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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70화 (170/227)

170화 무예

[무예 – 식(食)이 요리의 효과에 반응합니다.]

처음 보는 문구가 눈앞을 채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무예.

이 무예는, 내 행동에 따라 그 방향성을 달리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적용 중인 요리 효과 - 4]

[1. 코스 요리 - 전쟁]

모든 종류의 전투 행위에 보너스를 가져다주는 코스 요리.

광일이가 대전사를 쓰러트릴 수 있게 일조하기도 한,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에 먹었던 요리다.

내가 익힌 무예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는 몸.

그 움직임을 통해.

나는 내가 익힌 무예의 효과를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먹은 요리의 효과에 따라…… 최적의 움직임으로 바뀐다.’

[2. 전쟁 요리사의 슬레이파 육포]

각력을 큰 폭으로 상승시켜주는 효과를 지닌 요리.

그 요리가 무예와 결합한다.

[무예 – 식(食)이 각력을 보조합니다.]

슬레이파를 통한 각력의 성장은 물론 강력하지만.

그 너무도 강력한 각력을 조절하는 것은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 각력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이, 내게 자리 잡았으니까.

파아아악!

순식간에 정면으로 날아가는 몸.

그 속도는, 지금까지 느껴 본 적이 없었던 수준.

그러면서도, 목표를 향하는 몸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반격을 확인.]

내가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요격 태세로 나오는 어둠의 정령.

‘피해야 하나?’

하지만.

공격을 피한다면, 그만큼 놈에게 접근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가 익힌 무예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 온다.

[3. 전쟁 요리사의 강철 리자드 육포]

어지간한 공격은 버텨 낼 수 있는 단단함을 주는 요리.

그 효과를, 무예가 인식했다.

[무예 – 식(食)이 방어 능력에 맞춘 전투법을 제시합니다.]

나를 요격하기 위해 날아오는 공격들.

본래라면 피해야 마땅할 화력이었으나.

무예가 가르치는 방향은, 정반대.

‘뚫는다.’

짙은 그림자로 이루어진 포화.

나는 그 한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콰지지지직!!!

‘제기랄. 더럽게 아프구만.’

적의 공격 한가운데를 파고드는 만큼.

몸의 외곽선을 찢어발기는 공격들.

하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하다.’

총알조차 버텨 내던 괴물, [강철 리자드]

그 요리의 효과로 인해, 피해가 크게 무마되었다.

그럼에도,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즉시 전투 불능에 빠질 만한 상처였으나.

‘지금의 난, 평범한 인간은 아니니까.’

내 몸의 혈관을 내달리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닌, ‘밤의 귀족’의 피.

스르륵.

공격에 의해 짖이겨지고 찢겨 나간 피부.

그 피부와 살점이,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갔다.

나를 쫓아내기 위해 퍼부어진 공격.

그걸 피하지 않고, 한가운데로 돌파하자.

나는 오히려 최적의 경로로 ‘어둠의 정령’을 향해 몸을 던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혹시 몰라 만들어 둔 요리.

[4. 성스러운 기운의 갈릭 비프 육포]

성수와, 마늘을 듬뿍 집어넣어 만든 육포.

그 효과는 간단했다.

[항마의 기운]

[마(魔)에 속하는 존재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 보너스를 획득합니다.]

저 검은 그림자 같은 녀석.

이름이 어둠의 정령이라고 했나?

“딱 봐도 사악해 보이는 이름이구만.”

[무예 – 식(食)이 합당한 공격 경로를 제시합니다.]

그 효과에 맞추어.

손에 쥔 칼날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정령의 중심부를 향했다.

형태를 지니지 않은 정령.

본래라면 식칼 따위로 베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안개 같은 형상.

서걱-

실체가 존재하지 않을 터인 그 안개가.

내 식칼에 베여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 * *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그림자 녀석은, 자신이 베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일까.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는 듯.

그림자의 형상이 거칠게 파도쳤다.

하지만.

‘얕았다……!’

방금 공격으로는, 녀석을 완벽하게 손질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미완성이니까.’

내 무예는, 어느 정도 완성된 다른 녀석들의 것과는 다르다.

내가 공을 들여 차근차근 직접 완성해야 하는 무예.

그 끝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이 녀석을 일격에 마무리할 정도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거다.

[손상을 확인. 있을 수 없는 일.]

이 녀석을 완벽하게 손질하려면.

앞으로 두 번은 더 칼질을 해야겠지.

아니, 그러고도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솔직히 가능은 할까 싶은 일이다만.

“뭐. 내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착각하면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내 직업은 요리사.

그리고 이건, 전투직이 아니라.

‘서포터 직업이거든.’

콰아아앙!

“신 병장님!”

“가세하겠습니다!”

내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내 음식을 먹은 수십, 수백 명의 병사에게는 비빌 수 없다.

그리고 그건.

내 적 또한, 마찬가지.

“딱 봐도 사악해 보이는 녀석이구만!”

“다들, 대 마(魔)용 전투 식량 섭취!”

가세해온 병사들이 전투 식량을 섭취하자.

그들의 몸 주위에, 은은한 광채가 피어오른다.

[항마의 빛]

마에 속한 적을 상대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빛이었다.

전투 식량으로 이루어진 버프.

뱀파이어 토벌전에 비하면, 그 빛은 조금 약한 편이었으나.

‘병사들의 강함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된다.’

이제 남은 것은.

병사들과 함께, 저 녀석을 [요리]해 버리는 것뿐.

[가장 위협적인 존재 제거…….]

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내 칼질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일까.

[실패. 실패. 실패.]

“어?”

기세등등하게 나를 공격하던 검은 그림자가.

저 멀리 몸을 빼기 시작했다.

[도주! 도주! 도주!]

“어, 어어?”

“저 녀석! 도망간다!”

사르르-

엄청난 속도로 전장에서 이탈하더니.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다는 듯.

사르르 자취를 감추는 녀석.

“……저 녀석.”

그렇게 뭔가 있어 보인다는 듯 등장한 데다가.

조금 전까지 나를 몰아넣은 녀석.

심상치 않은 존재인 것은 확실한데.

그런 녀석이, 설마.

“도망친 거냐?”

그야.

내가 습격당한 것을 본 부대원들이 합류한 상황.

그들과 힘을 합치면, 전투의 양상이 상당히 달라지긴 할 테지만.

‘이렇게 도망간다고?’

직접적으로 입은 피해는, 내 칼질 하나뿐이었다.

저 정령이라는 녀석.

생각보다 겁이 많은 성격인 건가?

띠링!

[어둠의 정령을 마주하고 살아남았습니다!]

[어둠의 정령은 거대한 악마의 하수인으로서 여러 차원에 죽음을 가져다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런 어둠의 정령에게서 살아남은 것은 물론, 역으로 격퇴하기까지 한 당신!]

[굉장한 업적에 대해,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해주려는 듯.

눈앞을 가득 채우며 나타나는 메시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보상으로, 상급 요리 재료 : 정령핵을 획득합니다.]

몸 안을 가득 채우는 충족감.

몰려드는 경험치는…….

짜릿한 황홀감을 제공해 주었다.

* * *

전광일 상병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꿈 안에서.

그의 눈앞에는, 커다란 괴물이 서 있었다.

‘무서워.’

너무나도 무섭게 생긴 괴물.

그 괴물이, 자신을 향해서 무기를 휘둘러 온다.

겁 많은 성격의 전광일은.

평소라면 몸을 움츠린 채, 온몸을 벌벌 떠는 것이 한계였을 테지만.

‘어? 안 무섭네?’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괴물을 보아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꿈속에서.

전광일은 괴물을 상대로 싸웠다.

그가 잘 싸우면, 주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해 주기도 했다.

‘헤헤.’

남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전광일은 그 사실이 마냥 기쁘고 즐거웠다.

하지만 또 언제부터일까.

꿈속의 괴물들이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전광일로서는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졌다.

‘히잉.’

그가 싸움을 못 한다고 누군가 그를 탓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남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고통을 느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 손에 커다란 장난감을 쥐여 주었다.

[천살신무 SSS+]

엄청난 크기의 괴물이라도.

충분히 무찌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멋있는 장난감을.

그 장난감을 쥐고 휘두르자.

엄청나게 크고 사악한 괴물도 혼내 줄 수 있었다.

마치 만화 속의 영웅이 된 듯한 기분.

꿈속의 전광일은 기분 좋게 웃었다.

다시금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이 못내 기뻤다.

그리고.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의문.

‘왜 안 무섭지?’

예전의 그였다면.

너무 무서운 나머지 발걸음도 떼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의 공포를 없애주었다.

‘이 장난감은 또 뭐고?’

원래라면.

나약한 그로서는, 사악한 괴물들을 무찌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의 손에 장난감을 쥐여 주었다.

그 존재를 떠올리자.

전광일은 마음속에 깊은 은혜를 새겼다.

겁 많은 자신을 쓸 만한 놈으로 만들어 준 것으로도 모자라.

나약한 그를 강하게 만들 방법을 만들어 주고.

골치였던 광기마저 제어할 수 있도록 해 준 은인.

손에 쥐어진 이 장난감 역시.

그를 위해서 사용하리라-

“정신 차렸냐.”

“……아. 예.”

정신을 차리자.

아직 한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이었다.

고개를 들자.

그의 곁에는 이민재 병장이 서 있었다.

“저 어떻게 된 겁니까?”

“뭐야. 제대로 기억 안 나나?”

“예에……. 아직은, 조절이 미숙해서.”

“뭐…… 설명해 주긴 어렵지 않지.”

가볍게 웃은 이민재 병장이 말을 잇는다.

“네 덕에 이겼다.”

“예?”

“저쪽의 대장 역할을 하던 괴물을, 정말 개 패듯 두들겨 패더라? 그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그놈이 기절하자마자 다른 괴물들을 사냥하러 가는 모습이란…….”

“제, 제가 그랬단 말입니까?”

“그래. 한참을 그렇게 날뛰니, 저 짐승 같은 놈들도 너를 피하기 시작하더군. 그렇게 적이 없다 싶어질 때쯤에서야 기절했어.”

전광일 상병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가 그 정도의 활약을 펼쳤다니.

“……절 지켜 주시려고 여기 계셨던 거군요.”

“생각보다 금방 정신을 차린 거 보니, 그럴 필요도 없었나 싶다만.”

이민재 병장과는 그렇게까지 친근하지는 않은 전광일 상병이었으나.

그가 종종 이렇게 말없이 부대원들을 돕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대외적인 리더는 김현식 중위.

실제 리더는 신영준 병장.

그리고, 누구보다 부대의 내실을 다져 주는 사람은 이민재 병장이라는 느낌.

“아. 그러고 보니 신영준 병장님은……?”

“저기다.”

자신이 정말 그만한 활약을 펼쳤다면.

그걸 가능케 만들어준 사람은, 신영준 병장.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

신영준 병장의 근처에는.

빛이 사라지고, 검은 공간이 전개되어 있었다.

신영준을 중심으로, 마치 다른 세계처럼 내려앉은 검은 빛.

그 중심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의 형상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 존재가 내뿜는 불길한 기운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준.

그 불가사의한 존재에 맞서.

허공에 떠오른 요리 도구들을 휘두르는 신영준 병장.

“이, 이민재 병장님!?”

“음?”

“뭐 하시는 겁니까! 절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 어서 신 병장님부터 도와 드려야……!”

“아아.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이제 보니.

그의 손에는 거대한 번개의 창 같은 것이 쥐어져 있었다.

아마 저 검은 그림자를 향해 던지려고 했던 모양.

하지만.

피식.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더라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이민재 병장.

그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거대한 안개와 같은 형상의 존재.

악마를 연상시키는 그 사악한 기운에 맞서.

신영준 병장은, 새하얀 빛이 서린 사시미칼을 휘둘렀다.

-서걱.

그러자.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고 있던 그림자.

그 일부가, 베어져 나간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른 병사들이 막 전투에 가세하려던 찰나.

[도주! 도주! 도주!]

신체의 일부를 베인 그림자가.

마치 공포에 질린 듯 저 멀리 도망치는 모습.

“거 봐.”

“…….”

“누가 누굴 돕겠냐.”

그 모습을 본 이민재 병장은.

손에 쥐고 있던 번개의 창을 다른 적을 향해 날렸다.

전광일 상병이 쓰러트린 녹색갈기의 대전사는, 분명 엄청난 강자였다.

그를 쓰러트린 덕분에, 군단이 전장의 승기를 붙잡을 수 있었던 건 확실하겠지.

하지만.

전광일은, 그 대전사를 또 상대하면 상대했지.

방금 보였던 저 검은 그림자를 상대로 이길 자신은 없었다.

당연한 얘기다.

본체가 없어 보이는 존재를, 대체 무슨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그렇기에.

전광일 상병은…….

“흐흐.”

“뭐, 뭐야,”

“흐흐, 흐하하하!”

“미친. 아직 광기가 남아 있는 건가?”

미친 사람처럼 웃어 재꼈다.

그 모습을 본 이민재 병장이 당황하며 마법을 시전하려 했으나.

“아니.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그냥?”

“역시 신 병장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전광일 상병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맑아 보였다.

“제가 조금 강해졌나 싶으면, 저분은 한 발자국 더 가 계시는군요.”

“…….”

“대체 어디까지 가시려는 건지.”

그 얘기에.

이민재 병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벽이라도 느껴지나?”

“설마요.”

예전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전광일 상병에게는, 언젠가 신영준 병장과도 대등해질 수 있을지 모르는 힘이 있다.

신영준 병장이, 직접 그에게 가져다준 힘.

‘이 힘이 있다면, 언젠가는…….’

그를 따라잡을 수 있을 터.

아니.

그보다 앞서가는 것도,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을 테지.

그렇다면.

조급해질 이유 따위는 없다.

신영준 병장이 얼마나 앞서 가든 간에.

자신은 천천히, 스스로의 템포에 맞추어.

주어진 것을 연마해 나가면 그만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전광일 상병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저도 다시 전투하러 가보겠습니다.”

“벌써? 방금 걸로 꽤 지쳤을 텐데.”

“모르셨습니까? 부상이 엄청 심한 거 아니고서야. 광기 버프 켜고 전투에서 활약할수록 체력도 회복됩니다, 저.”

“……개사기구만.”

“뭣보다.”

그가 익힌 무예.

“숙련도작 좀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 숙련도는 아직 1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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