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인간 배터리
내가 레벨 30을 찍어 전쟁 요리사가 되었듯이.
민재 형의 레벨이 30에 도달하자.
그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최하급 전기 지배]
새롭게 얻은 특성.
“지배…….”
그동안 속성 관련 특성은 숱하게 봐 왔다.
당장 나만 해도 ‘고급 화염 친화’ 특성을 익히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중에서, ‘지배’라는 특성을 본 적은 단 한 번뿐.
[수속성 지배]
다스무르의 교황.
그가 지니고 있던, 물을 지배하는 특성뿐이었다.
그 능력이 가지고 있던 위압감은 엄청났다.
[절대 미각]의 힘을 빌려 잠깐 사용해 본 적이 있지만.
온몸의 마력을 모두 쥐어 짜내고 나서야, 겨우겨우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지.
‘그것과 같은 식의 이름을 달고 있는 특성이, 평범할 리가 있나.’
추측이긴 하지만.
친화나 면역, 간섭 등.
다른 속성 계열 특성들의 아득한 상위 호환으로써 존재하는 특성.
민재 형만 해도, [고급 전기 친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얻은 게 [최하급 전기 지배].
지배 계열의 특성 자체가 그만큼 강력하기에.
다른 특성이 고급에 들어갈 지금이 되어서야.
최하급 특성으로써 획득하게 되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문제는, 어디까지나 최하급이란 거다.”
민재 형이 말했다.
“네가 이 녀석을 처음 봤을 때처럼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상태였다면…… 아니. 그보다 못한,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강한 상태였다면. 이 특성은 아무 의미도 없었겠지.’
하지만.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지금은 거의 죽어 가는 수준으로 약해진 상태니까.”
그렇기에.
민재 형이 새롭게 얻은 특성은,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번개를 먹는 살모네우스]
이 녀석은 전기로 이루어진 생명체.
그렇다면.
“하하핫.”
민재 형의 최하급 전기 지배 특성.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녀석 좀 봐라, 영준아.”
[식재료 감별(강화)]
[번개를 먹는 살모네우스]
[권속화 상태]
[지배자 - 이민재 Lv.30]
‘아리엘라’가 내 권속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전기를 먹는 살모네우스.
“이렇게 보니, 꽤 귀엽지 않냐?”
“…….”
섬을 지배하고, 강력한 번개를 내뿜던 거대한 뱀.
그 녀석은, 민재 형의 권속이 되었다.
* * *
“후후…….”
“…….”
“이 녀석 하는 짓 좀 봐라. 귀여운 녀석.”
“어, 어어.”
[최하급 전기 지배] 특성을 통해.
살모네우스를 완벽하게 지배하에 둔 민재 형.
그 몸의 주변을.
-끼루룩.
투명한 뱀이 휘감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전신에 노란색 스파크를 튀기면서.
‘솔직히 귀엽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뱀은 뱀이다 보니.
조금 징그러운 느낌은 있을지언정, 귀엽지는 않다.
하지만.
‘멋있긴 하네.’
이 부분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민재 형의 마법은 화려한 맛이 있었다.
부대원들에게 각성의 존재를 설명할 때도 그랬지.
내 평범한 칼질과 달리.
민재 형이 몸 주변에 푸른 전기를 일으키자, 모든 부대원들이 각성의 존재를 믿게 되었으니까.
거기에 지금.
저 딱 봐도 신비해 보이는 몬스터까지 민재 형의 주변을 맴도는 상태.
‘누구는 기껏 얻은 새로운 스킬로 요리 도구나 날리고 있는데.’
저 형은 번개로 이루어진 뱀을 다룬다니.
이거 좀 불공평한 거 아니냐?
“그 녀석. 영원히 형의 지배하에 들어온 건가?”
“그랬으면 좋겠다만, 그건 아니다. 이 녀석이 계속해서 에너지를 섭취하고, 내 특성이 허용하는 이상으로 강해지면 다시 자유를 되찾겠지. 하지만.”
씨익 웃는 민재 형.
“내 지배를 벗어날 정도로 강해지는 걸 허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과연.”
[번개 지배] 특성을 통해,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의 힘만을 허용한다는 것.
반대로 말하자면.
민재 형의 [번개 지배] 특성이 강해질수록.
살모네우스에게 허용할 수 있는 강함도 늘어날 터.
저 녀석은 민재 형의 성장과 함께.
원래의 힘을 되찾아 갈 것이다.
“뭐. 자랑은 여기까지 하고.”
기분 좋게 살모네우스를 쓰다듬던 이민재 병장.
그가 조금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이 녀석을 권속으로 둔 건 좋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로 인한 효과겠지.”
그 말대로.
아무리 멋있어 보인다고 한들.
녀석이 가진 능력이 맹탕이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그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
“다행히, 영 맹탕은 아닌 것 같다.”
“그 말은.”
“나름대로 괜찮은 능력들이 많아. 예를 들면.”
파지지직…….
살모네우스의 입 안에 번개를 쏘아 내는 민재 형.
“이런 식으로, 내 번개를 미리 저장시킬 수도 있고.”
잠시 뒤.
살모네우스의 크기가 작아지는가 싶더니.
민재 형의 몸 주위에 번개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저장시킨 번개를 꺼내 쓸 수도 있지.”
“……!”
“뭐. 이건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닌가? 내 개인적인 전투력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 군단의 전력에는 별 의미가 없을 테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의 군단은 상당한 힘을 키운 상태.
구성원 한 명의 강함은, 군단 전체의 강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니.
‘광일이 녀석처럼 말도 안 되게 강해지는 게 아니고서야.’
진짜 중요한 능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디 보자……. 여기 있군.”
자신의 방으로 향한 민재 형.
그는, 방구석에 있던 군장을 뒤지는가 싶더니.
그 안에 있던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건?”
“뭔가 좀 생소하지? 예전엔 그렇게 익숙한 물건이었는데 말이야.”
그 손에 들려 있는 건.
작은 사각형의 단말.
“스마트폰?”
스마트폰이었다.
“예전에, 우리가 아직 부대를 떠나기 전인가?”
“어.”
“나랑 다른 전기 계열 마법사들이, 마법을 통해 전기를 충전해 보려고 했던 거. 기억나?”
아.
그런 적이 있었지.
각성의 지극히 초창기.
아직 우리가, 서로가 가진 능력이 어떤 구조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무렵.
전기 계열의 마법사들이 유독 신나 했던 게 기억난다.
그걸 통해서 컴퓨터고 뭐고 전부 전기를 공급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
그리고.
그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했지.”
부대에 그나마 있던 온갖 전자기기를 불태워 버리고 마는 결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자기기는 생각보다 섬세해. 그 섬세한 기기에 정확하게 충전시킬 수 있을 만큼 정교한 컨트롤은, 우리 마법사들에겐 불가능했지.”
“……어. 설마?”
씨익.
“이 녀석은 무려 전기로 이루어진 생명체거든.”
민재 형의 손.
그 손에 달려 있던 스마트폰에.
“어떤 세밀한 조정이라고 한들, 이 녀석에게는 숨 쉬는 것과 비슷한 거다.”
[……충전 중.]
[1%]
불이 들어왔다.
“……!”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면.
그걸 보고 나니.
이 형이.
어떤 경지에 도달했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경악을 참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간 배터리……!”
“……말이 좀 그렇지 않나?”
* * *
어찌 되었든.
처음 목표로 했던 발전소의 탈환에는 성공했다.
“……탈환에 성공했다구요?”
“부탁드린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놀라움에 몸을 떠는 각성자들.
그중 한 사람은, 바로 이곳에서 일하던 전직 발전소 직원.
기술자 양반이었다.
김 중위가 그를 보며 말했다.
“일단 이 발전소에 대한 권한은, 약속한 대로 저희가 갖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
“그런 만큼, 이곳을 관리해 주셔야 할 그쪽도 저희 길드에 가입을 해 주셔야 합니다만. 괜찮으실지…….”
“저, 저야 영광이죠!”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얼굴을 보니.
영광이라는 말이 딱히 빈말도 아닌 것 같았다.
“의외로군요. 저희 집단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경우는 드물 줄 알았는데.”
“그거야 예전 일이죠. 예전에는 군단을 믿기 힘들다는 생각이 많았으니.”
“지금은 아닌 겁니까?”
“당연하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응?
“사실은, 도시에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소문이라니?”
“……군단이 병력의 정예화에 들어갔으니, 앞으로는 군단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질 거라는 소문 말입니다.”
아.
얼마 전에야 다른 각성자들에게 풀었던 이야기다만.
‘별다른 오락도 없는 세상이라 그런가.’
소문만은 정말 빠르게도 돈다 싶다.
“지, 지난번 대화도 그렇고. 그런 군단에 이렇게 합류시켜 주신다니, 제가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일단 말해 두겠습니다만. 저희 부대 막내 생활, 쉽지는 않을 겁니다.”
“맡겨만 주십쇼. 저도 병장 만기 전역자 출신이니까요.”
그렇게 합류한 기술자 양반.
그의 주도하에.
“다들 빨리 움직이자~!”
“재료 가져와!”
공병들이 협력한 결과.
멸망의 날 이후.
문명이 파괴된 뒤로, 밤의 빛을 잃어버린 도시.
그 도시의.
전력 복구 작업이, 시작되었다.
* * *
도시에 정착한 각성자들.
그들은,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군단 덕분에 식량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되겠군요.”
한 각성자 그룹.
그 그룹원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물자를 체크하고 있었다.
“새삼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일이긴 해.”
“음? 뭐가 말입니까.”
“이런 세상이면 가장 문제 되는 게 식량 문제일 텐데.”
실제로 얼마 전까진 그랬다.
던전 안에 있을 때는 식량을 두고 전쟁까지 벌어졌을 정도니까.
그 전쟁으로 인해.
던전에서 나온 사람들 간의 앙금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을 정도.
“그 식량이 가장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라니.”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군단이 도시에 풀어 버린 전투 식량.
그 덕에.
도시의 사람들은, 적어도 먹을 것에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문제는…….
“땔감이군요.”
“모으려고는 했는데, 역시 힘듭니다.”
겨울이 가져올 추위.
그 자체.
각성자들이 대부분이니만큼.
춥다고 바로 얼어 죽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이변 겨울은 특히나 혹독할 것이 예견되어 있는바.
아무리 각성자들이라고 한들, 그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충분한 대비가 없다면…….
언젠가는 이 겨울에 모든 체온을 빼앗기고 말겠지.
“수몰되어 있던 탓에 나무 자체가 줄어든 것도 치명적이야.”
“땔감 찾는 사람이 우리뿐만도 아니고요.”
가장 큰 문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이들 그룹뿐만이 아니라는 것.
“이번 겨울은 혹독하다고 했으니, 버티려면 상당한 양의 땔감이 필요할 텐데.”
“적어도 이 근처 일대의 숲들은 전부 각성자들로 꽉꽉 들어차 있더군요. 필요한 수준의 땔감을 확보하는 건 힘들 정도로…….”
“기름은…….”
“땔감도 없는데 기름이 있겠어요?”
“화염 마법사들은 어떻게 방법이 없나?”
“1~2분 정도 유지하는 정도라면 어렵지 않지. 하지만…… 불을 1시간 이상 유지하려면 마력 탈진에 걸릴 거요. 마법이란 게 만능은 아니야.”
해결법이 없지는 않았다.
이 도시를 떠나.
땔감이 넘쳐나는,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것.
하지만.
‘그러면 반대로, 괴물들에게 노출되고 말겠지.’
땔감으로 체온을 유지하다 보면.
결국, 연기를 피울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군단에 의해 괴물이 정리된 이곳이라면 모를까.
다른 지역에서는, 추위를 버티기 위해 땔감에 불을 지피는 순간.
괴물들에게 ‘나 여기 있소.’라고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될 터.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느 쪽이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
“군단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그룹을 이끄는 리더가 무거운 얼굴로 꺼낸 말.
하지만.
반응은 영 좋지 않았다.
“너무 늦었죠.”
“군단에 가입할 거면 진작에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병사도 골라서 받을 거라잖소.”
“저쪽도 사정이 있을 테니,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런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니까 그냥 빨리 가입하자고 했잖소!”
“무슨……. 그러는 경태 씨도 저 태완네 그룹하고 껄끄럽다고, 큰 단체에 속하는 건 조심하자고 해 놓고선……!”
“다들 진정해! 지난 일로 싸우지 좀 말고!”
빨리 군단에 가입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
그들을 가까스로 말린 리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군단에 가입하는 건 힘들더라도, 방문하는 것 정도는 될 것 아닌가.”
“음?”
“생존에 필요한 물자 같은 걸 얻을 수 있을지 물어보자. 그런 얘기였어.”
“……귀한 물자들을 달란다고 줄까요?”
“저들은 군인 아닌가. 실제로 엄청난 가치를 가진 식량도 터무니없는 조건에 풀고 있고.”
실제로 군단은 사람들을 살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다.
군단에 가입하느냐 마냐와는 별개로.
그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정도.
“으음. 한번 찔러보는 정도야.”
“그래 뭐, 군인들이 부탁 한번 했다고 뭐라 하겠어?”
그렇게 의견이 모이자.
“그럼. 다녀올 테니…… 다들 열심히 벌목하고 있으시오.”
“조심히 다녀와요.”
그룹을 이끄는 리더는 건물을 나와 군단을 향했다.
‘……물자를 구걸한다, 라.’
새삼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지는 느낌도 들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구걸 정도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우리 요구를 들어줄 확률은 없다고 봐야겠지.’
군단은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자선 단체냐 한다면.
그건 또 아니다.
‘저들도 여유가 있는 건 아닐 테니.’
군단이 베푸는 식량.
거기에는, 괴물을 잡아 와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저들이 하는 행동은, 분명 사람들을 살리고 있으나.
무상으로 무언가를 베푼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밑져야 본전이란 거지, 제기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알지만.
이대로 가면 모두가 추위에 얼어 죽을 판.
그는 그룹의 생존을 위해, 군단을 방문했다.
‘……언제 봐도 위축되는 요새로군.’
강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요새.
그 요새로 향하는 거대한 다리.
그 근처에는 회색빛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군단이 지은 건축물들.
저 건물들은, 순찰을 나가는 병사들의 초소로써의 역할도 하지만.
다른 각성자들과의 대화를 담당하는 병사들도 상주하고 있었다.
“실례합니…….”
남자는 그 건물 중 한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음? 아. 상담 오셨습니까.”
“……뭘, 하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거의 다 끝났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각성자와의 상담을 담당하는 병사들.
그들은 건물의 구석에 쭈그려 앉은 채.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읏차! 설치 완료!”
“작동도 잘되네, 이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일어나는 병사들.
‘……이 추위에, 땀?’
그들이 몰려 있던 곳에서는.
무언가,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전투 식량 관련이라면 이 서류를 작성…….”
몸을 일으킨 병사들.
그 뒤에서, 열기를 내뿜고 있던 물체.
그 물건을 본 남자는.
입을 크게 벌리며 중얼거렸다.
“……라디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