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82화 (182/227)

182화 기생충.

비마나 주변에 세워진 건물.

그곳에, 공병들이 복잡한 설치 작업을 끝내고.

“갑니다.”

벽면에 붙은 버튼에 손을 올리자.

오래된 형광등에…….

타악.

“오오……!”

불이 켜졌다.

“세상에.”

“이게 진짜 되네?”

그 모습을 보며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병사들도 놀라는 모습.

“그럼 이제 우리, 횃불 안 써도 되는 거야?”

전기의 확보는 우리 부대로써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전차를 굴릴 기름도 모자란 마당인데, 발전기를 돌릴 여력은 없었으니까.

불 같은 것도 마찬가지.

몬스터의 지방으로 만든 기름으로 횃불 같은 걸 만들어 사용해 왔지.

“하하. 조금 복잡하긴 했는데, 어떻게든 잘 된 것 같네요.”

나와 병사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공병들의 리더.

이공우 상병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본격적인 추위가 몰려오기 전에는 도시에 전력 공급이 가능해질 겁니다. 발전소 직원이었다던 신병의 얘기를 들어 보니, 신나서 펑펑 써 대기는 조금 힘들 것 같기는 하지만요.”

“저 섬하고 전기를 연결하는 케이블 같은 건 던전화가 됐을 때 전부 잘려 나간 거 아닌가? 그 부분은 어떻게…….”

이 도시가 [다스무르]가 되었을 때.

던전 영역의 외곽에는, 강철조차 베어 내는 강력한 폭포가 생겼었다.

실제로, 다른 섬과 이어지는 다리 같은 것들도 모조라 잘려 나가 있었지.

전선 같은 게 남아 있을 리가 없었으나.

“저희가 그냥 공병입니까?”

“흐흐. 악으로 깡으로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됩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말하는 공병들.

새삼 생각하는 것이다만.

‘이 녀석들도 참. 말도 안 되는 직업이야.’

부대원들의 능력치 자체를 성장시키는 부분이라면.

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 박 씨 할아버지나 이상아 쪽이 최고다.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인 능력치 상승을 유발하는 쪽이라면.

아마도 내 요리를 쫓아올 이가 없겠지.

그리고.

‘범용적인 제작 능력 면에서는…… 이 녀석들이야말로 생산직 중 최고다.’

공병이라는 직업은, 전투와 관련된 온갖 종류의 기술을 다룰 수 있는 것 같다만.

생각보다 전투와 관련된 기술들의 범위가 넓었다.

‘전기나 통신 같은 것도, 전투에 필요한 기술이니까.’

뚱땅뚱땅 몇 번만 하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녀석들.

지금도 도시 곳곳에는 바리케이드나 순찰용 거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비마나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이 도시 자체가 점차 요새화되고 있는 상태.

의식주라는 말이 있다.

지금 세상에서는 장비와 먹을 것.

그리고 주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말.

우리 부대의 장비를 이상아와 박 씨 할아버지가.

식량을 내가 담당한다면.

주거…….

시설에 관련된 전반을 담당하는 것은, 비미나.

그리고 저 공병들이었다.

‘거기에 이제는 강을 넘나드는 전선까지 만들 수 있다니.’

뭐 이런 직업이 다 있나 싶을 정도.

물론.

전기가 들어온다고 해서 일이 끝난 건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추위를 버티기 위한 수단이니 말입니다.’

기름이나 땔감이 절대적으로 모자란 환경.

우리가 전기를 확보한 이유 역시.

이를 통해 추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었다.

즉, 전기가 있다고 한들

보온에 관련된 각종 기계들이 없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으나…….

“저번에 부탁하신 물건들! 가져왔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생각해 놓은 게 있었다.

‘발전소를 탈환하기로 결정했던 시점에서, 이 남자를 찾았지.’

몇몇 병사들을 호위로 붙여 준 뒤.

다른 지역으로 보냈던 남자.

그가 작은 가방 속에 손을 집어넣자.

가방보다도 거대한 물건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라디에이터입니다!”

그의 이름은 이상협.

직업은, [하급 상인]이었다.

“이렇게나 많이?”

“헤헤. 군단병 분들이 호위해 주신 덕분이죠. 게다가.”

지난번 묘양사를 찾아갔던 일 이후.

지속적으로 우리 부대와 긍정적인 거래를 나누고 있는 상협.

주로 우리 부대가 필요한 물건이 있을 경우.

그에게 부탁해 다른 지역에서 구해 달라는 식이었다.

상인인 그는 [정보 수집] 특성이 있는바.

다른 이들과의 협상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어떻게든 구해다 줬거든.

‘이번에 부탁한 것은, 우리 부대가 쓰기 위한 것만은 아니고.’

우리 부대가 자리 잡은 도시, 춘천.

내 전투 식량으로 인해, 이 근처의 인간들은 식량 걱정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문제는, 물속에 빠진 던전화되어 있던 시절이 길었던지라.

나무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

기름 등도 물속에 빠져 버린 탓에, 보일러를 돌리기도 힘들다.

반면.

“다른 지역의 생존자들은, 이딴 라디에이터보다 식량이 더 급했으니까요.”

전기가 복구되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기계들.

상협은 다른 지역의 인간들에게 식량을 파는 대가로, 그것들을 가져온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셈입니까?”

“이것들을 이 도시 각성자들한테 팔아야죠. 흐흐. 전투 식량으로 엄청나게 벌 수 있을 겁니다. 그 전투 식량으로 또 다른 곳에 가서 좋은 물건들을 얻어 오고…….”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시네.”

“흐흐. 대박 날 생각만 하면 웃음을 참기가 어려워서요. 물론 군단 분들이 알려 준 정보 덕분이니, 이 값은 나중에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본인의 이득만 챙기려는 악덕 상인처럼 보이지만.

그가 우리 부대원들과 함께 상행함으로써.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큰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지역마다 필요로 하는 물건이 다른 법이니까.’

식량이 모자란 곳에 식량을.

방한 장비가 모자란 곳에 방한 장비를.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덕분에,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

‘장비들은 이 사람한테 맡겨 두면 어느 정도 보급되겠지.’

이걸로.

최소한, 이 도시에서 얼어 죽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터.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상협을 떠나보내고 난 뒤.

이공우 상병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이 전기에 대한 권한은 저희가 갖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음? 일단은. 김 중위가 협상을 잘해 줘서 말이지.”

“그 전기를 나눠 주는 대가로는 뭘 받으실 셈입니까?”

대가라.

우리는 일단은 군인.

순수하게 군인으로서 생각하면, 무상으로 제공하는 게 맞겠지만.

아쉽게도 다른 군부대도 모조리 전멸해 버린 상황.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 급급한 만큼, 그런 방식을 채용할 수는 없었다.

‘대가를 많이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상으로 베풀 수도 없지.’

식량, 전기.

이것들 하나하나가, 각성자들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이 된다.

도시의 각성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씩의 대가는 받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많이 받을 생각도 없지만.”

“물자야 부족한 편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음. 전투 식량하고 비슷하게 가자. 도움이 되는 물건이나, 아니면 몬스터의 사체를 가져오는 걸로.”

“뭐…… 그 정도가 무난하겠군요. 다른 병사들한테도 그렇게 전해 두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작업 현장으로 돌아가려는 이공우 상병.

……아.

그러고 보니.

“공우야.”

“예?”

“거기에 하나만 더 추가하자.”

어차피 필요 없는 물건들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조금은 쓸 만한 대가를 받는 것도 괜찮겠지.

나는 이공우 상병에게.

방금 생각난 대가를 말했다.

“좀비를 다섯 마리 이상 처치했을 때는, 몬스터 한 마리 몫으로 쳐주는 거로.”

“예에?”

* * *

좀비.

생존자들의 얘기에 따르면.

지상의 생존자들은, 괴물에게 죽은 숫자와 좀비에게 죽은 인원이 비슷할 정도라던가.

‘인구 밀집도가 높지 않은 강원도조차 이 정도였으니.’

엄청난 인구가 몰려 있는 서울 같은 곳에도 좀비가 나타났다면.

그 엄청난 인원이 좀비가 되면서 나타날 혼란을 떠올리자.

무심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우리 부대가 남들보다 빠르게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좀비가 나타나지 않았던 게 크게 작용했겠지.”

던전, [다스무르] 속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신경 써야 하는 적이 하나 줄어든 셈이었으니까.

조금은 더 편하게 각성자를 늘릴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어째서 우리 부대에는 좀비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

그러니 이제.

“그 이유를 알아봐야겠지.”

내가 목격한 다스무르 요리사의 기억에 따르면.

어쩌면, 좀비들은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이 녀석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만 한다.

“신 병장님. 부탁하신 물건들 가져왔습니다.”

순찰을 나갔던 병사들.

그들이 내 부탁에 가져온 것은.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

[신선도 - 최하]

-카아아악!

살아 있는…….

‘아니. 살아 있다고 해도 되는 게 맞나?’

아무튼.

활동을 하고 있는 좀비였다.

“일대의 좀비들은 모두 처리된 상태라…… 살아 있는 좀비는 얼마 없더군요.”

“뭐…… 일대의 좀비는 용아병들이 모두 쓸어버리고 다녔을 테니까.”

지금 군단은 온갖 몬스터의 고기를 식재료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수없이 많이 사냥했던 좀비.

그 고기에는 시선도 돌린 적이 없었다.

“일단 인간이었다는 게 크고….”

사실 이게 가장 크기야 하겠지.

하지만, 두 번째 이유도 없지는 않았다.

“재료로서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게 두 번째지.”

좀비.

이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평범한 인간이다.

‘마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

인육 등을 먹는 영화 매체가 많다 보니.

인육이 맛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가 많다만.

내가 아는 바로는, 실제로 인육은 그렇게 좋은 식재료가 아니다.

거기에, 지금은 마력이 담긴 온갖 고급 식재료들이 넘쳐 나는 상황.

굳이 이렇게 썩어 가는 재료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

덕분에, 치안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냥하는 정도일 뿐.

굳이 멀리 있는 좀비를 처리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강원도의 인구 밀집도는 지극히 낮은 편이나.

아직도 수없이 많은 좀비가 이 땅을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

“이 녀석들에 대해……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거지.”

즉.

방심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야 쓰나.’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방심으로 큰 곤욕을 치른 참.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생각은 없거든.

[독고구식]

박 씨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칼을 꺼내 들고.

좀비의 몸에 가져다 댄 뒤.

“어떤 사람이셨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아악…….”

“죄송합니다.”

좀비는 비록 많이 부패되었다고 한들.

그 본질은, 평범했던 인간.

말이 좀비지.

사람의 몸에 칼을 가져다 대는 것과 같은 일.

그런 몸에 허락도 없이 칼을 대는 것 자체가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럴 자격도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혹시 저승에서 보면 그때 사과할 테니, 한 번만 봐 주십쇼.”

그렇게.

나는 좀비의 [손질]을 시작했다.

서걱.

콰직.

까드드드득…….

해야 하는 일.

내 기분이 어떻느니, 자격이 어떻느니.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좀비의 몸을 파고 들어가는 칼날.

물론.

아무런 생각도 없이 냅다 해부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좀비에도…… 종류가 있다.’

여러 매체에 나오는 좀비들이지만.

바이러스라든가.

신의 저주라든가.

좀비 현상의 원인은 모두가 가지각색.

만약 그 원인이 바이러스나 저주라고 한다면.

내가 지금 손질을 해 봐야 알 수 있는 건 없겠지.

그럴 경우에는, 글쎄.

사제인 신중수 일병이나.

치료사인 사의준 일병 쪽에게 상담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가 아닌, 다른 쪽에 중점을 두고 좀비를 손질하고 있었다.

‘요리사의 기억에서 본 게 맞다면, 분명히.’

‘내’가 [신수]의 좀비에게 물어뜯겨 반 토막이 난 뒤.

그 위장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

‘그 안에서 본 것이, 분명히…….’

이 안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찾았다.”

나는, 내 추측이 적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식재료 감별(강화)]

[패러사이트 B-36S형 변이체 (1차 잠복기)]

[신선도 - 최상]

좀비의 척추 부근에 붙어 있는 그것.

매우 작지만.

분명한 마력을 지닌.

‘기생충.’

좀비의 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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