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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76화 (176/227)

176화 정수

[다스무르 요리사의 정수]

[섭취 시, 다스무르 요리인의 특성, 스탯, 경험 중 한 가지를 랜덤으로, 영구히 획득합니다.]

이 아이템을 얻은 지도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춘천을 뒤엎고 있었던 거대한 규모의 던전.

그 던전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얻었던 아이템이니까.

“벌써 몇 달이 지났네.”

그때는 너무 등급이 높은 재료라 못 썼지.

무려 최상급 식재료.

이걸 획득했을 당시.

내 경지는 [중급 요리사]에 불과했으니까.

‘최상급 재료를 건들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컸다.’

당시에는 제대로 다룰 수조차 없었던 아이템.

그렇기에, 그림자 속에 고이 보관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 레벨이 30이 넘었다.

직업이 [전쟁 요리사]로 바뀌면서, 요리 숙련 특성 역시 고급에 도달했다.

거기에.

[식당 Lv.4]

요리사의 숙련도를 보정해 주는 시설, 식당.

꾸준히 점령 포인트를 투자해 온 결과, 그 레벨도 무려 4.

“그동안은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바빠서 요리할 여유가 없었다만.”

지금은 겨울.

우리 부대가 외부 활동을 줄이고 내부의 정리에 들어간 만큼.

내게도 시간적인 여유가 상당히 늘어났다.

이제야.

제대로 된 요리를 시도해 볼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냥 먹어도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식재료 감별(강화)]에 따르면.

저 구슬은 무려 ‘최상급 식재료.’

그런 식재료를 요리도 하지 않고 그냥 먹는다?

‘너무 아깝잖냐.’

나는 그림자와 부대의 식량 창고를 모두 뒤졌다.

그 안에 있는 재료들.

그중에서도 고급품들만 따로 꺼내 식당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왕 먹는 거, 제대로 요리해 줘야겠지.”

본격적인 요리 준비에 들어갔다.

[요리사의 눈]

[다스무르 요리사의 정수의 손질법]

[다스무르 요리사의 정수의 조리법]

일단은 이것도 요리 재료다 보니.

[요리사의 눈]은 정상적으로 발동했다.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이 정수는…….

“물……에 가까운 재료인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육수라고나 해야 할까.

지금은 동그란 구슬처럼 생겼지만.

내가 이 재료를 요리에 사용하려고 하는 순간.

이 단단해 보이는 구슬은, 액체의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다스무르…… 그 던전 컨셉이 물에 잠겨 있는 세계였지.’

그 세계의 요리사의 정수라는 걸 생각한다면.

정수 역시 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해도, 뭐 이상할 건 없겠지.

“문제는…… 이걸 어떻게 요리하느냐인데.”

평범한 요리의 재료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재료가 가진 ‘다스무르 요리사의 정수’를 최대한 흡수해야 한다.

즉.

‘원재료의 맛을 크게 상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내야 한다는 건데.’

제대로 요리를 하기 위해선.

일단 그 맛을 알 필요가 있겠지.

화구에 불을 붙인 뒤.

그 위에 냄비를 올리고, 구슬 형태의 정수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다스무르 요리사의 정수를 요리합니다.]

구술의 형태를 하고 있던 정수가 빠르게 녹아드는가 싶더니.

냄비를 가득 채운 투명한 액체로 변했다.

“어디 어디.”

나는 그 냄비 안에 숟가락을 집어넣어 살짝 맛을 보았다.

이 맛은…….

‘돼지 육수 느낌인가?’

너무 특별한 맛이라면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을 테니.

내심 걱정했다만.

한식에서는 꽤나 보편적으로 쓰이는 재료.

돼지고기 육수와 비슷한 느낌의 맛과 향이었다.

잠깐.

돼지고기 육수라고 한다면.

씨익.

‘어떤 식으로 할지…… 대충 감 오는데?’

내가 생각한 요리를 한다고 하면.

여러 재료를 넣으면서도, 맛이 크게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 * *

요리의 효과를 상승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한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첫째는, 그 맛을 향상시키는 것.

그리고 둘째는.

“효과 좋은 재료들은 다 때려 넣는 거지, 뭐.”

우리 부대가 사냥한 괴물들.

생존자들이 전투식량을 얻기 위해 가져온 괴물들.

거기에, 탄약대대의 농가에서 채취한 이계의 식물들까지.

그중 향이나 맛이 지나치게 특별한 경우를 제외.

효과가 좋다 싶은 것들을 모두 집어넣어 주었다.

‘여기서 끝내긴 좀 아쉬우니까.’

간장과 고추장.

그리고 고춧가루를 조금 뿌려 줌으로써, 칼칼한 맛이 나도록 만들어 준 뒤.

팔팔 끓여 주었다.

“이런 재료들로는 만들어 본 적 없는 요리긴 하지만, 뭐.”

이 요리는 분명 맛있게 완성될 것이라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만들려고 한 요리는, 바로…….

띠링.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전쟁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다스무르 부대찌개]

부대찌개였으니까.

[특정인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고급 재료들이 아낌없이 들어간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대폭 증가합니다!]

부대찌개.

먹을 것이 얼마 없던 어려운 시절.

미군 부대에서 남은 식재료들을 받아 온 뒤.

그걸 모조리 집어넣고,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끓임으로써 탄생했다고 하는 요리.

기본적으로 ‘아무거나 넣어서 만들었다’는 그 기원에 걸맞게.

다른 재료를 조금 추가해도, 맛이 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요리이기도 하다.

‘부대찌개라는 이름도 꽤 적절하고.’

실제로.

지금 우리 부대의 남은 재료들을 다 때려 박아 만든 셈이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효과.

[섭취 시, 다스무르 요리인의 특성, 스탯, 경험 중 두 가지를 랜덤으로, 영구히 획득합니다.]

정수라는 이름대로.

이 찌개에는, 다른 세계의 요리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특성과 스탯.

그리고 경험까지.

“질 높은 요리를 만듦으로써, 셋 중 둘까지는 받을 수 있게 된 건데…….”

요리하지 않은 상태의 원재료일 때는 셋 중의 하나밖에 받지 못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나마 전력을 다해 요리함으로써, 최소한 하나는 더 챙길 수 있게 된 셈인데.

“랜덤이라.”

문제는.

그 선택권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요리를 함으로써 저 문구만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특성, 스탯, 경험.

그 셋 중의 두 가지를 랜덤으로 획득할 수 있는 기회.

‘저 셋 중에서라면…….’

내가 노려야 할 건 사실상 뻔했다.

“제발 특성하고 스탯. 제발 특성하고 스탯.”

특성.

그리고 스탯.

스탯이야 지금도 충분히 높다지만 더 높아져서 나쁠 건 하나도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높은 만큼 굳이 없어도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특성.

‘특성은 포인트를 통해서도 구매할 수 없으니까.’

[랜덤 스킬북]을 구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스킬과 달리.

특성은 포인트 상점에서도 얻을 수 없다.

업적 달성.

혹은 레벨 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능력.

지금 내 목표는 저 발전소에 자리 잡은 괴물을 안전하게 토벌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능력.

특성이 절실했다.

그 외에는.

‘경험이라니. 이것만 피하면 된다.’

요리사의 경험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그래 봐야 외계 종족이 겪은 경험.

‘나한테 도움이 될 리가 없지.’

그것만은 무조건 피해야만 한다.

제발.

특성하고 스탯……!

그렇게 기도를 하며.

찌개 안에 숟가락을 집어넣고.

“끄억.”

찌개 그릇을 모두 비웠다.

그러자.

[스킬 - 절대 미각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이런 스킬이 있었지.

‘절대 미각’의 패시브 효과가.

분명…….

[자신에 한해, 요리를 통해 얻는 효과가 크게 상승합니다.]

요리의 효과를 확인하려고 하던.

바로 그 순간.

[다스무르 요리인의 특성, 스탯, 경험 중 두 가지를 랜덤으로, 영구히 획득합니다.]

->

[다스무르 요리인의 특성, 스탯, 경험을 영구히 획득합니다.]

‘어?’

눈앞이 새까맣게 암전되었다.

* *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알 수 없는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뭔!?’

아니.

알 수 없는 공간에 도착해 있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바로.

“…….”

내 눈앞에 서 있는 존재.

물고기와 인간을 반쯤 섞은 듯한 얼굴.

지난번.

[침식이계 다스무르]의 던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어인의 얼굴.

‘몬스터!’

생김새 자체는 [깊은 자들의 교황]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신장 5m에 달했던 교황과 달리.

눈앞의 몬스터는 나와 비슷한 눈높이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는 것.

‘교황 정도의 적이라면 무리겠지만…… 저 한 마리라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다.’

그동안 나도 가만히 놀고먹었던 것은 아니니까.

어지간한 적을 상대로는 크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급하게 양손을 움직인다.

한 손은 [전투식량] 주머니에.

나머지 한 손은, 허리춤에 맨 [독고구식]을 꺼내 들려고 했으나….

‘……!?’

그런 내 의도와는 달리.

미동도 하지 않는 두 손.

‘몸이 움직이지 않아……!?’

적을 눈앞에 두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니.

당황스러운 사태에, 어떻게든 움직여 보고자 최대한 힘을 주었으나.

내 몸은 조금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이 아닌 듯한 기분.’

그 순간.

눈앞에 있던 괴물 녀석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성하의 건강이…… 연일 악화되어 가고만 있네.”

그런데.

입을 열자마자 내 살점을 물어뜯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 입에서 나온 것은, 꽤나 차분한 말이었다.

‘갑자기 무슨 개소리…….’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손발과 마찬가지로, 입 역시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군요.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내 입에서 나온 것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안타까움이 담긴 말이었다.

‘……이건, 대체.’

이쯤 오니.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내 입’이 또다시 마음대로 열린다.

“사제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분명 치료사들과 함께 성하의 치료에 전념 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좋은 얘기는 없더군.”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는 괴물.

“병도 병이지만, 노화로 인한 기력 저하가 너무 커. 아무리 신성력을 쏟아부어도 병의 진척을 막아 내는 게 한계일 뿐. 이겨 내기가 힘들 듯하네.”

“노화는 신께서 안배하신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으음. 사제들로서도 그걸 역행할 방도는 없다더군.”

그 말에.

‘나’는 진심으로 서글픈 말투로 대답했다.

“그럴 수가…….”

“그러니. 부탁 좀 함세.”

“부탁이라니요?”

“오늘부터 올라가는 식단은 최대한 건강식으로 만들어 주시게.”

그 말에.

약간 머뭇거리며 대답하는 ‘나’.

“그러면 아무래도 맛이 좀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성하께선 워낙 입맛이 까다로우신 분이라…….”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성하께서도 이해하시겠지.”

“으음. 알겠습니다.”

내게 말을 걸어온 괴물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등을 돌려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혼자 남은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성하의 건강이 그 정도로 나빠졌다니…….”

뭔가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원기 회복을 위해서…… 신수의 부산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해 봐야겠어.”

뭔가 결정을 내린 듯.

혼잣말을 멈추는 ‘나.’

그 시야가 조금 옆으로 옮겨지자.

‘……여긴?’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바다?’

‘나’의 몸이 잠길 정도 높이의 바닷물.

그리고.

그 바닷물에 비치는 것은.

‘나…… 아니.’

인간과 비슷하지만.

비늘이 돋아나고, 해초 같은 털이 군데군데 나 있는 얼굴이었다.

‘다스무리안.’

그제서야.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경험]이란 게…… 이런 식이었나.’

이건 아마도.

다스무르 요리인의 기억.

내가 멸종시킨.

‘다스무리안’이라는 종족.

그 요리사의 기억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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