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87화 (187/227)

187화 공헌

“걸어 다니는 시체들…… 좀비입니다.”

내가 뜬금없이 꺼낸 말에.

병사들조차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 병장님이, 뭐라고 하신 거야?”

“……좀비?”

그럴 만도 하지.

이건 나도 얼마 전에야 알아낸 정보니까.

“좀비의 척추 부근을 해체해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그곳에 있는 기생충들 중, 등에 검붉은 반점이 새겨져 있는 기괴한 벌레가 있을 겁니다.”

나는 얼마 전에야 알아낸 정보이자.

도시의 각성자들은 물론.

“좀비의 정체입니다.”

“……!”

군단원들에게도 아직 공유하지 않았던 정보.

듣고 있던 병사들마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모습이었다.

“시, 신 병장님?”

“저게 진짜입니까? 좀비의 정체를 알아내셨다고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좀비.’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괴물이었지만.

그 실상은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문제는.

위험하다는 걸 알아냈다고 해서,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은 물론.

사람이 죽은 뒤, 화장을 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좀비가 늘어난다.

특히, 겨울이 오면.

많은 사람이 죽을 테고.

죽은 이들은 좀비로 일어날 터.

‘이거는 뭐, 답도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지.’

그렇기에.

민재 형의 제안을 들은 순간.

바로 생각했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라고.

“이 좀비…… 기생충들은, 인간을 숙주로 삼습니다. 평소에는 척추 부근에서 잠복하다가, 숙주인 인간이 사망하는 순간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만으로는 좀비를 박멸하기 힘들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이 많이 죽을 테니, 좀비의 숫자도 늘어날 거라고?

“저희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이 기생충들이 완벽하게 성장했을 시에는 상당히 강력한 괴물로 우화할 가능성이 높으니, 미리미리 제거해 두기를 권장드립니다.”

그럼.

답은 간단하지.

“또한. 해당 기생충들은 미약하지만 마력을 품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죽지 않을 만한 힘을 준다.

“그 기생충을 죽임으로써 각성을 거칠 수 있으며, 경험치 또한 획득할 수 있을 겁니다.”

쉽게 각성할 수 있고,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전해 주고.

그들이 죽지 않게 만든 뒤.

그 사람들에게 맡기는 거다.

“그러니, 각성하십시오.”

아직까지 각성하지 못했거나.

각성을 했음에도, 괴물을 사냥할 정도의 힘은 얻지 못한 이들.

그들이라면 좀비는 좋은 사냥감이 될 터.

“괴물을 사냥하기에 충분한 레벨이 될 때까지, 좀비들을 사냥하며 성장하십시오. 기생충의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좀비는 평범한 인간보다도 약합니다.”

평범한 인간도 준비만 충분하다면, 좀비를 사냥하는 건 어렵지 않다.

각성을 거치기만 한다면.

기습을 당하는 게 아니고서야.

좀비에게 질 일은 없다고 봐도 되겠지.

“좀비를 사냥해, 힘을 기르십시오.”

그렇기에.

“영준이, 너……!”

경악한 듯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민재 형을 보며.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라면, 아니. 다른 병사들이라도, 이런 방법을 떠올리지는 못했을 거야.’

라디오를 통해 정보를 공짜로 풀어 버린다니.

손해 볼 게 뻔한 아이디어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일은 있더라도, 그걸 제안하는 일까지 가는 경우는 없었겠지.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민재 형이 새롭게 얻은 능력을 들었을 때.

나는, 그걸로 가족과 연락하는 방법만 생각했으니까.

‘나는 꽤 이기적인 놈이거든.’

하지만.

민재 형은, 그런 나와는 꽤 달랐다.

자신의 능력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일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잘만 이용한다면, 이 세계에서 누구보다 귀중한 존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

그 힘을 통해.

남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가장 먼저 고민했으니.

‘살모네우스를 얻었을 때, 나한테 고맙다고 했던가?’

설마.

고마워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내 쪽이었다.

남들이라면 하지 않았을 제안.

그 제안을, 민재 형이 내게 건네준 덕분에.

우리 부대의 위협을 제거할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십시오.”

그래, 그렇게.

언젠가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좀비와 괴물들.

그 숫자를 줄여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렇게 힘을 기르고.

겨울을 버텨 내라.

“저희 군단이, 당신들을 찾아가겠습니다.”

우리에게 합류해.

괴물을 사냥하기 위한 병사가 될, 그날까지.

* * *

“방송, 종료됐습니다.”

“후우!”

방송용 장비를 만지고 있던 공병이 그렇게 말하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마이크에서 물러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일단은 이 방송은 주기적으로 흘러 나가게 세팅해 놓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이 건물에서 나가는 라디오.

그 전파는 마력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민재 형이 이미 조치를 취해 둔 상태.

방금 그 라디오 방송은 계속해서 퍼져 나갈 것이다.

“좀비에 대한 얘기, 진짜입니까?”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자니.

병사들이 나를 보며 물어 왔다.

나도 얼마 전에야 알아낸 사실.

병사들 입장에서도 믿기 힘들단 거겠지.

“아쉽지만 진짜다.”

“좀비가 위협이 될 수도 있다니…….”

“그럼 저희도 적극적으로 좀비 사냥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고 싶긴 한데. 우리가 나서 봐야, 우리 숫자가 얼마나 되겠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그 말에.

몇몇 병사들이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아!”

“설마. 이 방송을 하려고 하신 게 그래서…….”

“정답이야.”

이 방송을 들은 이들은 각성과 경험치를 노리고 좀비 사냥에 나서게 되겠지.

좀비는 여러모로 까다로운 적이었다.

강함은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않지만.

잡아 봐야 각성도 안 되고.

경험치도 주지 않아, 귀찮기만 한 존재.

하지만.

‘이제부턴 다르단 거지.’

쉽게 사냥해 각성할 수 있으며.

아직 힘이 약할 각성 초기.

몬스터를 사냥하기엔 힘든 이들이, 쉽게 경험치를 벌 수 있게 해 줄 존재.

일종의 초보자용 몬스터가 될 테지.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미래에 ‘우화’하며 진화한다던 좀비.

그 위협 역시,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될 터.

“그런 거였군요…….”

다른 병사들도 그 사실을 깨달은 듯.

입을 벌리며 감탄하는 모습.

“그나저나, 좀비에 대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정보를 뿌린 건.”

“정말 괜찮은 겁니까?”

한 편.

몇몇 병사들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괴물들에 대한 정보에, 좀비에 대한 정보까지.

내가 이번에 뿌린 정보들이 어디까지 퍼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보가 닿은 땅의 인간들은, 급격하게 강해질 것이다.

이 선택이 맞는 건지.

병사들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거겠지.

“이 정보로 힘을 키운 인간들이 이상한 짓이라도 한다면.”

“우리한테 손해가 되지 않을지.”

우리 부대원들은 원래 전우가 아닌 이들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태도도 어느 정도 예상된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뭐, 사람들끼리 사이가 좋기 힘든 세상이 되어 버린 건 맞는데.”

“예?”

“그래도, 우리 주적을 헷갈리진 말자고.”

약탈자와 같은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궁극적으로는 적으로 보아선 안 된다.

“인간과 침략자의 싸움으로 보는 게 맞아.”

“…….”

어차피 언젠가는 모든 괴물을 토벌해야만 한다.

저 정보의 유출을 통해.

다른 지역의 인간들이, 우리를 대신해 괴물들을 처치해 준다면.

‘개꿀이잖아.’

인간의 전력은 아무리 늘어나도 모자라다.

이번 겨울은 그 인간의 예비 전력.

생존자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갈 수 있는 시련이다.

“최대한 많은 인간이 겨울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야 해.”

그들이 못된 맘을 먹는다고 한들.

나중에 요리로 [교화]시켜 주면 그만이거든.

“물론 잘못된 맘을 먹은 녀석들이 너무 강해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만.”

“마, 맞아요. 그게 문제 아닙니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은 하나지, 뭐.”

씨익.

“우리가 그 녀석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더 강해지는 거.”

“…….”

병사들은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으나.

“푸흡. 알겠습니다.”

“신 병장님이 그렇게 판단하신 거라면, 틀림없겠죠.”

다행히.

나에 대한 신뢰가 하늘을 찔러 버린 녀석들.

“신 병장님 생각대로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이 방송도, 이왕이면 널리 퍼졌으면 좋겠군요.”

그 병사의 말대로.

민재 형의 능력으로 통신을 보내긴 했지만.

‘그 통신이 저 검은 벽을 뚫고 갈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

이 방송이 강원도 외곽의 저 [검은 벽]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강원도 내의 인간들에게만 닿아도 충분히 이득을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사람 맘이란 게, 가급적 이득이었으면 좋겠다 보니.

이왕이면 한반도 전역으로 퍼졌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띠링!

갑자기 들려오는.

청량한 소리.

“어?”

[대지역 - ROK의 ‘강철군단’의 영향력이 급증합니다.]

[대지역 - ROK의 인간종들이 ‘강철군단’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눈앞에.

기대도 하지 않았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길드 스킬 - ‘군단의 증표’에 변화가 발생합니다.]

그 메시지에.

나는 목에 걸려 있던 군번줄을 꺼내 확인해 보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명예로운 강철군단의 증표]

[길드 스킬]의 일종으로써.

우리 부대에 속한 이들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장비 아이템.

[군단의 증표].

그런데.

그 아이템의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증표의 효과가…….”

“늘어났는데요?”

그 능력치가, 훨씬 더 증가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띠링!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길드 - 강철군단이 전투에 공헌하였습니다.]

“이, 이건 또 뭐야.”

“지금 이거, 저만 보이는 거 아니죠?”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부대원들 눈앞에 나타난 듯한 메시지.

그건, 너무나 뜬금없게도.

[공헌치만큼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갑자기?”

경험치 획득을 알리는 문구였다.

* * *

군단의 부대가 머무르고 있는 강원도.

그 외곽에 세워져 있는 열기의 장벽을 넘어.

충청도의 어딘가.

한 작은 마트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일단의 인간들이 있었다.

“후우!”

“일단 확보한 땔감은 이 정도인가.”

지난 ‘멸망의 날’ 이후.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살아남아, 지금까지 버텨 온 이들.

그들은 지금.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로 바빴다.

“다른 건 몰라도, 식량이 너무 모자라군요.”

“어쩔 수 없지. 겨울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시간을 다 버틸 만한 식량을 확보하는 게 어디 쉬운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요.”

대화를 나누던 중년 여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이렇게 겨울에 대비를 시작한 이유는 하나였다.

얼마 전.

그룹 내에, [냉기 친화]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입을 모아서 한 말.

‘이번 겨울은 엄청나게 혹독할 겁니다.’

그동안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 급했던 이들이지만.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가장 위험한 계절이 찾아오고 있으며.

그 전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

“그뿐만이 아니야. 땔감도 이걸로는 모자랄 확률이 높겠지.”

“그래도……. 건물 안에 있으면 얼어 죽지는 않는 거 아닙니까?”

“난방이 안 되는 건물은 보온 효과가 그렇게 강하진 않아요. 멀쩡한 건물도 얼마 없고.”

세상이 괜히 멸망한 게 아니다.

괴물들과 좀비들의 난동으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들은 조금씩 파괴된 상태.

전기도 없는 지금.

추위 자체가 엄청난 적이 될 터.

‘땔감으로 어떻게든 버틴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고.’

저 모자란 땔감이 다 떨어진다면.

그건 단순히 추위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어떻게든 사람들간의 체온으로 버텨 낸다고 한들.

‘물마저 얼어 버릴 테니.’

결국 추가적인 땔감을 얻어야 하는 건 필수.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몬스터들도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생명체들입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그 일환이고요.”

“겨울이 되면, 녀석들도 더욱더 열심히 사냥에 나설 것이란 얘기군.”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괴물들 역시, 식량을 얻기 위해 분주해질 터.

놈들 역시 한층 더 흉포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안 그래도 추운 겨울의 환경.

거기에 몬스터의 위협까지 더해진다면.

‘끔찍하군.’

생존자들은 물론이고.

각성자라고 해도 쉽게 돌아다닐 수 없다.

그런 극한 환경 속에서, 몬스터를 피해 가며.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고 다닌다는 건.

‘아주. 아주 힘겨운 일이 되겠지.’

그 전에 가급적 각성자를 늘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괴물과의 싸움은 너무나도 큰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에.

그룹의 리더가 신음하고 있을 때.

“혀, 현수 형님.”

“음? 무슨 일이야.”

“잠깐 봐주셔야 할 게…….”

그 말에.

안내되어 찾아간 장소에 있던 것은.

콜록…….

“지, 진혁아?”

“아저씨…….”

병이라도 걸린 듯.

몸을 벌벌 떨며 콜록거리고 있는 아이였다.

“언제부터 이랬지?”

“저, 저도 지금 발견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왜…….”

“……요즘 급격하게 추워졌으니까요.”

환절기.

각성자들은 추위에 조금은 둔감해질 수 있다 보니.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 버렸지만.

‘평범한 인간들한테는 위험한 시기라는 걸, 까먹고 있었다……!’

충분히 대비했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도 있었던 일.

그룹의 리더로서는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마트에 있던 약들이 좀 있지 않나?”

“없지는 않죠. 하지만, 이 아이에게 쓴다면 아마 그게 끝일 거예요.”

“끝이라니…….”

“그동안 자잘한 곳에 쓸 일이 많았으니. 어쩔 수 없잖습니까.”

겨울에 사람들의 면역력은 급감하기 마련.

이 아이가 마지막 환자가 되리란 법은 없다.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힘든 상황이 될 텐데.”

“약재를 구하는 건 더 힘들겠죠.”

“…….”

추위.

괴물.

질병.

겨울이 찾아오자마자, 그 뒤를 따라 달라붙는 위험들.

잠시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던 리더.

그 입에서 짧은 단어가 튀어 나왔다.

“……X발.”

“…….”

미처 참아 내지 못하고 새어 나온 욕지거리.

그가 어떤 심경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두가 직감했다.

이번 겨울.

여기 있는 이들 중, 반수 이상은 죽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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