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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97화 (197/227)

197화 이 부분만 그대로냐

“후욱…… 후욱…….”

과도한 효과에 고통을 느끼는지.

얼굴을 찡그리는 박태준 병장.

하지만.

그 몸은 분명히.

‘두 다리로 서 있어…….’

휠체어를 치워 버리고.

부축하려고 모여든 병사들조차 거부한 채.

스스로.

두 다리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하, 하하…… 세상에.”

스스로도 그 모습이 믿기지 않는 것일까.

자기 다리를 매만지며 웃는 녀석.

“영준아.”

“……어?”

“넌,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를 거다.”

무슨 짓을 한 거냐니.

그야.

이 녀석의 다리를 회복시킨 거다만.

“내가 [천문관]으로 각성하고 난 다음, 이 능력으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뭔지 아냐?”

“음? 아…… 부대에 손님들이 찾아올 거라고 알려 준 거였나?”

“그건 두 번째였고.”

……엥?

“병상에서 눈을 뜨고…… 내 직업에 대해 알게 된 뒤, 가장 처음 확인한 건 따로 있었다.”

그게 어떤 것일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내 다리가…… 나을 수 있을지 알아보는 거였지.”

“…….”

평범하게 살아오던 20대 초반의 청년.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다리가 박살 나는 사고를 겪은 것이다.

두렵지 않을 리가 없지.

“첫 번째 능력 사용이라 그런지, 나 자신에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모든 걸 두루뭉술하게만 알려 주는 이 능력도 꽤나 명확하게 답을 주더군.”

박살이 났었던 자신의 다리.

그곳을 매만지며 말하는 녀석.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말이야.”

태준이 이 녀석.

한쪽 다리가 작살이 나고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되는 몸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초연하다 싶었는데.

‘진작에 마음을 내려놓았던 건가.’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사람은 그곳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희망조차 없다는 것을.

다름 아닌 자신의 능력을 통해 확인받은 셈이니까.

녀석에게는.

미련을 가질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뭐…… 원래 무당들 점이 다 그런 거 아니냐?”

“뭐?”

“무당들 점이란 게 원래 빗나갈 때가 더 많다는 거. 유명한 얘기잖아.”

“……큭큭. 미친놈.”

그 점괘는 결국 빗나갔다.

내 요리를 실컷 먹어 버린 결과.

녀석은 지금 이렇게 두 발로 서 있었으니까.

‘아무리 나라도 요리만으로 될 줄은 몰랐지만.’

일단 내 계획은.

내 요리를 통해 치료가 가능해질 계기를 만들고.

그 추가적인 치료는 이번에 데려온 의무병이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내 요리만으로 두 발로 서는 게 가능해져 버린 녀석이다만.

“의무병.”

“예, 예!”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기껏 데려온 의무병이다.

저 녀석이 정말 제대로 치료된 건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

“말도 안 돼…….”

의무병 녀석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한 채.

태준이 녀석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완벽하게 회복된 건가?”

“그, 그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아, 역시 그 정도는 아니겠지?”

뭐라 설명하기 힘들어하는 의무병.

일단 요리를 먹고 일어서긴 한 박태준 병장이지만.

두 발로 서 있기만 할 뿐.

묘하게 절뚝거리는 모습이었다.

“요리 하나만으로 다리를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단 거겠지.”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나만의 생각이었던 듯.

“응?”

“이 정도는 거의 완치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약간의 재활만 거치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수준…….”

“…….”

“절름발이를 걷게 하다니. 이런 짓을 힐러도 아닌 군단장님이 해내다니……! 아니, 이러면 힐러들은 뭐 하라고.”

흥분한 채 떠드는 의무병 녀석.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약간의 억울함마저 담겨 있었다.

‘약간의 재활이 필요하다, 라.’

다행이라고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데려온 의무병이 일해 줄 구석은 남아 있다는 것 같았다.

“나도 이 부분만큼은 저 사람하고 동감이다.”

하지만.

그 치료가 완벽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은 듯.

태준이 녀석이 의무병의 말을 거들었다.

“네가 한 짓은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다.”

[점성]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일.

저 녀석의 다리는 치료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거야…… 이해하고 있는 거냐?”

“뭐, 일단은?”

“……어이가 없군. 대체 얼마나 성장했길래 이딴 짓을 하고도 덤덤할 수 있는 건지.”

뭐.

이런저런 일들이 좀 많았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적도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새삼 대단한 힘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신력]

어째서 내게 자리 잡았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동하는 힘인 건지.

아직까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 스탯이 가진 가능성은.

이토록 무궁무진하다.

“하하…… 간만에 만난 동기한테 이런 선물을 받아 버렸으니.”

녀석은.

그렇게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묘하게 티를 내지 않던 녀석이지만.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 버린 거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여러모로 복잡한 마음이 들었겠지.

“기대에 부응해야겠지.”

고통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지만.

그럼에도 그 표정에는…….

무거운 짐을 떨쳐 버린 듯한 상쾌함이 어려 있었다.

* * *

“저희가 부축해도 되는데…….”

“내가 직접 걷고 싶어서 그래. 이해해다오.”

다른 병사들이 부축해 준다고 했음에도.

몇 개월 만에 스스로 일어선 것이 감명 깊은 것일까.

태준이는 절뚝거리면서도 목적지를 향해 계속해서 걸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부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레이더.

“영준아.”

그곳에 도착한 녀석이.

저 높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좀, 저 위로 데려가 다오.”

“……저 위에?”

녀석이 가리킨 곳은.

레이더 건물에 설치된 돔.

그 정상이었다.

레이더가 있는 이곳 자체가 충분한 고지대지만.

정말 정확히 가장 높은 곳을 찾으라고 한다면.

저 돔의 꼭대기가 되겠지.

“최대한 별에 가까이…….”

천문관.

이 녀석의 능력은 의외로 지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녹색갈기] 주술사들과의 영적인 대결이 성립했던 것 역시.

이 녀석이 지리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덕분이라던가.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별이 잘 보일수록.

더 강력해지는 직업.

‘조금이라도 더 효과를 보겠다는 건가.’

녀석의 다리가 회복되긴 했지만.

지금 요리를 먹인 이유는 굳이 따지자면 그게 메인은 아니었다.

‘근처 군부대의 괴물들이 누군가에 의해 풀려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녀석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

그 힘을 발휘하는 데 조금이라도 유리한 환경을 원하는 거라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

“꽉 잡아라.”

태준이 녀석에게 어깨동무를 한 뒤.

허리춤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 베어 문다.

[가벼운 발 슬레이파의-]

[특성, ‘슬레이파의 준족을-]

요리에 담긴 마력이.

내 발에 몰리고.

[무예 - ‘식’ 이 요리의 효과를 보조합니다.]

파아아앙!

특성의 힘을 받아.

힘차게 도약했다.

꽤나 높은 곳에 있는 돔이었지만.

도착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네 요리를 먹으면 나도 이런 짓이 가능해지는 거냐?”

“음? 글쎄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한순간에 높은 곳에 위치한 돔에 도착하자.

조금 놀란 듯, 아래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녀석.

내 요리를 먹으면 [슬레이파의 준족] 특성을 얻는 건 가능하겠지만.

나야 스탯이 워낙 깡패니 이런 짓도 가능한 거라.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가능해질 거다.”

“그건. 많이 기대되는군.”

가볍게 웃은 녀석은, 잠시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후욱…….”

거친 숨소리와 함께 식은땀을 흘리는 녀석.

버프의 부담이 그만큼 상당하단 거겠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작한다.”

호흡이 어느정도 진정된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후욱, 끄읍.”

아직 완치되지 않은 다리.

스스로 일어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아 보였지만.

나는 일부러 그 과정을 돕지 않은 채, 바라만 보았다.

이 녀석이라면.

동기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서고 싶어 할 것 같았으니까.

“후아!”

그렇게.

이 일대에서 가장 별에 가까운 곳에.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선 녀석.

“영준아.”

“엉?”

“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된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넌 모를 거다.”

눈을 감고, 온몸을 활짝 펼친 채.

주변에 불어오는 바람에 집중하는 박태준 병장.

단지 평생 못 걸을 거라 생각했는데 걷게 해 줘서 고맙다거나…….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잠시 뒤.

우우웅…….

주변에 모여 있던 마력.

그 기운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이건, 대체……?”

천문관의 능력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동되는지.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다.

심지어 당사자인 태준이 녀석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녀석의 마력이…… 레이더와 공조하고 있다.’

레이더라는 장치는 그 자체가 가지는 개념이 있다든가.

탐지.

식별.

먼 곳에 있는 정보와 위기.

그것을 미리 알아낼 수 있는.

인류가 만들어 낸 위대한 문명의 산물.

그러한 개념들이 태준이 녀석의 능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과연 그 말대로.

우우웅…….

주변의 마력이 레이더를 맴돌면서 강화되고.

그렇게 강화된 마력이.

박태준 병장의 눈으로 흘러 들어갔다.

“부러진 다리는…… 내게 있어서 하나의 제약이었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태준이 녀석이.

이내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부축해 주거나, 어딘가에 기대서 일어나는 건 의미가 없지. 내가 아무리 하늘에 가까워지고 싶어도, 나 스스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

앉아 있을 때와 서 있을 때.

그 키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법.

“내게는, 그 약간의 거리가…… 더 없이 절대적인 한계였다.”

녀석의 스킬이 [다리를 회복할 수 없다]고 확언한 시점에서.

박태준 병장은 절대 넘을 수 없을 거라고 정의된 거리.

지금.

녀석은 그 거리를 넘어섰다.

“불가능한 일을 해낸 셈이지.”

“…….”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는 건, 그 자체로 굉장히 상징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기분이 좋게 끝나는 일도 아닌 모양.

“나처럼 사소한 상징 하나가 힘에 영향을 주는 직업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변화란 거다.”

“……!”

녀석의 눈동자 속에는.

우주를 유영하는 무수히 많은 천체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박태준 병장이라는 인간.

그에게 정해져 있었던, 결코 넘을 수 없었던 한계.

그 한계를 흔적도 없이 박살 내 버린 지금.

박태준 병장의 [점성술].

“그 한계 역시 없어졌다는 거다.”

그 스킬은 이제.

우주의 별만큼이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 * *

천문관.

이 녀석은 스스로 일어남으로써, 몇 센티라도 별에 가까워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녹색갈기 대주술사]의 고기를 먹은 녀석.

그 버프의 효과 또한 남아 있는 지금.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뛰어난 영적 능력을 얻었을 터.

‘대체 얼마나 강해졌을까.’

나로서는.

그렇게 강해진 녀석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할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12군단, 군단본부.”

“뭐?”

“가장 많은 생명을 해할 수 있는 녀석이 그곳에서 풀려났다.”

그 말에.

나는 레이더 아래에 있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군사 지도하고 펜! 최대한 빠르게!”

“추, 충성!”

그렇게 능력이 증폭된 녀석이 가장 먼저 입에 담은 것은.

우리가 소속되어 있던 12군단.

그 본부의 이름이었다.

‘우리를 적대하는 녀석들은 근처 군부대의 괴물들을 해방시키려 하고 있다.’

그 괴물들 자체는 어떻게든 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대의 힘도 과거와는 차원이 달라졌으니까.

문제는 어느 부대의 어느 괴물이 해방될지.

그중에서도 어떤 괴물이 가장 위협적일지였다만.

‘그걸 알 수만 있다면.’

군사 지도를 통해 군부대의 위치를 파악.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터!

‘이번 공격도 쉽게 막아 낼 수 있다……!’

라고.

생각했었다만.

“그 군단 본부 근처에…….”

“그래, 그래서?”

“한때는 작았으나, 네 덕에 충분하게 커진 도끼가 굴러다니고 있을 거다.”

“……엉?”

집중해서 듣고 있던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를 해 대기 시작하는 녀석.

“그게 무슨 소리야? 도끼라니.”

“그 도끼를 사용한다면. 가장 큰 피해는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야, 이거 설마.”

이 녀석의 직업은 천문관.

하지만.

내가 지어 준 별명은 조금 다르다.

‘무당.’

그런 별명을 지어 준 이유는.

뭐 여러 가지가 있기는 하다만.

가장 큰 이유는 하나.

기껏 얻은 강력한 능력임에도 불구.

뭘 명확하게 말해 주는 게 없고.

‘죄다 돌려 말하기 바빴으니까!’

그야말로 무당이나 할 법한 어투.

그래서 지어 준 별명이었고.

꽤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내심 자부하고 있었다만.

“아니 무슨……!”

“다음은 892군수지원단, 그 근처에는 한때는 사악했으나…….”

“능력이 그렇게 강해졌는데……!”

능력이 강해진 결과.

부대에 찾아올 모든 위협.

그 위치와 해결법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한들.

“너로 인해 잠잠해진 불길이 있군. 그 불이라면 억압에서 풀려난 화마들도 억제할 수 있겠지.”

“이 부분만 그대로냐!?”

저놈의 뜬구름 잡는 소리는.

변함이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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