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77화 (177/227)

177화 앞서간 자의 기억. (1)

[정수에 담긴 특성, 스탯, 경험을 획득합니다.]

[다스무르 요리인의 경험을 획득합니다.]

‘경험’의 획득.

그 말만 들었을 때는 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런 의미였나.’

굉장히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의미.

나는 지금, ‘다스무르인 요리사’가 된 상태였다.

“그럼…… 나가 볼까.”

‘나’…… 아니.

다스무르의 요리사가 입을 열더니, 몸을 움직여 건물 밖으로 나간다.

‘……어?’

그렇게, 바깥으로 나가자.

그곳에 펼쳐져 있는 풍경은.

내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게…… 원래의 다스무르라고?’

내가 경험한 던전.

[침식 이계 - 다스무르]의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 세상의 환경에 적응할 수 없는 몬스터들.

그들이 우리의 세상을 자신들의 세상과 유사하게 테라포밍하는 것이 던전이라고 했던가.

그때 상태창이 설명한 내용을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내가 해 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사기 치고 있네!’

탁하게 일그러진 물.

달빛을 제외하면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도시.

물에 잠긴 땅에는 굶주린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던 공간.

그게 내가 겪은 [침식 이계 다스무르]였다.

반면.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아름답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푸른색의 투명한 바다.

바다 곳곳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해양 생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중간중간에는, 상아색의 아름답고 신성해 보이는 건물들이 바다 위에 세워져 있었다.

하나하나가 예술품처럼 아름다운 건물들.

그 건물들을, 거대한 달빛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던전]은 분명…….

지구를, 자신들의 세계와 같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한 공간.

즉, 테라포밍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었을 텐데.

‘내가 겪은 던전이, 이 환경을 만들려고 한 거였다니.’

이름만 같을 뿐이지.

다른 세계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자.

그 둘이 근본적으로 비슷한 장소라는 걸 알 수 있는 힌트가, 군데군데 있었다.

‘저 건물들.’

이쪽이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아름답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던전의 중심부에 지어져 있던 건물들하고…… 건축 양식이 똑같아.’

기둥의 위치나, 입구의 구조.

중간중간에 새겨진 장식들까지.

던전 안에서 본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

‘완전한 이계의 풍경이라…….’

얼마 전.

[천산 무관]이라는 게이트에 입성함으로써, 다른 세계의 풍경을 본 적이 있기는 하다만.

그곳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산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상태였다.

반면 이곳은.

완전한 상태의, 다른 세계.

내게 있어서는, 우주인의 문명을 보게 된 것과 비슷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게 있어서만 그런 거고.

철벅…….

다스무르 요리사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인지.

주변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풍경에는 아무런 감상도 없다는 듯.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녀석.

그렇게 어느 정도를 걸어갔을까.

[우와! 바다 거인이다.]

묵묵하게 걷고 있던 다스무르 요리사.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멀리서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시선이 돌아가자.

그곳에 있는 것은, 바닷속을 헤엄치고 있는 작은 생명체들이었다.

‘아니. 저 녀석들이 작은 게 아니군.’

이제서야 눈치챘다만.

‘내가 큰 거다.’

지금 내가 빙의해 있는 이 요리사.

던전에서 만난 [깊은 자들의 교황]과 비슷…….

아니, 그보다도 더 거대한 거인이었다.

[바다 거인이라니. 우리 바다에는 한 명도 없었는데!]

[시골 바다 출신 아니랄까 봐 호들갑은.]

[뭐, 뭐라고……!?]

[저분은 그냥 바다 거인이 아니야. 신전의 요리사님이시지.]

[……!]

작고 아기자기하게 생긴 해양 생물들이 떠드는 모습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내가 빙의하고 있는 녀석의 크기.

‘저 작은 녀석들이야말로, 인간하고 비슷한 크기일 거 같은데.’

그 크기로 추산해 보자면.

지금 내가 빙의해 있는 녀석은, 신장이 최소한 10미터는 넘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교황이 분명…… 던전은 너무 좁아서, 자기들 종족이 충분히 성장할 수 없다고 했지.’

던전에서 만난 녀석들은 커 봐야 2미터를 넘기는 정도였다만.

정상적인 성장을 거칠 경우.

10미터는 가뿐하게 넘는 종족이었다는 얘기다.

그 후에도.

요리사는 계속해서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도착한 곳은, 주변에 보이는 건물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입구에 있는 것은.

[호. 귀중한 분이 오셨군.]

신장 10미터의 거인.

‘다스무리안’조차 작아 보이게 만드는 존재였다.

‘크다.’

초고층의 건물이 몸을 숙이고 걸어 다닌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 정도로 거대한.

‘……거북이?’

거북이였다.

“귀중한 분이라니……. 농담은 그만하시지요.”

그 얼굴은 용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날카롭고 굳건해 보였으며.

갑각 안에 들어 있는 몸통 또한, 묘하게 신성한 빛을 띠고는 있었으나.

‘거북이군.’

아무튼.

거북이였다.

그 거대한 거북이가,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

다스무르 요리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신수께선 여전히 건강하신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

[나야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릴 뿐이니. 건강이 나빠질 이유도 없어서 그런 것이지.]

“신전을 수호하는 중임을 수행하고 계시면서, 무슨 말씀을.”

신수라니.

분명 그런 이름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하는 존재이기는 했다.

‘우리 군단이 모든 전력을 다 동원해도…… 저 녀석한테 상처 하나라도 줄 수 있을지.’

우리도 꽤나 힘을 키웠으니, 생채기 하나쯤은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만.

말 그대로 생채기 하나만 내도 다행.

우리 부대가 전멸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그럼, 들어가시게.]

“예. 신수님도 수고하시길.”

신수와 대화를 나누던 요리사는 가벼운 인사를 마친 뒤.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

게다가, 신수가 지키고 있던 것을 보면.

‘여기가 신전이겠지.’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뒤.

한참을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왔는가.”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내게는 익숙한 존재였다.

[깊은 자들의 교황]

5미터를 넘는 덩치의 거인.

깊은 자들의 교황이었다.

‘내가 직접 숨통을 끊어 준…….’

하지만.

그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나와 마주쳤을 때.

교황에게 있어서, 나는 동족을 잡아먹은 악적에 불과했다.

그 던전의 환경 자체도 그렇게 훌륭하다고 말하긴 힘들었고.

덕분에, 당시의 교황은 뭐라고 해야 하나.

묘한 귀기가 서린, 공포스러운 괴물에 가까웠지.

반면 지금은.

‘온화해 보이는군.’

내 크기가 교황보다도 커져서 그런 것도 있을까.

눈앞에 있는 것은, 그저 노화로 인해 주름지고 왜소해졌을 뿐.

온화한 성격을 가진 노인에 불과해 보였다.

“아직 식사 시간이 아닌데 무슨 일로 왔느뇨.”

“그게, 실은 전달해 드릴 내용이 있어서 말입니다.”

“음?”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건강식으로 메뉴를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허어!”

세상이 무너진듯한 얼굴을 하는 교황

그 얼굴을 보니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간만에 그럭저럭 기분 좋은 음식이었노라.’

한참을 맛있는 요리를 못 먹었다는 듯이 말했지.

어쩌면 이때부터 완전한 건강식 위주로 바뀌었을지도.

유독 입맛이 높은 탓에.

내 요리의 효과조차 제대로 먹히지 않았던 녀석.

그런 녀석이 환자용 건강식만 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우울해질 법도 하지.’

아무튼.

아무래도 내가 빙의한 이 요리사.

교황의 요리를 만드는, 일종의 궁정 요리사 같은 직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았다.

“자, 자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예. 나름대로 맛을 신경 쓰기는 하겠으나…… 지금까지보다는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노년의 유일한 즐거움이 먹는 것이었거늘. 끄응.”

그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니.

요리사 역시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지.

“대신…… 마지막으로 최고의 요리를 대접해드릴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참으로 고마우이.”

마지막 만찬을 약속하는 모습.

그 얘기에, 교황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 * *

그 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요리사의 기억을 보았다.

궁정 요리사라고 하지만.

‘하는 일은 직장인하고 비슷한가?’

신전으로 출근해, 요리를 하고.

업무를 마치면 퇴근.

이를 반복하는 삶.

그 과정에서 특별한 건 없어 보였지만.

며칠 뒤.

[지난번에 부탁한 요청은 처리되었네.]

“오오……. 감사합니다!”

약간의 변화가 생겨났다.

“힘든 요청이었을 텐데…….”

[무얼. 평생을 교단을 위해 헌신한 교황을 위한 일이니, 신께서도 기꺼이 받아들이셨지.]

“은혜로운 일입니다. 정말로요.”

그러고 보니.

출퇴근을 반복하던 요리사가, 신수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었던 모양.

그리고.

그 부탁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캬아아아악! 케엑…… 샤아아아아학!!!!

평소와 마찬가지로 식당의 주방으로 출근한 요리사.

그 주방의 한가운데서.

기괴하게 생긴 촉수 괴물 같은 것이, 끔찍한 점액을 퍼트리며 파들거리고 있었다.

‘미친, 저게 뭐야.’

경악하며 바라보자.

[요리사의 눈]이 발동했다.

[신수의 기생충]

[다스무르를 수호하는 신수의 부산물입니다.]

[다스무르 내에 존재하는 모든 재료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요리 재료로써, 특히 원기 회복에는 최고의 재료입니다. 당대의 영웅이나 최고위 지배자들. 그중에서도 특히나 높은 공을 세웠던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재료로, 병자에게 먹이면 병이 없어지고, 평범한 이에게 먹이면 수명이 두 배는 늘어난다고 할 정도로……]

뭔가 엄청난 설명문이 이어지지만.

그런 걸 여유롭게 읽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우욱.’

부대에서 가장 먼저 괴물의 고기를 먹자고 주장한 나지만.

아무리 나라도, 저런 걸 먹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 들 정도의 비주얼.

뒤틀린 황천의 요리가 저런 것일까 싶은 모습.

“내 생전에 이런 재료를 다룰 기회가 올 줄이야……!”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속으로 구역질을 하고 있던 나와 달리.

다스무르의 요리사는 오히려 큰 영광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

“이거라면, 성하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다스무르 요리사]의 요리가 시작되었다.

이 녀석이 요리를 하는 과정 자체는 몇 번인가 보았다.

이계의 존재인 만큼, 나와는 전혀 다른 요리 방식.

그 과정은 꽤나 간단했다.

요리사는, 찐득한 점액을 내뿜고 있는 기생충 위에 손을 올리더니.

“끄읍.”

기합을 주었다.

“허업…….”

“하아아아아앗……!”

“헤으윽!”

상당히 기묘한 기합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힘을 주는 요리사.

몇 번을 본 장면이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딴 게 요리?’

요리사인 나로서는 다른 세계의 요리에 어느 정도 흥미가 있었으나.

이런 걸 요리라고 보여 주고 있으니.

내게 도움이 될 리가 있나.

그런데.

오늘은 그 모습이, 조금 달랐다.

“끄허어어억……!”

“흐으읍!!!”

“끼요오오오오오오옷!!!”

묘하게, 평상시보다 훨씬 더 기합을 주는 모습.

그래 봐야 평상시보다 더 힘을 주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저게 무슨 요리냐, 하는 생각은 여전했으나.

-띠링!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른 세계의 요리법.]

[그 극의를 목도하였습니다.]

‘……엉?’

[최상위 원소 요리법]

[비전 극의 - 수水]

[마나 요리의 세부 계파 중 하나인 원소 요리.]

[그중에서도 최고위에 해당하는 기술입니다.]

갑작스러운 알림음과 함께.

눈앞을 가득 메우는 메시지.

[신화급 이상의 식재료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요리사는 모든 차원을 뒤져도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특유의 환경으로 인해 원소 요리 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세계, 다스무르.]

[그 세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요리사는, 그 극히 드문 최고의 요리사 중 하나입니다.]

‘……뭐야 이거.’

[아득히 멀리 앞서 나가는 요리사의 수법을 경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대량으로 획득합니다.]

레벨이 30을 넘고.

[전쟁 요리사]가 된 후.

레벨이 오르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었다.

그런데.

[레벨이 상승합니다.]

그 레벨이.

뜬금없이 올라 버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레벨이 오를 정도의 수법이라고……?’

……방금 저 [끼요오오오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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