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원소 요리.
“허억…… 허억…….”
정신을 차리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식당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내가 경험한 ‘다스무르 요리사’로서의 시간은 결코 긴 편은 아니었으나.
그 기억의 후반부가 워낙 강렬했던 탓일까.
덜덜…….
온몸이 파르르 떨리고.
강렬한 위화감이 들었다.
‘이게, 나?’
이 작고, 왜소하고.
힘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이 몸이.
정말 내 몸이 맞는지.
지독한 괴리감.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정하자.”
나는 이를 악물고, 떨리는 몸을 움직였다.
식당의 구석에 있는 휴게실에 가까스로 도착한 뒤.
내 몸 곳곳을 더듬으며, 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
‘이게 진짜 내 몸이다.’
방금 그 경험…….
10m에 달하는 물의 거인은.
‘내가 아니다.’
그리고 또한.
그곳에서 겪은 죽음은.
‘내 죽음이 아니다…….’
까드득.
그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죽진 않을 테다.”
* * *
“……후우.”
한동안 그렇게 몸을 웅크리고 있자.
어느 정도 몸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야.
방금 겪었던 기억을 차근차근 되새길 수 있었다.
“……멸망.”
이미 이야기로는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었다.
서환과 미호.
그들의 세계 역시, 몰려드는 적들에 의해 멸망했다는 얘기.
하지만.
이야기로만 듣는 것과.
그걸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것.
그 둘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교황은…… 자기가 침략자가 아닌 [난민]이라고 했지.’
과연.
방금 그 기억을 보고 나니.
그가 하고자 한 말의 의미가 대충이나마 이해가 갔다.
[다스무르] 역시.
우리와 같이 이계의 침공을 받았다는 것.
그나마 요리사가 머무르던 곳은 신의 보호가 임하는 바다.
한동안은 평화를 유지한 것 같다만.
“영원하진 못했단 거겠지.”
기억 속의 풍경을 되새겨 본다.
처음에는 많은 생명체가 자유롭게 노닐던 바다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보이는 생명들은 줄어만 갔다.
바깥 세계에 나타난 괴물들.
그들과 싸우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을 제외한 모두가 전쟁터로 끌려 나간 것.
그나마 ‘나’는 교황의 전담 요리사.
전투 인원도 아닌 만큼, 다른 바다로 출전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만.
신의 보호가 임하는 바다에도 적들이 쳐들어오고.
그 신이 직접 강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그 역시 전장으로 나서야만 했으니.
“……던전 속의 [다스무리안]들은 모두 어린아이나 다름없다고 했지.”
그나마 성체였던 교황 역시.
요리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진작에 수명이 다해 죽었을, 수명이 다한 노인이었다.
마지막 전쟁 끝에.
싸울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사망하고.
‘어린아이와, 그들을 이끌 노인만이 다른 세계로 도주했다.’
그게 바로 저 던전.
[침식이계 - 다스무르]의 정체.
우리 세계를 바다에 담가 버리려고 했던 교황이다.
그 녀석을 죽이고 던전을 해방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만.
‘마지막 남은 동족의 아이들을 올바르게 성장시키고 싶었다는 건…… 이해가 간다.’
그 녀석도.
나도.
어쩔 수 없는 싸움을 해야만 했고.
더 강한 쪽이 살아남았다.
그것뿐.
묘하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죽은 녀석들의 일은 잊자.”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니까.
방금 그 기억 속.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지막에 강림한 저쪽의 신.
[끝없는 바다의 주인, 다스무르]도.
그 신과 싸우던 거대한 괴물들도 아니었다.
“좀비.”
살아 있는 시체.
그 단어 자체가 모순인 존재.
말 그대로.
죽은 자가 걸어 다니는 것을 말한다.
‘우리 부대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던 괴물들.’
하지만.
다스무르를 멸망시킨 괴물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좀비였다.
특히.
‘신수’가 좀비가 된 채 진격해 오던 모습.
‘그 모습을 본 요리사의 절망감이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까진 위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그럴 수밖에.
각성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좀비도 충분히 까다로운 적이었으나.
레벨이 오르고, 레벨 이상으로 많은 보상들을 얻었다.
부대원들의 평균 전력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오른 바.
‘레벨 좀 높은 전사직 각성자쯤 되면 좀비의 이빨에 팔을 가져다 대도 상처 하나 없을 정도니.’
그렇다 보니.
부대원들에게서 좀비는 꽤나 가벼운 상대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방금 그 기억 속에 나타난 좀비들.
그 녀석들은, 지금처럼 안일하게 대처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최대한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겠는데.”
* * *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똑똑.
“영준아? 시도해 본다는 건 어떻게…….”
주방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이민재 병장.
어쩌다 보니 더 중요한 걸 봐 버린 느낌이 들지만.
내가 [다스무르 요리사의 정수]를 요리해 먹은 것은, 좀비 때문이 아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발전소를 점거하고 있는 괴물의 처리.’
발전소의 전기를 섭취하여 힘을 키우고.
그 힘을 통해, 우리의 접근을 봉쇄하고 있는 괴물.
[번개를 먹는 살모네우스]
그리고.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된 거나 다름없어.”
“뭐?”
그도 그럴 게.
지금 내 상태창에는.
[특성]
[원소 요리] (New!)
기억 속에서 본, 압도적인 실력의 요리사.
그가 다루던 기술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이걸 사용하려면, 흠.
“이번에도 형이 좀 고생해 줘야겠어.”
“……?”
* * *
[원소 요리]
다른 세계의 요리법.
원소 요리.
이번에 새롭게 얻은 특성이긴 하다만.
그 특성의 사용법은, 이미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진 상태였다.
기억 속의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던 힘.
이 분야에서 궁극에 달했던 요리사의 경험을 통해.
이 힘을 다루는 감각이, 내게도 어느 정도 남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기억으로 비추어 보자면, 이 요리법은.
‘……이게, 요리가 맞나?’
내가 알던 요리와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마나 요리의 하위 계파.’
지금까지 내가 요리를 하면서 느낀 바.
마력은, 음식의 맛에 영향을 준다.
군부대 시절에 사용했던 평범한 고기들과, 몬스터들의 고기.
그 둘은 맛에서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
‘압도적으로 몬스터 고기 쪽이 더 맛있지.’
마력이 맛에 영향을 준다는 것.
즉.
이걸 반대로 풀어서 말하자면.
‘마력은…… 맛을 가지고 있다는 뜻.’
마나니 마력이니.
마냥 신비한 존재처럼만 느껴졌지만.
거기에 맛이 있다고 한다면.
내게 있어서는 재료의 하나에 불과하다.
[마나 요리]란.
바로 이 마력을 요리.
마력이 가진 맛을, 끌어 올린다는…….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요리보단 마법에 가까운 행위란 거지.”
내가 이번에 익힌 특성.
[원소 요리]는, 이 마나 요리에서 파생된 수법이었다.
얼마 전에 공략했던 던전.
[침식 이계 - 다스무르]를 떠올렸다.
던전 자체의 난이도도 상당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공략 과정에서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괴물들이 자리 잡고 있던 중앙부의 건물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지.’
건물이 파괴되어 있었다거나.
파편만이 남아서 떠다니고 있었다거나.
그런 수준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장소에 있던 건물들은, 말 그대로 ‘사라져’ 있었다는 것.
‘건물의 파편들은 어디로 갔나, 잠깐 의아하게 생각했지.’
아무리 괴물들이 철거 작업을 했다고 한들.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리고.
정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원소 요리]
[식재료를 가공해, 특정 원소로 변환시킬 수 있습니다.]
[특정 원소를 가공해, 더욱 맛있게 요리할 수 있습니다.]
“요리해 먹은 거였어?”
다스무리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어인들.
놈들의 세계에는, ‘원소 요리’라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해 있었다.
왜, 아무리 요리를 못한다는 사람도 계란프라이 정도는 할 수 있잖냐.
녀석들에게는, 원소 요리가 그런 느낌인 모양.
그리고, 그 원소 요리를 이용.
‘건물들을 액체화시켜서 먹은 거다.’
생각해 보면.
저 던전 속에서, [다스무리안]들도 딱히 먹을 건 없었을 터.
인간들은 건물에 숨어 있고, 물고기의 숫자도 많지는 않았으니까.
“설마하니 그 건물들을 액화시켜 먹고 있었을 줄이야.”
나로서는 상상도 못 했지만.
생각해 보면, 비슷한 존재가 지구에도 있기는 했다.
‘파리의 애벌레 같은 경우. 죽은 동물의 고기를 녹여서 액화시킨 후에 섭취한다던가?’
그게 조금 스케일이 커진 버전이란 거지.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은.
신수의 기생충을 액체로 만들었던 요리.
보는 것만으로도 레벨이 오를 정도로 압도적인 수법이었다.
하지만.
‘이 특성의 이름은…… [액체 요리]가 아니라 [원소 요리]지.’
요리할 수 있는 방식과 재료는.
액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 * *
“……정말 이런 식으로 된다는 거냐?”
“아. 나만 믿으라니까.”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나는 섬으로 향하는 배 위에 몸을 올린 상태였다.
해결법이 나왔으니.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있나.
나와 병사들.
그리고 민재 형은, 곧바로 발전소가 있는 섬으로 접근하기로 한 것.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그리고.
민재 형은, 배에 올라타기 전부터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겠지?”
“그 말. 이제 곧 30번째야.”
“끄응.”
부대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이성적이고 냉철한 민재 형.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만.
‘뭐, 이해는 가.’
그럴 만도 한 게.
내가 민재 형에게 내린 명령.
그건 자칫 잘못되면…….
‘이 배에 올라탄 우리를 다 죽일 수도 있는 내용이니.’
아무리 깡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들.
쫄 수밖에 없을 만한 명령이긴 하거든.
“거의 다 접근했습니다!”
이윽고.
배를 조종하고 있던 공병이 뒤를 보며 외치고.
섬이 가까워지자.
-파지지지지직!!!
저번과 마찬가지로.
섬 전체를 뒤덮는, 번개의 막이 생겨났다.
“다시 봐도 엄청난 양이군…….”
“저 안에서 얼마나 에너지를 흡수한 거야?”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요리를 만든다면.
번개 속성 저항을 얻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한들 모든 피해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 정도로 강력한 번개의 장막이었다.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서 괴물을 처치한다고 해도…… 우리 피해도 막심하겠지.’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방법이 없었을 때나 동원할 방법이고.
“민재 형.”
“어, 어어.”
나는 민재 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한다.”
“그래.”
“……정말.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거겠지?”
“아! 진짜 속고만 살았나.”
“……후우!”
한숨을 내쉬는 민재 형.
하지만 여기까지 온 거다.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없거든.
그가 허공에 손을 들어 올리고.
우리 부대 최강의 마법사.
이민재 병장이 자랑하는 마법이, 그 손에서 발현된다.
쿠르릉…….
우리의 머리 위에.
작은 먹구름이 자리 잡았다.
그 먹구름을 만든 장본인.
이민재 병장이 긴장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먹구름을 만들라니…….”
민재 형이 레벨 20을 넘으면서 얻게 된 능력.
저 먹구름에 번개를 축적함으로써,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게 되는 등.
여러모로 범용성이 좋은 기술이다.
다만.
번개가 서린 먹구름은 그 자체로 위험하기 그지없는 자연재해인 바.
적을 상대할 때는, 저 높은 상공에 띄워 두었으나.
‘지금은 반대.’
내 손이 닿을 정도로 지상에 가까운 곳에 생긴 먹구름.
그곳에.
파지지직…….
콰르르릉…….
민재 형은.
자신의 번개를 던져 넣기 시작했다.
‘이때를 위해 마력량이 늘어나는 요리도 먹여 주고 왔지.’
그리고.
그 번개구름의 크기가, 슬슬 진짜로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커진 순간.
“이 정도면 충분해.”
번개를 먹는 괴물이라고 했나.
처음 그 존재를 알았을 땐.
아무리 그래도 번개는 요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제는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라.
‘발전소의 전기 따위는, 생각도 안 나게 만들어 주지.’
전기가 파지직거리는, 딱 봐도 위협적인 먹구름.
나는 그 안에.
양손을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