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불량식품 (2)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미안하네.”
“……아니. 됐다.”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작전은 그대로 성공했다.
‘저 봉인은 대상의 강함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대상이 약해지면, 봉인 또한 같이 약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
그래서 열심히 최고의 불량식품을 만들었다.
나도 꽤 짬이 찬 요리사인 만큼.
맛에서는 도저히 타협할 수 없다만.
‘건강에 대한 건 뭐…… 충분히 타협할 수 있거든.“
맛만 있다면 그만 아니겠어!
내가 그동안 이룬 ‘업적’들의 효과로 인해.
내가 만든 요리의 모든 종류의 효과는 배가되어 적용된다.
그 효과에는, 디버프 역시 포함되는바.
결과부터 말하자면.
저들을 약화시켜 봉인의 단계를 낮춘다는 내 작전은 대성공…….
하긴 했다만.
“그, 여벌 옷 같은 건 없나?”
“……없다.”
너무나도 많은 디버프를 걸어 버린 나머지.
깨어난 모든 이들이 서환을 향해 피를 토하며 고통을 호소해 버렸다는 게 문제.
“정말 문제는 없는 거겠지……?”
“아. 고통은 일시적인 거라니까. 봉인에서 깨어나는 대가로 약간의 고통은 지불해야지.”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그 피토를 모두 뒤집어써야만 했던 서환에게는 솔직히 조금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
최대한 강한 디버프를 걸려고 작심했던 것이긴 하다만.
그렇게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올 줄은 누가 알았겠냐.
“일단 여벌 옷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있으니, 그거라도.”
“……그건 받도록 하지.”
그림자 속에 넣어뒀던 여벌 군복을 건네주자.
주섬주섬 갈아입는 서환.
“조금 거슬리는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이나…….”
“으음.”
“고맙다.”
그렇게 말하는 서환의 말투에는.
약간의 물기가 느껴졌다.
“나는 저분들이 모두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으나. 저들은 그때 나타난 거악들에게 혼을 빼앗기고 만 것이라고…….”
그야.
엄청난 강적들이 나타났다는 전투.
그 전투에서 정신을 잃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계가 멸망해 버린 것이다.
정신이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
“훌쩍…….”
멸망한 세계에.
혼자 남겨진 생존자.
말투에 비해 아직 앳돼 보이는 얼굴.
어린 마음에 불안감도 컸겠지.
“천산문의 막내로서, 혼자 남아서라도 이곳을 계속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는 건가?”
“아니. 나갈 수 있다는 건 첫날에 확인했다. 하지만. 혹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괴물이 들어와 사형제들의 유해를 해할까 두려웠지…….”
과연.
굳이 승주 스님에게 식량 조달을 명령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나 보다.
“이곳에서 평생을 고독하게, 일어나지 않는 사형제들을 기다리며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훌쩍.”
“…….”
“정말로 고맙다. 진심이야. 다시 저분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뭐랄까.
고마워하는 건 괜찮은데 말이지.
‘어차피 100일 뒤면 깨어났을 거라고는…… 말하기 힘든 분위기가 돼 버렸는데.’
뭐.
그 해후를 100일이나 앞당겨 준 것만 해도 꽤 큰일 아니겠냐.
“협박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던 만큼, 네놈을 좋게 보지는 않았다. 우리 세계의 잔재를 조금이라도 남기고자 무예를 가르치긴 했으나, 악인에 가까운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얼굴도 무섭게 생겼고.”
“뭐 인마?”
“하지만 착각이었군. 내 제자들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존재들이었어. 하하하…….”
어지간히 감동한 것인지.
눈가가 붉게 달아오른 녀석.
“크흠. 일단 저 사람들을 깨운 건. 알지? 광일이한테 무예를 가르치기 위함이란 거.”
“알고 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건 간에 네가 내 사형제들을 살려 준 것은 사실이지. 나는 네게 큰 은혜를 입은 셈이다.”
굳이 은혜랄 거까지야.
“내 목숨을 살려 주는 대가로, 너에게 내 모든 것을 바치라고 했던가.”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서환.
“내 목숨을 살려 준 것과는 별개로.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평생을 바쳐야 할 것 같군.”
“그 말은…….”
“네 부하들에게 미리 알려 두는 게 좋을 거다.”
씨익.
“내 가르침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눈앞에 떠오르는 문구.
띠링!
[강철군단에 가입을 희망하는 인원이 있습니다 (1)]
[수인종 무예 사범]
[서환]
그 메시지를 본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아니어도 되는 건가?’
서환은 이계의 종족.
그런 녀석도 길드에 가입할 수 있다는 건가.
‘인간만 가능하다는 문구는 없긴 했다만…….’
뱀파이어인 아리엘라는 대다수의 길드원들에게는 존재 자체가 비밀.
가입을 시도한 적도 없었고.
까망이도 붙잡아 온 녀석이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먹이로 구워삶아 버렸단 느낌이라.
길드에 가입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지.
‘이 녀석은 인간을 적대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어차피 길드원들에게 무예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지.’
그렇다면.
가입을 거부할 이유도 없다.
아니.
오히려 대환영이지.
‘트레이너 NPC 영입……!’
이 녀석의 말에 따르면.
무예를 익히는 데에는 한 사람당 최소한 3일은 걸린다고 했다.
모든 부대원들이 무예를 익히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는 일.
누군가가 부대에 상주해서 무예를 가르쳐 준다면 효율이 급증할 터.
그 트레이너 NPC가, 내게 충성을 맹세한 것.
“그럼 일단 먼저 맡아 둔 일부터 처리하도록 할까.”
그 시선이.
높이 있는 전각을 향했다.
“은공에게 비동의 지식을 공유해 달라고, 내가 직접 설득해 보겠다.”
* * *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서환을 따라 높은 곳에 있는 전각을 향하자.
내 요리로 인해 눈을 뜬 3인의 수인이 있었다.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이 여우 수인.
이름이 분명 미호라고 했나.
‘서환의 말대로라면…… 높으신 분이랬지.’
그녀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아까는 추태를 보여서 정말이지 죄송합니다.”
“아. 그건 뭐. 신경 안 써도 되는데.”
눈 뜨자마자 피를 토하고 난리 친 것을 얘기하는 모양인데.
그거 아마 내가 원인일 거라서.
“딱히 은혜로 여길 일도 아닙니다. 전부 대가를 받고 한 일이니.”
“대가라 하심은.”
“이제 당신들 막내는 우리 부대에서 개처럼 일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좀 바빠서. 할 일이 쌓였거든요.”
이 녀석들의 사형제를 멋대로 데려가게 된 일.
어쩌면 화를 낼 수도 있겠다 생각했으나.
“그건 막내…… 서환이 선택한 일이지요.”
그녀의 시선이 서환을 향했다.
“서아야. 너도 후회는 없을 테지?”
“예. 사매.”
“그렇다면 좋다.”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그리고. 아무리 대가가 있었다고 한들.”
“……?”
“입은 은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뭐랄까.
여우라는 동물은 귀엽다는 이미지가 있다만.
이 여자는 굉장히 점잖고, 정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녀석들이 익히는 무예가 마음의 수련도 시켜 준다고 했지.’
이들은 모두 서환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했으니.
정신 상태도 그만큼 성숙해 있다는 건가?
“그리 큰 은혜를 입은 처지에, 염치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음?”
“다른 사형제들도 같은 방식으로 깨워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아.
뭘 바라는 건지는 알겠는데.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혹시 대가가 필요하신 거라면, 제가 막내처럼…….”
“그런 거였으면 저도 좋았겠는데.”
민망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부끄럽지만, 제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라.”
“예?”
이 녀석들의 능력치를 깎아, 위험도 수치를 낮춘 뒤 봉인을 해제시킨다.
그거까진 좋았지만.
그 방법이 통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 셋까지.
“대충 눈치챘겠지만, 봉인을 깨기 위해선 당신들에게 강한 저주 같은 걸 걸 필요가 있거든요.”
“……과연. 눈을 떴을 때 느껴진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 그걸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문제는, 제가 걸 수 있는 저주에도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요리 효과로 아무리 능력치를 깎아 본다고 한들.
내 요리로 걸 수 있는 디버프에는 한계가 있다.
위험도 수치가 9인 존재를 0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거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다만.”
“……?”
“시간이 지난다면 또 모르죠.”
지금은 이 셋 정도가 한계지만.
봉인 해제 시간은 내가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 요리 실력도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고 있고.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나중이라면.”
“그, 그 정도라도 좋습니다! 저희로서는 바라마지 않던 일……!”
“대신, 조건이 하나.”
“뭐든지 말씀해 주시지요!”
그때.
나를 대신해서 앞으로 나선 것은 서환이었다.
“사매.”
“음? 무슨 일이냐. 서환.”
“은공의 조건을 말하기 전에…… 먼저 제 죄를 고하고자 합니다.”
“……?”
서환은 나와 나누었던 모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이곳의 무예를 우리에게 전수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으음. 무예의 전수를 약속했다라…….”
그 얘기에.
온화한 인물로 보였던 미호가 얼굴을 찌푸리고.
뒤에 있던 두 수인족 역시 크게 놀란 듯 눈을 벌렸다.
서환 입장에서야, 살아남은 게 자신뿐이라고 생각했으니.
자신들 세계의 지식이라도 남기자는 생각에 한 약속이었다만.
이들 입장에서는 서환이 중요한 기술을 멋대로 유출한 것으로 보일 테니.
“과연. 대가라 함은 그 무예의 유출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겠군요.”
“일단은. 그리고, 내 동료 중에는 비동의 무예가 필요한 녀석도 있거든.”
“비동……. 봉인된 무예가 필요하단 말입니까?”
그녀가 더욱더 인상을 찌푸리자.
서환이 당황하며 나섰다.
“사매. 저도 부탁드립니다.”
“서아야…….”
“이자는 자신의 사욕을 위해서 비동의 무예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동료 중에 고통받는 자가 있어, 그자를 위해…….”
아니.
광일이가 강해지는 일은 굳이 따지자면 내 사리사욕이긴 하다만.
서환이 그렇게 설득에 나서자.
미호는 고민이 깊어진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뒤.
“알겠습니다. 비동의…….”
“헛소리!!!”
미호가 무언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
거기에 끼어든 것은.
뒤에 서 있던 돼지 인간.
“저칠 사형?”
저칠이었다.
“우리 무예를 마음대로 남에게 전달한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독단으로 행했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사형.”
“그걸로 모자라. 뭐? 아예 저 이계의 존재의 밑에서 일하겠노라고? 비동의 무예까지 공유해 달라고?”
부히익-!
“더는 못 들어주겠군!”
분노에 찬 그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 일어섰다.
“흥분을 가라앉히거라. 저칠.”
“사매도 그렇소. 은혜라니. 이 이계인 놈에게 은혜는 무슨!”
저칠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확실히 나름대로 강해 보이기는 하는군.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기운도 살벌하기 그지없고…….”
부힉, 하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막내 녀석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만도 해. 나도 혼자서는 힘들겠지. 하지만. 우리 셋에다가, 막내까지 합하면 넷.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이놈들은 적도 아니지 않소.”
“……!”
“이놈만 쳐 죽여 버리면, 서환도 다시 천산문에 복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말에 담긴 내용에.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칠아……. 저분이 있어야 다른 사형분들의 봉인을 풀 수 있다는 것은 잊어버렸느냐.”
“흥. 막내 혼자라면 모를까. 우리 셋이라면 다른 사형들의 봉인을 풀 방법 따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거요. 굳이 이놈에게 매달릴 필요도 없다는 말씀이지.”
“후우……. 그만하거라.”
“밖에 나가서 근처에 있는 놈들을 정리한 뒤에, 이 세상을 우리 것으로 합시다. 사매. 우리 세계는 비록 망해 버렸지만, 여기에 다시 천산문을 세우면 되는 것 아니오! 생각해 보십쇼. 어쩌면, 우리 천산문이 황실 같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터!”
스스로의 말에 심취한 것일까.
흥분한 녀석이 도끼를 높이 치켜들었다.
“미안하지만, 네놈은 그 첫걸음이 돼 줘야겠다!”
저칠의 손에 들린 도끼가 나를 향해 쇄도한다.
그리고.
‘거 참 말 많네.’
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죄송합니다. 사형.”
내 등 뒤에 있던 서환.
그가 앞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형과 사제.
멸망 첫날에 봉인이 풀린 서환과.
앞으로 100일은 봉인당해 있어야 하는 강함이라는 판정을 받은 저칠.
그 수준의 차이는 명백할 터였으나.
결과는.
조금 달랐다.
“꾸웨에엑……!”
서환의 봉에 얻어맞은 저칠의 몸이.
전각을 부수고 저 먼 곳까지 날아가 박혔다.
“……!?”
“서, 서환……?”
그 모습을 본 나머지 두 수인.
미호와 우진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