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먼저 멸망한 세계
처음.
승주 스님의 안내를 따라 절벽 아래로 이동할 때만 해도.
“그렇게 대단한 괴물이라니.”
“저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신 병장님이 계시니까, 못해도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부대원들은 긴장하고.
“정말로 제 목숨을 걱정해서 하는 짓이라면 괜찮습…….”
“됐습니다. 승주 스님은 나중에 절 사람들한테 저희 얘기를 잘 전해줄 생각만 하고 계십쇼.”
“으음.”
안내를 맡은 승주 스님 역시.
얼굴의 근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장벽 앞에 도착하니.
-흐흐흐……. 비통하구나. 나약한 존재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헌데 이렇게 배신을 당할 줄이야.
“…….”
장벽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놈은 정말로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약간 울먹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인가! 저 감추려도 감출 수 없는 짙은 피와 철의 냄새! 그야말로 수라…… 수라의 그것이거늘.
승주 스님이 해명하려 했음에도 흥분을 잠재우지 못하고 떠들어 대는 장막 안의 존재.
저 녀석이 하는 얘기가 뭔지, 대충은 짐작이 간다.
‘짙은 혈향에, 기름 묻은 쇠 냄새라…….’
짐작 가지 않을 수가 있나.
지금 내 그림자 속에서 대기 중인 두 존재.
[뱀파이어 남작]
[강철을 먹는 맥]
-저희 얘기하는 것 같은데요?
아리엘라와 까망이를 일컫는 것이겠지.
-대단하네요.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데도 저희 존재를 느끼다니.
-끼잉.
승주 스님의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초월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녀석.
녀석과 교전을 벌일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든 마당에.
이 둘을 동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만.
-내 비록 여기서 죽게 되겠지만, 쉽게 죽어 주지는 않겠다……!
“효과가 너무 직빵인데…….”
설마하니.
싸우기도 전에 저렇게 바싹 쫄게 만들 정도일 줄은 몰랐지.
지금은 우리 부대와 함께하고 있지만.
그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저 둘은 일종의 보스 몬스터.
[전투력 측정기]에 의하면 파란색 등급으로 책정되는, 진짜배기 괴물들이다.
거기에 아리엘라가 만든 뱀파이어들의 군대까지.
‘뭐야. 생각해 보니까 엄청 살벌한 전력이잖아?’
[녹색갈기]처럼 상당한 세력을 군대를 이룬 적이 아니고서야.
어지간하면 질 것 같은 느낌은 안 들긴 한다.
“……야. 들었냐?”
“예.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병사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열 명은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존재가, 신 병장님 한 명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이 우리 열 명이지. 전광일 상병님도 껴 있는데.”
그러고 보니.
광일이를 제외하면 내가 뱀파이어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는 비밀이다 보니.
병사들 입장에서는, 저게 내가 아닌 다른 두 괴물의 얘기라는 걸 알 도리가 없었다.
“시, 신영준 시주님이 그렇게 대단하신 분인 겁니까?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글쎄요.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는 분이셔서.”
“어느 정도로 강하신 건지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그냥 어마어마하다는 것 정도밖에.”
“허어!”
얘기를 안 하긴.
딱히 말할 만한 강함이 없으니까 안 말하는 거지……!
-오라! 네놈들에게도 그럴싸한 상처 하나는 남겨 줄 테니……!
그림자 속에 있는 두 괴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은 물론.
얘기만 들어 봤을 땐 그토록 강해 보이던 녀석이, 싸우면 자기가 죽을 것은 확정이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으니.
오해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다만.
‘나쁘진 않은 거 아닌가?’
저 장막 안의 괴물도 결코 약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다른 세계에서 온 괴물임에도, 이렇게 의사소통이 성립되고 있다는 점.
이것부터가 놈이 예사롭지 않은 존재라는 뜻.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장막 안의 괴물은, 까망이와 아리엘라를 이겨 낼 자신이 없다는 거다.
어찌 됐든.
그 둘이 내 아군인 건 변함 없는 사실이고.
음.
그렇다면.
‘뻔뻔하게 나간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뜬 뒤.
절벽을 뒤덮은 검은 장막에 대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딱히 죽이겠다 말한 적은 없다만.”
-……뭐라?
슬쩍 운을 떼자.
안에 있던 존재의 목소리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쉽게 죽어 주진 않겠다느니 했지만.
역시 죽고 싶지는 않다는 거지.
“살고 싶으냐.”
나는 팔짱을 낀 채.
오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살고 싶다고 한다면, 살려 주겠다는 뜻인가?
“물론. 대신에…….”
승주 스님의 말대로라면.
이 녀석은 아마도 트레이너 NPC.
“거래를 하지.”
그러니.
“대가는…… 글쎄.”
하나도 남김없이 빨아가 줘야겠지.
“네가 가진 모든 것 정도면 적당하겠군.”
* * *
-……모든 것이라.
장막 안의 목소리는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느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주기로 했다.
“네가 가진 지식을 넘겨라. 일단은, 저 승주 스님에게 가르친 무예라는 것부터.”
-무예를?
내 입장에선 당연한 요구였으나.
목소리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대가 그런 것을 왜 원하는가?
“왜 원하냐니.”
-무예란, 약한 존재가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이겨내기 위한 기술이다. 본래라면 야생에서 도태되어 마땅한 약자들이, 천적들을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기술……. 하지만 그대는 무예 따위가 없어도 이만한 존재감을 풍기는 강자가 아닌가.
이 녀석.
그림자 속에 있는 두 괴물의 존재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게 나와는 별개라는 것까진 눈치채지 못한 모양.
-내가 가진 잡기 따위는, 너 같은 존재에게는 필요하지 않을 텐데?
“그걸 왜 네가 판단하지? 필요한지 아닌지. 그걸 정하는 건 나야.”
-……하긴. 저 뒤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럭저럭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이 없어지는 녀석.
-과거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일축했겠지만…… 이미 저 대머리에게도 무예를 가르친 적이 있으니. 이제 와서 그럴 이유는 없을지도 모르겠군.
“빠르게 정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냥 싸우고 죽을지, 네가 가진 걸 내놓을지.”
얘기를 너무 안 들어 먹는다면.
두 괴물을 시켜 협박성 퍼포먼스라도 해야 하나 싶어질 때쯤.
-좋다.
녀석이 그런 말을 해 왔다.
-내가 가진 무예들을, 그대들에게 전수하도록 하지.
그 말에.
‘나이스!’
나는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춤을 추고 싶었으나.
일단은 힘으로 짓누르고 있는 입장.
겉으로는 당연한 선택이라는 듯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결정이다.”
-그렇다면 일단…… 들어오도록 하라.
그런데.
이어진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오라니?”
-무예의 전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그대들은 한 명도 아니지.
“승주 스님은 어디에 들어갔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그 대머리를 말함인가.
뒤에서 듣고 있던 승주 스님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녀석은 나약했다. 나로서도 선택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무예를 전수했을 뿐. 이 안에 들일 마음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
“우리는 다르단 건가?”
-그대들이라기보단.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내가 무예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대는 나를 죽이려 들 테니. 저 대머리가 무예를 익히는 데 3일의 시간이 걸렸지. 그대들은 이 절벽에서 그만한 시간을 보낼 셈인가?
승주 스님 한 명이 3일이 걸렸다면.
우리 길드원 10명은, 30일 정도가 걸릴 수도 있다는 뜻.
‘뭐 텐트를 설치하고 하면 못 할 건 없겠지만, 좀 그렇긴 하네.’
문제는.
‘들어오라는 건…… 저 검은 장막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이겠지.’
내 예상대로라면.
저 장막은 아마도 ‘던전’의 입구라는 것.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공략한 던전들의 공통점이 하나.
“던전은 들어가면 보스를 처치하기 전에는 나오지 못할 텐데.”
보스를 클리어하기 전까지.
입장한 자는 나갈 수 없다는 것.
“함정으로 나를 유인하려는 셈은 아니겠지.”
조금 경계를 담아 말한다.
어쩌면, 이 안에 있는 보스가 엄청나게 강력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자기 혼자서는 나를 이길 수 없으니 유인하는 걸지도 모르는 일.
-던전이라니? 아아. 침식지를 말하는 건가.
“침식지?”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말라. 이곳은 그런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장소이니. 뭣하면 직접 확인해 보아도 좋다.
그 말에.
나는 의아해하며 장막을 향해 조금씩 접근했다.
그 입구에 손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접근하자.
[멸망한 세계의 파편 - 게이트를 발견하였습니다.]
눈앞을 채우는 메시지.
멸망한 세계의 파편이라고?
[처참하게 파괴된 채, 우주를 유영하는 세계의 파편.]
[그곳으로 이어지는 문입니다.]
[어떻게 멸망을 거친 세계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질병이 돌아 멸망한 세계로써, 입장하는 순간 피를 토하며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어쩌면 유용한 물건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진입할 것인지, 아닌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던전이 아니라…… 게이트.”
게이트.
들어 본 적이 있다.
[게이트 소환권]
[이상식욕자]를 인간으로 돌려놓은 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얻었던 아이템에 적혀 있던 이름.
그 정체는 잘은 모르겠지만.
던전과는 달리,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문구는 없기는 하다.
하지만…….
그 외에 신경 쓰이는 문구가 하나.
[멸망한 세계의 파편]
“멸망한 세계라.”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묘양사가 위치한 높은 산.
저 멀리에,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의 풍경이 보였다.
멸망한 세계라니.
그건.
‘우리 얘기 같잖아.’
* * *
“오! 진짜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지 않았는가. 금세 들통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일단은 던전이 아니라는 건 확인됐으니.
병사 한 명이 시험 삼아 안에 들어간 뒤 곧바로 나와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저 녀석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럼. 저도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한 명씩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는 병사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신 병장님.”
“오냐.”
이윽고 광일이까지 안쪽으로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나 역시 장막 안으로 몸을 옮기려던 찰나.
팍.
장막 안에서, 기괴할 정도로 빼빼 마른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마도 승주 스님이 말했다던, 그 손.
“뭐지? 이제 와서 배신인가?”
-설마. 나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안다. 무예를 가르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내 쪽에서도 조건을 한 가지 제시하고 싶은데.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치며 오만하게 대답했다.
“네가 조건을 걸 수 있는 처지라고 생각하나?”
-물론 아니지. 이 안에 있는 이들을 볼모로 삼는다든가,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럼 뭔데.”
-이 조건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처절하게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던 녀석.
그런 녀석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만한 조건이라.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일단 들어나 보지.”
-고맙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간단하다.
대체 어떤 조건이길래.
이렇게 분위기를 잡나 했더니.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 다른 이들은 건드리지 말아 줬으면 한다.
……다른 이들?
이 안에, 이 ‘손’의 주인 말고도 다른 이들이 있다는 건가.
“일단 묻겠는데. 네가 말한 다른 이들이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도 내가 말릴 것이고. 그럼에도 그들이 그대를 먼저 적대할 경우에는, 저 조건은 없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
“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다오.
“그 정도야, 뭐.”
애초에 전투를 벌이려고 온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 주었으면 좋겠군.
“무슨 증거?”
-그 피 냄새의 근원을 치워 주었으면 한다.
피 냄새의 근원이라.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대가 장막에 다가왔을 때 느꼈다. 그 피 냄새와 쇠 냄새는, 아마 그대에게 종속된 존재들이겠지.
정확히 말하면 까망이는 아니긴 하다.
먹이로 길들였다는 쪽이 맞긴 한데…… 뭐 둘 다 그 의미로는 같나?
-쇠 냄새가 나는 쪽은 괜찮다. 그 역시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무차별적으로 해를 끼칠 것 같은 위험한 기세는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저 혈향은 그렇지 않다.
“내 명령에 복종하는 녀석이다. 이상한 짓을 저지를 일은 없어.”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한들, 그렇게 불쾌한 냄새를 내뿜는 존재를 저 안에 들여 보내고 싶지는 않다. 이해해다오.
이해해 달라니.
조금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믿고 들어갔다가, 공격당하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개소리는 그만-”
“주인님.”
당연히 거절하려고 했으나.
어느새 그림자 속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낸 여자.
아리엘라가 말했다.
“저 말을 듣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뭐?”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불쾌하다는 듯 장막 안의 손을 바라보는 그녀.
“문전박대는 솔직히 기분 나쁘긴 하지만, 저 안에 들어가 봐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저 말대로라면 그 ‘무예’라는 걸 익히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그렇긴 하겠지.”
“호위는 다른 병사들이나 ‘맥’에게 맡겨도 충분하잖아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다른 일을 맡기시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다른 일이라니?
아니, 그보다도 의아한 것은 이 녀석이 이렇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는 것 자체.
내 명령을 강제적으로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굳이 이렇게 성실하게 나설 녀석이 아닌데.
“사실. 예전부터 생각해 둔 제안이 있거든요.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제안?”
“아마 주인님도 마음에 들어 하실 거예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가 말한 ‘제안’을 들었다.
그 내용을 모두 파악한 뒤.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왜 진작에 이 생각을 못 했지?’
그녀가 말한 ‘제안.’
그녀가 원해서 할 만한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마음에 드네.”
“역시. 주인님이라면 마음에 들어 하실 줄 알았답니다.”
우리 부대에도 큰 도움이 될 내용이었다.
씨익.
“이쪽은 제게 맡기고. 주인님은 편하게 다녀오시길.”
“좋아. 그 부분은 네게 맡긴다.”
내 허가가 떨어지자.
“……후후.”
작은 미소를 짓는 그녀.
“믿고 맡겨 주세요. 임무를 완료하고 돌아왔을 때, 베풀어 주실 은총이나 충분히 준비해 두시길.”
“그래. 선짓국이랑 피순대. 배부르게 먹여 주마.”
“헤헤.”
이윽고, 피안개로 변하며 저 멀리 사라지는 아리엘라.
“그럼. 주인님의 주인님이시여.”
“다녀오겠나이다.”
그림자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뱀파이어 군대들이 그녀를 따라 이동했다.
“이걸로 됐나?”
-양보해 준 점에는 감사하지.
그제서야 만족한 듯, 장막 안으로 스르르 사라지는 손.
나도 그를 따라 안으로 몸을 옮겼다.
[게이트 - 천산 무관에 입장합니다.]
그러자.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
그 안에 펼쳐진 풍경은…….
꽤 충격적인 것이었다.
깍아 지른 듯 드높은 산이 하나.
산 곳곳에는 커다란 전각들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낡고 허름해진 상태지만.
전성기에는 상당한 위용을 자랑했을 것 같은 화려한 건축물들.
그리고…….
“뭐야, 이건.”
그 산의 바깥에는.
넓은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드넓은 우주에, 홀로 떠다니는 산 하나.
그 주변에는.
산산조각 난 땅의 조각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이게 게이트.’
게이트에 대해 적혀 있던 설명.
그게 어떤 내용이었는지, 단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단 하나의 산.
그리고 그곳에 있는 전각들.
그것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세계.
아니.
‘……세계의 파편.’
고개를 돌리자.
“내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그곳에는.
가면을 쓴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농담으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곳이지만. 뭐. 잘 머물다 가길 바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