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봉인 (2)
“너무 왕따 같잖냐. 우리 부대는 그런 분위기 아니거든.”
“큭큭…… 어이가 없군.”
내 말이 어지간히 웃기게 들린 것인지.
가면을 붙잡고 키득거리는 서환.
“그래……. 네놈은 어떻게든 그 녀석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싶다, 이거로군.”
“음. 필요하다면 탱크라도 끌고 와서 저 비동이란 걸 부술 생각이다.”
“탱크? 뭔지는 모르겠다만. 외부에서부터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할 거다. 다만…….”
“다만?”
조금 망설이는 듯싶더니.
이내 입을 여는 녀석.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다.”
“……!”
방법이 없다고 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말을 바꾸다니.
“이 새끼. 역시 아깐 거짓말한 거였냐?”
“거짓말은 아니다.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방법이라 그런 것이니.”
“?”
“……나로서는 저 비동을 열 방법이 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라면.”
다른 이들?
“비동을 열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 * *
다른 이들이라.
이 게이트 안에서 만난 존재들 중, 서환 외에 기억나는 이라고 한다면.
“네 스승이라는 양반 말인가? 얼굴 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거라던.”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저 산꼭대기의 전각에 있는, 무시무시한 보라색 기운.
그 주인 정도가 떠오른다.
“아니. 스승님도 물론 그중 한 명이겠지만. 그분까지 가지 않아도 비동을 열 방법을 알 만한 이들은 많다.”
다행히도 그 스승을 말하는 건 아닌 모양.
“나야 이 천산문의 말단이지만, 고위직에 계신 분들도 있으니까.”
“그럼 뭐야. 뭘 망설이고 있어? 당장 그놈들한테 안내를……!”
“…….”
“?”
내가 몸을 일으키며 이동하자고 부추김에도 불구하고.
망설여진다는 듯 몸을 움츠리는 녀석.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나한테 다른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지?’
서환은 천산문의 말단.
그 고위직이라는 양반들은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고위직인 만큼 서환보다 강한 이들일 확률이 높겠지.
그런데도 내게 건드리지 말아 달라느니 하는 얘기를 꺼냈다는 건.
즉…….
“그 고위직이라는 양반들. 뭔가 문제가 있나 보군.”
“……!”
그 말에.
서환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기랄. 말실수를 했군.”
“이왕 실수한 거, 좀 더 말해 보지 그래.”
“……어디까지나 그분들이라면 방법을 알 수도 있다는 뜻이다. 네놈에게 그분들을 안내하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어.”
이건 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 확정이네.
“에이. 그러지 말고.”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약조하지 않았느냐! 그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누가 손댄대? 얼굴만 한 번 보자는 거지.”
“안 된다!”
내 말에 서환은 유독 격하게 반응했다.
“어차피 그분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네게 도움을 주지도 못해!”
“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알아? 내가 살펴보면 뭔가 답이 나올지?”
“하하……. 네놈을 어떻게 믿으라는 말이냐.”
흐음.
방금 광일이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서환은 내게 조금은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말실수를 하게 된 원인도 그것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조금 좋은 이미지’ 정도.
녀석은 여전히 내게 힘으로 협박을 당하고 있는 입장이니.
나를 쉽게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정 그들을 보고 싶다면…….”
그때.
서환이 긴장한 낯빛으로 그런 말을 꺼냈다.
“금제를 받고 가라.”
“금제?”
그가 손을 뻗어 내 어깨 위에 올리자.
[금제가 제시됩니다.]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금제]
[금제 대상자 - 신영준, 서환]
[조건 (신영준) - 천산문 내의 문도들에게 어떠한 적대적 행위도 하지 않을 것.]
[조건 (서환) - 신영준을 천산문 문도들에게 안내할 것]
[상대가 제시하는 특정 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시.]
[커다란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페널티 - 모든 스탯의 50% 소멸.]
[예외 - 천산문의 문도가 먼저 적대적인 행위를 할 경우. 적대적 행위를 한 문도에 한해, 조건을 어겨도 페널티를 받지 아니한다.]
[주의!]
[금제를 받아들일 경우, 1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금제를 해제할 수 없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금제라.
심지어 최소한 1년은 유지된다는 금제.
“이 금제를 받아들인다면 너를 인정하고 그분들에게 데려가도록 하지.”
내용이 꽤 살벌하긴 하다.
어기면 모든 스탯의 50%가 증발한다니.
스탯 말고는 뭣도 없는 나로서는 특히나 치명적인 부분.
“물론 거절하겠지. 이만한 금제를 받아서까지 그분들을 찾아갈 이유가 없으니.”
“수락한다.”
“그 거인에 대한 건 포기하…… 뭐?”
[금제가 성립되었습니다!]
[한번 맺어진 금제는, 상호 간의 합의가 있더라도 절대 파기가 불가능합니다!]
“지, 진심이냐!”
내가 가볍게 금제를 수락하자.
기겁을 하며 놀라는 서환.
“어차피 그분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말했잖느냐! 네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고!”
“그건 가 봐야 아는 거 아닌가?”
“네놈이 가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을 거라고, 내가 분명히……!”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고.”
이 녀석의 말에 따르면.
광일이가 광기를 제어할 수 있는 무예를 얻으려면.
결국 그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놈들의 도움이 필요하단 것.
금제의 페널티가 상당하기는 하다만.
“그딴 거에 쫄 정도였으면, 진작에 죽었을 거거든.”
“……!”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감수한다.
그 방식으로 살아왔기에 아직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 거 아니겠냐.
* * *
“믿기지가 않는군……. 본인의 일도 아니고, 남의 일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금제를 받아들이다니.”
“내 부대원 일이라면 내 일이나 다름없으니까. 이 한 몸 바치지 못할 것 있나.”
사실.
금제의 내용이 이들을 적대하지 않는 것이라는 게 컸다.
애초에 이 녀석들을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마도 일종의 몬스터…… 같은 거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녀석들은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내 부대원을 죽이기까지 한 아리엘라도 필요에 의해 활용하고 있는 상황.
아무리 이계의 존재라고 한들.
부대원들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는 녀석을 굳이 적대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그 녀석이 상당히 쓸모 있는 놈이기도 하니까.
“후우……. 이게 맞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 안에 들어온 뒤.
서환은 전각의 일부 지역만을 돌아다녀도 좋다고 허용했다만.
“저기다.”
지금 그가 가리킨 곳은.
그 너머의 영역에 있었다.
서환이 접근을 금지했던 영역.
산의 위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넓은 전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 서환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자.
‘……!’
그곳에 있는 한 방.
열 명이 넘는 수인들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자는 건가?”
“나도 모른다.”
무뚝뚝한 서환의 태도.
설마하니 이 사람들에게 나를 안내한 것 때문에 삐진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어보았다.
“대충이라도 아는 게 있을 것 아냐? 일단 말해두지만. 난 정말로 너희를 적대할 생각은 없거든? 뭐라도 아는 게 있어야 도와줄 수 있지 않겠냐.”
“……민망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모른다.”
“아니. 그게 말이 되나?”
“……이유가 있다.”
한숨을 내쉬는 서환.
그가 얼굴에 끼고 있던 가면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뽈칵.
가면을 벗었다.
그 가면 안에 있는 것은.
“나의 고향을 덮친 마의 무리…… 그놈들과의 마지막 결전은, 이 천산에서 벌어졌다.”
지금까지 봐왔던 분위기와 다르게, 앳된 얼굴.
쥐의 그것과 닮은 귀.
그리고.
“그 전투에서, 나약한 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지.”
“…….”
그 얼굴 한가운데를 그대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상처였다.
‘괜히 가면을 쓴 게 아니었군.’
어지간히 큰 상처였는지.
코는 거의 두 동강이 나 있었고, 한쪽 눈은 안구까지 베여 나가서 완전히 시력을 상실한 것 같았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있는지 신기할 정도의 큰 상처.
아직 어려 보이는 얼굴과 비교되어, 그 상처가 더 흉측하게 보였다.
“마수의 공격을 당한 뒤,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고 난 뒤에는, 보다시피.”
“세상이 멸망해 있었군.”
“그래.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그때부터 저런 상태였고.”
계속 저런 상태였다고?
마치 잠든 듯 누워 있는 이들.
이 게이트는 멸망의 날 당일부터 있었을 텐데.
“그럼, 식사라든가 영양 보충은 어떻게…….”
“그 대머리에게 무예를 가르친 이유. 뭐라고 생각하나.”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승주 스님에게 무예를 가르쳐 주는 대가로.
괴물의 사체를 받기로 했었다.
“그 대머리는 내 무예를 가르침 받기에는 자격이 한참은 모자란 녀석이었다. 하지만…… 내게도 선택지가 없었지.”
“…….”
내가 만난 승주 스님은 꽤 괜찮은 인물이었지만.
그건 이 녀석의 무예를 통해 정신을 단련한 결과.
그전에는 뭐, 쉽게 말해 폐급 땡중이었다고 하니.
그런 사람을 골라야만 했던 서환도 꽤 갑갑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놈과 계약을 맺은 후에는, 마수들의 사체를 대충 조리해 먹였다.”
“조리?”
“음. 우리 천산문의 오랜 전통 중에 하나지. 모든 요리는 막내가 담당한다는…….”
“무슨 그딴 악폐습이.”
“덕분에 기본적인 요리는 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어디까지나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저런 악폐습이 있을 줄이야.
아.
정작 내가 군인이구나.
“내가 음식을 만들었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요리사다 보니.”
“……요리사? 네가 숙수라고?”
그러고 보니.
아직 내 직업을 설명 안 했구나.
“아무리 다른 세계라고 해도 그렇지. 숙수가 이만한 힘을 거느리고 다니는 게 보통인가……? 아니, 천살성을 부하로 다루는 숙수라니. 우리 세계였다면 길거리의 삼류 이야기꾼도 다루지 않을 소재인데.”
“크흠.”
아무튼.
괴물을 먹어서 괴물이 되는 것은 마력에 내성이 없는 인간뿐이라는 것 같으니.
이 녀석들은 그렇게 괴물의 사체로 연명을 해 왔다는 거겠지.
“일단 좀 살펴봐야겠네.”
“……음. 금제를 맺었으니 상관은 없다만.”
가까이 있는 사내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접근하자.
영 믿음이 안 간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환.
“네놈은 숙수라고 하지 않았나?”
“일단은.”
“의원도 아닌 숙수가 병자들을 살펴본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만.”
세상에.
이제는 다른 세계에서 온 녀석도 요리사라고 무시하네.
조금 어이가 없긴 했지만.
딱히 내 행동을 제지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슬쩍 다가가서 가장 앞에 있는 남자의 용태를 살핀다.
‘엄청나게 크군.’
광일이가 연상되는.
아니, 그보다도 더 거대해 보이는 엄청난 덩치의 사내.
온몸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털이 수북했으며.
험악한 인상과 달리, 머리에는 귀엽게 생긴 고양이 같은 귀가 달려 있었다.
너무 언밸런스 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의 외형.
‘호랑이 인간?’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수인종 - 고양이과 - 호인]
[천호]
“천호 사형이시다. 우리 천산문의 대사형이자…… 내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었지.”
그를 내려다보는 서환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상태이상은, 없네?’
일단 식재료 감별을 통해 살펴보았으나.
당연히 뭔가의 상태 이상에 걸려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렇다 할 상태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어?”
“뭐냐. 설마, 정말 뭔가를 알아낸 것인가!”
결론만 말하자면, 상태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신기한 것이 하나.
[봉인 중…….]
[대상 위험도 수치 - 9↑]
[봉인 해제까지 남은 시간 - 235,928,309…….]
“뭐여 이건.”
봉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