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89화 (189/227)

189화 친구 (1)

-이 괴물의 약점은…….

-좀비를 사냥하십시오…….

강원도의 남쪽 한구석.

한 남자가 담배를 피며 멍하니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이 지난 뒤.

“하……. 이 새끼들. 믿기지가 않는군.”

라디오를 듣고 있던 한 남자.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저런 귀중한 정보를, 그냥 풀어 버린다고?”

“저도 처음 들었을 땐 이게 무슨 미친놈들인가 싶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정보를 듣고 성장한 녀석들이 뭔 짓을 할 줄 알고?”

먹을 것, 입을 것 하나가 귀중한 시대다.

같은 인간이라고 한들 결코 믿을 수 없는 세상.

오히려 같은 인간들끼리도 생존을 위한 경쟁자라고 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해가 안 가는군.”

인터넷도 없는 지금.

사소한 정보 하나조차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저런 귀중한 정보를, 그것도 아무런 대가 없이.

라디오를 통해 대한민국 전역에 뿌려 버리다니?

“군인이라.”

저런 미친 짓을 한 이유.

짐작 가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국민을 보호하는 게 지들 의무다, 이건가?”

“맙소사.”

“그래서 저 귀중한 정보도 무상으로 뿌려 버린 거다, 이겁니까?”

“군인들한테 월급 줄 국가도 없어진 마당에, 이게 무슨.”

어이가 없지만.

그것 외에는 짐작 가는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

“진짜로 살아남은 군부대일까요?”

“흐음. 글쎄다.”

“군부대에는 특히나 더 강한 괴물들이 나타났다고. 그분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거기서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다니……. 저는 믿기지가 않는군요.”

“나도 잘은 모르겠다만.”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머금는 남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군부대에는 강력한 무기들이 넘쳐 날 테니까.”

“그건 그렇죠.”

“그 부대를 지휘한 양반이, 정말, 엄청나게 대단한 영웅이었다면.”

“…….”

“그 강력한 괴물들에게서 살아남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

그 말에.

뒤에서 뒷짐을 서 있던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참나. 21세기의 이순신 장군, 뭐 그런 겁니까?”

“큭큭. 그건 아직 모르지. 지금까지 살아남았단 거랑,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별개니까.”

그때.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사내가, 고개를 숙여 ‘형님’에게 말했다.

“형님.”

“어.”

“저 녀석들, 가만히 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지?”

살아남은 군부대라는 점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렇게 살아남았으면 알아서 떵떵거리고 살 것이지.”

“꼴에 군인 정신이 남아 있다는 건지 뭔지. 남들을 돕고 다니는 군부대라는 게 문제죠.”

그들이 살아남은 것으로 모자라.

다른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정보를 퍼트리는 짓을 시작했다는 것.

“이 정보가 여기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인간들의 평균 전력이 엄청나게 올라가겠지. 즉.”

“우리의 주인님께서 무척이나 싫어하실 겁니다.”

픽…….

“주인님의 심경을 거스를 수는 없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대충 바닥에 비벼 끈 뒤.

몸을 일으킨 남자가 말했다.

“이 녀석들. 위치가 어디라고?”

“춘천입니다. 운 좋게도 우리가 있는 강원도더군요. 하지만…….”

“그래. 이 정도의 정보량을 보면, 엄청나게 큰 세력을 이룬 상태겠지.”

“우리만으로 제거하는 건 힘들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성공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겠죠.”

“흐음.”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빠지는 사내.

잠시 뒤.

“그 근처에, 규모가 큰 군부대가 있나?”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야, 최전방인 강원도니까요. 군부대야 차고 넘칩니다.”

“역시 그런가?”

“그중에서도 방송에 나온 지역 근처라면…… 12군단의 영역이군요.”

“12군단이라.”

혼잣말을 하더니.

이내, 스산한 웃음을 짓는 남자.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형제들을 모아라.”

“알겠습니다. 그다음엔, 어떻게 할까요.”

12군단.

휴전선에도 맞닿아 있는 대한민국의 최전방 군단.

세계에서도 손꼽힌다고 하는 대한민국 육군.

그중에서도, 규모 면으로 최상위권에 들어갈 군단이자…….

“저 녀석들이, 자칭 ‘강철 군단’이랬지?”

“예.”

“재밌겠네.”

“……뭐가 재밌다는 말씀이신지?”

지금은.

괴물들에 의해 점거당해 있을 군단이다.

“12군단을 점거한 괴물들이라면.”

씨익.

“저 자칭 군단이란 녀석들도 점거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잖아?”

* * *

라디오 방송이 끝난 뒤.

일단은 지속적으로 방송을 내보내기 위한 공병 몇 명은 탄약대대에 남기로 했다.

추가적인 정보를 공개해야 할 때는 또 이 설비를 이용해야 할 테니까.

“그럼, 저희는 먼저 복귀하겠습니다.”

“오냐.”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곧장 부대로 복귀하기로 했으나.

“신 병장님은, 정말 같이 안 가셔도 되겠습니까?”

“응. 볼일이 조금 있거든.”

나는 그 전에 잠시.

볼일을 해결하고 가기로 했다.

기껏 여기까지 왔으니까.

“친구 얼굴은 보고 가야지 않겠냐.”

탄약대대의 넓은 부지.

그 3분의 1 이상을 침범하고 있는 거대한 숲.

“여기도 간만이네.”

그 입구에 다가가자.

마치 나무들이 스스로 길을 열어 준 듯.

숲의 안쪽으로 향하는 잘 정돈된 길이 보였다.

그 길 위로 발을 올리자.

빠지지직…….

바닥이 갈라지면서, 나무뿌리 하나가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 들었다.

“직접 데려다주겠다는 거냐?”

내 말을 긍정하는 듯.

나무뿌리는 빠른 속도로 나를 숲 안쪽으로 데리고 진입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과거와 비교해도 한참은 더 넓어진 밀림.

그 중심부에 도착했다.

‘……여기 왜 따뜻하냐?’

분명 겨울이 왔음에도 불구.

거대한 나무에 둘러싸인 밀림의 중심부는, 마치 온실 속처럼 따스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인간과 나무를 반쯤 섞은 형체가 서 있었다.

[식재료 감별(강화)]

[숲의 여왕 - 알라우네]

처음 봤을 때는.

빼빼 마른 나무에 얼굴 모양의 무늬가 박혀 있는 것처럼 생겼던 녀석.

그 흉측한 모습은 영락없는 괴물의 그것이었다.

‘음.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일종의 ‘절약 모드’였던 듯.

내가 정성을 다해 만든 비료를 잔뜩 먹이고, 나무의 영양실조를 해결해 주자.

“그때보단 훨씬 보기 좋네.”

녀석은.

본래 그랬어야 할 모습으로 돌아왔다.

붉은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늘어트린.

장신의 아름다운 여성.

그 모습에서는, 여왕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변한 것은 그 외모뿐만이 아닌지라.

-왔구나, 나의 하나뿐인 친우여.

이 녀석.

말까지 하게 돼 버렸단 말이지.

물론, 본질은 나무에 가까운 괴물.

입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특성]

[정신 언어]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것.

[깊은 자들의 교황]도 가지고 있던 특성이다.

‘[전투력 측정기]로 알아봤을 때도 그랬지만.’

이 녀석.

상당히 고등한 몬스터라는 거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반갑다, 야.”

-후후. 말로만 그러지 말고. 자주 좀 찾아오는 게 어떤가? 친우의 얼굴을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얼마 전까지 좀 바빴거든.”

지금은.

내 요리를 통해, 베프를 먹은 상태.

[친밀도 - 상]

사극에서나 들어 본 고풍스러운 말투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깊은 친밀감이 묻어났다.

아무리 고등한 몬스터라고 한들.

딱히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는 거지.

-하도 찾아오질 않으니, 내가 그대를 찾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

“……네가 날 찾아오려면. 그 뭐냐, 저 숲이 그만큼 넓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가능해?”

-아예 불가능하진 않겠지. 하지만 그런 건 친우가 원하는 바가 아닐 것 같아서 넘어갔네.

“……어휴. 고맙다, 야.”

녀석은 정말로 나를 친근하게 생각하는 듯.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곳에 나를 앉혀 놓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얼굴 부딪히겠다.’

근본적으로 나무라서 그런지.

다른 생명체와의 거리감을 잘 모른다는 느낌.

“그나저나. 너 농부 아재한테 성질부리고 그런다며.”

-흐음. 그자가 그런 얘기까지 하던가?

“그러지 좀 마라. 착한 아저씬데.”

-사소한 장난일 뿐이다. 내 숲에 친우도 아닌 이종족이 발을 들이밀게 해 준 것이야.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래도. 일단 밥 가져다 주는 사람이잖아? 친하게 지내라고.”

-그자가 가져오는 식사도 그럭저럭 먹을 만하긴 하지. 하지만 그대가 해 준 것에 비하면 조금 모자람이 있거든.

싱긋.

-내 호의를 사려면, 친우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의 요리는 내놔야 할 것이야.

내 요리와 비슷한 수준이라.

……그건.

기준이 너무 높은데?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요리 쪽에서는, 좀 자신이 있는 편이라서.

“그래. 말 나온 김에.”

나도 피식 웃어 준 뒤.

그림자 속에 손을 집어넣어, 가져온 물건을 꺼냈다.

[전쟁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혼재된 마력의 골육분 비료]

-오오. 그것은.

“그동안 부대 방어 많이 도와줬다며. 덕분에 맘 편하게 다른 곳에서 활동할 수 있었거든. 이건 그 보답이다.”

-친우의 부탁인데 그 정도야.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만.

“그래도 받아, 인마.”

-그럼. 고맙게 받도록 하지.

주변에 비료를 뿌려 주자.

눈을 감고 그 맛에 집중하는 녀석.

-친우의 식사는 역시, 훌륭하군…….

“그래? 농부 아저씨 거랑은 조금 다른가?”

-흠. 영양만 따진다면, 그자의 것이 친우의 것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겠지.

“엥?”

이건 또 의외였다.

‘당연히 내 비료가 훨씬 더 나은 줄 알았는데?’

워낙에 내 비료를 선호하길래, 당연히 그럴 것이라 착각했는데.

의외로, 영양만 생각하면 농부 아재의 것이 더 낫다는 것.

그러면 내 비료를 더 좋아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만.

-하지만 맛의 영역에서 보자면, 둘은 비교조차 불가능할 지경이거든.

“아아. 그런 거구만.”

과연.

영양은 농부 아저씨의 것이 더 나을지언정.

맛으로는 내 것이 압도적으로 앞선다는 거다.

‘일단 둘 다 비료는 비료다만.’

식물의 성장을 돕는 게 목적인 농부의 비료.

맛을 추구하는 요리사의 요리.

그 차이에서 오는 특징이 아닐까.

그 왜, 건강식은 맛이 있기가 힘들잖냐.

딱 그런 느낌이다.

-특히 요즘은 숲의 영역이 넓어졌다 보니.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 정도는 나 혼자서도 조달할 수 있거든.

“아. 괴물을 사냥해서 양분으로 삼는다고 했었나?”

-그래. 그러니 더더욱 영양보다는 맛을 원하게 될 수밖에.

영양이 급하지 않은 상황.

그렇다면 당연히 맛을 추구하게 된다는 거다.

-그 농부가 이 맛의 반만 따라올 수 있어도 조금은 좋게 봐줄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야.

그 후로도.

한동안 녀석과 잡담을 나누었다.

이 녀석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는 어마어마하게 강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

자기 마음대로 밖으로 이동하거나 할 수는 없다는 페널티를 지닌바.

‘여기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테니까.’

내 부탁이란 이유로 부대를 지켜 주고 있는 녀석이다.

잡담을 나누기 위한 시간 정도는 투자해도 되겠지.

그렇게 한참을 잡담을 나누고 난 뒤.

“그럼. 슬슬 가 봐야겠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는가? 조금만 더 있다 가도 될 텐데.

“할 일이 좀 많거든. 빨리 부대에 돌아가 봐야지.”

-수명이 짧은 탓인가? 그대는 참으로 성미가 급하군.

하루 종일 여기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슬슬 대화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해야겠지.

-친우여.

“응?”

-떠나기 전에, 조언 하나만 해도 되겠는가.

그렇게 떠나기 전.

알라우네가, 조금은 진중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의 난 농부의 비료가 없어도 될 정도로 배부르게 지내고 있어.

“뭐야, 갑자기 자랑이냐?”

-내 숲이 넓어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단…… 숲에 들어오는 식사가 많아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

“…….”

-그 식사들이 품고 있는 마력량도 점점 농후해지고 있고.

괴물을 잡아 양분으로 삼는다던 알라우네.

그녀가 배부를 정도로 식사할 일이 많다는 건.

-내게는 좋은 일이지만, 친우에게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더군.

괴물이 많아지고 있고.

심지어 강해지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겠지.

‘당장 이 녀석만 해도.’

처음 소환됐을 땐 많이 약화된 상태기는 했다.

봉인당하지 않고 소환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힘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 시점에서도, 결코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수준의 괴물이었어.’

그 힘을 상당 부분 회복한 지금은…….

우리 부대조차, 공략을 하려면 고전해야 할 만한 강적.

지금 세상 어딘가에는.

이 알라우네와 동등한 수준의 괴물이 나타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부대라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을 괴물들이.

하지만, 뭐.

“걱정해 줘서 고맙긴 한데. 나도 알아. 나름대로 조치도 했고.”

-그런가?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보군. 역시 나의 친우.

괴물의 약점을 알리고.

좀비의 정체를 밝혔다.

그 라디오가 퍼져 나간 이상.

앞으로 인간들의 전력은 급격하게 상승할 것이다.

점차 강해질 괴물들에게도.

어떻게든 저항은 가능할 터.

‘이제 남은 건.’

그렇게 강해진 인간들을.

군단의 힘으로 받아들이는 것뿐.

-그래도. 친우로서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군.

“응?”

-아까 받은 식사의 대가로, 이걸 받아 가게.

그 말과 함께, 손을 흔드는 그녀.

그러자.

스륵…….

저 멀리서.

한 송이의 꽃이 날아와 그녀의 손에 잡혔다.

“뭐야, 먹을 거냐?”

-음? 후후. 그대의 발상은 참으로 신기하군.

아름답고, 화려하게 생긴 꽃.

심지어 그 향기마저도 지독하게 달콤했다.

제공받은 식량에 대한 보답이라 했으니.

그녀 역시, 쓸 만한 식용 꽃이라도 건네준 것인 줄 알았다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

‘……너무 사고 방식이 요리에 집중돼 버렸나?’

어쨌든, 선물인 것은 확실하니.

그 꽃에 손을 뻗으려고 하자…….

-잠깐.

“응?”

-손대지는 않는 걸 권하지.

꽃을 쥔 손을 뒤로 빼는 알라우네.

-내게는 상관없지만, 친우에게는 조금 치명적일 테니까.

“……뭐?”

그 말에.

급하게 특성을 발동시키자.

[식재료 감별(강화)]

[영혼을 녹이는 네펜데스]

눈 앞에 펼쳐진 내용은.

조금 충격적인 것이었다.

[전 차원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력한 극독을 품고 있는 식물.]

[네펜데스입니다.]

[그 아름다운 외형과 향기는 보는 이의 마음을 녹이며.]

[그 안에 흐르는 독은 닿은 자의 영혼까지 녹여 버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극히 희귀한 식재료로써, 세계수가 자리 잡은 숲 근처에서만 드물게 볼 수 있는 꽃으로…….]

“…….”

극독.

닿은 자의 영혼까지 녹여 버린다.

……이거 설마.

‘나. 방금 죽을 뻔했던 건가?’

별생각 없이 만지려고 했던 꽃에 붙어 있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살벌한 문구들이었다.

-얼마 전에야 간신히 꽃피운 아이야.

“간신히?”

-내가 막 눈을 떴을 때. 친우가 나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 아이를 꽃피울 수도 없었겠지.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

하지만.

[전투력 측정기]를 통해 본 건데.

‘옅긴 하지만, 초록색.’

이 녀석은 상당히 강력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알라우네와 비슷한, 식물형의 몬스터 같은 거겠지.

-본래는 나를 지키기 위해 피어난 아이이지만…… 이번에는, 친우에게 양보하도록 하지.

“이걸, 나한테 준다고?”

-한 번 꽃피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 아이는 어느 환경에서든 잘 자라거든. 꼭 땅이 아니어도 되고.

땅이 아니어도 자라나는 꽃.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양식으로 삼아도 문제없이 자라나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내 팔 위에, 조심스럽게 [네펜데스]를 올려놓는 알라우네.

그러자.

-띠링.

[기생초, ‘영혼을 녹이는 네펜데스’가 기생을 시도합니다.]

[우호적인 기생 요청입니다.]

[기생초의 특성 - ‘영혼 갈취’는 발동되지 않습니다.]

-이건 내 예감이네만.

[기생을 허용할 시, 기생 중에 마력 능력치가 ‘5’ 감소합니다.]

[기생을 허용할 시, 기생 중에 특성 - ‘영혼을 녹이는 독-네펜데스’가 활성화됩니다.]

[기생을 허용할 시, ‘영혼을 녹이는 독-네펜데스’ 보다 격이 낮은 모든 독에게서 면역이 됩니다.]

-이 아이의 독은…… 그대의 요리와도 궁합이 잘 맞을 것 같군.

“…….”

-나로서는 친우의 안위가 걱정되니, 이 정도는 해 둬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콰드득…….

-받아 주게나.

작은 장미처럼 생긴 꽃이 내 오른 손목을 휘감는다.

꽃에 피어 있던 가시들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따끔한 통각.

이윽고.

이 작은 꽃이, 내 마력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기생초 - ‘영혼을 녹이는 네펜데스’의 효과가 활성화됩니다.]

마치 문신처럼.

자연스럽게 손목에 자리 잡은 꽃.

-그럼 들어가게.

“……고맙다.”

-친우와 나 사이 아닌가. 이 정도 가지고 무슨.

멀어지는 나를 바라보며.

가벼운 웃음과 함께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알라우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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