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독
군단의 대장장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준 요리 도구들.
그 요리 도구들의 위로.
무색무취의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나중에 설거지 제대로 해야겠네.’
아무튼.
그렇게 새로이 무장한 요리 도구들이 다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나 역시 마찬가지.
다시 전투에 참여한 [보조 셰프]들을 따라 괴물을 향해 다가간 뒤.
서걱-
내 칼질이 그나마 닿는 곳.
발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역시, 얕다.’
방금까지와 마찬가지.
확실하게 베이긴 하였으나.
뼈나 혈관 등.
치명상을 줄 수 있는 곳까지는 닿지 못한다.
짧은 무기의 한계상, 이 정도로 큰 괴물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는 없단 거지.
“신 병장님!”
내가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것일까.
몇몇 병사가 내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녀석, 신 병장님하고는 상성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여긴 저희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신 병장님은 일단 안전한 곳으로…….”
괜히 군단의 병사가 아니다.
전장을 보는 눈이 꽤나 발달한 녀석들.
내 칼질이 저 거대한 괴물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겠지.
꽤 좋은 판단이기는 하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예?”
나는 그런 녀석들의 만류를 무시한 채.
몇 번을 더 발목에 칼을 휘둘렀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쿠우우웅……!
내 칼질로는 몸통에 상처 하나 내기도 힘들었을 거대한 괴물.
그 거대한 괴물의 발 중 하나가.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 내렸다.
“……!”
“이게 대체 무슨?”
정확히 말하면.
내가 베어 내고 있던 바로 그 발이.
“……신 병장님이 하신 건가?”
“아니, 요리를 먹이신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뭐.
간단한 것이었다.
[영혼을 녹이는 독 - 네펜데스]
얼마 전.
약골인 나를 걱정해 준 친구에게서 받아 온 바로 이것.
‘저 괴물을 [전투력 측정기]로 관찰했을 때 보인 색이 짙은 초록색이었지.’
그리고 그건…….
‘내 손목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꽃도 마찬가지다.’
숲의 지배자라고 하는 알라우네.
그 알라우네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꽃피워 낸 강력한 개체.
특히, 네펜데스는 다른 전투능력은 전무함에도 불구.
그 강력한 독 하나만으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꽃이다.
아무리 거대하고, 강력한 괴물이라고 한들.
아예 독이 통하지 않는 무생물 같은 게 아니고서야.
쿠웅…….
“쓰, 쓰러진다!”
저렇게.
무기력하게 쓰러질 수밖에 없단 것.
‘덩치가 큰 만큼 독이 통하는 것도 느린가 보군.’
뭐, 이렇게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칼질 한 번에 저런 결과가 나온 건 아니긴 하다.
내가 저 녀석의 다리를 베며 독을 주입하는 사이.
독을 품고 날아간 요리 도구들 역시.
이곳저곳을 베면서 독을 주입했을 테니.
그 효과가 이제야 나타난 거겠지.
-끄륵……!
어떤 칼질을 당해도 멀쩡한 듯 소리쳤던 괴물.
그 괴물이 쓰러진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발버둥 친다.
나는 그 모습을 생각했다.
‘이 독은…… 나와 상성이 너무 좋다.’
내 직업은 요리사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전투에도 자주 나서는 편이다.
그리고 전투에 임하는 경우.
내 전투법은, 전사라기보다는…….
‘암살자에 가깝지.’
나는 비전투직 각성자니까.
전투 관련 특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는 공격 능력이 떨어진다는 걸 말하기도 하지만.
방어 능력도 떨어진다는 걸 의미하니까.
‘막말로 물몸이란 거지.’
전투 식량들을 잘 섞어서 먹으면 그나마 나아지긴 한다만.
그런 식의 도핑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면.
지난번, [녹색갈기 암부] 같은 녀석의 칼질 한 번에 두 동강이 날 수도 있는 몸.
그렇기에.
내 전투는 다른 병사들이 어그로를 끌고 있을 때.
[환경동화]를 통해 등 뒤를 공격하는 것이 메인이었다.
‘완벽한 전투 스타일은 아니었지.’
문제는 그렇게 뒤통수에 칼을 꽂는 데 성공했다고 한들.
그 적에게 치명상을 주는 데에 실패한다면.
나를 눈치챈 적의 공격을 받아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만.
‘이제는 아니야.’
한 번에 죽이거나 치명상을 입히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 한 번의 공격에 치명적인 독이 발려져 있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지니까.
얼마 전에 얻은 저 독으로 인해.
한 번의 기습의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버린 것.
‘내 칼질뿐만이 아니지.’
[보조 셰프]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인 나와 스탯만 공유할 뿐.
특성은 공유하지 못하는 스킬.
내 스탯이 상당한 만큼 나름대로 쓸 만하긴 했으나.
아무래도 공격력에서는 한계가 명확한 편이었다.
그 문제 역시.
저 독을 바름으로써 반쯤 해결이 되어 버렸다.
다른 전투 특성이 모자란 것은 여전하지만.
적어도 생명체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라면.
공격 능력만큼은 차고 넘칠 수준이 되어 버렸다는 거다.
‘괜히 친구 좋다는 게 아니란 건가.’
내게 네펜데스를 넘겨줄 때.
알라우네는 이 독이 내 요리와 잘 어울릴 거라고 말했다.
그게 이 전투법까지 의식한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기껏 받은 선물이니.
나로서는 잘 써 주면 그만이라는 것.
“뭣들 하냐!”
독의 영향으로 바닥에 쓰러져 버린 괴물.
나는 녀석을 향해 다가가며 소리쳤다.
“저 녀석, 골골대긴 해도 아직 멀쩡해. 마무리한다!”
“예, 예!”
“알겠습니다!”
조금만 더 강했다면 파란색 등급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괴물.
그런 강적인 만큼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도 한참을 더 저항한 녀석이었으나.
콰직!
결과는 뻔했다.
병사의 대검이 괴물의 머리를 베고 지나가자.
몸 안에 흘러들어 오는 따스한 기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온몸을 가득 채우는 기묘한 충족감.
상당한 양의 경험치가 몸 안으로 스며들어 온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냐.”
괴물을 마무리한 병사가 기운차게 소리친다.
그런데.
병사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신 병장님?”
“방금 그건, 대체 뭘 하신…….”
“아. 대단한 건 아닌데.”
이 독은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병사들에게 설명할 만한 시간도 없었던 참.
내 칼질이 엄청나게 강력해서 저 괴물을 무릎 꿇렸다든가.
그런 오해를 살수도 있으니.
독에 대한 설명을 대충이라도 해 주고 넘어가려 했으나…….
“거, 거짓말…….”
그 순간.
괴물이 쓰러진 모습을 본 누군가가, 믿기 힘들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야.”
“저 녀석, 아직 살아 있던 겁니까?”
방금 우리와 싸운 괴물.
그 괴물을 소환했던 장본인이었다.
“마, 말도 안 된다!”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던 거동수상자들.
그 5인 중 4인은 이미 전신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이 녀석은 조금 강한 편이었던 건지 뭔지.
하반신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상체만이 남아 고개를 들고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가로 나와 동료들의 모든 것을 가져가지 않았는가……!”
“……?”
그런데.
그런 녀석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까드득…….
이빨이 깨질 정도로 턱을 깨물며 소리치는 남자.
그 외침의 대상은 우리 부대원들이 아니었다.
“저 군인들을 쓰러트릴 수 있는 하수인을 보내 주겠다고 분명히……!”
노화로 인해 메마른 목에서는 쉰 소리가 났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상반신마저 천천히 먼지로 변해 간다.
이윽고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기들 역시 먼지로 변해 갈 때쯤.
눈동자의 초점이 사라져 버린 남자가 죽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위대한 그분조차…….”
허공을 향해 떨리는 손을 뻗으며.
짙은 절망감에 빠진 채, 피눈물을 흘리는 남자.
“진정한 신이 아니었단 말인가…….”
“…….”
그 손이 향하는 곳은…….
아까 전.
내가 느낀 [거대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던, 바로 그 방향이었다.
투욱…….
힘없이 떨리던 사내의 손이.
바닥에 떨어진다.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의 시체]
[신선도 - 최하]
완전히 시체가 되어 버린 사내.
그 몸 역시 곧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
우리를 공격한 적.
살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인간에게 공격당한 것이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고.
녀석에게는 안 좋은 감정밖에 없었으나.
‘추한 죽음이다.’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건.
그 대상이 누구라고 한들.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누군가와 격렬히 싸운 끝에.
살기 위해 저항하다가 결국에 패배해 맞이한 죽음이라면.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 테지.
하지만.
‘수명이 다해 죽은 것도 아니고,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부대의 상공에 나타나 우리를 내려다보았던 [무언가]
그 [무언가]에게 자신의 몸과 영혼을 바친 끝에…….
죽음을 맞이한 인간.
심지어는.
그렇게 목숨을 바쳐 우리의 죽음을 바랐던 녀석임에도.
그 소원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악마, 라고 했나.”
외계인인지, 정말 신적인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딴 정체도 알 수 없는 새끼가.
‘감히…….’
인간의 목숨을.
가지고 놀았다는 거다.
이건 좀.
뭐라 해야 할까.
“많이 짜증 나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뒤로 돌아섰다.
부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레이더.
“복귀한다.”
그곳에 있을 내 동기에게.
물어야 할 일이 많았다.
* * *
“그 녀석들은 어떻게 됐지?”
레이더에 복귀하자.
그곳에 앉아 있던 내 동기.
박태준 병장이 나를 맞이하러 나왔다.
“다섯 명 정도였더군. 일단은 처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기들끼리 처리당해 버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소리지?”
“생포하려고 했지만 실패해 버렸어.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자살해 버리더군.”
“흐음. 그런가.”
악마.
그리고, 악마 계약자.
‘저 녀석들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딱 봐도 살벌한 이름이다.
제대로 캐묻는다면 중요한 정보가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았지만.
‘지금은 가루가 되어 버렸지.’
시체 하나조차 남지 않은 놈들.
뭘 묻기는 힘든 상황이다.
솔직히 아쉽지만.
지금은 아쉬워할 만한 틈도 아까울 때란 말이지.
그렇기에.
나는 태준이 녀석을 보며 물었다.
“너라면 알 테지. 저 녀석들은 왜 여길 찾아온 거지?”
박태준 병장의 직업은 [천문관]
내게 저 녀석들이 찾아올 거라고 알려 준 것도 바로 이 녀석이다.
이 녀석이라면.
먼지가 되어 죽은 인간들에 대해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르지.
“죽은 녀석들은 자기들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말하더군.”
“아마 그럴 거다.”
당장 죽은 건 저 5인이지만.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동포가 꽤 많은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군부대를 찾아온 게 저 녀석들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기에 우리 부대원들에게 발각당하기 직전.
기도하던 녀석들이 마지막에 입에 담았던 말을 떠올렸다.
-이곳에 자리 잡고 있을 괴물들의 주박을 풀어 주십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 녀석들은…….
“군부대를 점거하고 있는 괴물들을…… 해방할 수 있는 것처럼 굴던데.”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 녀석들이 그런 말을 한 거라면 아마 가능할 확률이 높겠지.”
그 대답에.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딴 짓이 가능하다고?”
“정확한 방법까지는 나도 모른다. 가능할 거다, 라는 것만 막연하게 아는 거지.”
군부대에 자리 잡고 있는 괴물들.
녀석들은 평범한 괴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하다.
‘본래라면…… 게이트 속에 있던 수인들처럼 봉인당해 있어야 정상인 강적들.’
그런 존재에게 걸려 있는 주박이다.
그런 걸 평범한 인간들이 풀 수 있다니.
아니, 생각해 보면.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만.
-불가능해요.
내 그림자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밤의 귀족.
아리엘라가 바로 그 당사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