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봉인 (1)
두꺼운 쇠사슬과, 딱 봐도 불길해 보이는 부적.
그것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거대한 철문.
“이 안에, 광일이를 위한 무예가 있다고?”
“일단은 그렇다.”
광일이가 불안한 시선으로 서환을 바라보았다.
“나를 가르치지 못한다고 한 이유는, 설마.”
“천살성을 위한 무예는 비동에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지.”
봉인이라니.
“천살성의 살성을 제어하고, 이용할 수 있는 무예는 많지 않다.”
서환의 설명이 이어졌다.
“애초에 특별한 이를 위한 무공인 만큼, 천살성이 아닌 이가 익힌다면 반대로 미친 살인귀가 되고 말지. 강대한 힘을 줄 수 있는 무예이면서도, 지나치게 위험한 무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비동에 봉인해 둔 것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무예라서 내보여 줄 수 없다, 뭐 그런 건가?”
“……과거라면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 이유는 상관없다.”
서환은 손가락을 뻗어 그가 이미 꺼내둔 다른 책들을 가리켰다.
우리 부대원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 말했던 책들.
“본래라면 지금 꺼낸 무예들 하나하나가 함부로 가르칠 수 없는 귀한 지식이다. 외부인에게는 보여 주는 것조차 해선 안 되는 일.”
“그럼 왜.”
“말했잖나. 나의 세계는 멸망해 버렸다고.”
낡은 서책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서환.
“멸망한 세계의 문화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 그렇다면 가르침을 아까워할 필요도 없다는 거 아니겠나.”
“……그런 건가.”
“비록 협박을 받아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오히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내 세계가 쌓아 올린 지식만이라도 이 세계에 전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멸망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 될 테니.”
잘은 모르겠지만.
멸망한 세계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무언가 결단을 내렸다는 거겠지.
‘남 얘기는 아닌가.’
나의 세계도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서환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묘하게 씁쓸했다.
“천살성을 가르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 비동의 무예가 너무 귀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애초에, 나는 저 비동을 열지 못하기 때문이지.”
“…….”
그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광일이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 천살성으로 인해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우리 역시 타고난 야성을 제어하지 못해 원치 않은 불행을 겪는 경우가 많으니까.”
“…….”
“마음 같아서는 네 불행을 막아주고 싶다. 저 안의 무예를 가르칠 수만 있다면, 네 광기를 잠재울 수 있겠지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군.”
그 말에.
기대에 가득 차 있던 광일이가 눈에 띄게 우울해하는 것이 보였다.
“꼭 그 천살성을 위한 무예여야만 하는 건가? 광일이 이 녀석. 격투기 전반에 재능이 좀 있는 것 같던데. 다른 병사들한테 주기로 한 무예 정도만 되어도…….”
“그런 게 가능했다면 천살성들이 미친 살인귀로 이름을 날리지도 않았겠지. 그 기운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무예가 아니라면 오히려 익히지 않는 것이 낫다. 어울리지 않는 무예를 익힘으로써 광기에 지배당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질 테니.”
“아니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을 것 아냐.”
“미안하지만, 이 비동 안에 있는 무예를 가르치는 것. 그 외의 방법은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하. 제기랄. 그럼 이 문을 박살 내거나, 뭐 방법이 있을 거 아냐!”
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자.
광일이가 당황해하며 내 앞에 손을 내저었다.
“저, 저는 괜찮습니다. 진정하십쇼. 신 병장님.”
“괜찮기는. 조용하고 있어 봐. 이 녀석한테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라고 할 테니.”
하지만.
서환은 그저 덤덤하게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힘으로 열릴 만한 문이었다면 진작에 열었겠지.”
“…….”
“단순한 철문이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견고하다고 알려진 광물에, 온갖 주술로 봉인된 문이다. 스승님이 돌아오지 않고서야, 이 문을 힘으로 열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나는 슬쩍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강철을 먹는 맥]
까망이라면 어떻게든 저 문을 뚫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끼잉…….
안에서 들려오는 것은 자신감 없는 울음소리.
온갖 주술로 봉인되어 있다더니.
어떤 광물도 씹어 삼킬 수 있는 까망이조차 뚫을 수 없다는 것.
까득.
내가 입술을 깨물자.
광일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막아섰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저깟 무예가 없어도 저는 충분히 강하다는 거.”
“…….”
“하, 하하. 물론 광기를 제어할 수 없게 된건 좀 아쉽지만…… 그딴 기술이 없어도, 제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아. 신 병장님도 누누이 말씀하셨잖습니까? 안 되면 되게 하라고.”
“후……. 광일아.”
“악바리 정신으로, 언젠가는 제어해 보이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이건 결국 제 일 아닙니까. 제 일은 저를 믿고 맡겨 주십…….”
“너만의 일이 아니라서 그렇지.”
“예?”
이거.
너 한 명한테만 중요한 일 아니라고.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린 뒤.
서환에게 말했다.
“둘이서 잠깐 얘기 좀 하지.”
“……?”
“광일이 너는 다른 병사들이랑 같이 쉬고 있어.”
“……예.”
내 반응이 이해가지 않는 듯했지만.
명령에는 고분고분 따르는 녀석.
참 순한 놈이야.
“하고 싶은 얘기가 뭐지.”
“아까 하던 얘기의 연장선이다. 저 녀석 광기 해결할 만한 방법. 뭐라도 좋으니까 내놔봐.”
“……말했잖나. 나로서는 방법이 없다고. 너는 왜 저 거인의 일에 그렇게 분노하는 거지?”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하는 녀석.
“저 거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야. 이 일은 네가 아닌 저 거인의 일이다. 너는 이미 충분히 강하지 않나? 네 그림자에 속해있던 그 둘. 그 둘의 힘만 해도 굳이 천살성의 무예가 없어도 충분할 정도일 텐데.”
“말했잖냐. 이 일은 광일이만의 일이 아니라고.”
“……?”
나는 품 안의 식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남에게 밝히기는 영 꺼림직한 이야기.
“저 녀석이 가지고 있는 광기…… 나 때문에 생긴 거거든.”
“……뭐라?”
내 죄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주방장의 특별소스]
웃기는 이름을 한 스킬이지만.
우스워 보이는 그 이름과 달리.
매우 강력한 효과를 자랑하는 스킬이다.
‘사람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는 힘.’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힘이, 바로 이것.
지금은 완벽하게 파악이 끝난 능력이지만.
초창기에는.
이 능력이 어느 정도로 강력한지 몰랐다.
“광일이는 광기와는 가장 거리가 먼 삶을 사는 녀석이었다. 오히려 지독한 겁쟁이였지. 너무 겁이 많아서 무서운 이야기조차 못 들을 정도로.”
“그걸 네가 바꿨다는 뜻인가?”
“겁 많은 성격은 살아남는 데 좋지 않으니까. 그땐 그게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 자체는 변함없어. 문제는…… 너무 과했다는 거지.”
[용기]를 담은 요리.
그 용기가 지나치게 커진 결과.
광일이는 광기에 휘말린 채 각성을 거쳤다.
‘광전사로의 각성.’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녀석을 평생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할 광기.
그걸 탄생시킨 건.
다름 아닌 나라는 뜻이다.
“내가 살고 싶다고 만들어내 버린 광기다.”
남에게 이 얘기를 남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심지어 내 능력을 가장 먼저 눈치챈 민재 형에게조차.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부채에 대해서는 얘기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책임을 지는 것도 나여야 하거든.”
“……과연.”
오히려 생판 처음 보는 녀석이라서 그런 것일까.
벽을 보고 중얼거리는 느낌으로 풀어놓을 수 있었다.
얘기를 들은 서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을 힘으로 억압하기에, 어지간히 쓰레기 같은 놈이겠구나 생각했거늘.”
“뭐 인마?”
“우리 무예가 넘어갈 녀석은 그렇게까지 악인은 아닌 모양이군.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어.”
“…….”
내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나를 바라보는 서환의 얼굴.
그 표정이, 조금은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다만. 일단 하나 정정하도록 하지.”
“?”
“천살성이 네놈에 의해 나타났다는 것은, 아마 네 착각일 거다.”
“뭐?”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내 요리 때문에 녀석이 광전사로 전직한 게 원인.
그런데 착각이라니.
“이 세계와 내가 살던 세계의 규칙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내 예상대로라면 아마 큰 차이는 없겠지.”
“그러니까, 그게 무슨.”
“천살성이란 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다. 후천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
아니, 하지만.
광일이는 원래 광기니 미치광이 살인마와는 거리가 먼 녀석이었다.
오히려 겁이 많아서 위험한 짓은 하지도 못하는 놈이었는데.
“다만, 천살성이 언제 발현되느냐에는 차이가 있겠지.”
“발현……?”
“어린 나이에 천살성이 발현된 이는 십중팔구는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는다. 지나치게 강대한 기운이니까. 그렇기에, 천살을 부여받은 이들은 본능적으로 그 발현을 늦추게 되어 있다.”
“늦추다니.”
“대부분의 경우, 천살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모습을 함으로써 그 발현을 늦추지. 대부분의 천살성들은 그 피를 개화하기 전에는 겁 많은 유생 같은 모습을 보인다.”
“…….”
광일이 역시 마찬가지라는건가.
“네놈이 한 짓은…… 잠들어 있던 그 기운을 일깨워 준 것일 뿐. 그 시기가 빠르건 늦었든 간에, 언젠가 천살성의 기운은 눈을 떴을 것이다.”
“그것도 결국은 내가 계기가 되어서 그렇게 됐다는 거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게 나쁜 결과를 낳았냐고 한다면, 그건 아닐 것 같군.”
팔짱을 끼며, 광일이가 대기하고 있을 숙소를 내려다보는 녀석.
“육체적으로는 이미 완성에 가까운 전사다. 천살의 기운을 담아낼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였어. 오히려 그 기운이 더 강해지기 전에 눈을 뜸으로써, 이성이 광기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은 것 같더군.”
“……!”
“천살성의 기운이 훨씬 더 강해진 뒤에 발현되었다면, 정말 미치광이 살인귀가 되어 버렸을 거다. 네가 한 일은 시기적으로는 오히려 적절했던 셈이지. 그 기운 덕에 많은 싸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면 더더욱.”
서환이 한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진심이냐? 나를 달래려고 거짓말을 하려는 건…….”
“달래다니? 나를 힘으로 겁박해서 무예를 내놓으라고 하는 자를 내가 왜 달래야 하나.”
“……하하.”
뭐야.
그런 거였냐.
“네가 계기를 주지 않았다면, 저 거인은 더 큰 해를 입었을 수도 있는 일.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온몸에 힘이 팍 풀리는 기분이다.
평생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죄악감 중 하나.
그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니.
“이제 마음이 놓이는가.”
“조금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서환.
“말했듯이. 네가 그 기운을 빠르게 해방한 덕에, 그 남자의 이성은 광기에 완전히 침식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쉽기는 하겠지만. 천살성의 기운은 강대하니, 무예를 익히지 않더라도 익힌 이들과 비등한 힘을 낼 수 있을 터. 그의 무예는 포기…….”
“아니.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뭐라?”
이 녀석 덕분에.
광일이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거랑 광일이의 무예를 찾아주고 말고는 전혀 다른 얘기잖냐.
“죄책감은 덜어내더라도. 책임감도 없는 건 아니니까.”
“그게 무슨 얘기인가.”
“그 녀석은 우리 부대원이고, 난 그 부대의 장이거든.”
“…….”
죄책감과는 별개로.
내게는 여전히, 내 부대원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뭣보다.
다른 부대원들 전부 그럴싸한 무예 하나씩 챙겨가는데.
광일이만 아무것도 없다니.
그건 좀.
“너무 왕따 같잖냐.”
“…….”
우리 부대는 그런 분위기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