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뭔 개소리야?
승주 스님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트레이너 NPC라니……!’
트레이너 NPC.
요즘은 어떨지 몰라도, 예전에는 게임마다 거의 필수적으로 있었던 존재다.
이들의 역할은 지극히 간단하다.
자신을 찾아오는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전수해 주는 것.
‘아니. NPC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을지도.’
승주 스님의 말에 따르면.
놈은 여차하면 이 스님도 죽여 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듯하니까.
몬스터의 일종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조건만 맞으면 새로운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특수한 몬스터.
나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스님이 말한 그 검은 장막이란 건…… 아마 던전이겠지?’
다만 의아한 것은.
그 존재는 던전에서 팔을 꺼내 바깥에 관여했다는 거다.
내가 지금까지 본 던전은 두 곳.
[검은모래 산란지]와, [침식이계 다스무르]였다.
‘두 곳 모두 던전 안의 존재가 바깥으로 나오는 경우는 없었어.’
지금까지 겪은 두 던전이 이상한 걸까.
아니면 저 절벽 아래에 있다는 장막이라는 게 이상한 걸까.
그러고 보니.
“그 손이라는 게, 괴물의 사체를 달라고 했다고요?”
“예.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다행히 그 장막은 이 절벽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어서, 사냥한 괴물들의 사체를 종종 저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더군요.”
얘기대로라면, 접근해 온 괴물을 일격에 기절시킨 존재.
그런 녀석이 왜 직접 사냥을 안 가고 거기에 사체를 조달할 것을 부탁한 걸까.
‘……손만 빼는 게 한계라든가?’
설마.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 존재가 그런 한심한 이유로 그럴까 싶다마는.
“……그런데.”
트레이너 NPC라는 생각에 흥분해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데.
그 얘기대로라면.
“저한테 말한 시점에서 그 계약을 어기게 된 셈이신데…….”
“예. 맞습니다.”
“왜 그런 짓을.”
이 스님.
지금은 그 존재와의 계약을 어긴 상태라는 거다.
계약을 어기면 심장을 뜯어먹어 버리겠다고 하는 협박을 들었음에도.
“어차피 제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어떻게 눈치챈 건지는 아직도 감이 안 옵니다만.”
“그래도. 남에게 들키는 거랑 직접 말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요. 다만.”
손에 쥔 봉을 슬쩍 내려다보는 스님.
상점에서 파는 철봉이었으나.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한 듯, 사용감이 역력했다.
“이 봉술은, 그냥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해 주는 방법이 아닙니다.”
“?”
“기술을 익히고 단련해 나갈수록, 마음이 가라앉고 조금씩 정돈되더군요. 어쩌면 본래는 정신 수양을 위한 무예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럼에도 저는 아직까지 화를 참지 못할 때가 많으니, 그전의 제가 얼마나 못난 놈이었을지 매일 같이 체감하게 되더이다.”
자신을 향한 살해 협박이 언제 실행될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허허롭게 웃는 승주 스님.
“사람들을 배신하고 혼자서 살고자 한 죄. 못난 과거의 제가 저지른 가장 큰 업보입니다.”
“……설마.”
“정말로 당신이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해 주고. 사람들에게 살길을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저 하나 죽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숨 하나 따위.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싸게 먹히는 편이겠지요.”
식량을 제한해서 생존자들을 각성시켜야 한다거나.
주지 스님에 비하면 꽤 강압적인 방법을 얘기했던 스님이다만.
‘결국은 그것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지.’
정말로 이 스님이 제 안위만을 챙겼더라면, 이 절을 떠나 버리면 그만이다.
누가 봐도 서포터 직이라 부대를 버릴 수 없었던 나와는 달리.
‘승주 스님의 직업은 성기사.’
훌륭한 전투 능력과 회복 능력을 모두 갖춘.
솔로 플레이에 최적화된 직업이니까.
그럼에도 절을 떠나지 않은 것은.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이었다는 거다.
“저는 이미 결심을 마쳤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스님…….”
“문제는 제가 아닌 여러분들이지요.”
자세를 바로 한 스님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안에 있는 존재는…… 아마도 평범한 괴물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존재일 겁니다. 당시에는 몰랐습니다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던져 준 이 무예만 해도 저희 절이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준 엄청난 것이었지요.”
“……흐음.”
“지금이야 조건을 어겨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처지라고 하나, 놈과 거래를 맺은 것 자체는 정말로 운이 좋았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 트레이너 NPC를 찾아간다고 한들.
우리까지 운 좋게 무예를 전수받고 끝나리라는 법은 없다는 거다.
“운이 좋다면 제 다음 거래 상대로 지목되어, 그 대가로 무예를 전수받을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스님이 조건을 어겼다는 것에 대한 분풀이로, 저희까지 같이 처리해 버릴 수도 있겠죠?”
“예.”
그 ‘손’을 찾아간다면, 무예를 익히게 될 수도 있으나.
반대로 처참하게 살해당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손’을 찾아가지만 않는다면.
승주 스님이 언젠가 놈에게 살해당할 뿐.
우리에게까지 피해가 올 가능성은 적겠지.
“선택은 자유입니다.”
난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일단 이 절의 사람들과의 동맹이 성사되었다.
저 ‘녹색갈기’ 들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방어선이 형성된 셈.
하지만.
‘역공을 해서 토벌하기에는 여전히 모자라.’
더 강한 한 방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이 스님이 가진 무예 같은 것이.
“제가 혼자 정할 일은 아니군요.”
일단은.
부대원들의 의견을 물어봐야겠지.
* * *
“……라고 한다.”
묘양사의 식당.
그곳에 모인 병사들에게 승주 스님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주었다.
“허. 그 스님.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건가 했더니.”
“그런 이유가…….”
병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스님들이 익힌 ‘무예’ 자체에 흥미를 가지는 녀석들.
“그 괴물은 또 뭐랍니까.”
“얘기만 들으면 평범한 놈은 절대 아닐 것 같은데.”
“……악마 같은 건 아니겠죠?”
장막 안의 ‘손’을 경계하는 녀석들.
그리고.
“…….”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는.
전광일 상병까지.
사실.
내가 혼자서 판단했다면, 바로 절벽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도박을 하게 될지언정,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는 피해선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계속 가는 건 좋지 않겠지.’
군단의 규모는 커져 가고 있으니까.
지금이야 나나, 민재 형 등.
몇몇 고참 병사들이 모든 일을 파악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지만.
점점 그런 단순한 체계로는 일을 해결해나가기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 있는 녀석들은 423대대 시절부터 함께한 놈들.’
말하자면 우리 부대의 간부 후보생들 같은 느낌이다.
언젠가 중요한 결정을 맡게 될지도 모르는 녀석들.
이번 일은 이 녀석들의 목숨도 걸려 있는바.
이 녀석들의 판단과 의견도 들어두고 싶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도박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합니다.”
한 병사가 의견을 꺼냈다.
“저 산 위에 있느라 지상의 상황을 모를 때는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만, 지상에 내려오고 보니 알겠더군요. 지금 우리 길드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최소한 몇 개월은 앞서가고 있다는 거.”
그 말에는 다른 병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처럼 거점조차 안정화되지 않은 상태라면 모를까. 저 요새도 그렇고, 용아병도 그렇고. 우리가 당장 무너질 것 같지는 않거든요. 안정적으로 사람만 늘리고 레벨만 올려도 될 것 같은데, 굳이 도박을?”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다.
[녹색갈기]가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요새가 생긴 뒤로는 그쪽도 우리를 함락하기 버거워할 테니까.
“그런 도박은 나중에 필요할 때 해도 되지 않을까요.”
슬쩍 다른 병사들의 눈치를 살피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그 스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
결국, 그렇게 하겠노라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연 것은 전광일 상병이었다.
“승주 스님 말입니다.”
스님이라.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그 스님이 말한 대로라면, 언젠가 그 괴물이 찾아와서 살해당하게 되겠지. 아마.”
“우리한테 그 녀석에 대한 정보를 넘긴 대가로 말입니까.”
“……광일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광일이 이 녀석은 워낙에 순박한 성격이라.
죽음이 예정된 사람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뭐 그런 거겠지.
“승주 스님은 과거 일로 죄책감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하려고 한 건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한 거였고. 스님께서 죽음을 각오하고 하신 일이야. 우리가 거기에 끼어들 자격은-”
“아뇨. 신 병장님. 제가 하려는 말은 그런 게 아닙니다.”
뭐?
무슨 소린가 싶어서 바라보자, 진지한 눈으로 말하는 녀석.
“승주 스님은 우리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결과로 스님은 죽을 위기에 처한 셈입니다.”
“일단은 그렇지.”
“문제는 이 상황이 이번 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응?
“신 병장님은 믿을 수 있는 각성자들과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야…… 다른 각성자들도 점점 힘을 키우고 있으니까. 우리만으로는 버거울 때 도움이 될만한 이들을 만들어 두는 건 나쁘지 않지.”
“문제는, 우리에게 우호적인 행동을 보인 이가 그 행동으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 위기를 알면서도 그냥 방치했다는 게 알려진다면…… 우리는 신뢰를 잃어 버리게 되겠죠.”
“……!”
그 얘기에.
나는 눈을 부릅뜨고 광일이를 바라보았다.
“당장 우리는 이 절의 사람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만, 아직도 저들은 우리를 믿어도 되는지 의심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만약 우리가 그 스님을 살리는 데 성공한다면…….”
“성공한다면?”
“군단은 자신들에게 호의를 보인 이들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전례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절의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얻을 수도 있겠죠.”
이 녀석.
그냥 순박하기만 한 놈인 줄 알았는데.
“승주 스님이 그 존재와 마주친 건 각성을 거치기도 전의 얘기입니다. 얘기만 들어보면 초월적인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도 과거의 인간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초인이죠.”
전투 능력으로는 최고 수준일지언정, 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낸 적은 드물던 전광일 상병.
“그놈도 물론 강하겠지만, 우리 군단도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놈을 찾아간 뒤, 어떻게든 무예를 얻어 내고, 동시에 승주 스님을 향한 위협을 막아내는 게 되겠죠.”
“……대단하군.”
설마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어째서 지금까지 회의에서 조용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하. 그게…… 언제나 신 병장님에게 판단을 맡기기만 했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
“지난번에 상담받은 후로도, 역시 저는 너무 민폐만 끼쳤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도 생각이란 걸 좀 해 보려고 노력해보고 있습니다.”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녀석.
“사실, 이번 일에는 개인적인 욕심도 좀 있구요.”
“욕심이라니?”
“솔직히 말하면, 방금 말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겁니다.”
멍하니.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녀석.
“저는 너무 약합니다. 힘만 바보같이 세지, 가진 힘을 활용하지 못하는 거로는 아마 부대에서도 제일가는 멍청이가 저겠죠.”
“야, 그건 광기 때문에.”
“광기. 맞습니다. 그것도 문제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으나.
광일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산문을 지키고 있던 그 스님. 기억나십니까.”
“…….”
“승주 스님과 신 병장님이 아니었다면. 전 그분을 죽이고 말았겠죠.”
그것이 [광기]의 페널티다.
엄청난 힘을 선사해 주는 대신.
이성을 빼앗아 가는 힘.
“이 힘 덕에 여기까지 왔지만. 전 이 힘이 두렵습니다.”
“그건.”
“이런 힘에 의존하고, 얽매인다는 것 자체가. 제가 약하니까 그런 것이겠죠.”
그야.
이 녀석이 엄청나게 강했다면, 굳이 [광기]를 해방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러니까, 그건 네 잘못이 아니-”
갑자기 자기 비하를 시작하는 녀석.
저번처럼 우울증이라도 도진 것인가 했으나.
“그 무예라는 거. 각성자의 힘을 다루는 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응?”
“승주 스님은. 실제로 그만한 힘을 가지고 계셨고요.”
고개를 든 녀석의 눈빛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걸 익힌다면, 광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한 힘을 얻게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신 병장님에게도 민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힘을.”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주먹을 세게 쥐는 녀석.
“하지만, 이건 너무 개인적인 욕심이잖습니까? 어떻게든 설득할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굴리다가 나온 게 아까 그 얘기입니다.”
“하하……. 짜식.”
대견하잖아.
지난번에 면담을 거치긴 했지만.
결국 이 녀석이 가진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진 못했다는 생각에, 못내 불안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신경 써 줄 필요도 없었나.’
이 녀석은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거다.
다른 병사들을 보니.
광일이의 말에 의의를 표하는 병사는 없었다.
“도박이기는 해도.”
“전광일 상병님 말대로지. 우리도 약하진 않으니까.”
이곳에 모인 이들은 부대의 각성자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정예들.
어지간히 강력한 괴물이라도 어렵지 않게 토벌 가능한 전력이었다.
“도박을 굳이 걸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만 ……충분히 걸어볼 만한 도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의견을 꺼냈던 병사도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정해졌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겠지.”
단순히 무예를 얻는 것으로 그친다면 몰라.
승주 스님을 살려본다는 목적까지 추가되었다.
그 ‘손’과의 교전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높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만전의 준비를 다 하고 임해야 할 터.
사실.
그래서 회의 장소를 주방으로 정한 거기도 하거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간 뒤.
버너에 불을 켜며 말했다.
“밥부터 먹자.”
* * *
“결정을 내리셨나 보군요.”
우리가 절벽을 내려가겠다고 말하자.
승주 스님이 고개를 끄덕임.
“예. 무예도 무예거니와…… 이 절과는 동맹을 맺게 됐으니까요. 동맹 관계인 승주 스님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제 걱정까지……!”
감격에 약간 몸을 떠는 스님.
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제가 만난 그 존재…… 무척이나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평범한 괴물과는 격이 다를 터. 각오는 충분히 되신 겁니까.”
“예, 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저희도 그렇게 만만한 놈들은 아니라서요.”
“…….”
“뭐. 저희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하는 짓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병사들은 승주 스님의 안내를 따라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승주 스님에게 무예를 가르쳐 주었다던 신비로운 존재.
그 녀석이 얼마나 강력할지.
일말의 긴장감을 품은 채로.
* * *
그런데.
-나를 죽이러 왔는가.
“……예?”
절벽 아래에 위치한 검은색 장막.
그 안에서.
비통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 모자란 너를 제자처럼 여겨 무예까지 건네주었거늘…… 큭큭. 이렇게 배신을 당할 줄이야.
“그, 그게 무슨.”
-어리석긴. 내가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가.
스륵…….
장막을 헤치고 튀어나온 손이, 병사들을 가리킨다.
-저놈들.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구나. 그래도…… 여유롭게 감당할 만하다. 문제는.
그 손이 스르르 움직이더니.
가장 앞에 나와 있던 병사.
-저놈.
나를 가리켰다.
-짙은 혈향이 코를 찌를 정도로구나.
“시, 신영준 시주님?”
-거기에, 기름 낀 쇳덩이의 냄새까지……. 나를 죽이기 위함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밖에.
무거운 침음성과 함께.
덜덜 떨리는 손가락.
-과연.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존재감이로다…….
그 말에.
“서, 설마. 제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던 이유가.”
승주 스님은 물론.
병사들 모두가 입을 떡 벌리며 나를 바라본다.
“이 존재를, 죽일 수 있다고 판단하셨던 겁니까……!”
그 말에.
나는 덤덤하게 눈을 감고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뭔……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