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74화 (174/227)

174화 겨울나기 (3)

내가 무슨 짓 하는 거냐는 눈빛을 보내자

가볍게 웃으며 슬쩍 윙크하는 김 중위.

‘징그럽게 뭔.’

내가 속으로 헛구역질을 하고 있을 때.

김 중위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민간인분들을 위하는 것도 맞지만, 지나치게 정보가 없는 지역이라서 말입니다. 자칫 저희 병사들을 보냈다가 잘못될까 두렵군요”

“군인 여러분들은 엄청 강하지 않습니까.”

“그건 맞습니다만. 저희도 결코 무적은 아닙니다. 특히 최근 전투에서 많은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고, 사망자도 상당했죠. 그 피해가 회복되지도 않은 지금, 대규모 작전은 조금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그런.”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곳에 가서 작전이 성공한다면 다행입니다만, 저희 부대가 전멸한다면? 여러분들은 추위뿐만 아니라 식량과 몬스터 걱정까지 하게 될 겁니다. 저희로서는 굳이 그런 도박을 해야 할지…… 조금 의문이 드는군요.”

김 중위가 절대 발전소 탈환에 나설 생각이 없다는 듯 말하자.

다급해진 것은 대화의 맥락을 파악한 각성자들의 리더들이었다.

“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각성자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추위에서는 버티기 힘들어요.“

“사람 살린다고 생각하시고, 제발 좀…….”

하지만.

그런 이들의 부탁에도 요지부동의 김 중위.

“그렇게 말씀하셔도 말입니다. 리스크는 엄청난 데 비해, 저희 부대에게 이득이 될 부분이 너무 없는지라.”

“……이득이요?”

“예. 이득 말입니다.”

이득.

그 얘기에.

눈치 좋은 몇몇 각성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 그럼.”

“이득이 있다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겁니까?”

“흠?”

그들의 말에, 흥미롭다는 듯 대꾸하는 김 중위.

“얘기나 한번 들어 보죠.”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 섬에서 나오는 전력에 대한 권한은 군단이 가지십시오. 우리는 그저 겨울을 날 정도의 전력만 나눠 주시면 그걸로 족하니까요.”

“허어. 정보를 제공한 것도 그쪽이고, 얘기를 들어 보니 전력을 복구할 수 있는 것도 저쪽 발전소 직원분뿐일 것 같은데. 우리가 그렇게 많이 챙겨 가도 되겠습니까?”

“무, 물론이죠.”

“저희만으로는 탈환 자체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정도는 당연한 겁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하는 리더들.

“그건 나쁘지 않군요. 그리고?”

“예?”

“……그리고, 라 하심은?”

각성자들의 리더들이 말을 더듬자.

가차 없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는 김 중위.

“아. 이득이라는 건 방금 말한 게 전부였나 보군요. 그럼 얘기는 여기까지 합시다. 다들 잘 들어가시길. 마중은 안 나가겠습-”

“자, 잠깐!”

다급하게 김 중위를 자리에 앉힌 뒤.

고민에 빠진 이들이 자기들끼리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로 퍼 주라고?’

‘그 정도는 퍼 줘야 하는 일 아니겠소. 무려 저 군단을 움직이는 일인데.’

‘솔직히 뼈아프긴 하지만…… 이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겨울에 못 해도 반 이상의 사람이 죽을 거요.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싼 값이라고 봐야지.’

‘끄응.’

‘아까워하다가 죽는 것보단 낫소.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니까.’

잠시 뒤.

얘기에 결론이 난 듯, 각성자들의 리더 중 한 명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저, 저희들이 모은 포인트가 꽤 많습니다.”

“그러시군요. 갑자기 포인트를 자랑하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자랑은 아닙니다. 전부 군인분들 덕에 쉽게 식량을 얻고, 안전한 곳에서 활동할 수 있었기에 아낄 수 있었던 포인트니까요. 그러니.”

“그러니?”

“……이걸로 능력치 물약을 구매해, 군인분들께 드리고자 합니다만…….”

“허어!”

크게 놀라는 김 중위.

지나치게 큰 리액션 탓에, 묘하게 연기처럼 보이는 몸동작이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능력치 물약은 값어치가 상당할 텐데요.”

“……군인분들이 강해지실수록 저희도 안전해지는 셈이니까요. 일종의 투자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아깝지도 않습니다. 군인분들 덕에 전투식량을 얻지 못했다면 전부 호밀빵 같은 걸 구매하느라 사라졌을 포인트니까요.”

“과연. 참으로 대단한 결단이십니다.”

그제서야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는 김 중위.

그가 리더들의 손을 하나하나 붙잡으며 말했다.

“병사들의 안위가 걱정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군인으로서 민간인분들의 문제를 좌시하고 넘어갈 수도 없겠군요.”

“…….”

“발전소 문제. 저희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하, 하하…….”

“감사합니다. 김 중위님.”

강제로 악수하는 사람들 표정은

억지로 지은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각성자들이 떠나간 뒤.

나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김 중위를 보며 말했다.

“왜 제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바로 오케이 안 하나 했습니다만…….”

“헤헤. 얘기를 들어 보니까, 우리가 조금 더 이득을 볼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각이 보였다고나 할까.”

어이가 없긴 하다만.

‘……하긴. 이런 각은 옛날부터 참 잘 보는 양반이었지.’

생각해 보면.

이런 정치질 능력이 있었기에 바지사장으로 세운 것이기도 했지.

혹시나 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까?”

“음? 하하.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부대원들이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는 데에는 내 덕도 꽤 있을걸.”

심지어.

이런 식으로 이득을 본 것이 처음도 아닌가 보다.

저런 양반이 내 상관이라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따름이지만.

지금은 내 부하로서, 부대에 이득이 되는 일을 한 것.

솔직하게 감탄할 일이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각이 나와서 그 각을 노려본 것뿐이야.”

“그건 또 무슨 의밉니까?”

“만약 저들에게 추가적인 보상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면, 그냥 전기에 대한 권한을 우리가 확보하는 선에서 얘기를 끝냈을 거다.”

“예?”

“놀라기는. 그게 영준이 네가 바라는 일 아니냐?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이 살아남는 거.”

안 그래도 많은 인간이 죽었다.

살아남은 인간들의 전력은 소수.

“전기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예전 문명의 기술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될 여지가 많아. 아무리 각성자라고 한들 버티기 힘든 겨울이지만…… 전기를 확보한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

그 소수의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기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우리 부대에 도움이 되는 선에서는 이득을 챙기는 게 좋지만, 그렇다고 저들이 죽거나 하는 건 또 손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

“이런.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나는 멍하니 김 중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양반.

이렇게 눈치가 좋았나……?

‘아니, 설마.’

이 정도로 능력이 좋은 양반이었다면, 부대에서 폐급 간부 소리도 안 들었겠지.

그럼에도 지금 저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건.

‘각성의 영향인가.’

김 중위는 부대의 전투마다 지휘 버프를 뿌려 댄다.

덕분에 꽤 많은 경험치를 쓸어 모아, 지금은 20레벨이 넘어 [중급 지휘관]의 영역에 들어선 상태.

‘지휘관이란 직업은 [카리스마]를 비롯해, 여러 가지 정신 계열 특성을 타고나니까.’

그 특성들이 레벨과 함께 성장한 결과.

저 무능하던 김 중위를 쓸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려 준 것이다.

그 김 중위가 저렇게 변하니, 뭐랄까.

조금 감개무량한 느낌.

“……저녁 식사 끝내고 식당 찾아오십쇼.”

“그, 그건 설마.”

그리고.

나는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인색하게 굴 생각이 없었다.

“간식 하나 해드릴 테니.”

“고맙다, 영준아……!”

어찌 됐든

내가 원하는 바를 캐치하고 일을 잘하고 있던 건 사실이니까.

“평생 충성하마!!!”

그 보상으로 [극상의 행복이 담긴] 요리를 주겠다고 하자.

아예 대놓고 군침을 질질 흘리며 고마워하는 모습.

‘이런 부분은 변함이 없구만…….’

꽤나 쓸 만해진 양반이다만.

요리 한 방이면 구워삶아진다는 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 *

김 중위에게 대충 간식을 만들어 준 후.

나는 우리 길드의 정령사.

정수아를 찾아갔다.

이유는 하나.

‘전기 확보가 된다면 우리에게도 나쁠 건 없으니까.’

아니.

나쁠 게 없는 정도가 아니다.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는 일.

특히.

‘문명의 재건이라는 면에서는…… 엄청난 효과가 있겠지.’

과거의 인류 문명의 핵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전기 에너지였다.

그 에너지로 삼기 위해 이용된 재료는 가지각색이지만 아무튼.

많은 이들이 죽고, 문명이라 할 만한 것도 모두 박살이 난 상황이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문명을 복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위해 인제군의 마을을 만든 것이기도 하고.’

그러려면.

일단은 발전소가 있다는 저 섬을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

안쪽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는 외딴 섬.

하지만 우리 부대에는 ‘정령 드론’이 있단 말이지.

정수아의 정령, 방울이.

녀석을 이용해 섬 안쪽을 정찰해 달라는 부탁을 하려 했는데…….

“응?”

저 멀리 보이는 정수아의 뒷모습.

그런데.

그녀는 몇몇 부대원들과 목소리를 낮춘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자매님…….

-……그런 일이…… 역시 구원자님…….

너무 작은 목소리라, 각성자인 내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

“정수아?”

“……!”

무슨 얘기를 나누는가 싶어 다가가자.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이들이 기겁을 하며 나를 돌아봤다.

“……?”

“구ㅇ…… 아니. 군단장님?”

“어어.”

잘은 모르겠지만.

내 얼굴을 보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들.

“그게…… 혹시 저희가 하던 얘기를 들으셨나요?”

“……아니? 못 들었다만.”

“다, 다행이군요.”

“…….”

다행이라.

노골적으로 당황하는 저 모습도 그렇고.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대화를 나누던 모습도 그렇고.

이거 설마.

‘내 뒷담이라도 하고 있었나?’

눈에 약간의 습기가 차는 게 느껴졌다.

과거.

내가 정말로 평범한 취사병이었을 시절의 군 생활이 생각났다.

‘간부들 욕…… 엄청 자주 했지.’

나름대로 일 잘하는 대대장님은, 너무 깐깐하다고 욕했고.

김 중위 같은 간부는 아예 공공의 적 같은 느낌이었다.

병사들 사이에서 간부에 대한 안 좋은 얘기가 나오는 것.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만.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이야.’

지금은 내가 이 군단의 장.

즉, 과거로 치면 대대장님의 위치라는 거다.

뒷담의 대상화가 돼도 이상할 게 없는 위치.

하지만.

나는 최대한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도 많이 했으니, 내가 당하는 것도 업보지 뭐.’

조금 서글픈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새파랗게 어린 취사병이 자신들의 대장을 자처하고 있으니.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만약 쿠데타 논의라든가, 그런 거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내 기억으로, 이들은 부대원 중에서도 꽤나 열성적인 편.

“그, 그런데 군단장님께선 무슨 일로……?”

“아. 실은 정찰해 줬으면 하는 곳이 있어서 그런데.”

일만 잘해 준다면야.

뒷담화 정도는 묵인해 줘도 되겠지.

말을 돌리려고 하는 게 뻔히 보이는 정수아였으나.

나는 그 의도에 기꺼이 넘어가 주기로 했다.

잠시 뒤.

[비마나]의 중심에 있는 내성.

그 꼭대기에서, 작은 물 한 잔을 떠놓고 허공을 바라보는 정수아.

“정말이군요.”

입을 연 그녀의 눈빛은 물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말씀하신 태양광 패널 있습니다. 대부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오.”

그 태양광 에너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조금이나마 이전 문명의 복구에 가까워지는 셈.

“그런데…….”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마냥 일이 쉽게 진행되지는 않으려는 모양.

“패널들은 멀쩡하지만. 패널들이 연결된 발전소, 그쪽에서 뭔가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져요.”

“강력한 존재감이라. 어느 정도지?”

“방울이가 그쪽에 접근하기를 꺼려할 정도……라고 할까요.”

“흠.”

물의 정령이 접근 자체를 꺼린 경우가 몇 번 있기는 했다.

‘그 대부분은, 군부대와 관련된 일이었지.’

군부대를 점거할 정도의 강한 괴물들을 상대로는.

정령 역시 접근을 꺼린다는 것.

즉.

‘저기 있는 녀석도…… 그 정도 존재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자신감이 없지는 않다.

그동안 우리 부대원들도 꾸준히 성장을 겪었으며.

심지어 이제는 무예까지 익힘으로써, 평범한 인간과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무예를 익힌 병사들의 경우에는, 총을 든 일개 분대보다도 강할지도 모른다.

과거에 리자드를 상대할 때는 까마득하게만 보였던 경지에, 드디어 도달한 셈.

군부대 역시.

몬스터에게 점거당하는 것 자체를 저지한 황준산의 우리 부대를 포함.

탄약대대와 전차대대.

총 3곳을 점거하는 데 성공한 상태.

아무리 강력한 괴물이라고 한들.

지금 우리 부대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 * *

콰르릉……!

콰강……!!!

라고 생각했던 적이.

나에게도 있었다.

“……저게 대체 뭐람.”

겉에서 봤을 땐 멀쩡해 보였던 섬.

그 근처에, 공병들이 만들어 준 배를 타고 접근하자.

“저 안을 통과하는 건…….”

“무리지, 인마.”

발전소가 자리 잡은 섬 전체를 커다란 번개가 둘러싸고 있었다.

총알도 버티는 부대원들이라고 해도 버틸 자신이 없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번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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