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광전사 (2)
다른 이들이 모두 후퇴할 때.
군단의 병사들이 굳이 이곳을 틀어막은 이유는, 단 하나.
지금은 비록 힘든 전장이라고 한들.
신영준 병장이 찾아오면, 순식간에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걸 해결하라니.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데?”
막상 그 당사자인 신영준 병장이 저런 말을 내뱉자.
병사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래……. 아무리 신 병장님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
‘너무 무턱대고 신 병장님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믿어 버렸던 거야.’
지금까지 입은 피해가 상당하지만.
지금이라도 후퇴를 해야 하나 했을 때.
“그러니까 광일아.”
“예.”
“니가 해결하자.”
신영준 병장의 등 뒤에서.
그와 함께 양구군으로 떠났던 남자.
전광일 상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 상병님……?”
병사들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싹텄다.
“그, 그게. 뭐라고 해야 하나.”
“물론 전광일 상병님이 엄청나게 강하신 건 압니다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냐고 하면. 으음.”
전광일 상병이 강하긴 하다.
하지만, 이 세계에 나타난 괴물들은 그보다도 더 강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어지간한 괴물들을 상대로는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 주는 전광일 상병이었으나.
진정한 강적들을 상대로는 언제나 고전해 왔던 남자.
당장 그 예시 중 하나가, 일전에 그들의 춘천을 침공했던 녹색갈기 부족.
그들의 지휘관이었던 하라-발이었다.
반면.
당장 이 전장을 헤집고 있는 것은, 부족의 대장 격으로 여겨지는 전사.
하라-발보다 배는 강해 보이는 대전사를 상대로, 전광일 상병이 승리할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뭔가. 절 같은 곳에 가서 무술을 익혔다고 하는 걸 듣긴 했는데…….’
‘그래 봐야 무술이잖아. 스킬 하나 더해지는 수준일 텐데.’
하지만.
“뭐. 지켜보면 알 거야.”
“……으음.”
신영준 병장은.
전장으로 향하는 전광일 상병을 보며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어?”
병사들은.
그 자신감의 원인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 * *
군단의 병사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던 괴물.
대전사는 생각했다.
‘토착종 중에서 그나마 거슬리는 건 이놈들뿐인 것 같군.’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올 때는 고전한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후방을 정리하고 나니.
그들을 제대로 상대할 만한 전력을 지닌 이들은, 저 이상한 무늬의 옷을 입은 토착종뿐이었다.
즉.
‘이놈들만 밀어낸다면, 부족이 다시 일대의 패자로 군림하게 되겠지.’
그렇기에.
대전사는 힘을 아끼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물론.
아무리 대전사라고 한들, 쇠약의 저주를 입고 있는 상태.
결코 무적은 아니었고.
위기의 순간은 몇 번인가 있었다.
‘특히. 전사들을 집어삼키며 달려오던 그 토착종.’
말 그대로 적을 ‘먹음’으로써, 일시적으로 그 힘을 얻는 듯 보였다.
아무리 토착종들의 능력이 다양하다지만, 기괴할 정도의 힘.
그 한 마리라면 모르겠으나.
뒤따르는 토착종들의 숫자가 상당했기에, 한 번에 상대하게 된다면 대전사라고 한들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대주술사가 그를 적절히 도와주었다.
‘겁많은 노인이지만…… 능력 하나는 쓸 만하군.’
그가 대족장이 된 뒤에는 부하가 될 자.
앞으로는 잘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일단은 이 녀석들을 몰아내고 난 뒤, 영역을 복구하고 부족의 힘을 정비한다.’
저들의 요새라는 것이 거슬리긴 하지만.
충분히 힘을 회복하고, 준비를 한 뒤에 정벌에 나선다면.
뚫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요새를 지키고 있다는 수호자들은 대전사인 자신이 해결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웅성웅성…….
토착종들 사이에 약간의 소란이 이는가 싶더니.
자신과 싸우던 이들이 슬쩍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
-흠. 토착종의 자살 희망자인가?
한 남자가 자리를 잡았다.
토착종들치고는 거대한 덩치.
하지만.
그래 봐야 한 마리에 불과한 적.
대전사는 그 한 마리의 토착종을 보며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가 전성기에 비하면 조금 약해진 상태라고는 하나.
그 강함은, 다른 고위 전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경지에 올라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도 아니었다.
전광일 상병을 쓰러트렸던 부족의 치프틴, 하라-발.
그 하라-발이 세 명이 몰려온다고 한들.
지금의 대전사는 가볍게 승리를 취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런 그에게.
고작 혼자서 맞서 오다니?
‘어이가 없군.’
그를 무시하는 것 같은 처사에 약간의 짜증도 났지만.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간단한 것 아니겠는가.
‘저 겁도 없는 토착종을 최대한 빠르게 쳐 죽여 주면 그만.’
그렇게.
각 세력 최강의 전사들.
그 둘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카하하하하!!!”
광기에 휩싸인 채.
미친 듯 웃으며 주먹을 뻗는 전광일 상병.
그 자체는, 군단의 병사들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
지금의 전광일 상병은, 무언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눈썰미가 좋은 병사 몇 명은 그 전투를 지켜보다가 의아함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전광일 상병님…….’
‘광기에 휩싸인 상태에서도 저렇게 잘 싸우셨던가?’
광기의 휩싸인 상태의 전광일은 분명 강하다.
그 전과 비교하면 족히 수 배의 전투력 차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하지만, 강력한 힘인 만큼.
단점도 분명하게 존재했다.
지나친 광기는 이성을 잡아먹고.
이성을 잃은 전사는, 제 몸의 안위 따위는 챙기지 못하게 된다.
그 상태의 전광일 상병은 공격성만큼은 정말로 대단했지만.
오히려 이성이 있을 때보다도 빠르게 상처를 입고는 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광기와 이성의 비율을 조정하고자 노력했던 것이고.
하지만.
“크르륵……!”
-그야말로 짐승이로군……!
지금의 전광일 상병은.
아무리 봐도 광기를 최대한으로 해방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도가 있다.’
훅!
곧게 뻗어지는 주먹.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움직임.
그 하나하나가.
지독할 정도로 정교했다.
‘저게 정말…… 이성을 잃어버리신 모습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는 것은.
그와 직접 싸우고 있는 대전사였다.
-큭!
분명, 빠르게 쳐 죽인 뒤 다른 토착종들을 사냥할 예정이었는데.
처음 경계심이 든 것은.
그가 두른 살의와 광기를 느꼈을 때였다.
‘이만한 살의와 광기라…….’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전사는 자신의 패배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많이 흥분한 상태인 것 같군.’
드물게.
전투로 인한 흥분으로 인해 미친듯한 기세를 내뿜는 적들이 있다.
지나친 흥분으로 인한 아드레날린의 과다 분비.
그 결과.
상처를 입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평상시와는 비교도 하기 힘든 전투 능력을 보인다.
또한 그런 이들은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에.
중상을 입고도 전투가 끝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기도 한다.
‘광전사라는 전설도…… 분명 거기서 유래된 것이겠지.’
그들이 상처를 체감하는 것은, 전투가 끝난 뒤.
그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그제야 자신이 죽을 만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포에 발버둥 치다가,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 간다.
부족의 어린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
‘광전사’의 원형 또한, 아마도 그것이리라.
대전사는 그리 생각했다.
물론.
오랜 싸움을 거쳐 온 대전사는 그런 이들을 몇 번이고 만나 봤으며.
냉정을 잃은 그들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술은, 대체 뭐지?
적이 흥분해서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광기에 뒤덮인 적은, 그 광기가 무색할 정도로 침착하게 공격을 뻗어왔다.
‘그냥 침착한 정도가 아니다……!’
그가 내뻗는 주먹과 발길질.
그 과정에 사용되는 모든 근육의 움직임.
그 하나하나에, 대전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은 묘리가 담겨 있었다.
-크륵……!
단순한 빠름과 강함.
그리고 본능과 경험으로 전투를 이끌어 나가는 대전사와는 다르다.
지금 전광일 상병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지금은 멸망해 버리고 만, 하나의 세계.
그 세계가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무(武)의 정수!
평생 전투만을 거듭하며, 20년 이상을 산 개체가 보기 드물 정도인 녹색갈기 부족.
그들로서는 쌓아 올리려는 시도조차 불가능했던 무의 예술.
무예(武藝)였다.
계속되는 싸움 속.
전광일 상병은 광기에 잠식되어 있었으나.
단 한 줌 남아 있는 이성으로 생각했다.
‘즐겁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비등한 싸움.
아니.
대전사가 약간은 우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전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를 입을수록…… 강해지고 있다.’
저 몸을 뒤덮은 광기.
그것은, 상처를 입을수록 그 몸집을 불려 나갔다.
마치 상처 입는 전투 그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카하하하하!!!”
-……광기가 짙어질수록. 기술이 정교해진다니.
녀석이 휘두르는.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고등한 기술.
그 기술 역시.
광기가 커짐에 따라 점점 더 정교해져 갔다.
보통이라면.
광기가 심해질수록, 기술의 정확도는 떨어져야 정상.
그 반대의 현상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천살신무 SSS+]
[숙련도 Lv.2]
보통이라면 저주로 여겨지는 광기.
그 광기를 철저하게 굴복시키고.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예.
-말도 안 된다. 설마…… 그냥 전설이 아니었단 말인가.
후욱!
전광일의 손이 뻗어 나온다.
그 경로를 피하려던 대전사였으나.
-그토록 벌레 같던 토착종들 사이에서, 정말로……!
마치 원래부터 그곳을 노리려고 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주먹.
“카하하하하!”
-광전사가…….
콰앙!
건틀렛을 장착한 그 거대한 주먹이.
자신보다 거대한 대전사의 턱을 올려 쳤다.
“군단의 승리를 위하여-!”
건틀렛에 세워져 있던 날카로운 가시들이, 그의 턱을 찢어발긴다.
온몸을 두른 광기가, 강철보다도 단단한 그의 턱뼈를 으깰 힘을 부여했다.
그 주먹질로 인해, 고개가 돌아간 대전사.
그 시선 끝에는.
‘……그러고 보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대주술사가 서 있었다.
‘왜, 날 돕지 않았지……?’
그제야, 대전사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돕지 않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무언가 이상했다는 것.
‘나를, 그딴 눈으로 보지 마라…….’
실망했다는 듯한.
쓸모없는 것을 보는 눈.
‘아아. 족장님.’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광전사의 주먹질로 인해, 두개골이 흔들린다.
정신을 잃은 거구의 전사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죄송합니ㄷ…….’
* * *
-쓸모없는 자식 같으니……. 머리는 나빠도 싸움만은 잘한다 여겼건만.
대주술사의 시선이 전장을 살폈다.
대전사가 쓰러졌다.
그것도 고작 한 명의 토착종에 의해서.
‘광전사라……. 그냥 동화 속의 존재는 아니었는가.’
본래라면, 그가 어떻게든 수를 내서 대전사를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전장에서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대전사뿐만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디서 나타난 놈들인지 모르겠군…….
그 이유는 하나.
부족의 전사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무위를 보이고 있는 이들.
다른 토착종들과 겉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신묘한 기술을 다루는 이들이 열 정도.
거기에, 짐승의 냄새가 풍기는 기묘한 강자가 둘.
‘쯧……. 저 녀석과 부족을 이용해 대업을 이루고자 했거늘. 일이 크게 틀어져 버렸어.’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부족에게 승산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아마 주술사 본인 역시, 이곳에서 살아나가긴 힘들겠지.
그렇다면…….
‘한 놈쯤은, 길동무로 데려가야겠구나.’
그의 시선이, 대전사를 처리한 강대한 전사에게로 향했다.
비록 자신은 실패했지만.
거슬리는 적 하나쯤은 미리 치워 놓는 게 좋겠지.
‘언젠가 이 세상에 내려오실…… 주인님을 위해.’
노구의 주술사가, 발걸음을 옮긴다.
시체가 되어 쓰러져가는 대전사를 가리키며, 중얼거리는 대주술사.
-어둠의 정령이여……. 계약이다.
대지의 정령과 교감하는 녹색갈기 부족.
그들이 절대 불러서는 안 된다고 금기시하는 이름이, 대주술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윽고.
그의 눈앞에는,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원하는 것?]
-저 토착종 중, 가장 위협이 될 존재를 제거해다오.
[가장 위협이 될 존재? 확인. 대가?]
-나와, 저 대전사의 목숨을 주도록 하지. 지금은 조금 나약해졌으나, 그 본질은 꽤 가치가 있을 터. 그 둘의 가치에 합당한 저주를 부탁하지.
그의 말에.
검은 그림자가 어딘가로 뻗어 나간다.
[성립.]
적의 공격으로 인해 기절한 대전사.
그 몸을 검은 정령이 뒤덮자.
대전사의 몸이 조각조각 갈라지더니, 허공으로 떠오른다.
스르륵-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둠의 정령이 자신의 몸을 뒤덮는 것을 느끼며.
그는 생각했다.
‘나의 목숨이, 주인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조각조각 난 대전사의 시체가,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가 말한 ‘가장 큰 위협’.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공격이 시작된 것이겠지.
대족장이 사라진 지금.
부족에서도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둘.
그 목숨을 바쳐 만들어 낸, 필살의 저주.
아무리 대전사조차 쓰러트린 저 광전사라고 한들.
이 저주를 버텨 내지는 못할 터.
그 또한 산산조각 난 시체로 변하고 말리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대주술사였으나.
‘어?’
자신의 몸마저 조각조각 나기 직전.
그 눈동자에 조금 이상한 것이 비쳤다.
조각난 대전사의 파편들.
그것들은 분명.
저 ‘광전사’를 향해 쇄도해야 할 터였으나…….
-거, 거기가 아니다!
그 방향이.
조금 달랐다.
급하게 항의하는 대주술사였으나.
-저 광전사를 노려야 한단 말이다! 이 멍청한 정령같으ㄴ……!
쩌저적-
그 몸마저 조각이 난 뒤에는.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조각난 그 몸이, 필살의 저주가 되어 어딘가를 향해 거칠게 쇄도한다.
이곳에 자리 잡은 토착종들.
“……엥?”
그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존재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