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83화 (183/227)

183화 부탁. (1)

[식재료 감별(강화)]

[패러사이트 B-36S형 변이체 (1차 잠복기)]

[신선도 - 최상]

이게 바로…….

좀비의 정체.

[여러 우주를 돌아다니며 번식하는 기생생물, 패러사이트입니다.]

“기생충.”

[기생생물, 패러사이트는 숙주가 사망한 시점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사망한 숙주의 신경계에 자리 잡는 패러사이트는, 죽은 숙주의 몸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숙주를 통해 다른 생명체를 공격한 뒤, 입이나 손톱 등을 통해 자신의 알을 상대에게 주입.]

[알에서 깨어난 패러사이트들은 빠르게 숙주를 죽음으로 몰아간 뒤, 또 다른 숙주를 통해 마찬가지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죽은 자의 몸을 움직이며.

다른 이를 공격해 상처를 내고, 그 상처를 통해 감염된다.

좀비의 특성을 그대로 빼다 박았지만.

그 정체는 기생충이었다는 것.

여러 매체에서 나타나는 좀비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이 녀석들이 기생충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 데에는.

큰 이유가 하나 있었다.

[다스무르 요리사].

녀석의 기억을 보았기 때문.

그 기억 속에서도 특히 힌트가 된 장면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동족의 좀비들.

그 좀비들을 보며 ‘내’가 한 말이었다.

-벌레들 같으니……!

교황이 우리를 벌레라고 부르는 건 이해가 간다.

하나하나가 10미터에 달하는 크기까지 성장하는 종족.

그 크기에 걸맞은 마력까지 느껴지는 것이, 정말로 강력해 보였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 인간들은 그만큼 열등해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였지.

하지만.

그때 요리사에게 덤벼든 종족들은 다르다.

비록 좀비가 되었을지언정, ‘나’와 같은 종족.

“그런 녀석들을 벌레라는 식으로 부르는 게 조금 어색했지.”

그리고 두 번째는…….

요리사의 몸이 신수의 이빨에 반 토막이 났을 때.

그 위장 안으로 빨려 들어간 순간.

안에서 보였던 풍경이었다.

‘수많은 기생충.’

기생충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분명 신수의 기생충은 엄청난 식재료라던가.

하지만.

내가 봤던 식재료로서의 신수의 기생충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10미터에 달하는 요리사가 두 손으로 잡고 요리해야 했을 정도.

반면, 죽기 직전의 요리사가 본 것은.

매우 작은 기생충의 무리.

그걸 본 순간 생각했었다.

‘어쩌면 저게…… 좀비의 정체일지도.’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거라는 것.

“이러니 찾기가 힘들지……!”

나는 손가락 사이에 쥐어져 있는 작은 벌레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마력이 느껴지는 콩알만 한 벌레.

안 그래도 인간의 시체에는 구더기가 들끓는 법이다.

하물며 이 녀석은 다른 평범한 벌레들과 구분하기도 힘든 사이즈.

‘……이상아 조장은 좀비를 잡고 레벨업 했다고 했지.’

반면.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좀비를 잡아도 레벨업하지 못했다.

그 차이점이 뭐였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나는 기생충을 잡은 손가락에 약간의 힘을 주었다.

그러자.

파직.

허무할 정도로 쉽게 터져 나가는 벌레.

그리고.

몸 안에 밀려 들어오는…….

기묘한 충족감.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비록 그 양은 아주 미약했으나.

분명한 경험치였다.

각성에 필요한.

바로 그 기운.

“이상아 조장은…… 좀비를 잡았을 때, 운 좋게 기생충이 있던 부위를 공격한 거야.”

인제군의 정벌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이상아가 일하던 양복점을 들른 적이 있었다.

그녀가 잡고 각성했다던 좀비도 봤지.

그리고, 그 좀비의 목 뒷덜미에는.

의상용 가위가 박혀 있었다.

내가 이 기생충을 발견한 건, 척수 부근.

‘척수 부근에서 기생하면서…… 숙주를 움직이는 거다.’

좀비를 잡아도 각성하지 못한 다른 이들과 달리.

좀비를 잡고 각성에 성공한 이들.

그들은 운 좋게 이 벌레가 있는 곳을 공격한 것이다.

‘우리 부대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짐작 가는 건 글쎄.

하나 정도밖에 없기는 하다.

‘우리 부대, 해발 고도가 높아서 모기도 안 나왔지.’

이 벌레라는 녀석들이.

의외로 생활 환경에 많이 구애되는 편이거든.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은 레이더 부대.

그곳에는 모기조차 자리 잡지 못했다.

좀비를 만드는 기생충 역시 마찬가지.

숙주에게 기생을 하려면 우선 그곳으로 이동을 해야 할 텐데.

그곳이 좀비가 정착하기 힘든 환경이라면, 기생도 하지 못한다는 것.

이 녀석들이 우리 병사들에게 기생하지 못한 것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였겠지.

어쩌면, 저기 남미 근처라든가.

고산지대의 나라들에는 좀비 자체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식재료 감별]을 통해 볼 때도.

좀비들은 [인간종의 시체]라고만 나올 뿐.

좀비라느니 하는 설명은 없었지.

‘당연하지.’

걸어 다니는 시체는 어디까지나 기생충의 숙주일 뿐.

그 본체는 안에 박혀 있는 작은 벌레였으니.

“……이걸로 좀비의 정체는 파악했다.”

다스무르 요리사의 기억을 보면.

지금은 별거 없어 보이는 좀비들이지만.

나중에는 생각보다도 까다로운 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도 그럴 게.

[패러사이트는 일종의 군체를 이루고 있는 기생 생명체로서,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를 거듭합니다.]

[충분히 진화한 패러사이트는 숙주의 몸을 완전히 지배하며, 그 신체 능력에도 영향을 줍니다.]

[1차 잠복기에 해당하는 패러사이트들은 생전 숙주의 능력을 재현 가능한 수준으로, 변이의 단계가 높지 않아 이성을 지니진 못한 상태입니다.]

[이 상태의 가장 적절한 손질법은-]

“1차 잠복기라니. 다음 단계가 있다는 거잖아.”

지금 이 녀석들은 ‘1차 잠복기’라고 되어 있다.

새끼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다음 단계로 진화한다는 설명까지.

‘그렇게 진화하면…… 어떻게 된다는 거야?’

잘은 모르겠지만.

다스무르 요리사의 기억에서 본 바에 의하면.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가지 않으리란 점만은 확실했다.

새삼 소름이 돋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반쯤 방치되어 있던 좀비들.

그 녀석들이 저 단계를 지나.

무언가 위협적인 존재로 우화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앞으로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좀비.

그 녀석들이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도 전.

그 정체를 지금 파악했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글쎄.

“그 좀비들을 언제 다 처리하고 있냐는 건데…….”

강원도는 인구 밀집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다.

화장과 같은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죽은 이들.

그들 대부분은 좀비가 되어 돌아다니고 있는 상태.

그나마 춘천시 인근의 좀비들은 용아병들이 순찰을 돌며 제거하고 있다지만.

그것도 우리 거점과 가까운 일부 지역뿐.

곳곳에 숨어 있는 좀비들의 숫자를 줄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우리 길드만으로는…… 좀비들을 박멸한다는 건 불가능해.’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겠지.

하지만, 길드원들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

엄청나게 긴 시간이 소요될 터.

그 사이에 저 좀비들의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고.

뭣보다, 우리 길드 역시 그렇게 긴 시간을 좀비 토벌에만 매달릴 수도 없다.

내가 터트린 저 벌레가 제공하는 경험치는 매우 적은 편.

우리 길드원들의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

게다가.

“겨울이 와 버렸으니까.”

이번 겨울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땔감조차 아껴야 하는 시기.

좀비화를 막기 위한 화장도 힘들어질 터.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좀비로 일어나게 되겠지.

“방법이…… 필요한데.”

평상시라면.

요리를 통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 좀비들한테 일일이 밥을 먹일 수도 없고.’

이번에는 요리를 통해 해결할 만한 각이 안 나온다는 게 문제.

음.

이건…….

‘……방법이랄 게 없지 않나?’

강원도 전역.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 전역에 퍼져 있을지도 모를 좀비들.

그걸 어떻게 해결하냐.

답도 없는 문제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자니.

“영준아?”

“……응?”

누군가가 식당을 찾아왔다.

“민재 형?”

얼마 전에 포획한 전기의 뱀을 몸에 두르고 있는 남자.

이민재 병장이었다.

그가 조금 진지한 얼굴을 한 채 입을 열었다.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왔다.”

……부탁이라니?

* * *

이민재 병장은 우리 부대의 행보관 같은 인물이다.

실제 길드장인 내가 다른 일로도 꽤 바쁘다 보니.

대외적인 길드장 역할은 김 중위가.

그리고, 길드 내부의 여러 가지 일들은 민재 형이 처리해 주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고, 다른 녀석들도 그렇고.

은근히 민재 형이 이거저거 챙겨 주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경우가 많았지.

그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보니.

나도 나름대로 신경 써서, 민재 형을 관찰하고는 했다.

지난번 살모네우스 공략 직후까지만 해도.

민재 형은 새롭게 얻은 능력을 가지고 신나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최근에는 뭔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거나.

성벽 요새에 걸터앉아, 먼 곳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거나.

누가 봐도 고민하는 것 같은 모습을 자주 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모네우스 공략 이후에 그랬다기보단.

그 전부터.

‘첫눈이 내린 그날부터, 대충 저런 느낌이었지.’

정확히 어떤 고민인지 알 수 없는 만큼.

조만간 내가 직접 물어봐야 하나 생각했는데.

“자. 형이 좋아하는 커피.”

“고맙다. 이제 구하기도 힘들 텐데…….”

그 이민재 병장이.

내게 상담을 요청하러 온 것.

“아. 사실 그렇지도 않거든.”

“응?”

“인제군 쪽에서 커피하고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작물을 개발 중이라더라. 잘만 하면 커피도 복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건…… 확실히 대단하군.”

식당의 테이블에 민재 형과 마주 앉으며.

그가 좋아하는 커피를 한 잔 내주며 물었다.

“그래서. 부탁이라니?”

민재 형과는 부대의 대소사에 대해서 자주 의논을 나누는 사이다.

내가 없을 때 부대를 이끄는 것이 민재 형이기도 하고.

내가 있어도 사소한 관리는 그가 맡는 편.

사실상 군단장 대리.

혹은 부군단장…… 부길드장이나 다름없는 역할.

그런 민재 형인 만큼.

내게 뭔가를 제안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무슨 일이길래, 부탁이라는 거창한 말까지 쓰는 거야?”

부탁이라는 단어를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아마도, 요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던 것과 관련이 있겠지.’

대체 무슨 일이길래 부탁씩이나 하는 걸까.

궁금해하며 물어보자.

“일단은 그 전에. 하나 알려 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응?”

“네 덕에 내 레벨이 30을 넘었다는 거. 저번에도 얘기했지?”

“그거야 뭐.”

덕분에 새로운 특성을 각성.

권속까지 얻으며, 엄청나게 승승장구 중인 민재 형이다.

‘광일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엄청나게 강해지지 않았을까?’

광역 공격이라는 면에서 따진다면.

광일이를 포함한 부대의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겠지.

“레벨 30이 되면 고급 마법사가 될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더군.”

“아~ 그건 나도 그랬지.”

하급, 중급 다음은 당연히 상급이나 고급일 줄 알았다만.

레벨 30부터는 특화된 분야가 생긴다던가?

내 경우는 전쟁 요리사.

전투에 관련된 버프나 행위에 추가적인 보너스가 적용되는 직업이었다.

본직이 취사병이었으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해.

“그래. 그리고 내가 전기 계열의 마법사로서 특화된 건…….”

[식재료 감별(강화)]

[각성자 : 이민재]

[전파 마법사 Lv.30]

“전파다.”

전파…….

전파라.

‘……음. 모르겠네.’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어떤 능력을 가진 직업일지는, 잘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사실, 내가 이 직업을 얻게 된 이유는 조금 짐작이 가.”

“응?”

“잊어버린 거냐? 내 보직. 통신병이었다는 거.”

“……아.”

내가 취사반의 왕고였던 것처럼.

민재 형은 통신반의 왕고 출신이었다.

지금이야 통신반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사라진 만큼.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만.

……잠깐.

그렇다는 건.

“자, 잠깐. 통신병이라서 그 직업을 얻게 됐다는 거면.”

그 직업.

설마.

“뭔가 통신하고 관련이 있다는 거야?”

“정답이다.”

“……!”

그 말에.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콰앙!

“설마!”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 나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통신을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건……!”

‘멸망의 날’ 이후.

일반적인 통화는 물론, 비상용 연락망.

TV, 라디오, 인트라넷, 군용 주파수…….

모든 종류의 통신 수단이 두절되었다.

같은 길드원들끼리만 가능한 길드 메시지를 제외한다면.

가능한 통신 수단이라고는, 저 옛날 조선 시대 때나 쓰던 봉화 같은 것 정도.

덕분에.

우리 부대는 상당히 힘을 키운 상태지만.

그럼에도, 다른 지역의 상황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나마 여러 지역을 오가는 상인.

상협을 통해 얼추 소문 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만.

어디까지나 그뿐.

그 상협 역시, 활동 범위가 넓지는 못하다 보니.

아직 우리의 영향력이 닿지 않은 강원도의 다른 지역들.

그곳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그걸 넘어서, 서울과 같은 다른 지역들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하는 상태.

‘그 통신을, 복구할 수만 있다면……!’

다른 지역의 생존자들과의 통신을 통해.

그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될 터.

그래, 어쩌면.

가급적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던.

‘가족들에 대한 정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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