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계약
12군단.
강원도 북부 지역의 방위를 맡는 대한민국 최전방 군단 중 하나.
국경에 맞닿아 있는 군단인 만큼.
12군단이 가지고 있던 전력은 상당했다.
물론.
“지금은 모두 전멸해 버렸지만요.”
“그만큼 강한 괴물들이 나타났으니, 어쩔 수 없지.”
군단에 소속되어 있던 부대들은 지금.
그곳을 침범한 괴물들에 의해 대부분이 점거당한 상태였다.
그런 군부대 중 한 곳에.
일단의 무리가 접근했다.
“이곳인가…….”
멸망의 날 이후.
괴물들에 의해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다.
평범한 인간들로서는 저항할 수조차 없었던 강력한 짐승들.
“여기가 12군단의…….”
“군단 본부.”
하지만, 그런 강력한 괴물들조차.
군부대를 점거하고 있는 괴물에 비하면 강하다 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부대 규모 자체는 엄청 크지는 않지만, 무려 본부니까요. 상당한 괴물들이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꿀꺽.”
드물게 군부대 외에도 강력한 힘을 가진 괴물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강해질 수 있다거나.
아니면 던전과 같은 특수한 환경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등의 조건이 따른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
상당한 숫자의 각성자를 거느린 그룹이라고 한들.
군부대 근처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일 정도였다.
즉.
“이 녀석들을 풀어놓는다면.”
“저 군단이라는 이들도 큰 피해를 입겠지.”
강철 군단이라는 이름은 화려하지만.
그래 봐야 각성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이들.
그 군단이란 이름조차 별명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가지고 있던 강력한 전력.
자칭 군단과는 격이 다른 진정한 군단.
그 12군단을 전멸시킨 괴물을 이겨 낼 수는 없을 터.
그렇기에.
이들은 모든 생존자들이 기피하는 군부대를 찾아왔다.
“……후욱. 후욱.”
5명으로 이루어진 그룹.
개중에는 노인도 섞여 있었다.
대부분은 덤덤한 태도였으나.
그들 중 일부는 크게 긴장한 듯.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모두들 떨지 말게.”
그룹의 리더 격인 사내.
그가 떨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긴장하는 건 이해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조장님…….”
“하지만, 명심하게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손을 잡아 주는 사내.
“우리의 희생이 인류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맞습니다.”
“조금 떨리긴 하지만 그만둘 생각은 없어요.
그렇게.
떨리는 몸을 억누르며 군부대 근처로 접근하는 이들.
“그럼 이제 다 함께 기도하세나.”
군부대의 입구 근처에 도착하자.
그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더니.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우리 영혼의 주인이시여.”
그들이 기도하는 대상은 예수도, 부처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것은 기도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계약을 바랍니다…….”
그 순간.
주변 일대의 공기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 모두가 직감했다.
“주인님께서.”
“이곳을 보고 계신걸세.”
그들의 주인이.
계약에 응해 이곳을 지켜보고 있노라고.
그 사실에.
몇몇 인간들은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실존하시는구나.”
“실존하지도 않던 가짜들과는 달라…….”
“진정한 신…….”
그렇게.
감격에 찬 목소리가 이어지고.
“저와 제 동료들 5인의 육과 영혼을 바치겠나이다. 그 대가로…….”
그룹의 리더는.
이곳을 방문한 이유를 그 입에 담았다.
“저 군부대를 점거하고 있는 괴물들에게 자유를 선사해 주십시오.”
잠시 뒤.
그들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
[계약은 성립되었다.]
“아아……!”
“그분께서 응답하셨…….”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려던 순간.
퍼억…….
그 자리에 앉아 있던 10명가량의 인간들.
그들의 몸이 가루로 변하는가 싶더니 허공으로 흩날린다.
그들이 바친 것은.
자신들의 육과 영혼.
즉.
존재 그 자체.
그리고
그 대가를 받은 이가 제공할 것은…….
괴물들의 자유.
12군단의 중심에 자리 잡았던 군단 본부.
그 부대를 완벽하게 전멸시킨 강대한 괴수.
[데스클로]
그가 자유를 얻었다.
머릿속을 꽉 채우던 상념에 지배당한 채.
몇 개월을 사냥도 하지 못하고,
군인들의 시체를 뜯어먹고 지내야만 했던 괴수.
-크륵…….
오랜 기간 굶주려 왔던 괴수가 몸을 일으켰다.
간만의 사냥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 * *
“손님이 오고 있을 거다. 네가 한 일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깽판을 놓고 싶어 하는 손님이.”
나와 대화를 나누던 박태준 병장.
그가 뜬금없이 꺼낸 말.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손님이 온다는 얘기 자체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찾아온 것은 이상아 조장을 비롯한 생존자들이었지.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른 모양.
깽판을 놓고 싶어 하는 손님이라는 건.
즉.
‘적이 온다.’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태준이 녀석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지?”
“3번 초소 근처. 그쪽에 있으면 다 잘 될 거야.”
“병사들, 다 따라와.”
내가 데리고 온 병사들.
그리고 423대대에 머무르고 있던 병사들까지.
병력들을 데리고 레이더 반을 나섰다.
적이 온다고 했던 방향은 3번 초소.
레이더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외곽 초소였다.
‘굳이 레이더에서 얘기한 것도 이유가 있었던 건가.’
적이 가까운 곳으로 오고 있으니, 그곳에 부른 것.
그 의도 자체는 이해가 가지만.
왜 이제 와서 말한 건지는 조금 의문이 남았다.
‘그건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병사들과 함께 내달리니.
곧.
“3번 초소. 여깁니다!”
“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니, 잠깐.”
그렇게 우리가 3번 초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태준이 녀석의 말과 달리, 아무도 없어 보이는 빈 초소.
하지만.
-자…… 그럼 다 같이.
저 멀리서.
누군가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의 영혼의 주인이시여.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좋지 않은 일을 하려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렇기에.
[보조 셰프]
허공에 날아오르는 식칼과 요리 도구들.
[보조 셰프]는 나와 특성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스탯은 공유하고 있는바.
얼마 전.
[다스무르 요리사]의 스탯을 흡수한 뒤.
안 그래도 높던 나의 스탯은 더욱더 높아진 상태.
파아아아아앙!
그 스탯이 고스란히 적용된 결과.
허공에 떠 있던 요리 도구들이 파공성을 내며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계약의 대가로, 저희 다섯의 영혼과 육신을 바칠 테니…….
뭐라 중얼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그는 그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이곳에 자리 잡고 있을 괴물들의 주박을 풀어 주십시……!
콰아아아앙!
-크윽!?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사이.
나와 부대원들 역시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간들?’
적이라고 하기에 어떤 존재일까 했더니.
그곳에 있는 것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다섯 명 정도의 인간들이었다.
‘괴물도 아니고. 평범해 보이는 인간들이 왜 우리를……?’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약탈자라고 보기에도 묘하게 분위기가 다른 느낌.
그리고,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아, 안쪽에서.”
“사람이 나오다니……!?”
나와 병사들을 보고는.
크게 당황한 듯 중얼거리는 이들.
“이, 인간형 몬스터인가?”
“……아니. 부대를 점거하고 있던 괴물이라면 저 부대를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인간…… 아니.”
그 당황도 잠시.
허리춤에 달려 있던 무기를 빼어 드는가 싶더니.
우리를 향해 겨누며 소리치는 남자.
“[군단]이다!”
대놓고 우리 길드명을 말하는 녀석.
우리가 송출한 라디오를 들은 것은 물론.
우리 모습을 보고 그 라디오를 송출한 이들이라고 판단할 정도의 눈치는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치가 좋다고 해 봐야 어디까지나 거기까지인 듯.
“얘들아.”
“예!”
“부대 근처에 거수자들이 있네.”
칼을 뽑아 들어?
감히, 누구 앞에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평범한 모습의 각성자들.
그 모습을 보고.
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뭐 하냐. 안 잡아 오고?”
“충성충서어어엉!!!”
그걸로 충분했다.
* * *
“충성. 거수자들 전원 생포 완료했습니다.”
“고생했어.”
부대 근처에서 붙잡힌 거동수상자들.
“크윽…… 죽여라!”
녀석들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쳤다.
‘죽이긴 무슨.’
우리 부대의 범죄자 대우는 조금 다르거든.
죽지도 못하고 부대를 위해 일해 줘야겠지.
“크흐흐…… 네놈들 그 라디오를 송출했던 군인들이겠지.”
“그래. 잘 아네.”
그런데.
우리를 보고 뭐라고 입을 여는 사내.
“큭큭. 네놈들은 자신들이 정의의 사자라도 된 줄 알겠지.”
……아닌데?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나 싶어 지켜보고 있자니.
“하지만 그거 아나?”
우리에게 무릎 꿇려진 상태임에도 불구.
조금도 기세를 잃지 않고 흥분한 채 소리 지르는 남자.
“네놈들이 하는 짓은 결국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다!”
“……?”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다. 나와 내 동포들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아까부터 뭔 개소리야.”
대체 우리가 뭘 했다고 저렇게 화난 건지.
조금 궁금해진 나는.
‘뭐 하는 놈인지 일단 좀 볼까.’
그런 그를 유심히 바라보며.
특성을 발동했다.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
여기까지는.
언제나 보던 내용 그대로.
그런데.
그다음에 나온 문구가 조금 이상했다.
[직업 : 악마 계약자 Lv.14]
“…….”
뭐지.
내가 뭘 본거지.
[특성 - 봉헌]
[사냥한 적의 몸과 영혼을 악마에게 바침으로써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스킬 - 계약]
[악마와의 계약을 이행합니다.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대가에 걸맞은 요구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살벌한 직업명에.
각각 1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특성과 스킬까지.
“악마 계약자라.”
“……!? 그, 그걸 어떻게.”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리자.
내 말을 들은 인간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게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앞에 보이는 정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얼마 전에 만났던 어둠의 정령.’
그 녀석이 분명.
[악마의 하수인].
이라는 설명이 있었지.
악마라.
그 녀석이 실제로 악마인가 아닌가는 둘째 치더라도.
무언가 강력한 존재일 것이란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난 그런 존재의 하수인에게 목숨을 노려진 적도 있단 말이지.
‘안 그래도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설마하니.
그쪽 관계자분이 이렇게 굴러들어 올 줄이야.
씨익.
“마침 잘됐네.”
“무, 무슨 말이냐.”
“그쪽한테 묻고 싶은 게 많거든.”
내가 웃으면서 다가가자.
적들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의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어 갔다.
“……설마, 우리의 정체까지도 파악하고 있었단 건가?”
그런 거 아닌데.
내 말을 어떻게 오해한 것인지 경악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녀석.
“인도자님에게 들었을 때는 그런 말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더 위험한 녀석들이었군.”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리는 남자.
그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잠시 뒤.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악마여! 계약을 요청합니다!”
“……!”
허공을 보며 소리를 치는 녀석.
딱 봐도 뭔가 이상한 짓을 하려는 모습이었다.
“뭔가 하려고 한다!”
“막아!”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이 급하게 달려들었다.
남자의 온몸을 바닥에 꿇리고, 입까지 틀어막았으나.
“읍읍……! 읍읍읍!!!”
“조용히 있어!”
입을 막힌 상태임에도 불구.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는 녀석.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쿠우우우웅…….
“……!?”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산속의 군부대.
그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미친.’
내용까지 듣지는 못했지만.
입이 막힌 상태에서 사내가 내뱉은 말.
‘완벽한 언어가 아니어도 된다는 건가.’
그게 뭔가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갑자기 공기가 뒤바뀌어 버린 공간.
그 안에서 나는.
‘저기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무언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