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88화 (188/227)

188화 자동 사냥.

모두가 직감했다.

이번 겨울.

여기 있는 생존자들 중.

반수 이상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그중 대부분은 각성하지 못한 생존자들일 테고.’

아무도 그 사실을 입에 담지는 않았으나.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순간.

마트 안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그, 그래도!”

무거워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개선하려는 듯.

한 여자가 힘을 내서 입을 열었다.

“각성자를 늘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지도 몰라요.”

“뭐?”

“알잖아요? 각성자들은 비교적 추위에도 강하고, 잔병치레도 잘 안 한다는 거. 겨울이라도 어떻게든 돌아다닐 수도 있을 테니, 땔감도 추가로 확보 가능할 테고요.”

“……각성자를 늘리는 게 어디 쉽나.”

“우리도 이제 각성자 숫자가 꽤 되니까, 위험을 감수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사냥 나선다면.”

그나마 희망을 가져 보자는 이야기였으나.

그런 말도,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을 때여야 효과를 발휘하는 법.

“지연 양.”

“네?”

“마음은 알겠지만. 그만 해요.”

“…아, 네.”

아무리 각성자라고 한들.

괴물을 상대하는 게 쉽지는 않다.

어떤 괴물이 얼마나 강한지.

어떤 약점을 지니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이들.

평범하게 한 마리만 돌아다니고 있는 괴물이라고 해도 방심할 수는 없다.

그런 한 마리의 괴물에 전멸한 그룹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흔하디흔한 수준이 되어 버렸으니까.

사냥한다고 해서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괴물의 사냥은, 꼭 그 괴물이 제거해야 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만.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사냥을 나서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런 짓을 하다간.

각성자를 늘리는 속도보다, 각성자가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르겠지.

누구 하나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그때.

저벅…….

누군가.

구석에 세워진 선반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지지직…….

그곳에 있던.

자그마한 라디오 하나를 틀었다.

“……이보쇼!”

그걸 본 생존자들.

그중 한 명이 짜증 내며 손가락질했다.

“네?”

“그 개 같은 라디오. 대체 언제까지 틀려는 거요!?”

“개 같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럼 개 같다고 하지, 뭐라고 할까. 하루 종일 짜증 나게 지지직거리기만 하는데!”

그 말에.

라디오를 틀려고 하던 여자는, 나름대로의 논리로 반박했다.

“지금 우리 상황이 좋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라디오를 켜야죠.”

“켜봤자 그 개 같은 지지직 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무슨……!”

“지금은 그렇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무언가 구원의 메시지 같은 게 들려올지.”

“구원……. 구원? 말은 좋지. 그런데!”

그 말에.

짜증을 내던 생존자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딴 구원은 안 온다고!”

“…….”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른 사내.

그에게, 그룹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제기랄……. 이제 인정할 때도 됐잖아.”

소리친 사내의 눈가에는.

작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릴 구해 줄 세력 따위는 없다는 거.”

“…….”

“군인들은 다 전멸했고. 정부 놈들도 똑같을 게 뻔해. 다른 그룹도 믿을 수 없고. 당신도 알잖아? 사람들을 모집하던 대규모 그룹. 거기 갔더니, 어떤 미치광이 몬스터가 인간들을 노예로 삼고 있었다는 거.”

“지, 진정하세요.”

“진정하게 생겼냐고.”

점차 격해지기 시작하는 분위기.

“애가 아프다잖아……! 안 그래도 안 좋은 일만 겹쳐서 신경질 나 죽을 것 같은데.”

“미, 미안해요.”

“왜 자꾸 헛된 희망에 매달리느냔 말요!”

라디오를 틀었던 여인도,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아, 알겠어요. 끌게요. 끌 테니까, 그만……!”

“그래. 진짜 누구 하나 피 보기 전에, 그 개같이 짜증 나는 지지직 소리 좀!”

그녀의 손가락이, 라디오의 전원 버튼을 향하던.

-지지직…….

바로 그 순간.

-안녕하십니까.

그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은 무슨……!”

상황을 깨닫지 못한 사내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화를 냈으나.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 사내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자, 잠시만요!”

“바, 방금 소리. 라디오에서 들린 거 아니에요?”

“……뭐?”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거나 말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저희는. 군단입니다.

담담하게 다음 얘기를 꺼내 들고 있었다.

“군단……?”

“군인, 이란 건가.”

하지만.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라디오에서 나온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희 군단이 확보한 괴물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 목소리가 덤덤하게 읊기 시작한.

그 정보들.

그 목소리를 10초 정도 들었을까.

그룹의 리더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들 노트랑 펜 들어!”

“페, 펜이요!?”

“뭐든 메모할 수 있는 거면 좋으니까! 빨리!”

그도 그럴 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내용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괴물의 특성과 약점이라고?’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천금을 줘도 구하기 힘든 정보다.

심지어 저 목소리가 말한 괴물들.

그중 몇 개는, 그 역시 조우해 본 적이 있는 괴물들이었다.

“모, 모든 전파는 망가진 거 아니었어요?”

“아니. 그런 것보다…….”

“이런 정보를 그냥 공개한다니……!?”

경악이 퍼져 나간다.

급하게 메모를 하면서도, 믿기 힘들다는 듯 중얼거리는 사람들.

애초에 믿어도 되는 정보인지조차 의문이지만.

메모해 두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십시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리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방송의 끝을 알렸다.

-저희 군단이, 당신들을 찾아가겠습니다.

마트 안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구, 구원을 와 줄 세력이.”

“있었다는, 건가.”

하지만.

“미, 믿을 수 없어!”

누군가는 그 얘기를 부정하며 나섰다.

방금 전.

라디오를 끄라고 윽박질렀던, 바로 그 남자.

“그런 군부대가 있었다면 진작에 왔어야지!”

“…….”

“이제 와서 찾아오겠다고? 그때까지만 버티라고? 그런 말을 어떻게 믿냔 말이야!”

흥분한 채 소리치는 남자.

그 말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 하긴.”

“애초에. 지금 우리가 메모한 이 내용들도.”

“진짜인지 아닌지. 믿을 수는 없죠……?”

그러나.

그들을 이끄는 리더.

현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한 거 아닌가?”

그의 시선이 마트의 바깥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커어어…….

지상을 배회하고 있는 망자.

좀비들이 널려 있었다.

“각성을 시켜 보면 되는 거야.”

평범한 각성자들이라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좀비가.

“일단은 그 벌레부터 찾아봅시다. 만약에 저 방송에서 말한 대로 좀비의 몸 안에 벌레가 있다면.”

그 시선이.

콜록거리고 있는 아이를 향해 움직였다.

“감기에 걸린 진혁이부터 각성시키는 거로.”

* * *

[길드 - 강철군단이 전투에 공헌하였습니다.]

[공헌치 만큼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이, 이건 또 뭐야.”

“지금 이거. 저만 보이는 거 아니죠?”

뜬금없이 내 눈앞에 나타난 경험치 획득 문구.

문제는.

그게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부대원들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갑자기 경험치가 왜……?”

사냥은커녕.

라디오 방송을 마친 뒤, 느긋하게 앉아 얘기나 하고 있던 우리.

그런 우리한테.

갑자기 경험치가 주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이거 설마.”

의아해하는 병사들과 달리.

이게 어떤 현상인지.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공헌도 시스템인가?”

“예?”

“우리도 자주 겪잖아? 여럿이서 한 마리의 괴물을 사냥하거나 하는 거.”

괴물을 사냥했을 때 얻는 경험치.

그 계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게임마다 다르다.

특히 복잡해지는 것은, 여럿이서 한 마리의 괴물을 처치했을 경우.

‘어떤 게임은 막타를 친 사람에게 경험치를 몰아주기도 하고. 어떤 게임은 참가자 모두에게 같은 값의 경험치를 제공하기도 하지.’

그리고 또 어떤 게임은.

“전투에 공헌한 양에 따라, 경험치를 차등 분배하지.”

“이게, 우리가 전투에 공헌한 대가로 받은 경험치란 말입니까?”

“그래.”

내가 다른 병사들보다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이 시스템 자체는, 나한텐 좀 익숙하거든.”

내 직업은 [요리사].

평소에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경험치는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당신의 요리를 먹은 이가 전투에서 활약하였습니다-]

내 요리를 먹은 이가 전투에서 승리하였을 경우.

내 요리가 영향을 끼친 만큼의 경험치가 내게 들어왔기 때문.

지금도 마찬가지.

“우리가 전투에 공헌한 양만큼, 경험치를 획득하고 있다는 거다.”

“공헌이라니.”

“……언제 공헌을 했다는 겁니까? 우리…….”

더욱더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의 병사들.

그때.

“정보로군……!”

병사들의 의문에 대답을 한 것은.

내가 아닌 이민재 병장이었다.

나 다음가는 부대의 최고참이자.

이번 라디오 송출을 결정하게 만든 장본인.

“우리가 흘려 낸 정보!”

언제나 이성적이었던 그가.

흥분한 듯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 정보로, 사냥에 성공한 이들이 있다는 거다!”

그 정보들.

출처는 모두 내가 가진 스킬, [요리사의 눈]이었다.

내가 과거에 병사들에게 정보를 알려 주었을 때만 해도.

그로 인해 경험치를 얻은 적은 없었다.

아마도 그 자체로는 경험치가 지급되기 애매한 공헌도였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너무 광범위하게, 많은 정보를 뿌려 버린 거지.’

그 적은 공헌도도, 모이고 모이다 보면.

충분히 경험치로써 화할 수 있다는 거다.

대답을 마친 이민재 병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하, 하하.”

“민재 형?”

“느껴지냐. 영준아.”

몸 안에 들어온 경험치를 계산하려는 듯.

잠시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던 그가, 눈을 감은 채 웃으며 말했다.

“한 번에 들어오는 경험치 양이 많지는 않아.”

확실히.

아무리 약한 몬스터를 사냥해도 이것보다 수백 배는 많은 양의 경험치가 들어왔던 거로 기억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

첫 번째로는, 애초에 정보 제공으로 인한 경험치 획득량이 많지는 않다는 거고.

두 번째는…….

길드의 이름으로 공표한 정보라는 점 아닐까.

지금도 상태창에 떠올라 있는 메시지.

[길드 - 강철군단이 전투에 공헌하였습니다.]

저 정보.

출처는 나지만, 그 공표 자체는 길드의 이름으로 진행했다.

그런 만큼, 모든 부대원들에게 경험치가 나눠서 분배된다는 것.

“양은, 극도로 적어. 하지만!”

한 번에 들어오는 경험치의 양은 결코 많지 않다.

하지만.

[공헌치만큼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공헌치만큼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공헌치만큼의 경험치를…….]

[공헌치만큼의…….]

“……이 빈도는, 대체?”

들어오는 횟수는.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영준아, 너도 알겠지?”

“응?”

“강원도 전체의 생존자들이 모두 라디오를 켜고 대기하고 있었다고 해도, 이 정도로 많은 빈도로 경험치가 들어올 수는 없다는 거!”

그렇다는 건, 즉.

“……아.”

그 의미를 나보다도 먼저 파악한 인물.

이민재 병장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닿은 거다.”

강원도 전체에 닿았다고 해도 말이 안 될 정도의 빈도.

그렇다면, 나머지 경험치의 출처야 당연히.

‘강원도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 나간 거겠지.’

방금 그 방송이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그 방송을 들은 이들이 확인을 위해 사냥을 시작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빈도라는 거다.

“강원도 밖에도, 살아남은 인간들이 있었던 거야……!”

“그, 렇군.”

“그 사람들에게, 우리의 메시지가 닿은 거다, 영준아!”

최근.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혹시 모두가 죽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울적해 보였던 이민재 병장.

“하, 하하!”

그랬던 그가.

눈물이 새어 나올 정도로 기쁜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의 도움이, 다른 이들에게 닿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민재 형의 선의가, 닿은 거다.’

나는 그저.

이민재 병장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좀비 처치라는 숟가락을 얹었을 뿐.

본래는 남들을 돕기 위해 라디오 송출을 하겠다느니.

그런 비슷한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앞으로, 우리가 퍼트린 정보로 인해 살아남는 인간들이 있다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정보를 모은 내가 아니다.

“하하……. 방금 그 메시지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게 된 거야…….”

크게 안심했다는 듯.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는 바로 저 남자.

민재 형이 되겠지.

피식.

“그렇게 기분 좋아?”

“……앗.”

그동안 걱정이 많긴 많았던 것인지.

눈물을 흘리면서 웃음을 터트리던 이민재 병장.

“크흠. 흠. 컴.”

내가 가볍게 웃으며 그 모습을 지적하자.

그는 민망한 듯 급하게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아, 아무튼. 우리 작전이 잘 풀렸다, 뭐 그런 거지.”

“잘됐네.”

“그래……. 정말, 정말 잘된 일이야.”

그냥 잘된 것도 아니다.

이민재 병장과 나의 목표는, 그냥 그 정보를 퍼트리는 데 성공하고.

사람들이 좀비와 괴물을 쉽게 사냥할 수 있게 하는 것 정도.

그런데.

“그, 그러니까. 방금 그 정보로 사람들이 사냥을 할 때마다…….”

“모두가 경험치를 나눠 받는다, 이 말입니까?”

“그런 거지.”

그렇게 사냥하면서 생긴 경험치들.

그걸 우리가 나눠 먹을 수 있게 돼 버렸으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민재 형.”

“음?”

“형은 앞으로 좀 바쁘게 일해 줘야겠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래, 그리고.

그런 것을 게임에서 부르는 단어가 있다.

“앞으로 정보가 쌓이는 대로, 이런 방송을 몇 번이고 더 해야 할 테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우리가 사냥하지 않아도, 경험치가 공짜로 들어오는 거야, 형.”

내가 사냥하지 않고, 남이 사냥을 해 주었음에도.

내게 경험치가 들어오는 것.

즉.

“자동 사냥이지.”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뿌려서, 최대한 많은 인간을 살리고. 최대한 많은 인간이, 레벨을 올리게 만들 거야.”

“……!”

“그래야지.”

자동 사냥으로 들어오는 공짜 경험치.

그 효율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갈 거 아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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