절에 갇혀 있던 다른 스님과 손님들이 좋은 미끼가 되어 준 셈이지요.”

우리 부대와 이 절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문제는.

사람들을 각성시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부대원들을 모두 각성시키려고 한 이유를 떠올렸다.

‘그렇게 하지지 않으면 부대가 약해지니까.’

부대가 약해진다면.

부대에 있는게 불안해진 병사들이 탈영을 하며, 약화가 가속될 수 있다.

그런 판단이었다만…….

이 양반.

‘그 탈영병이었냐…….’

이 절의 1호 탈주자.

그게 바로 승주 스님이었다는 거다.

* * *

“흡…… 끄윽.”

중년의 남성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흐느낀다.

튀어나온 돌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절벽 아래로 발을 딛는 남자.

“하,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하는 거잖아…….”

스님이 되고 꽤 긴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나.

승주는 사실 불심이 깊은 편은 아니었다.

난다긴다하는 고승들 중에는 사실 꽤 알부자가 많다던가.

먹을 걸 가리지도 않고, 절에서의 삶이 빡세 보이지도 않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대학을 다니고 자격증을 따서 스님이 되었을 뿐.

흔히 말하는 떙중이라는 녀석이 있다면 자신일 것이라고.

그도 스스로 생각했을 정도.

그럼에도.

절에서의 생활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일과가 끝난 뒤에는 다른 스님들과 족구를 하며 지내는 게 취미인 평범한 인간.

그 평범한 인간이, 어느 날.

같은 족구 동아리의 스님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꼴을 보게 되었다.

“끅…….”

묘양사는 유명한 사찰이었다.

스님들은 물론, 방문객들도 많았다.

그런 사찰이 먹을거리가 널려 있는 식량 창고쯤으로 여겨진 것일까.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수들.

놈들은 절의 담장을 넘어 사람들을 끌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나마 숲속으로 사라진 경우는 양반이지.

내장을 뜯어먹혀 사망한 동료 스님이, 끄어어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을 때는.

정말이지…….

-제기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일단은 무기가 될 만한 걸 챙겨봅시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니.

나름대로 정신력이 뛰어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회의를 하기도 했다.

장식용으로나 쓰던 승병용 장봉 같은 것을 들고 무장하는 등.

여러 대처가 있기는 했으나.

‘저 괴물들이 동네 똥개도 아니고. 봉으로 때린다고 죽겠냐고……!’

승주가 보기에는.

어림도 없는 대응이였다.

-탈출은…… 역시 불가능할 것 같군요.

-예. 저 괴물들……. 절 주변을 아예 에워싸고 있어요.

-하. 차라리 바로 습격할 것이지.

-가둬 놓고 배고플 때마다 한 명씩 빼서 먹을 셈인가.

탈출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다른 스님들과 달리.

승주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저, 절벽.’

삼면은 포위당한 상황이지만.

절의 가장 뒤쪽.

절벽에서는 아직 괴물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

승주는 다른 스님들 몰래 술을 홀짝이다가 저 절벽에 떨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저 가팔라 보이는 절벽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을.

의외로 조심만 한다면.

내려가기도, 기어오르기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괴물들은 뷔페에 몰린 손님들처럼 절의 3면에 몰려 있었다.

어떻게든 괴물이 적은 절벽으로 도망친 다음, 산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도시의 경찰이나 군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 저기.

그런 생각에.

절벽에 대한 것을 말하려 한 승주였으나.

-왜 그러십니까 승주 스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괴물들이 산문 근처에 몰려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어차피 도망치지 못하고 갇혀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절벽으로 우르르 도망치는 걸, 괴물들이 잘 가라고 보내 줄 리가 없지…….’

그렇다면.

절벽을 통해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괴물들의 시선이 절의 사람들에게 고정되어 있을 때, 몰래 탈출한다.’

양심의 가책이 없지는 않았다.

자기 혼자 살겠다고 다른 이들을 모두 버리고 도망치는 꼴이니까.

하지만.

어차피 절에 있어 봐야 변하는 것도 없다.

‘나라도 탈출해서 절에 괴물이 나타났다고 알려야지……!’

그런 자기 합리화를 거친 끝에.

그날 밤.

승주는 절벽을 타고 탈출을 결행했다.

“끄흑…….”

어둠 속에서,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스마트폰의 불빛에만 기댄 채.

절벽을 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으나.

탁.

결국은 그 높은 절벽을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디디는 데 성공한 승주.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바로 그 순간.

-크르륵…….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승주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아, 아아…….”

아침에 갑자기 나타나, 그의 직장 동료들을 잡아먹은 괴물들.

그 괴물 중 한 마리가, 절벽 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심을 버리고 혼자서 도망쳐 나왔는데.

그 결과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혼자 죽는 것이라니.

“흐, 흐흐……. 업보로다.”

중형견 한 마리도 제대로 이길 자신이 없던 승주다.

괴물을 상대로는 싸워 볼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때.

승주가 눈치채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가 타고 내려온 절벽.

그중 한 부분에, 검은색 장막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뒷걸음질 치는 그의 발걸음이.

우연히도 그 장막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

* * *

“히, 히익……!”

괴수가 그의 목을 물어뜯기 직전.

콰직!

“……콰직?”

승주의 등 뒤.

그곳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괴물의 목을 쥐었다.

“무, 무슨.”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있던, 검은색 장막.

그 안에서 튀어나온 긴 팔이 보였다.

빠직.

벽에서 튀어나온 손이 괴물의 목을 비틀자.

‘깨갱’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는 괴물.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저 손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

-후우. 지나치게 나약한 존재로군.

“예?”

-하지만 내게도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나.

승주가 감사를 표하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중얼거리는 소리.

그리고,

-너. 살고 싶으냐.

그 손이, 승주를 가리키며 물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아무튼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승주는 눈물 콧물을 모두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거래를 하지.

“거, 거래. 말입니까?”

-괴물의 시체들을 가져오너라.

“예……!?”

장막 안에서 나타난 손.

그 자체로도 당황스러웠으나, 이어진 말은 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괴물들을 죽이라니. 계율……은 그렇다 치고. 저놈들은 맨몸으로 산문을 부수는 괴물들이란 말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니.”

-네가 거래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장막 안의 손이 승주의 머리를 만지더니.

바닥에 기절해 있는 괴수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내가 네게, 살기 위한 힘을 줄 것이니.

그 후.

그 ‘손’은 그에게 무예를 가르쳐 주었다.

평범한 인간의 무술과는 격이 다른 기술.

각성자의 신체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무예’를.

* * *

“무예를 익히는 데에는 3일 정도가 걸렸습니다.”

“…….”

“그 후에 절에 복귀하려는 저를 보며 그 손이 당부하더군요.”

-기술을 열화해서 남에게 가르치는 것까지는 허용하겠다.

-원본을 남에게 그대로 가르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내 존재를 남에게 알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

-만약 이를 어길 경우…….

-내 직접 네 심장을 씹어 먹어 줄 것이다.

“여기까지입니다.”

“……흠.”

“저로서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목숨을 대가로 다른 목숨을 바치라 하는 존재…… 그런 게 정상적인 존재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승주 스님의 과거 이야기.

본인은 나름대로 죄책감을 가지고 부끄러운 과거를 입에 담은 것이겠으나.

“그런 존재와 거래를 하기로 한 것이니…… 그자가 함구를 명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솔직히 중간부터는.

‘다른 부분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어.’

신경 쓰이는 점은 단 하나.

승주 스님이 말한 대로라면.

그 장막 너머의 손이라는 녀석은 아마도.

‘트레이너 NPC……!’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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