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천산 무관
[게이트 - 천산 무관에 입장합니다.]
[천산 무관]
[지금은 멸망해 버린 한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고 높은 산맥에 위치해 있던 무관입니다.]
[구름에 가려질 정도로 높은 산맥은 발붙일 수 있는 땅 중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웠기에, 천산은 하늘과 소통하는 의례의 장소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 하늘마저 무너져 버린 지금은 아쉽게도 과거형이 되어 버렸지만요!]
[멸망해 버린 세계에 입장하였습니다.]
[오래된 선기의 잔재가 어려 있는 장소입니다.]
[다음과 같은 효과가 부과됩니다.]
[무예 수련 시, 수련 속도에 보너스 부여]
[체력 회복 속도 소폭 상승]
[입장해 있는 인원 전원에게, 특성 - 통합 언어 부여.]
[통합 언어]
[하늘의 신선들이 지상의 여러 민족들을 굽어보기 위해 만들어 낸 언어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처참하게 파괴되어 잔해만 남은 세상.
이곳이 바로.
“네 고향이라고?”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그대가 말한…… 던전이라고 했나. 그건 아마도 침식지를 말하는 거겠지.”
“침식지?”
“이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땅 말이다.”
시스템에 의하면.
던전은 지구의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당 지역을 ‘테라포밍’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장소였다.
그래서일까.
‘발견하는 던전마다…… 시스템이 화를 내고 있었지.’
용납할 수 없는 침략행위라느니.
적을 절대로 용서하지 말라느니.
던전을 발견했을 때.
시스템 메시지에는 언제나 적대적인 문구가 따라왔다.
반면.
“이 공간은 그런 것과는 종류가 다르다. 우리 세상에서는 이계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지.”
“이계문…….”
이곳에서는.
시스템이 어떠한 적대적인 의사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세상의 환경을 억지로 뜯어고치는 침식지와는 달라. 이곳은 말 그대로 내 고향이다.”
지구의 환경이 이계의 존재에 의해 테라포밍된 것이 던전이라면.
게이트는, 아예 이계 그 자체로 이어지는 문이라는 얘기.
“……지금은 멸망한 채 이렇게 작은 산 하나만 남아 있지만.”
“맙소사.”
그 얘기대로라면.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은.
‘지구가 아니란 거잖아?’
* * *
괴물들이 우리의 세계를 침공해 왔고.
지구의 문명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 버렸다.
남아 있는 인간들의 숫자가 적은 편은 아니라고 하나.
많은 이들이, ‘세계가 멸망했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담고는 했었지.
하지만.
‘진짜 멸망에 비하면, 우리가 겪은 건 별것도 아니란 건가.’
우리 세계는 아직 이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지는 않았다.
넓은 우주에, 산 하나만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광경.
원래도 이런 모습일 리는 없으니.
이 산을 제외한 모든 세계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보는 게 맞겠지.
‘그저 우리보다 조금 심한 멸망을 겪은 것뿐인 걸까. 아니면.’
언젠가.
우리 세계도 이런 식으로 변하고 마는 걸까.
‘아니.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갈수록 더 강한 괴물들이 나타나고, 세계가 황폐해질 거라는 것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사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다.
앞으로 나타날 더욱 강한 괴물들을 어떻게든 저지하고.
잃어버린 문명을 복구하는 것.
우리의 세계도 이런 식으로 처참하게 파괴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런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면, 어떻게든 막아 내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여기 들어온 거기도 하고.’
게이트의 풍경을 보자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경이었으나.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설명은 여기까지 하면 되겠지. 따라오라.”
나와 병사들.
그리고 승주 스님은, 가면을 쓴 남자의 안내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저기 떨어지면 죽겠지?”
이동하면서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병사들.
전각들이 세워진 산의 바깥 부분은 아예 땅이랄 게 존재하지 않았다.
워낙 비현실적인 광경을 많이 봐 왔다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당혹스러운 풍경.
그야, 아예 다른 세계니까 그럴 만도 하지.
‘그것도 그건데.’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고르게 발달한 근육.
낡고 해진 옷.
얼굴을 가린 가면.
그리고.
‘……귀랑 꼬리?’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우리를 안내하는 남자의 허리춤에서는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쥐……인가?’
그것을 보니,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기는 했다.
이 녀석도 인간은 아니라는 것.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수인(獸人)종 - 서인]
[신선도 - 중상]
[고급 요리 비결 - 수인종, 쥐 인간 손질법의 깨달음]
[수인은 야수와 인간의 성질을 절반씩 가지고 태어나는 종족입니다.]
[타고난 야성이 강해 양식이 불가능한 만큼 일반적인 식재료로 여겨지지는 않으나, 많은 운동량을 자랑하는 만큼 탱글한 식감을 자랑하며……]
‘수인…… 짐승 인간이라.’
짐승 인간이라는 단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단 인간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할 텐데.
저 남자가 온 세상에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시스템은 번역에 있어서는 조금 대충인 부분이 있으니까.’
아마도 ‘밤의 귀족’이라던 아리엘라를 ‘뱀파이어’라고 지칭한 것과 마찬가지.
상태창이 대충 비슷한 개념으로 표현한 것뿐.
실제 종족명이 수인인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살랑거리는 꼬리를 보며 산을 오르고 있자니.
“저기.”
“왜 그러지, 배신자여.”
“……크흠.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소?”
승주 스님이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 밖에서 말했던, 날 제자라고 생각했다느니 하는 얘기. 그건 진심이었소?”
“흥.”
가면을 써서 보이지는 않지만.
안내를 하고 있던 남자가 승주 스님을 곁눈질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 고향의 문화다.”
“음?”
“무예를 가르친 자는 부모와 같고, 가르침을 받은 자는 자식과 같지. 네놈이 아무리 나약하다고 한들, 내 무예를 전수받은 것은 사실이니까. 제자와 비슷한 존재, 일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 얘기에.
승주 스님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문했다.
“하지만, 기술을 멋대로 전수하거나 남에게 알리면 날 죽이겠다 하지 않았소!”
“그것도 고향의 문화다. 무예의 전수는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네놈에게 무예를 가르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랬을 뿐. 네가 다시 그것을 멋대로 퍼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남에게 내 존재를 알리지 말라 한 것은…….”
조금 생각이 깊어진 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을 잇는 남자.
“그냥. 이곳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제자라고 생각했다면서, 그걸 어기면 죽였을 거라고?”
“당연히 진심으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 조금 강하게 말해둬야 경고가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무예까지 건네준 녀석의 목숨을 그리 쉽게 빼앗지는 않아. 아마 나름대로 제재를 가하긴 했겠지만.”
“그런.”
“애초에. 네가 내게 따질 처지인가?”
말을 끊더니, 갑자기 한숨을 내쉬는 남자.
“따지고 싶은 건 나인데 말이지. 설마하니 이렇게 배신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진심이었단 말인가.”
결국.
저 가면남은 승주 스님을 해할 마음이 없었다는 거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무예를 가르쳐준 이에게서 배신을 당한 셈.
승주 스님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하오. 나는 그런 줄은 모르고.”
“……미안해할 것 없다. 말했다시피, 내가 있던 세상의 문화가 그런 것일 뿐. 이계의 존재에게 내가 가진 문화를 강요하고, 제자니 뭐니 하는 생각을 품은 내 잘못이니.”
산맥을 오르며 주변을 둘러보는 가면남.
그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산산조각 난 대지의 조각들만이 우주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멸망한 세상의 문화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거늘.”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승주 스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것 같았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 잘못이지.”
* * *
가면남의 안내를 따라 산 중턱에 도착하자.
주변에 나열된 전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어오도록 하라.”
사극에서나 보던 목재 건물들.
낡은 전각이지만 꾸준히 관리를 해 온 것인지 크게 더럽지는 않았다.
묘한 기분을 느끼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잠시 뒤.
부대원들은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나는 가면남과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그대가 바라는 것은 내가 가진 무예의 전수였지. 그래, 누구부터 시작하길 바라는가.”
“그 전에, 일단 통성명부터 하자고.”
계속 가면남이라고 부르긴 뭐하잖냐.
“통성명이라. 친하게 지낼 것도 아닌데 굳이 필요할까 싶다만. 서환이라 부르라.”
“신영준이라고 한다. 그럼 일단 질문이 있는데.”
“……질문이라니. 나는 무예만 가르치면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인상을 찌푸리는 서환.
“그대의 요청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이긴 했지만, 이 땅에 외지인들이 있는 것이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야. 가급적 빠르게 무예의 전수를 끝낸 뒤, 그대들은 나가 주었으면 하는데.”
“아니. 조건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은데.”
“뭐라?”
무예의 전수는 어디까지나 조건 중의 하나.
내가 녀석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건 조건은.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했지.”
“…….”
“네가 가진 지식이나 기억. 나한테는 좀 필요한 것들이거든.”
“후우.”
그다지 기분이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내 그림자 속에는, 여전히 까망이가 대기 중이다.
“질문이라고 했나. 내가 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 보도록.”
녀석도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는지.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전투력 측정기]
특성이 발동했다.
놈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파란색.’
역시.
상대가 안 좋았을 뿐.
이 녀석 역시 상당히 강한 괴물이라는 거다.
“질문은 간단해.”
그런 녀석이, 어째서.
“이 세상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이 조각난 세상 속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는지.
알아 둘 필요가 있을 것 같거든.
* * *
갑작스럽게 우리 세상에 나타난 괴물들.
지금은 그 정체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알고는 있었다.
‘이계의 존재.’
시스템 창은.
괴물들을 그렇게 지칭했다.
하지만.
어째서 놈들이 우리 세상을 침공해 왔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리엘라는 흡혈귀 사냥꾼들에게 봉인을 당한 뒤, 눈을 뜨니 지구였다고 했고.
[깊은 자들의 교황]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으나.
내가 자기 동족들을 요리해 버린 탓인지.
결국 중요한 것을 알려 주진 않았다.
“내 고향이 어떻게 멸망했냐, 라.”
그리고 지금.
이 녀석이라면,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간단하게 설명하지. 마물들이 나타났다.”
마물.
아마 몬스터를 말하는 거겠지.
교황 역시 자신들의 세상이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까지는 말했으니까.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어째서 우리 세상을 노렸는지. 그 마물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쯧. 쓸모가 없네.”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뿐.”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무는 가면남.
“무언가, 뚜렷한 악의를 지닌 존재가 그 과정에 개입했다는 것.”
“……!”
그 말에.
나는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게.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구나.’
세상을 침공한 괴물들.
갑자기 괴물들이 나타난 것도 신기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괴물들이 나타나, 집중적으로 파괴한 것이 다름 아닌.
“놈들은, 우리 세상의 무력을 가장 먼저 제압했다.”
저 괴물들에게 저항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힘.
군대였으니까.
“가장 먼저 무너진 건 황실이었다. 그 후에는 천심맹. 흑마련. 대명교까지…….”
“천심…… 뭐?”
“우리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많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던 세력들이다. 온 세상을 뒤엎은 마물들이라고 할지언정, 그들의 전력이 온전했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가장 먼저 무너졌다는 거군.”
“……나중에 생존자들에게 듣기를, 그들에게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물에게 대응할 수 있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더군.”
역시.
우리 세상의 군부대들이 가장 먼저 무너진 것과 같았다.
서환의 세계와, 우리 세계.
그 둘에 일어난 현상의 흐름이 동일하다는 것.
‘그 악의는…… 실존한다.’
두리뭉실한 추측이었으나.
지금에 와서야 확신을 얻게 되었다.
“마물들은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초기에 나타난 마물들은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었지만, 황실을 무너트린 강력한 대마수와 같은 이들이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세상을 배회하게 되었지.”
이 부분 역시, 교황에게서 들었던 얘기다.
시간이 갈수록 나타나는 괴물들은 점점 더 강해진다는 것.
‘돌겠네.’
지금도 괴물들을 토벌하는 게 쉽지는 않은데.
여기서 점점 더 강한 놈들이 나타날 거라니.
“그즈음부터는 다른 이들과의 연락도 두절되었다. 더 이상 밖을 돌아다닐 수 없을 지경이 되었으니까……. 아마 모두 마수에게 저항하다가 처참하게 죽어 나갔겠지.”
“그놈들은 왜 그렇게 다른 세상을 침공하는 거지? 원인은 뭐고, 막을 방법은?”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나도 모른다고. 심지어 어떻게 파괴된 세상에서 이곳만이 남아 있는 건지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모르다니. 넌 그 침공에서 살아남은 거 아냐?”
“그저 살아남았을 뿐.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니까.”
뭐야, 이 녀석.
영 쓸모가 없네.
“뭐라도 아는 이가 있다고 한다면…… 글쎄.”
서환이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스승님 정도겠지.”
“스승?”
산꼭대기.
그곳에 지어진 커다란 전각.
“나는 우리 세상에서는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스승님 덕분이지.”
“그 스승이란 양반이, 많이 강했던 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만인의 인정을 받은 분이었지. 번잡한 걸 싫어하는 성정 탓에 특정 단체에 들어가지는 않으셨지만…… 그분은 천상의 신선들과도 가끔 교류를 나누었으니, 무언가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내게 따로 귀띔해 주신 것은 없었지만.”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천상의 신선이라니.
“이곳이 어떻게든 형태나마 남아 있는 것도 신선들이나 가능할 법한 짓이니. 스승님 외에는 알 만한 이도 없겠지.”
어이가 없기는 한데.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어떤 존재가 있다고 한들 이상하진 않겠지.
“그럼 그 스승이란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군.”
“왜지? 아. 혹시 이미 죽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살아는 계시지. 문제는.”
한숨을 내쉬는 서환.
“살아만 계시단 거다.”
“……?”
“스승님께서는 강하셨지만, 최후의 전투에 몰려든 적들은 더욱더 강했다. 스승님께서는 놈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주화입마에 드셨고…… 그 후로는, 나조차도 스승님을 뵙지 못했지.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서환의 시선을 따라.
산꼭대기에 세워진 전각을 바라보았다.
조금 집중해서 그곳을 바라보자.
[전투력 측정기]
특성이 발동했다.
그리고…….
움찔.
특성을 통해 바라본, 산꼭대기의 풍경에.
나는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전투력 측정기]는 적의 강함을 색을 통해 알려 주는 바.
강함은 빨주노초파남보의 순서로 정해진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괴물들 중 가장 강한 괴물들은.
파란색 기운을 내뿜고 있었지.
그런데.
‘……보라색이라고?’
산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전각.
그곳을 마치 안개처럼 뒤덮은.
거대하고 화려한 보랏빛 기운.
“스승님을 뵙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테니.”
* * *
결국.
서환의 스승과 만난다는 계획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쩔 수 있나.
‘갑자기 보라색은 좀 너무했잖아.’
지금까지 만난 괴물들 중.
가장 강했던 이들은 파란색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남색 기운조차 본 적이 없는 지금.
갑자기 보라색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산 전체를 에워싸듯 퍼져 있던 짙은 보랏빛 기운.
그런 기운을 가지고 있는 놈이 머무르는 곳으로 무턱대고 향한다?
조금 참신한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겠지.
그 후에는.
“그럼 이제 약속한 대로, 무예를 전수해 주도록 하지.”
처음 이곳을 찾아왔던 목적.
무예의 전수가 시작되었다.
승주 스님에게서 대충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어떤 식으로 무예가 전수되는 건지 조금 궁금했는데.
“그래……. 일단은 대련부터 시작해 보도록 할까.”
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