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어둠의 정령
쿠웅……!
[녹색갈기 대전사]
[신선도 최상 -> 중]
광일이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거대한 전사.
그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보며.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예쓰!’
대충 봐도 저번에 만났던 치프틴인가 하는 놈보다도 강해 보였던 괴물.
그런 엄청난 녀석을, 혼자서 쓰러트리다니?
“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어……!”
저 녀석에게 제대로 된 무예를 안겨 주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 고생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저, 전광일 상병님?”
“안 그래도 강한 분이시긴 했는데. 그래도 저건……!”
“아예 격이 다르잖아.”
광일이가 어느 정도로 강해졌는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던 나와 달리.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병사들.
그런 와중에.
눈썰미 좋은 몇몇은, 광일이의 강함이 아닌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설마.”
민재 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광기를…… 제어하고 있는 거냐?”
“완벽하진 않다는 것 같다만. 일단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맙소사. 양구군에는 동맹을 구하기 위해서 간 거 아니었나?”
“그렇긴 한데. 뭐.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아니. 광일이는 그렇다 쳐도, 다른 녀석들까지 저렇게 강해지다니. 게다가.”
묘양사에서의 일을 마치고 복귀한 것은 나와 광일이뿐만이 아니었다.
본래도 군단의 정예 중의 정예였던 병사들.
그런 녀석들이, 각자 무예를 하나씩 익히고 돌아왔다.
그리고.
“……저 둘은 또 누구야?”
“우리 교관 될 놈들.”
“……?”
두 명의 무예 교관에.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전장을 휩쓸고 있는 까망이까지.
지금 세상의 싸움은, 단순히 숫자로 정해지지 않는다.
한 명의 강자가 10명의 약자보다도 중요한 세상.
내가 데리고 온 10명 남짓한 전력은.
그 적은 숫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의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저놈들의 힘이 예전하고 같았다면 또 모를까.’
아리엘라의 후방 교란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부족이다.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밀어낼 수 있겠지.
“뭐. 나도 지켜보는 건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나도 슬슬 일해야 하지 않겠냐.
양손에 [독고구식]과 [검정중식]을 꼬나 쥔 채.
전투 식량들을 꺼내 입 안에 쑤셔 넣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광일이를 비롯한 이들과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상황.
엄청난 버프가 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응?’
광일이가 쓰러트린 ‘녹색갈기 대전사’.
그 녀석의 몸 근처에서.
검은 그림자 같은 게 일렁거렸다.
‘뭐야 저거?’
그 그림자 같은 것이 대전사의 몸 위에 안착하자.
그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
‘저 아까운 걸!’
광일이의 공격을 맞고 쓰러지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치명상을 입고 기절했을 뿐, 목숨은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던 녀석.
그렇다면.
‘요리로 잘만 꼬드기면 내 건데……!’
김 중위나, 몇몇 범죄자들.
그리고 아리엘라를 내 아래로 들였던 것처럼.
저 녀석도 어떻게든 굴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뺏어 가?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고 있자니.
그렇게 조각난 대전사의 육체가, 허공에 떠오른다.
그리고.
파아아악!
나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노리는 게 나였냐!?”
[식재료 감별(강화)]
[신선도 : 최하]
[종족 : 어둠의 정령(상급)]
그 검은 기운의 정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둠의 정령.
정수아가 생체 드론으로 사용하는 물의 정령이나.
저 녹색갈기 놈들이 사용하는 대지의 정령은 본 적이 있다만.
‘어둠의 정령이라니.’
처음 들어 보는 이름.
딱 봐도 위험해 보였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당황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양손에 이미 쥐어진 두 식칼.
그걸 휘둘러, 나를 향해 쏟아지는 고기의 파편들을 쳐냈다.
하지만.
첫 번째 공격을 베어 내고 깨달았다.
‘너무 많다.’
조각조각 난 대전사의 몸이, 검은 그림자에 안겨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두 손으로 칼을 휘두른다고 한들.
모두 쳐내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의 양.
“신 병장님!”
“미친! 막아!”
내가 습격당하는 것을 본 부대원들이 급하게 지원하러 달려왔지만.
이 근처는 정리된 전장이라 여겼던 탓에, 근처에 있던 부대원들의 숫자는 적다.
내게 몰려들고 있는 저 공격에 대응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하겠지.
명백한 위기.
그렇기에.
“……다행이다.”
나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게.
‘옛날이었으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잖아.’
양손의 식칼이 공격을 쳐내고.
내 몸이 완전히 비어 버린.
그 순간.
카앙!
그림자 속에서.
커다란 물체 하나가 나타났다.
“어!?”
“저, 저건.”
그 물체와 부딪히며, 튕겨 나가는 검은 그림자.
얼핏 보면 거대한 방패같이 생긴.
그 커다란 물체의 정체는…….
“웍…… 같은데?”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중식 요리에 자주 쓰이는, 넓은 팬.
웍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은 안개의 공격.
“……뭐야, 저건.”
“프라이팬?”
“식칼에…… 뒤집개는 또 무슨.”
“저거 돈가스 망치인가?”
그 공격들에 맞추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요리 도구들.
카앙!
캉-
식칼이 대전사의 머리통에 박히고.
커다란 볶음용 철판과 웍, 프라이팬들이 나를 향한 공격을 차단한다.
“요리 도구들이 하늘을 날고 있어……?”
엄청난 숫자의 공격.
나 혼자서는 도무지 막아낼 수 없는 화력이었으나.
[보조 셰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보조 셰프’들.
보이지 않는 도우미들이, 나를 도와 공격을 방어해 주고 있었다.
저 보이지 않는 셰프들은 내 스탯을 공유한다.
특성과 스킬은 공유하지 않는 게 아쉽지만.
[적용 중인 요리 효과 - 4]
요리의 효과를 중첩시킨 내 스탯은.
상상을 초월하는바.
‘4개나 중첩했으니…… 나중에 엄청 고생하겠지만.’
당장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니겠냐.
힘겹긴 하지만.
보조 셰프들의 도움으로 인해, 공격을 막아낼 수는 있었다.
다만.
튕겨 나간 시체의 파편들.
그것들이 다시금 돌아와 내게 쇄도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이거. 내가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거냐?”
부대원들도 다가오고 있으니.
몇 번은 막을 수 있겠다만.
……뭐.
좋다 이거야.
‘나도 막기만 하는 건 취향이 아니거든.’
적이 내가 죽을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답은 하나다.
‘내가 먼저 요리해 주지.’
파악-!
양손에 사시미칼과 중식도를 쥔 채.
저 시체의 파편을 쏘아 내고 있는 본체.
[어둠의 정령]을 향해, 몸을 던졌다.
[고급 요리 비결 - ‘어둠의 정령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어둠의 정령은 굉장히 독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 일반적으로 식재료로 애용되지는 않지만, 특정 종족의 경우에는 없어서 못 구할 정도로 선호하는 식재료이기도 합니다.]
[실력 있는 술사가 아니면 이들과 계약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며, 계약을 하는 행위 또한 금기로 여겨지는 문화가 많아 쉽게 보기는 힘든 재료로-]
내 머릿속에는.
녀석을 효과적으로 손질할 수 있는 방법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 * *
‘의외로군요.’
다른 병사들이 서환에게 무예를 배울 때.
나는 미호를 비롯한 나머지 셋에게 새로운 무예의 창작을 맡겼다.
그녀 역시 서환과 마찬가지 방식을 취했다.
일단 대련을 본 뒤, 적합한 무예를 알려 주겠다는 것.
그 대련의 상대는, 서환에게 얻어 터졌던 돼지 인간.
저칠이었으나…….
‘이기어검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시기에, 이미 엄청난 경지에 도달하신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부힉……. 오히려 약골이군? 아까는 괜히 고개를 숙였어!’
결과는 뭐.
당연히 참패.
[보조 셰프]를 봤을 때는 아예 기겁을 했던 이들이었으나.
실제로 대련을 해 보니.
수인들도 내 전투 능력이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인마? 다시 붙어.’
‘부히히. 원래 패배는 인정하기 싫은 법이지.’
‘……이번엔 제대로 간다.’
하지만.
나도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한 번 이겼다고 의기양양해진 돼지.
그 모습을 그냥 보고 넘기기엔, 너무 자존심이 상하잖냐.
[적용 중인 요리 효과 - (4)]
조금 무리를 해 버렸다.
후유증이 엄청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4개의 요리를 한 번에 도핑해 버린 것.
그 결과.
‘부히이이익!? 뭐냐. 아까랑은 완전 다르잖아!’
‘……과연.’
아무리 그래도 이기는 것은 힘들었지만.
약골이라는 말은 못 하게 할 정도는 가능했다.
‘특별한 공능이 담긴 요리를 먹음으로써 새로운 이능을 발현할 수 있다……? 이게 은공의 힘이로군요.”
‘일단은.’
‘참으로 신기한 공능을 지니고 계십니다. 천상의 신선들 중에서도 이런 공능을 발휘하는 자는 없을 텐데.’
내가 가진 여러 가지 능력들을 모두 알려 주자.
미호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하지만. 모르겠군요. 이게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
‘무슨 의미야?’
‘은공의 능력은…… 너무나도 특별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는 듯했다.
‘본신의 능력은 뛰어나지 못하나, 저조차 불가능한 이기어검을 자유자재로 다루시지요.’
‘정확히 말하면 좀 다르긴 한데…….’
‘이기어검으로도 모자라, 상황에 따라 음식물을 취함으로써 다양한 이능을 골라서 발휘할 수 있다니.’
그렇게 말하는 미호의 말투는.
단순히 감탄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묘하게 불안한 느낌.
‘그게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건가?’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질문에.
한숨을 내쉬며 답하는 미호.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은공을 위한 완벽한 무예를 만들기는 불가능합니다.’
뭐?
‘숙수를 위한 무예라면, 조금 복잡하긴 할지언정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은공과 같이 특별한 이를 위한 무예를 만드는 것은, 제 알량한 지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리 나라도 조금은 시무룩해졌다.
‘스승님이 돌아오신다면 또 모르겠으나…….’
그야 뭐.
내가 생각해도, 나처럼 요리에 따라 능력이 이리저리 바뀌는 놈에게 ‘딱 맞는’ 무예를 만들어 주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든 내 조건에 딱 맞게 만들어 본들.
다른 요리를 먹으면 그 조건이 변화하는 셈이니까.
하지만.
미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제가 만들어 드릴 것은, 뼈대입니다.’
‘뼈대?’
‘네. 은공을 위한 무공이 완성되기 전의, 뼈대.’
그렇게 말하던 미호의 눈에는.
이전과 같은 공허함이 아닌, 도전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이마저도 제 전력을 다해야 할 일입니다만…… 도전할 가치는 있을 것 같군요.’
무각주라고 했던가.
그 지위는 괜히 얻은 게 아니었던 듯.
세상을 허무하게 바라보던 그녀였음에도 불구.
완전히 새로운 무예를 만들어야 한다는 도전.
그것에서 묘한 희열을 느끼는 모습.
그 미호와 사제들이 몇 주의 시간을 모조리 투자한 결과.
완성된 것이, 바로 이것.
[식食 - ???]
[숙련도 Lv.1]
광일이의 것처럼 SSS+도.
병사들의 것처럼 A+도 아닌.
???라는 알 수 없는 등급의 무예였다.
‘미완성이니까 그런 것이겠지요.’
등급의 이유는 간단했다.
‘제 지식으로는 은공에게 맞는 무예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은공 본인뿐이겠지요.’
‘나?’
‘이 무예는, 은공에게 맞춰서 완성되어 나갈 겁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느냐에 따라.
뼈대만 완성된 무예에, 살점이 붙는다.
내가 가는 길에 따라 그 방향성이 달라진다는 것.
‘그러다 어느 날. 그 경지가 충분해졌을 때.’
광일이가 가진 천살성이 보기 드물다고 한들.
광일이 전에도 존재는 했으며.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무예 또한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익힌 것은 다르다.
전에도 없었으며.
아마 이후로도 나밖에 익히지 못할.
‘은공만의 무예가, 완성될 겁니다.’
나만을 위한 무예.
[무예 – 식(食)이 요리의 효과에 반응합니다.]
처음 보는 문구가.
눈앞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