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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90화 (190/227)

190화 친구 (2)

“……대단한 걸 받아 버렸네.”

나는 내 오른손에 자리 잡은 꽃.

네펜데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평생 해 본 적도 없는 문신을 이렇게 하게 되다니.’

처음에는 분명 평범한 꽃처럼 생겼었으나.

내 몸에 가시를 박으며 기생을 선택한 지금.

네펜데스는, 마치 가시 줄기 모양의 문신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면서 문신 한 번 해 본 적도 없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어색한 느낌도 있기는 하다만.

[특성 - ‘영혼을 녹이는 독 - 네펜데스’가 발동합니다.]

특성을 발동시키자.

문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투명한 액체.

그 모습은 평범하고.

특별한 색도, 향도 없지만.

‘강력한 무기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본 독들 중.

최고의 극독임은 확실했다.

독을 다루는 괴물은 몇 번 만나 보았지만.

대부분은 사제나 치료사가 치료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건.

딱 보는 순간 감이 왔다.

그 정도 수준의 독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물건이라고.

“어쩌다 보니, 약해져 있을 때를 노려서 친구 먹어 버렸지만.”

조금 힘을 회복해 내자마자.

바로 이런 식물을 피워 내다니.

알라우네의 잠재력.

내가 생각한 걸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일 수도.

“오랜만에 봤다고 이런 걸 주다니.”

이렇게 되니.

문득 드는 생각.

“좀 자주 방문할 걸 그랬나?”

그러면 몇 번 더 좋은 걸 받았을지도 모르잖냐.

……너무 양아치 같은 생각인가?

* * *

아무튼.

이번에도 나무뿌리에 안긴 채, 편안하게 숲을 빠져나왔다.

“다녀오셨습니까.”

“오냐.”

“그럼 어떻게, 이제 우리도 비마나로 복귀하면 되는 겁니까?”

여기 온 김에.

친구 얼굴도 볼 겸, 알라우네를 만났지만.

“아니. 한 곳만 더 들렀다 가자.”

“예?”

생각해 보면.

이 근처에 있는 친구는, 한 명 더 있단 말이지.

씨익.

“423대대. 여기서 가깝잖아.”

“……아!”

그동안은 바빠서 들르지도 못했지만.

우리의 시작점이나 다름없던, 산속의 부대.

그곳에는.

내 유일한 동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 * *

과거.

423대대를 떠나, 처음 지상으로 내려올 때의 일이 생각난다.

힘겨운 전투.

평범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디버프 [특별 소스]를 남발해야만 했고.

그러고도 모자라 결국에는 기절한 채로 지상에 도착했지.

하지만.

그때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전쟁 요리사의 용기가 담긴]

“끼요오오옷!!!”

“죽어라, 버러지 같은 놈들!”

조금 얘기가 달라졌단 말이지.

산을 오르는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다만, 우리 부대의 전투력도 그때와는 격이 다른바.

전투 차량이 괴물들을 갈아 버리며 산을 타고.

특출하게 강한 괴물들은 병사들이 나서서 베어버릴 수 있었다.

“이 길도 오랜만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산을 내려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이 길이 뭐라고,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슬슬 한 번쯤 423대대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은 했었지.’

423대대에 남아 있는 부대원들은 태준이를 포함해 10인 정도.

나름 떠나올 때 상당한 양의 보존식을 남겨 두고 가긴 했다만.

‘크흠. 조금 오래 방치하긴 했어.’

산을 내려갈 때는 그렇게 고생했던 우리가, 올라갈 때는 비교적 쉬워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능력을 키웠으니까.

423대대에 잔류한 병사들은,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이 산맥에 처박혀 있어야만 했던 거고.

한 번씩, 이쪽에도 들러야 한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만.

그동안 워낙 바빴다 보니.

슬슬 들러 볼까~ 할 때면 새로운 사건이 터져 버리는 통에, 도무지 타이밍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 겨울이 온 참.

외부 활동을 줄이고, 내부의 관리에 들어가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쪽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

‘슬슬 식사도 떨어질 때가 됐을 테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생산직들의 수준도 상당히 올라온바.

423대대의 병사들은, 그 수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레벨이 10도 되지 않던 시절의 이상아가 만든 장비를 착용하고 있을 터.

‘그마저도 방어구뿐, 무기는 여전히 상점산이겠지.’

태준이 녀석의 ‘점성술’로 큰 위기가 온다면 미리 알아낼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한들.

여러모로 불안정한 건 사실이란 말이지.

사실상 방치되어 있던 이들.

군단장으로서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 제대로 스펙 업을 시켜 줘야지.’

지금 내 [그림자의 장막] 속에는.

그들에게 넘겨줄 보급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교전을 거치며 산을 타자.

우리는 곧, 이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

423대대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

“……어, 뭐라 해야 하나.”

대대의 입구를 본 병사 중 한 명이.

아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부대, 원래 저렇게 생겼습니까?”

“……아니. 그럴 리가 있냐.”

부대를 떠날 때만 해도.

조금 삭막한, 평범한 군부대의 모습이었던 423대대.

그곳이 지금은.

“……저 화려한 수실들은 대체.”

“저 부적들은 또 뭐고?”

군부대라기보다는…….

그래.

“……무당집?”

점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점 집 안에서.

“왔냐, 영준아.”

군복을 입은 점쟁이.

휠체어를 탄 박태준 병장이, 허허 웃으며 우리를 마중 나왔다.

방문하겠다는 소식을 전한 적은 없지만.

마치 이때쯤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부대 복귀를 환영하마.”

* * *

오랜만에 찾은 부대.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생활관…… 저기가 보급반 건물이고. 시설반 건물에…….’

건물들의 배치를 보면.

분명 우리가 알던 그 부대가 맞단 말이지?

“야. 태준아.”

“음?”

“오랜만에 얼굴 보자마자 질문부터 하게 돼서 미안한데……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하하. 풍경이 좀 바뀌긴 했지?”

우리도 산에 있던 시절과 달리.

시간이 지난 지금은 휠체어도 익숙해진 건지.

휠체어를 끌면서 아무렇지 않게 우리를 안내하는 박태준 병장.

‘여기 길도 상당히 거친 편인데, 뭐 저리 부드럽대.’

뭐랄까.

태준이 녀석의 분위기도, 몇 개월 전에 봤을 때와는 상당히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20대 초반의 군인 청년이라기보단, 글쎄.

수십 년을 굴러먹은 베테랑 무당이나.

아니면 뭐, 산속에 사는 신선 같은 느낌.

“조금? 그 정도가 아닌데, 이건.”

“뭐, 내가 봐도 조금 화려하게 저질러 버렸구나, 하는 생각은 있긴 해.”

온갖 화려한 색상 수실이나, 부적.

중간중간 보이는 건물의 벽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인지 문자인지가 새겨져 있기도 하고.

평범했던 길에는 커다란 돌을 쌓아 만든 돌탑 같은 것도 있었다.

‘무슨 유적지에서나 볼 법한 풍경…….’

오랜 시간 산맥에 틀어박혀 있던 녀석들.

생각해 보면, 휴가도 없이 몇 개월을 부대에 처박혀 있던 셈이다.

밥도 맛없는 보존식밖에 먹지 못했을 테고.

어.

이거 혹시?

“스트레스로 정신 이상이라도 생긴 건.”

“뭐 인마?”

“당연히 아니겠지? 하하하…….”

“…….”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박태준 병장.

아무튼.

스트레스로 인해 이상 행동을 보이거나 한 게 아니라면.

이 풍경에도 나름 이유가 있긴 할 텐데.

“뭐, 뻔한 거 아니겠냐.”

“……?”

“내 능력을 위해서 한 거다.”

다행히도.

병사들이 미쳤다거나, 그런 건 아닌 모양.

“저 화려한 장식들이나 돌탑 같은 게, 네 능력에 도움이 된다는 건가?”

“그래.”

박태준 병장의 직업은 [천문관].

별의 행로를 엿보며 미래를 점치는 직업이다.

“네가 내 닉네임으로 무당을 추천해 줬을 때는,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었다만.”

“큭큭. 잘 어울리잖아.”

“뭐, 네 말대로다. 본질을 따지면 무당하고 큰 차이가 없는 것도 맞더군.”

무당집에서나 볼 법한 이 여러 가지 장식들.

그게 녀석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거겠지.

“원래는 나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됐다.”

“응? 그러면 어쩌다 이렇게.”

“벌써 까먹은 거냐? 녹색갈기 부족.”

“아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까지 우리와 전쟁을 치렀던 녹색갈기 부족.

그중에는.

이 녀석과 비슷하게 별점을 보는 ‘주술사’라는 존재들이 있었다.

‘이 녀석은 혼자서 그 주술사들과 영적인 대결을 벌여야만 했지.’

그때는 태준이 녀석이 말을 안 해서 몰랐다만.

이 풍경을 보아하니.

‘10명 남짓한 병사들이 작업하기에는 꽤나 빡세 보이는 양이란 말이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쪽에서는 상당한 격전이 오갔던 모양.

“지리적으로는 내 쪽이 우위였지. 근처에서 가장 별과 가까운 곳이니까. 하지만 저쪽도 수완이 만만치 않게 노련하더군. 숫자도 많았어. 그렇다 보니…….”

“다른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저 장식들은 모두 점성술에 의미가 있는 배치다.”

그렇게 듣고 보니.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장식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호기심에, 그 돌탑에 쌓인 돌을 하나 쥐어 보려고 했으나.

곧바로 태준이 녀석의 제지가 들어왔다.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아주, 아주아주 골치 아파질 거야.”

“크흠.”

“신기해 보이는 건 이해하지만. 가급적이면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면서.

부대의 변화한 풍경을 보며, 안쪽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슬슬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되자.

‘그나마 다른 건물들은 양반이었네.’

저 멀리.

다른 건물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장소가 보였다.

우리 부대가 존재했던 이유이자.

이 드높은 산맥에서도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자리 잡은 장소.

아니, 물건.

‘레이더 반.’

레이더 반 왕고.

태준이 녀석이 근무하던, 바로 그곳이었다.

“맙소사. 뭘 이렇게 꾸며 놓은 거야?”

“말했잖냐. 다 필요에 의해서 한 일이라고.”

어이가 없어서 물어보자.

덤덤하게, 레이더 반의 건물을 매만지는 박태준 병장.

“영준아. 너는 레이더 하면 뭐가 떠오르냐.”

“응?”

갑작스러운 질문.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다만.

“글쎄다. 주변을 탐지하고, 위기를 감지하는 물건 정도?”

“정확한 정의는 아니지만, 정답이다. 네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겠지.”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 대답하자.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박태준 병장.

“주변을 탐지하고 위기를 감지하는 물건. 그런 의식이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면서도, 특별한 물건이라는 인식 또한 존재하지.”

“…….”

“아마도, 내가 천문관이 된 것도 이 레이더를 다루는 병사였기 때문이겠지.”

취사병인 내가, 요리사가 된 것처럼.

통신병인 이민재 병장이, 전파의 마법을 각성한 것처럼.

우주에 떠 있는 위성과 소통하며.

주변을 탐색하고, 위기를 감지하는 레이더 반 병사.

박태준 병장은.

별과 소통하는 천문관이 되었다는 것.

“그런 만큼…… 내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최고의 장소야.”

“그런건가.”

“뭐, 레이더 자체는 반쯤 고물이 돼 버렸지만. 그럭저럭 내 능력을 증폭시키는 데에는 쓸 만하다, 이거지.”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이 여기에 틀어박혀서 고생해 준 덕분에.

우리 부대의 위기가 많이 줄어든 셈이다.

“여기서 네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많이 고생했나 보네.”

“고생이랄 거야 있나. 군 생활이 다 그런 거지, 뭐.”

생각이 많아졌다.

지상에 내려간 시점에서, 100명의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던 우리 부대.

그 강함은 이미 상당한 편이었다만.

지상의 적들은 그보다도 강력한 이들이 많았다.

이 녀석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니.

이 녀석과 다른 부대원들이 이 산맥에 남아 고생하기를 자처해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부대는 진작에 전멸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병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고맙다.”

아마 한참 전에 했어야 할.

늦어 버린 감사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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