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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63화 (163/227)

163화 밤의 귀족 (1)

비동의 문이 열렸다.

그 안쪽은 깊은 동굴 같은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광일이가 나를 보며 전율했다.

“신 병장님. 절 여기 데려오신 게, 설마……!”

“말했잖냐. 앞으로 더 잘하라고.”

“……!”

그리고.

비동 안으로 모습을 감춘 미호.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은공.”

잠시 뒤.

비동에서 나온 미호의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낡고 해져, 볼품없어 보이는 책 한 권.

하지만.

그 가치는, 결코 볼품없지 않았다.

[천살신무]

[SSS+]

‘……!’

다른 부대원들이 가르침을 받기로 한 A급 무예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엄청난 가치의 무예.

그 무예가 담긴 책이.

광일이의 앞으로 내밀어진다.

“받으시지요.”

“……!”

그 책을 본 광일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 무예가 바로…….”

“천살성을 위해 만들어진 무예입니다. 저희 스승님께서 직접 창안하신, 최고의 절학이지요.”

그 책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건네받는 전광일 상병.

“이, 이 무예를 익히면, 내 광기를 억누를 수 있단 말이오!?”

[광기]는 전광일 상병의 가장 큰 무기이자.

동시에……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했다.

“정말로 그 광기를, 원하는 대로 억누를 수만 있단 말인가……!”

“예? 그건 무슨 소리십니까.”

그 걸림돌을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드물게 흥분한 채 말을 떠는 전광일이었으나.

그 말을 들은 미호는.

“억누르다니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아까운 걸 왜 억누른단 말입니까.”

“……?”

“분명 천살이란 누군가에게는 저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그 무엇보다도 뛰어난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기운입니다. 그런 것을 타고나셨으니…….”

어리둥절해하는 광일이에게.

미호가 건넨 답은, 지나칠 정도로 간단한 것이었다.

억누르는 게 아니다.

“완벽하게 통제하고, 이용해야지요.”

* * *

“……하, 하하.”

미호의 말에.

온몸에 힘이 풀린 듯, 바닥으로 무너지는 전광일 상병.

“시, 신 병장님. 들으셨습니까.”

“그래.”

“……통제할 수 있답니다. 이 광기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고…….”

그래.

그러려고 내가 이 개고생을 한 거잖냐.

“흐윽…….”

서고의 바닥에 드러누운 채.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하는 광일이.

‘아. 뭔가 데자뷔…….’

저만한 덩치의 남자가 바닥에 뒹굴면서 우는 꼴.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광경이겠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 부대원들의 각성을 진행할 때.

괴물이 무섭다고 뻗댈 때의 광일이가, 딱 이런 느낌이었지.

“무, 무서웠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

광일이 녀석이 눈물을 흘리는 원인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대상은 조금 달랐다.

“충분히 강하지도 않은 주제에, 그 힘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니…….”

“…….”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나 끼치지 않을까, 그게 정말이지.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외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

스스로의 나약함에서 오는 두려움.

하지만.

그 두려움을 달고 버텨 온 결과.

바로 지금.

“제어할 수 있답니다.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요.”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온몸의 긴장이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겠지.’

녀석이 광기로 고통받는 것을 보는 나도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는데.

당사자였던 녀석은 오죽할까.

“흐윽…….”

그동안 쌓였던 감정.

그 모든 게, 눈물에 담긴 채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 울어라.’

그렇게 울어서.

모두 털어 내면, 그걸로 되는 것 아니겠냐.

“광일아.”

“흐윽, 예……!”

피식.

“나중에 강해졌다고 나 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나 진짜 서운할 것 같거든.”

“신 병장니임……!”

그래.

절대 잊으면 안 되지.

광일이 이 녀석은…….

앞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질 거거든.

* * *

“평생……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아! 알겠으니까 그만 달라붙어, 자식아!”

어지간히 감동했는지.

한바탕 울음을 터트린 광일이 녀석을 진정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크흐읍……! 충성충서어엉!”

“야이, 씨! 콧물……!”

온갖 진상을 다 부리는 녀석.

덩치도 산만 한 게 힘도 나보다 세다 보니.

떼어 내고 싶다고 떨어지지가 않는 것.

“훌쩍.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후욱…… 그래. 들어가라.”

그렇게.

어떻게든 진정시킨 광일이 녀석을 떼어 내는 데 성공하자.

“동료분과의 사이가 좋으신 것 같군요.”

“동료가 아니라 후임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두 개는 다른 건가요?”

“선후임 관계는 명확히 해야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미호가 다가왔다.

“그나저나, 다시 보아도 대단한 재능이더군요. 천살성은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함께 타고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재능이라. 그런 게 보기만 해도 보이나?”

“어느 정도는. 물론 제 눈도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 얘기를 듣자.

문득 궁금해지는 부분이 하나.

“그럼 그 눈으로 봤을 때. 내 무예의 재능은 어떤 것 같지?”

“…….”

“음?”

“솔직하게 대답해 드리는 게 좋을까요? 조금 상처받을지도 모르는데.”

“……됐다.”

젠장.

어차피 내 직업은 요리사.

쌈박질에 재능이 없을 것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럼. 본격적인 무예의 교습은 내일부터 시작하는 걸로 해야겠군요.”

어느덧 늦은 시간.

제대로 된 무예의 전수는 다음 날부터 이뤄지기로 했다.

“뭐…… 잘 부탁한다. 다들 우리 부대에선 굉장히 중요한 녀석들이라.”

“은공의 동료…… 후임분들인데,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지요. 믿고 맡겨 주시길.”

그렇게.

나 역시 일단 휴식을 취하러 이동하려던 찰나.

“……아! 그러고 보니.”

“응?”

전각으로 들어가려던 내 팔을 붙잡은 것은.

서환이었다.

“뭔가 까먹은 것 같더라니,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군.”

“중요한 거?”

“은공과는 아직 대련을 하지 않았지 않나.”

“……아!”

미친.

그러고 보니 맞네.

광일이 녀석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단서가 발견되자.

어떻게든 그쪽을 해결하려고 집중한 나머지.

정작.

나는 아직도 서환과의 대련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를 위한 무예 역시,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고.

“대련이라니?”

“아. 사매.”

그 얘기를 들은 미호가 흥미롭다는 듯 다가오자.

서환은 자신이 우리 부대원들과 대련을 거쳐 적당한 무예를 선별해주었음을 알렸다.

“흐음. 그런 일이.”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미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느냐. 아예 우리 모두가 그 대련을 참관하는 것이지.”

“예?”

“은공에게 어떤 무예가 어울릴지,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저칠 사형까지 말입니까?”

“음. 저칠도 내가 엄하게 혼을 냈으니, 굳이 난리를 치지는 않겠지.”

그렇게 해서.

깊은 밤.

나와 서환의 대련이 확정되었다.

전각 안에 있는 커다란 수련장.

그 벽면에는, 여러 가지 수련용 무기들이 걸려 있었다.

“흐음.”

그중에서.

단도 계열의 무기는, 대충 열 개가 조금 넘는 정도.

“음? 은공은 단도를 사용하는가. 의외로군.”

“그렇긴 한데. 의외랄 것까지 있나?”

“단도라. 암습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아니고서야, 주력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무기니까.”

서환의 세계에서도 그런 건가.

나는 나열돼 있는 단도 중 그나마 마음에 드는 두 자루를 쥐었다.

그리고 속으로 고민했다.

‘아무래도 요리를 통한 버프까지 하는 건 좀 아니겠지?’

대련을 하려면 내 전력을 보여 주는 게 맞겠지만.

그 상태는 내 평소 상태와는 조금 다를 테니까.

“일단은 묻겠는데. 혹시 요리사를 위한 무예는 없겠지?”

“숙수를 위한 무예라니.”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서환.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은가!”

“…….”

“하하. 은공도 참 어이없는 얘기를 하는군.”

그렇다면 더더욱.

요리를 통한 버프는 안 하는 게 맞겠네.

요리를 제외하면 내 전투 능력은 영 맹탕이다 보니.

제대로 된 무예를 받을 수나 있을지 조금 걱정도 된다만.

“과연. 은공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겠네.”

“응?”

“확실히 숙수를 위한 무예는 없네. 하지만, 말했잖은가.”

서환의 시선이 미호를 향하고.

미호는 나를 보고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미호 사매는 무예를 만드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라고.”

“아……!”

“미호 사매가 참관을 자처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닐세. 만약 은공에게 어울리는 무예가 없을 경우에는…….”

“직접 만들어 주기 위해서?”

“바로 그거지.”

고개를 돌려 미호를 바라보자.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숙수를 위한 무예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네. 하지만.”

“만드는 건 가능하단 거군.”

“미호 사매라면 충분히.”

과연.

그렇게까지 해 준다면야, 나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는 일이다.

“그럼. 전력으로 오시게. 은공.”

“전력이라.”

비교적 편안해진 마음으로 대련을 하려던.

그 순간.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최근에 얻은 스킬이 하나 있었지?’

으음.

아직 실전에서는 써 본 적이 없다만.

이번에 실전에서 연습한다는 느낌으로 써 보는 것도 뭐.

나쁘진 않겠지?

“그럼…… 전력으로 간다?”

“오시게!”

머릿속으로 녀석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을 가다듬은 뒤.

자세를 잡는다.

두 자루의 단검을 쥔, 내 오래된 전투 자세.

그 자세를 잡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스킬 발동…….’

[스킬 : ‘보조 셰프’가 발동합니다.]

그러자.

내 등 뒤에 있던.

내가 고르지 않은 열 자루가량의 목재 단도들.

“……?”

둥실…….

그 단도들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내 등 뒤로 도열하는 단검들.

저게 가능한 이유는.

내 레벨이 30을 넘으면서 새롭게 얻게 된 스킬.

[보조 셰프]

[보이지 않는 보조 셰프들이 당신의 작업을 보조합니다.]

[보조 셰프들은, 플레이어의 스탯을 공유합니다.]

[보조 셰프들은, 특성 ‘중급 요리 도구 숙련’을 지닙니다.]

[보조 셰프]의 효과는 간단했다.

설명에 나타나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요리를 도와준다.’

재밌는 점은.

그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 걸 넘어서, 아예 실체가 없는 존재 같다는 것.

덕분에.

둥…… 둥…….

저렇게.

칼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좋아. 그럼 간다…… 아?”

스킬의 발동도 끝났겠다.

전력을 다해서 서환에게 부딪혀 보려고 했으나.

“…….”

“…….”

“…….”

“저기요?”

천산문의 수련장.

그 넓은 장소에,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두가 침묵한 것은 아니었다.

“어, 어버버. 어버버버버버…….”

단 한 명.

미친듯한 기세로 어버버 대고 있는 것은.

일전에 나를 두 동강 내려고 했던 돼지 인간.

저칠.

비록 미호에게 잔소리를 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만은 않은 녀석이었는데…….

“아, 아아. 아까는 정말이지.”

“?”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아앗!”

그런 그가.

엄청난 기세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는다.

“……뭐?”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지켜보고 있자니.

“……하하. 어이가 없군.”

서환 역시 말문을 잃은 듯.

두 손 꽉 쥐었던 봉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고작 이 며칠 사이에, 천살성보다 놀라운 것을 보게 될 줄이야. 대단한 은공이라고 해야 할지.”

그리고.

구석에 앉아 대련을 관람하고 있던 미호.

“재능을 보는 눈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였군요.”

그녀는 멍한 눈으로 내 등 뒤에 떠 있는 단검들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기어검이라…….”

그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경악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분한테, 대체 어떤 무예를 만들어 드려야 할지……?”

* * *

그렇게.

신영준 병장을 위한 무예의 개발이 시작되고.

군단 병사 10인이, 서환에게서 무예를 익히기 시작하게 됐을 무렵.

강원도의 북서쪽.

그 가장 극단에 있는, 검은 벽.

“도착했습니다, 주인님.”

“으음~ 드디어?”

그곳에.

일단의 무리가 자리를 잡았다.

수십, 아니 어쩌면 백에 가까울 정도의 인원.

그리고, 그들이 정중하게 들어서 옮긴 거대한 관 하나.

그 관 안에서.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휴우! 남의 눈치 안 보고 이러고 있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찬란하게 흘러내리는 금발.

거친 군복을 입고 있음에도 가려지지 않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그 비현실적인 외모와 어우러져, 묘한 공포감을 자아내는 핏빛 눈동자와 날카로운 송곳니.

“맘 같아선 조금 휴양도 즐겨보고 싶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주인님에게 은총 한 끼 취소를 당할 테니…….”

밤의 귀족.

카르슈타인 혈족의 남작.

아리엘라 카르슈타인.

그녀가 철원군의 구석.

녹색갈기 부족의 영토를 밟았다.

“그럼 어디.”

그 붉은 눈동자가.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던 [녹색갈기 전사] 하나를 발견했다.

“병력부터 좀 불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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