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라디오 (1)
“충성! 신 병장님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어어, 그래.”
현재 우리 부대의 주 전력은 춘천시의 [비마나]를 거점으로 하고 있지만.
인제군 근처에도 수십 명의 병사가 남아 있었다.
그쪽의 마을에서 신병으로 지원하는 자들도 드물게 나오는 편이었고.
탄약대대의 관리를 맡고 있던 것은 공병 출신의 한 상병.
그가 나와 병사들의 마중을 나와 주었으나…….
“세상에…….”
“뭐가 이리 많이 바뀐 거야?”
아쉽게도.
나와 병사들은, 그와 얘기를 나눌 만한 정신이 아니었다.
인제군의 탄약대대.
그 지나치게 많이 변해 버린 모습에…….
오랜만에 복귀한 병사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내뿜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은 탄약대대를 떠난 지 오래되셨었죠?”
“그렇지. 나는 그렇다 쳐도, 다른 병사들은 최소 몇 개월은 지났을 테니까.”
“후후. 그러면 놀랄 만도 하네요.”
그 모습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는 병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탄약대대에서 생산직들을 관리하던 병사.
이상아 조장이었다.
그녀에게는 나와 부대원들의 반응이 꽤 재밌게 보이는 모양.
“저희도 처음에는 좀 놀랐는데, 그래도 보다 보니까 적응되더라고요. 변화를 매일 지켜보던 저희도 놀랐을 정도니까,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경악할 만도 하네요.”
“……내가 봐도 엄청나긴 하네.”
그도 그럴 게.
우리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공병들이 만든 바리케이드 등을 제외하면, 평범한 군부대의 모습을 하고 있던 탄약대대.
심지어 난 그 후에 한 번 더 탄약대대에 들른 적도 있었다.
그때도 장벽 같은 게 꽤나 추가된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의 풍경은, 그때와 비교해도 말이 안 될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일단 가장 대표적인 변화를 꼽자면.
“저 나무뿌리들은 또 뭡니까……?”
“아아. 그것부터 못 보셨구나? 군단장님의 친구가 만들어 준 거예요.”
“예? 신 병장님. 친구도 있으셨습니까?”
“뭐 인마?”
모든 건물과 장벽.
그곳을 넝쿨처럼 휘감고 있는 두꺼운 나무뿌리들.
저게 내 친구가 한 짓이라는 건.
“알라우네인가.”
“맞아요.”
탄약대대의 깊숙한 곳.
그곳에 있는 산에 자리 잡고 있는 강력한 몬스터.
알라우네.
[전투력 측정기]에 의하면, 짙은 파란색을 내뿜는 괴물.
가진 힘의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을 것이나.
그 본질은 나무에 가까운 몬스터.
그런 녀석이 하필이면 탄약대대의 뒷산에 나타났다.
안 그래도 지력이 영 좋지는 않던 그 뒷산에.
[영양실조]
강력한 괴물이었던 만큼.
상당히 많은 지력을 흡수해야 했을 알라우네.
땅에서 영양을 충분하게 섭취하지 못한 결과.
녀석은 영양실조에 걸려 골골대기 시작했고…….
그걸.
내가 직접 요리한 [비료]를 먹여 살려 주었다.
그 결과.
‘친구 먹어 버렸지, 뭐.’
그러고 보니 그때.
녀석에게는 이 탄약대대를 잘 부탁한다는 등의 말을 남겼던 거로 기억한다.
아무리 친구를 먹었다고 해도 그렇지.
그 부탁을 얼마나 성실하게 들어준 걸까.
“방벽을 휘감은 저 뿌리들. 보이시죠?”
“어어.”
“잘못 보면 그냥 오래돼서 나무가 자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니에요. 공병들 말로는 방벽의 방어력을 엄청나게 보강해 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평범한 군부대의 모습을 하고 있던 탄약대대.
그곳은 지금.
온갖 거대한 나무뿌리와 조화를 이룬 장소가 되어 버렸다.
‘…….’
나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장벽 너머로 보이는, 생존자들의 마을.
본래는 강화된 철로 만들어진 건물들로 채워진 마을.
그 철들이 ‘맥’의 마력으로 강화된 만큼, 주거시설로서의 질은 나쁘지 않다고 하나.
미관상으로는 너무 팍팍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랬던 마을이.
지금은…….
“……무슨 자연인 동네처럼 돼 버렸군.”
온갖 거대한 나무가 곳곳에 자라나 있는 것은 물론.
건물들의 외벽까지 덮고 있는 모습.
뭐라고 할까.
문명이 멸망하고 나서 수천 년이 지나, 그 건물들에 나무가 자라난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실제로 저 건물들은 만들어진 지 1년도 안 된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맥]의 마력으로 강화한 철판으로 만들어진 방벽과.
[알라우네]의 뿌리.
철과 나무라는 이질적인 두 소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광경.
신기하게도, 그 조화는 꽤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그 삭막하던 탄약대대라고?”
춘천으로 떠난 뒤 탄약대대로 복귀한 적이 없던 병사들.
그들은 입을 떡 벌린 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후후. 저희가 기동요새를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제 좀 아시겠어요?”
“……충분히.”
하긴.
이곳의 풍경이 아무리 신기하다고 한들.
[비마나]의 위압감에는 미치지 못하겠지.
* * *
대부분의 전력이 춘천으로 떠난 뒤.
탄약대대에 남아 있던 병사들은, 근처에 형성된 마을의 사람들을 꾸준히 부대에 영입하는 등.
나름대로 이쪽에서 자체적인 활동을 계속해 왔다.
“아아.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통신 장비 때문이었습니까?”
부대의 관리를 맡고 있던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안테나가 있는 건물 얘기하시는 거죠? 아마 멀쩡할 겁니다. 그 거미들하고 전투 때문인지, 외벽이 조금 칼날 같은 거에 긁히고, 저번 탄약고 폭발로 정문이 날아가고. 외벽 절반 정도는 저 나무뿌리 같은 게 자리 잡긴 했는데, 아무튼.”
“전혀 안 멀쩡하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그래도 안테나 같은 건 멀쩡하니까요. 사실 저는 공병도 아니라서, 자세한 건 공병들이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탄약대대도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보니.
아예 날아간 건물도 많은 데 비하면, 그나마 통신 시설이 있는 쪽은 양반이라는 것.
그렇다면 뭐.
굳이 시간 끌 필요는 없겠지.
나와 병사들은 곧바로 목표했던 장소로 향했다.
“여긴가.”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작은 건물이었다.
군부대의 시설이 그렇듯, 투박하게 생긴 건물.
그 위에 커다란 안테나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어때? 건드릴 수 있겠어?”
“으음. 조금 복잡하긴 한데.”
그래도 안쪽에 있는 라디오 설비들은 꽤나 본격적인 것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민재 형과 공병들이 나서서 방송 설비를 살폈다.
그나저나.
아무리 공병들이 만능이라고 한들.
방송 설비 같은 걸 건드려 본 적은, 부대의 행정반 방송 정도가 전부일 터.
이걸 건드리는 건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다행히 파괴된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시간 주시면 충분히 살릴 수 있겠는데요.”
아무래도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모양.
“……미친 사기 직업.”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이쯤 되면 못하는 게 뭔가 싶은 녀석들이다.
생각보다도 더 사기 직업이란 말이야.
그렇게.
공병들이 나서서 설비들의 수리를 마쳤다.
하지만…….
“일단 사용은 가능한데, 문제가 많습니다.”
고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고 해도.
그 기계 자체의 한계는, 별개의 얘기.
“애초에 지상 통신 장치니까요. 중계소를 거칠 수도 없을 테니, 전파가 어디까지 닿을지도 의문이고…… 주파수라든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방송을 시도해 볼 수는 있지만. 제대로 안 될 가능성도 높을 것 같은데요.”
뭐, 당연한 거다.
우리가 온전한 상태의 군부대라면 모를까.
소규모 부대 하나가 겨우겨우 살아남은 수준.
영화에 나오는 군부대들처럼 비상용 라디오를 전국에 보낸다든가.
평범한 20대 청년들이었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단 말이지.
‘지금은 아니지.’
슬쩍 고개를 돌리자.
뒤에 앉아 설비를 고치는 공병들을 지켜보던 병사.
“그런 세세한 부분들은 내가 조정한다.”
“이민재 병장님?”
이민재 병장이 몸을 일으켰다.
“살모네우스.”
-끼룩.
공병들이 슬쩍 뒤로 물러나고.
방송 설비의 앞에 선 민재 형이, 작은 뱀을 불러냈다.
그리고…….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영준아……. 정말 괜찮은 거지?”
“괜찮다니까.”
내게 이번 일을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민재 형 본인.
하지만.
본인임에도 조금 석연치 않은 듯, 한숨을 내쉬는 이민재 병장.
뭐…….
그가 부탁한 일의 내용을 생각하면.
저런 태도도 납득은 간다.
그리고.
저 형이 바라는 것은, 그에게 확신을 주는 것.
“내가 오케이한 거니까, 형은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러냐.”
그렇게 말해 주자.
조금은 긴장이 풀린듯한 민재 형.
“그럼. 간다.”
이민재 병장의 손이 방송 설비 위에 올라가고.
그의 어깨를 타고 있던 뱀.
[번개를 먹는 살모네우스]의 몸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저 녀석. 꽤 커진 상태였지.’
아마도.
[최하급 전기 지배]의 영향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할 정도까지 전력을 먹여 둔 상태.
그리고.
그 전류가, 민재 형의 손끝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파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색 전류가 벽면과 바닥을 타고 퍼져 나간다.
그러자.
-쿠우우우우웅…….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지는.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소리.
“불이 켜졌어……!”
“가, 가능할 거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진짜였다니.”
건물의 꺼져 있던 불이 켜지고.
그걸로 모자라, 건물 전체에 전력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역시 인간 배터리……!”
“저 별명은 확정인 거냐?”
마법사 계열의 각성자들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앞서가고 있던 이민재 병장.
그가 이런 식의 세심한 컨트롤까지 손에 넣었다.
거기에, 통신에 관련된 능력까지.
‘민재 형한테는…… 맛있는 요리 좀 자주 해 줘야겠네.’
그가 있음으로써.
우리는, 과거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
‘인류가 가졌던, 진정한 힘.’
그 시설들을.
일부나마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으니까.
“방송 세팅. 끝났습니다.”
공병들이 나선 결과.
방송을 위한 세팅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다른 쪽.
“나도 준비는 끝났다.”
평범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퍼져 나갈 전파.
그 전파가 마력의 영향에 일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가급적 먼 곳까지 퍼져 나가게 하기 위한 준비를…….
[전파의 마법사]가 끝마쳤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
“형이 부탁한 일이잖아. 이제 와서 무슨 소리래.”
“그건 그렇다만…….”
방송이 시작되기 직전.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민재 형.
“너도 알잖아. 정보는 독점을 해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뭐, 그건 그렇지?”
당장 우리 역시.
사소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인터넷이 사라지는 순간, 인류가 가진 정보의 80%가 증발한다던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에도 한계는 있는 법이니까.
인터넷망이 사라진 것은 물론.
책을 구하러 이동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세상이 된 지금.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가,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민재 형이 내게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그걸 뿌리길 원한다는 얘기야. 제대로 이해한 거냐?”
우리 부대가 그동안 수집한.
그 귀중하고 엄청난 가치를 지닌 정보.
그걸.
온 세상 사람들에게 뿌려 달라는 것이었다.
‘정보의 공유.’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나의 감상은…….
사실, 간단했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 * *
“아아…….”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
나는 마이크 앞으로 다가간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군단입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퍼져 나갈 통신의 첫 운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