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부탁. (2)
콰앙!
“설마, 통신을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건……!”
“……진정해라.”
흥분한 내가 테이블을 두들기며 일어나자.
민재 형은 덤덤하게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진정하라고 해도……!”
“너도 알잖냐. 통신을 완벽하게 복구한다니. 그런 건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거.”
“그건.”
……그렇긴 하지.
다른 지역.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많이 흥분했던 것 같다.
“후우.”
흥분해 봐야 쓸모없는 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긴. 그런 게 가능했다면 진작에 말했겠지.”
“아쉽지만, 다른 지역의 정보를 얻는 건 아직 힘들 것 같다. 다만.”
……다만?
“통신이 불가능해진 이유는 알아냈다.”
“……뭐?”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민재 형을 바라보았다.
“통신을 막고 있는 존재에 대해 알아낸 거야?”
남들한테 말한 적은 없지만.
인류의 통신망을 없애 버린 존재.
나는 그 존재가, 군부대들을 전멸시키려 한 악의와 동일한 존재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인류의 무력을 억제하려고 한 존재.
그런 녀석이면, 통신 또한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아니. 무슨 추측인지는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답이다.”
“오답이라니?”
민재 형의 말에 따르면.
그건 또 아니라는 모양.
“솔직히 말하면, 나도 얼마 전까지는 너하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
“지금은 아니란 건가?”
“네가 추측하는 그 악의는…… 아마 통신이라든가, 지구의 기술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하지 못한 거겠지.”
강한 힘이 모이는 장소에 강한 적을 배치한 적.
하지만.
그 적이, 꼭 인류의 정보에 대해 자세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법이니.
“통신이 불가능하게 된 건 다른 이유였다.”
“다른 이유라니.”
내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말없이 허공에 손을 올리는가 싶더니.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는 민재 형.
그가, 무언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력이지.”
“……마력?”
허공을 바라보는 이민재 병장의 눈에는.
내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네가 말했지? 원래 지구에는 마력이 없었다고.”
“그랬지.”
그렇기에, 인간들은 마력에 내성이 적다.
괴물의 고기를 먹고 괴물이 되는 것도.
그렇게 마력에 노출되며 생기는 현상이니까.
“하지만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후로, 이 세계에는 마력이 생겨났다. 그리고 아주 미약한 양이긴 하지만.”
“……?”
“이 대기 중에도…… 분명히 마력이 존재해.”
꽈악.
그 손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았다.
“그 마력들이, 전파를 꼬아 놓고 있다.”
“……!”
“지금 내 눈에는 전파의 흐름이 보인다. 영준아. 그 사이사이에 파고들어, 전파의 형태를 무너트리고 있는 마력까지도.”
민재 형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그제서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멸망의 날에,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마력.’
그것이, 통신을 위한 전파 등.
보이지 않는 에너지들의 흐름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
“모든 종류의 연락이 두절된 건 그것 때문이다.”
그야.
마력에 대해서는, 밝혀진 정보가 그렇지 않은 정보보다 더 많다.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만…….
“아니, 하지만. 유선 연락망 같은 건 왜…….”
“가는 선이라고 해도 똑같아. 그 안에 마력이 끼어든 시점에서, 통신이 올바른 형태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전자 기기들은? 전기만 보급하면 작동은 했잖아.”
“단순한 에너지로서의 전기와, 그 안에 내용이 담겨야 하는 통신은 다르단 거지.”
민재 형은 저번에 충전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전원을 켜며 말했다.
“이렇게. 그나마 거리가 짧으면, 전파 간의 통신도 어느 정도 문제는 없어.”
스마트폰 역시 그 기계 안에서 여러 정보가 오가면서 화면을 출력하는 것.
그 정도라면 그럭저럭 문제가 없으나.
민재 형은 통화 어플을 켜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과는 물론.
[통신이 되지 않아…….]
“거리가 멀수록, 100%에 가까운 확률로 전파가 붕괴돼 버리는 거지.”
“……그런, 거였나.”
막상 듣고 나니.
너무나도 단순한 이유였다.
마력이 원인이었다니.
그래.
지독할 정도로 단순한 이유지만.
“해결법이 없다는 건 여전하군.”
결국 민재 형의 말대로라면.
통신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온 세상의 마력이 없어져야 한다는 거니까.
그도 아니면.
마력으로 인한 전파의 훼손까지 고려.
새로운 통신 시스템을 만들든가 해야 한다는 건데.
“……문명이 온전한 시절이라면 모를까.”
“그래. 지금으로선 불가능할 거다. 가능하다고 해도 엄청난 시간이 들겠지.”
민재 형이 통신을 되살리는 방법이 없다고 한 것.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 물론. 완전히 살리는 게 불가능하단 뜻이야.”
“?”
그런데.
민재 형이 하려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불완전하게 되살리는 것 정도는, 될 것도 같거든.”
“……뭐?”
“아니, 높은 확률로 가능하겠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방금 전파의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한 건 바로 민재 형 본인.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내가 새로 얻은 직업이 전파의 마법사라고 했잖아.”
민재 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의 직업은 전파의 마법사.
“아까 말했듯, 멀리 퍼져 나가는 전파는 마력의 영향으로 그 형태를 잃게 된다. 하지만 내 직업은 그 전파에 조금이나마 간섭이 가능하거든.”
“그렇다는 건 즉.”
“전파가 다른 마력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약간의 조치를 가하는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다.”
미친.
“그런 짓이 가능하다고?”
“물론 나 혼자서는 불가능했겠지.”
그때.
-끼룩.
민재 형의 품속에서 나와, 몸 주변을 맴도는 투명한 뱀.
[번개를 먹는 살모네우스]
민재 형은 그 형체 없는 뱀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있다면, 나로서는 불가능했던 세심한 수준의 마법 행사도 충분히 가능하다.”
“과연…….”
“나 같은 사례가 또 있지 않은 이상, 남들이 보내는 연락을 받는 건 어렵겠지. 하지만…… 우리 쪽에서 연락을 보내는 건 충분히 가능해.”
통신의 완벽한 복구는 안 될지언정.
일방적으로 통신을 보내는 정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
‘잠깐.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 눈앞에 서 있는 남자.
이민재 병장은, 지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다른 곳에 통신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런 인물이 가지는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맙소사.”
나는 그 사실에 경악하며 입을 크게 벌렸으나.
정작 그 당사자.
이민재 병장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
“그래서…… 부탁하려고 한 일 얘기다만.”
그제서야.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형은, 내게 뭔가를 부탁하려고 온 거였지.
“이 능력을 사용하면 통신을 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뒤에……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한동안 고민했다.”
얼마 전까지 보였던 고민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그것과 관련된 것이었는 듯.
“그 결론이, 내게 부탁할 내용이란 거야?”
“그래.”
그렇게 말하는 민재 형의 얼굴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이 능력을 사용해, 세상에 보내고 싶은 통신이 있다.”
“……형의 능력인데,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부탁이라는 말까지?”
“그거야, 이유가 있지.”
직후에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민재 형이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내가 보내려는 통신이, 군단에 큰 손해를 불러올 수도 있거든.”
“……뭐?”
* * *
민재 형과의 대화가 끝난 후.
나는 식당을 나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대원들을 찾아갔다.
그런데.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부대원들.
“무슨 일이야?”
“아. 신 병장님.”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니.
웬 기계 하나를 두고 떠들고 있었다.
“그게. 이번에 전기가 복구되면서, 여러 기계들도 들여왔잖습니까.”
“그렇지?”
“이것도 보일러라는데. 사용법을 잘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아아.”
여기저기서 최대한 긁어모은 물건들이니까.
종류도 다양하고, 오래된 것도 많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사용 설명서 같은 게 있지 않고서야.
아무래도 사용법을 알기가 힘들단 거다.
“뭐, 이건 나중에 공병들한테 물어보든가 하겠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실은, 이 근처에서 통신을 보낼 수 있을 만한 설비가 있는 곳을 알까 해서.”
“예? 흐으음. 글쎄요.”
그 말에.
모여 있던 부대원들이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 거면 뭐. 방송국 말하는 거 아닙니까?”
“KBB나 MCC, SBB 같은 곳이요?”
“그런 곳은 너무 거창하고. 지방이면 라디오 방송국 같은 거라도 있지 않을까?”
“뭐, 여기 춘천도 나름 대도시 아닙니까? 그런 방송국 하나 정도는 있을 법도 할 텐데요.”
“아.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 말에.
춘천에서 합류한 부대원 한 명이 과거형으로 중얼거렸다.
품에서 지도를 꺼내 들더니.
그 한구석을 가리키는 병사.
“그 위치가 여깁니다.”
“……아아.”
그가 가리킨 장소는, 춘천시의 중심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던전화되었을 당시.
모든 건물들이 사라져 버린 그 중심부였다.
“이 건물이 있던 곳 자체가 지금은 흔적도 안 남고 사라졌더군요.”
“끄응.”
“근처 지역에 없을 리는 없는데.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지.”
과거라면 이런 걸로 고민할 이유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모든 부대원들이 머리를 싸매서 고민해야 하는 일이 돼 버렸다.
“예전이었으면, 인터넷에 방송국이라고 검색하면 끝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아까 병사들이 끙끙대던 장비의 사용법도 그렇고.
이 정보도 그렇고.
인터넷 검색 하나면 끝났을 일.
하지만 모든 종류의 통신이 막혀 버린 지금.
지금 세상은,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도 매우 얻기 힘들어진 게 문제다.
……피식.
“응? 왜 웃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사소한 정보 하나가 귀중한 시대라.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내가 하려는 짓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새삼 떠올라서 말이지.
“뭐, 근처에 없다고 하면 어쩔 수 없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라디오를 송출할 수 있는 장소 자체는, 알고 있었다.
“병사들 좀 모아 줄래? 공병들하고 의무병도 포함해서.”
“충성. 그런데, 뭘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간만에 귀향 좀 하자.”
세상이 멸망해 버린 뒤.
가끔 만나는 생존자들에게서 듣는 얘기가 있다.
평범한 생존자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가, 하는 얘기 같은 것.
정수아나 이상아의 경우처럼.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길을 모색한 경우가 많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와 접촉하기 전까지, 매일같이 라디오의 채널을 돌리고는 했다던가.
어디선가 들려올.
구원의 메시지를 기다리며.
“탄약대대로 복귀한다.”
그들이 기다리던 것은, 정부 혹은.
군부대로부터의 라디오 통신.
“거기. 송출 장비 멀쩡했지?”
* * *
인제군과 춘천시 간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는 않다.
특히, 지금 시대에는 대부분의 도로가 파괴되어 사용하기 힘든 상황.
먼 거리를 오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괜히 철도를 확보해 둔 게 아니지.’
공사 중이던 역과 철도.
그곳들을 확보해 둔 우리는, 과거만큼은 아니라고 한들.
꽤나 자유롭게 두 도시 사이를 오갈 수 있었다.
특히 농사를 통한 식량 생산은 인제군 쪽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
그렇게 생산된 식량들은 이 철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급되고 있었다.
그렇게 보급을 자주 오가면서, 주변의 몬스터들도 겸사겸사 토벌한 결과.
인제군을 향하는 길 자체는 꽤나 깔끔했다.
기름을 아끼다 보니 걸어가야 하는 게 문제긴 했지만.
그마저도 각성자의 신체 능력을 이용한다면, 나름대로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정도.
“도착했습니다!”
“여기도 오랜만이군요. 그런데…… 어?”
그렇게.
오랜만에 복귀한 인제군의 [탄약대대]였으나…….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는 탄약대대.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공병들이 만든 커다란 장벽.
그리고.
“……저기가.”
“우리가 알던 그 탄약대대, 맞습니까?”
그 장벽을 타고 오르고 있는.
거대한 나무줄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