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91화 (191/227)

191화 손님

“고맙다.”

“고맙긴. 나는 여기 앉아서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는데 뭐. 고마울 만한 짓은 다른 녀석들이 다 해 준 거다.”

박태준 병장과 함께 부대에 남았던 10인.

대부분이 레이더반 출신으로, 박태준 병장의 친한 후임들이다.

“저희야 뭐. 박태준 병장님 보좌하는 게 임무 아니겠습니까.”

“큭큭. 그래도, 저 수실을 무슨 센티미터 단위로 매달라고 명령하실 때는, 진짜 고생하긴 했죠.”

지상에서 전우애를 다져 간 우리와 비슷하게.

산 위에 남아 있던 녀석들에게도, 그들만의 유대감이 형성된 듯.

털털하게 웃는 녀석들.

‘산속에 오래 있었던 탓인가?’

아니면, [무당]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태준이와 오래 함께 있어서 그럴까.

병사들에게서도 무언가 내려놓은 듯한.

자연인 같은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비마나가 있는 춘천도 그렇고. 알라우네가 자리 잡은 탄약대대도 그렇고.’

뭐라고 해야 하나.

우리는 분명, 군부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간부도, 병사도.

그 계급 체계 역시, 군부대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과거의 군부대와는, 전혀 달라져 버렸군.’

그 형태는.

평범한 군부대와는, 상당히 거리가 생겨 버린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건가.’

변화해 버린 세상.

그 세상이, 살아남기 위해 요구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인 것이겠지.

‘뭐, 나쁘지 않아.’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변화해 가고 있는 모습.

상당히 바뀌어 버린 모습인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서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군부대와는 다른 모습.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쌓아 올린, 군단만의 힘이니까.

* * *

그렇게 병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묘하게, 라고 해야 하나.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저 군복.’

우리가 입고 있는 군복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묘하게 해지고 낡은 느낌.

그도 그럴 게.

저 옷을 만들었을 당시.

옷의 제작자인 이상아 조장은 [신입 재봉사]였다.

‘아무래도 질이 좀 딸릴 수밖에.’

당시에는 저것만 해도 엄청난 사기템 취급이었으나.

[식재료 감별(강화)]

[중급 재봉사와 중급 대장장이와 중급 공병의 정성이 들어간 합작, 강철 군단 지휘관 전투복 Ver.9 - 군단장 커스텀 개량형]

‘이름 더럽게 길어졌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과 비교하면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

그동안 생산직들의 레벨도 많이 오르고, 재료도 다양해졌다 보니.

[리자드 외 12종의 몬스터 가죽으로 만들어진 전투복입니다.]

[덧댄 합판은 맥의 마력으로 광물을 강화한 후, 특수한 방법으로 재련 및 가공되었습니다.]

그 성능은.

저들이 입고 있는 초창기 버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여기 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것 때문이기도 하거든.

“뭐, 너희 얘기는 잘 들었고.”

레이더반 병사들이 주로 생활하는 장소인 레이더실.

나는 그 안에 들어간 뒤.

“간만에 보급이다, 자식들아!”

“오오……!?”

[그림자 장막] 속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꺼내 들었다.

“새 군복……!”

“예전 것보다 때깔이 훨씬 좋은데요?”

“미친. 이건 겨울용 롱패딩 같은데? 이것도 장비 아이템인 겁니까?”

병사들의 체형은 과거 이상아 조장이 옷을 만들면서 알아 둔 상태.

녀석들을 위한 최신형 군복이 가장 먼저 지급되고.

“무슨 무기가 스탯이……!”

박 씨 할아버지가 산맥을 내려간 뒤, 지상에서야 각성하셨던 탓에.

이 녀석들은 맛보지도 못했던 [아이템]으로써의 무기까지.

“레벨이 10은 오른 것 같군.”

장비를 받은 박태준 병장.

그가 주섬주섬 군복을 걸치며 말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도 아니었다.

“끙차.”

“어…… 이건 뭡니까?”

“태양광 패널이랑, 배터리.”

우리가 최근에 확보한 태양광 발전소.

거기서 가져온 태양광 패널이었다.

“태양광 패널이라니.”

아연하게 그걸 바라보는 녀석들.

전기는 끊긴 지 오래다.

그동안 꽤나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겠지.

“여기야 뭐, 산속이니까 땔감은 넘치겠지만. 전기야 늘어서 나쁠 거 없잖냐.”

심지어 이제 겨울이 오고 있으니까.

여기는 화염 계열의 마법사도 없겠다.

어느 정도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

“……근데 저희 이거 쓰는 법을 모르는데요.”

“나는 뭐 알겠냐. 같이 온 공병들이 설치해 줄 거야. 그러려고 데려온 애들이기도 하고.”

애초에.

이곳에 한 번 보급차 들리려고 생각한 이유.

그중에는, 겨울나기에 대비한 이런저런 장비들을 지급하고자 하는 이유도 컸다.

“세상에…….”

“저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동안, 밑으로 내려간 부대는 얼마나 성장한 겁니까? 대체…….”

보급품들을 전달받고.

그 성능에 경악하는 병사들.

‘고작 이걸로 저렇게 감탄하는 건 좀 서운한데.’

아직 가장 중요한 보급은 이뤄지지도 않았거든.

마지막으로.

“전투 식량이다.”

“……!”

내가 직접 만든 식량.

전투 식량들이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꺼내 든 전투 식량들.

그 식량들을 본 박태준 병장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육포가 전부가 아니군?”

“흐흐. 영광으로 알아.”

태준이 녀석의 말대로다.

지금 내가 꺼내 든 전투 식량들.

그 대부분은 육포가 아닌.

“도시락이라.”

“여기서 고생해 주고 있는데. 육포만 딸랑 던지기는 좀 뭐해서.”

도시락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제 저 전기가 있으면 냉장고나 전자레인지도 쓸 수 있을 거 아냐?”

“냉동 도시락 같은 개념인 거냐?”

“뭐, 기본적으로는 냉장고에 넣을 필요도 없긴 할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전투 중에 간단하게 먹는 데에는 여전히 육포만 한 게 없다.

그 형태를 포기할 일은 없겠지만.

‘이 녀석들은. 전투를 위해 전투 식량이 필요한 경우는 드물 테니.’

이렇게, 그냥 보존식이 필요한 경우.

도시락 형태의 전투 식량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해 본 것.

[전투식량]의 스킬명은 [전투식량]이지, 육포가 아니니까.

안 그래도 묘양사의 스님들에게 칼로리바를 만들어 주면서, 다른 방식으로 이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을 연습해 두었다.

그렇게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서 완성된 것이 바로 이 도시락 세트.

423대대의 병사들이.

그 첫 번째 고객님이 되겠지.

“이 녀석은 내가 직접 갓 만든 요리랑 비교해도 성능이 크게 꿀리지 않아. 맛은 뭐, 당연한 거고.”

“아……!”

“하긴, 신 병장님 요리도 안 먹어 본 지 오래되긴 했죠.”

신기하다는 듯.

포장된 도시락을 살펴보는 녀석들.

“손이 좀 많이 간다는 게 단점이긴 한데. 그거야 뭐, 내가 좀 고생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 반응이 묘하게 덤덤했다.

이유야 짐작이 간다.

‘이 녀석들은 내가 저레벨일 때의 요리밖에 못 먹어 봤으니까.’

내가 제대로 한 요리와 비슷한 맛이라고 한들.

그게 어느 정도인지 알기 힘든 거겠지.

뭐.

그런 거야 걱정 없다.

‘한 번 먹고 나면 저 반응도 360도 뒤바뀔 테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태준이 녀석이 도시락 중 하나를 집어서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큭.”

뭘 하나 싶어 구경하고 있자니.

갑자기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는 박태준 병장.

“뭐가 그렇게 웃기냐?”

“아니. 영준이 너. 완전 천상 요리사가 되어 버렸구나, 싶어서 말이지.”

“……크흠.”

사실.

안 그래도 최근에 조금씩 지적받던 부분이다.

‘직업병인지 뭔지.’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그걸 요리와 결부 짓는 버릇 같은 게 생겨 버린 것 같단 말이지.

“그 신영준이 이렇게 변하다니.”

“내가 뭐, 인마.”

“뭐긴. 기억나냐? 우리 처음 전입 왔을 때, 너 식당 일 하루 했다고 엄청나게 우울해했던 거.”

“크흠. 그거야, 뭐.”

지금은 없어진 악폐습이다만.

내가 신병일 시절에만 해도 온갖 힘든 일은 모조리 막내의 역할이었거든.

“식당 일 시작한 첫날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퍼다 옮기는 일부터 해야 했으니. 현타가 안 오고 배겨? 그 짬 냄새 생각하면 진짜.”

“그랬던 녀석이 지금은 천상 요리사라. 웃음이 나올 수밖에.”

이 녀석.

박태준 병장은, 나의 유일한 동기다.

나와 녀석이 말년 병장이 되어 버린 지금은.

내 이병 시절부터 함께 지냈던 유일한 병사.

그런 녀석에게는 지금의 내 모습이 꽤나 재밌게 보이는 모양.

“야, 그런 거로 따지면 너도 맞선임한테 억울한 일로 욕먹었다고 그렇게 우울해했으면서.”

“그때는 박뱀이 이상했던 거고!”

그 후로도.

나는 태준이 녀석과 한동안 잡담을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군대 동기.

서로 전역도 못 한 채 군대에 묶여 버린 말년 병장.

‘동등한 관계.’

최근.

나에 대한 과대평가가 너무 퍼져 버린 탓일까.

나름대로 친근하게 다가가고는 있으나.

부대원들은 나를 높은 사람으로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군단장님이니, 길드장님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취사병이었던 나다.

나를 높은 사람으로 보는 이들에게는 나 역시 높은 사람으로서 대응해야 하는 법.

솔직히 조금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이 녀석은 아니야.’

오가는 대화의 90%는 별 영양가 없는 잡담이었으나.

간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

실없는 얘기였기에 오히려 더 즐거웠다.

* * *

“영준아, 그거 아냐?”

“뭐, 인마.”

그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태준이 녀석이 말했다.

“나. 네가 여길 찾아올 거란 거 알고 있었다?”

“아…… 그 점성술로?”

“그래.”

뭐,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지.

내가 온다는 걸 말하지도 않았음에도.

미리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녀석 아닌가.

“네 의지하고 상관없이 랜덤하게 발동되는 능력이라는 거치곤, 상당히 사소한 곳에서도 발동하는구만?”

내가 클클 웃으면서 말하자.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내젓는 박태준 병장.

“그건 아니야.”

“……응?”

“네 말대로 사소한 곳에서 발동할 때도 있기는 하다만, 이번엔 아니거든.”

“그게 뭔.”

“상당히 중요한 부분에서 발동한 거다.”

그 말은.

간만에 본 동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든가.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처음 그 별의 운행을 보았을 때는 네게 연락해서 이곳을 방문하는 걸 막으려고도 했었지.”

“…….”

“하지만,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하다 보니 오히려 이쪽이 이득이 될 수도 있겠더군. 내 판단이 정확할지 어떨지는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만.”

이어지는 내용은.

더더욱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영준아, 너와 민재 형이 한 일에 대해서 나는 감탄밖에 안 나온다.”

나와 민재 형이 한 일.

라디오를 통해.

괴물들과 좀비에 대한 정보를 푼 것을 얘기하는 거겠지.

“대단한 일이었어. 아마도, 그 일로 인해 구원받을 인간의 숫자도 상당하겠지. 하지만.”

별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리는 박태준 병장.

“나와는 달리 네가 한 짓을 불쾌해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거야 뭐…….”

나도 바보는 아니다.

우리가 한 짓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고.

알면서도 한 짓.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일이야.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거라고 봤고.”

“나도 안다. 틀린 판단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만……. 감수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

“……?”

가벼운 말투로 말하는 녀석.

“그 감수할 때가 조금 빨리 왔다.”

“뭐?”

“라디오에서 여러 거점들을 얘기할 때, 423대대에 대한 얘기를 안 한 건 잘한 짓이었어.”

라디오 방송에는 군단의 거점에 대한 얘기가 포함되었다.

생존자들이 우리를 찾아와 우리 영향력 아래 놓이게 하기 위한 의도.

하지만.

이곳은 생존자들을 수용하기에는 영 애매한 장소.

탄약대대나, 벙커, 춘천시 등은 얘기했지만.

이곳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 손님이 오고 있을 거다.”

우리 부대원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곳.

423 레이더 대대야말로, [강철 군단]이 시작된 곳이며.

여전히 군단병들이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네가 한 일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깽판을 놓고 싶어 하는 손님이.”

“……기껏 만났는데. 얘기 나눌 시간도 없구만.”

나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위치는 어디지?”

녀석이 말한 손님을.

마중 나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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