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앞서간 자의 기억. (2)
[아득히 멀리 앞서 나가는 요리사의 수법을 경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대량으로 획득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나로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행동이었지만.
시스템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레벨이 오를 정도의 요리였다고 판단했다.
‘기합이 우스꽝스럽다고 가볍게 여길 게 아니었나.’
나름의 방식으로 요리가 발전한 다른 세계.
그 세계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요리사.
그가 최고의 재료에, 전력을 다해 가며 만든 요리.
되짚어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
내게는 아무리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행동이라 한들.
당연히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설마 저런 대단한 것일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귀중한 장면을 대충 넘긴 나와 달리.
[원소 요리의 극의를 목격하였습니다.]
[추후 원소 요리 특성을 획득할 경우.]
[원소 요리 특성의 효과가 50% 증가합니다.]
시스템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앓아누울 정도로 요리를 하나.”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맛있는 요리를 해드리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니. 마지막은 가급적 최고의 일품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얼마나 전력을 다한 요리였던 건지.
그 요리를 마친 뒤.
이 요리사는 며칠을 앓아누워 있었다.
“죄송할 일은 아니지.”
눈을 뜬 요리사를 찾아온 것은.
내가 이 요리사에게 빙의한 뒤, 처음 봤던 그 괴물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양반, 이쪽 세계 기준으로도 꽤 높은 지위에 있는 양반이겠지?’
무려 교황의 식단을 정할 수 있을 정도니까.
“죄송할 일이 아니라 하심은……?”
“덕분에 성하의 건강이 많이 호전되었거든.”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진 않아.”
‘높으신 분’의 말에.
크게 반색하는 요리사.
그만큼 요리사는 교황의 건강을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다.
내게는 한 마리의 괴물에 불과했으나.
이쪽 세계에서는, 꽤나 인망이 높았던 모양.
“……본래라면 앞으로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수명이 다해 돌아가셨을 분이었네. 그런데 오늘 내가 사제들에게 들은 얘기가 뭔지 아나?”
“무슨 말을 들으셨길래 그러십니까.”
“교황 성하의 수명이 5년은 연장되었다고 하더군. 자네의 요리 덕분에 말이야.”
스스로 말해 놓고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요리사’를 바라보는 괴물.
‘미친.’
그 얘기가 믿기지 않는 것은.
듣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로서는 어떤 짓을 한 건지.
정말 단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요리였지만.
“그대의 요리는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군…….”
“하하……. 과찬이십니다. 재료가 좋았던 덕분이지요.”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했다.
‘죽기 직전의 생명을, 요리로 살려 냈다고?’
그것도, 병에 걸려서 아프든가 했던 것도 아니고.
수명이 다해서 죽을 뻔한 생명을?
‘말도 안 돼…….’
나도 나름대로 기절해 있는 이들을 요리를 통해 치료해 본 적이 있기는 하다.
부대의 그 누구보다도, 요리가 가지는 가능성을 높게 치고 있는 것이 바로 나.
하지만.
그런 나조차, 요리를 통한 수명 연장 따위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행한 단순한 치료 따위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기적.
내가 깃들어 있는 이 요리사.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먼 앞길을 걸어가고 있는 녀석인 거다……!’
맙소사.
생각해 보면, 괜히 교황의 입맛이 높았던 게 아니다.
‘이런 양반이 만들어 주는 요리를 매일같이 먹고 있었으니!’
입맛이 높아지지 않고 배기겠냐고.
내 요리가 하나도 먹히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집중해서 봐야 한다.’
나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경지에 도달한 요리사다.
이쯤 되는 존재라면, 삶과 요리가 하나가 된 존재라고 보는 게 맞겠지.
손짓, 발짓.
그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나로서는 짐작하기 힘든 의미.
요리사로서의 깨달음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일.
마음을 내려놓고 대충 ‘경험’하던 직전과 달리.
나는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온 정신을 집중했다.
* * *
그런 내 각오와는 달리.
그 후로, 요리사는 다시 평범한 일상을 반복했다.
건강을 회복한 뒤, 다시금 신전으로 출근해 요리를 하고.
‘……다시 봐도 뭔지 모르겠는데?’
나로서는 집중해서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뭔지 모를 대단한 요리를 한 뒤, 퇴근.
이를 반복하는 삶.
가끔 특이한 일이 있다고 해 봐야.
“자네, 그 얘기 들었나.”
다른 종족의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다.
“글쎄. 오케아르 해의 전사단이 전멸했다더군.”
“……가벼운 소요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강한 바다가……?”
변화가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
다른 종족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불온한 소문에 대한 정보가 들려오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오케마르 해에 이어, 에게마르 해가 괴물들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난민들의 말로는, 각 종족의 대전사들마저 고전하는 강적.’
‘각 바다의 종족들만으로는 역부족.’
‘다스무리안의 수호자들이 출전할지도.’
얘기를 듣자 하니.
요리사가 머물고 있는 이 바다는, 이 세계의 수도와도 같은 장소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의아한 점이 하나.
‘우리 세계였다면, 가장 강한 여기가 가장 먼저 침공을 받았을 텐데 말이지.’
서환과 미호의 세계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저 침공은, 일단 침공을 당한 세계의 무력을 먼저 제압하고 시작한다.
그럼에도 이곳이 아직까지 조용하단 것은 조금 의아했으나.
“여기도 곧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
“설마. 신의 보호가 미치고 있는 곳이야. 아무리 강력한 괴물이라도 이곳을 넘보지는 못할 테지.”
아무래도.
그 ‘신의 보호’라는 것이, 이 바다를 보호해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한들.
아무런 여파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출정이다!”
“……기어코 다스무리안의 수호자들이 출정할 정도라니.”
다스무리안.
교황이나, 내가 빙의한 이 요리사가 속한 종족.
그들은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으로 취급받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강력한 전사들로만 이루어진 집단이 수호자.
그들이 수도의 전사들을 이끌고 밖으로 출정했다.
“……이곳도 조용해졌군.”
“그러게 말일세.”
머지않아.
다른 종족의 여러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으로 향하고.
신전을 보호하는 극히 소수의 전사들을 제외하면.
신전에는 어린아이와 노인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
묘한 기분이 되어 그 풍경을 지켜보면서.
또 시간이 한참이 지나고.
[앞으로 며칠은 보지 못하게 될 것 같네.]
“신수님?”
신전을 지키고 있던, 말도 안 되게 거대한 거북이.
‘신수’가 그 몸을 일으켰다.
[적들의 침공이 바로 앞바다까지 다가왔네. 내가 나서야 할 때가 온 게지.]
“그런……! 신수께서 나서야 할 정도란 말입니까.”
신수의 출정이 어떤 의미인지.
나로서는 잘 모른다만.
‘나’는 그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양.
[무얼. 부끄러운 말이지만,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린 시간이 길었잖나?]
“……신전을 지키는 중임을 맡고 계셨잖습니까.”
[신께서 직접 비호하기에 지극히 안전한 수도에서, 사소한 사건 하나 없는 신전을 말이지. 그런 걸 빈둥거렸다고 하는 걸세.]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는 신수였으나.
그 말투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동안 축낸 밥값을 지불할 때가 온 게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자네도.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무탈하길 비네.]
그 대화를 나눈 후.
무려 신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가 직접 나선 덕일까.
몇 년간.
수도에 들려오는 불온한 소식의 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 * *
그렇게 평화가 이어지나 싶던, 어느 날.
문득.
“달이, 사라졌어……?”
다스무르를 따스하게 감싸던 달이 사라지고.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대체 무슨 일인가!”
전선에서 싸우던 수호자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채로 수도로 도망쳤고.
전사들과 난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증언만을 되뇌었다.
‘거대한 뱀에게 신수가 사냥당하고…… 붉은 창을 든 악마가 달을 떨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사의 눈앞을 채운 것은.
수도의 바다.
그 앞을, 지평선 가득 채운…….
괴물들의 무리였다.
‘악마……? 에다가. 저건, 용인가?’
서환과 미호의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
미호가 목격했다던 존재가, 저런 느낌이었을까.
‘이 요리사가 나보다 앞서가고 있던 건. 요리뿐만이 아니었구나.’
멸망 역시.
나보다 앞서 겪은 거다.
가히 신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을 강대한 존재들.
그들을 뒤따르는 괴물들의 무리.
그런데.
그 무리 사이에, 조금 이상한 것이 보였다.
“수호자들이 저곳에…….”
10미터에 달하는 덩치의.
비늘에 뒤덮인, 해초 같은 수염을 지닌 거인.
다스무리안.
소요를 막기 위해 출전했던 수호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옆을 기괴한 자세로 헤엄치는, 거대한 존재.
그 모습을 본 요리사가 피눈물을 흘렸다.
“신수님까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요리사의 말은.
조금 뒤틀린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윽고.
마지막 전쟁이 펼쳐졌다.
[신성이 강림합니다.]
이 세계의 주인이자.
세계 그 자체와도 같은 존재인…… 신.
[끝없는 바다의 주인 - 다스무르]
그가 전장에 강림하고.
그의 신도들이, 쳐들어오는 괴물들에 맞서 무기를 들었다.
‘나’는, 수도에 남아 있던 전사들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다.
그 전쟁에서.
‘나’는 요리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맹위를 떨쳤다.
‘원소 요리라는 건…… 이렇게도 쓸 수 있는 거였나.’
적들을 해치워 나가는 그 모습에 감탄하기도 잠시.
신의 축복을 받아 엄청난 힘을 얻었음에도, 결국.
-크어어어어……!
몰려드는 동족의 시체들을 이겨 내지 못한 채.
바닷속으로 쓰러지는 ‘나’.
“빌어먹을……!”
그는 쓰러지는 와중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으나.
“벌레들 같으니……!”
콰직.
이지를 잃은 신수의 이빨이.
요리사의 몸을 두 동강 냈다.
‘나’의 상반신이, 신수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
이 요리사는, ‘나’.
나는 그의 기억을 그대로 체험하고 있는 만큼.
몸이 두 동강 나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끄륵…….’
지극히고 현실적이고.
고통스러운 감각.
하지만.
내가 아닌 ‘나’의 기억이라서일까.
몸이 두 동강 난 와중에도, 이성만은 온전했다.
이성이 온전한 탓에.
그 고통이 더욱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으나…….
‘저건……?’
신수에게 먹혀 반 토막이 난 상태에서도.
‘나’의 눈은, 부릅떠진 채.
정면을 확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 보인 것은.
‘죽은 지 오래된…… 부패되고 있는 몸.’
신수의 내장을 가득 채운 구더기들.
시체를 먹기 위해 몰려든 벌레.
신수는, 분명 죽어 있었다.
‘죽은 신수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 자체로 모순인 존재.
이런 존재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좀비…….”
내 입에서.
내 의지로 말이 나오게 된, 바로 그 순간.
[스킬 - 절대 미각이 발동합니다.]
[다스무르 요리사의 특성, 스탯, 경험을 영구적으로 획득합니다.]
[특성 - ‘원소 요리’를 획득합니다.]
[힘, 민첩, 마력, 행운 스탯이 영구적으로 10 증가합니다.]
[다스무리안의 마력을 획득하였습니다.]
[과거에 섭취한 최고위 식재료, ‘성자의 유해, 어인의 고기.’의 관련 효과가 촉진됩니다.]
[다스무르 요리인의 기억을 경험합니다.]
“허억…… 허억…….”
짧은 ‘경험’이 끝나고.
나는 현실에 돌아왔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내가 얻은 것을 알려주는 상태창의 메시지들.
몸 안을 가득 채우는 활력.
지금 증가한 스탯만 해도, 나를 엄청나게 강화시켜 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원소 요리…….’
다스무르 요리사가 다루던, 바로 그 기술까지.
‘엄청난 보상이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요리를 통해 얻은 여러 가지 효과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보상은, 다름 아닌…….
‘이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