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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98화 (198/227)

198화 상성 (1)

아니 무슨.

능력이 그렇게 강해졌다는 녀석이.

“너로 인해 잠잠해진 불길이 있군. 그 불이라면 군부대에서 풀려난 화마들도 억제할 수 있겠지.”

“뭔 개소리야, 씨……!”

저놈의 뜬구름 잡는 소리는 그대로라니.

‘능력이 강해졌다고 해서 더 친절해진 건 아니다, 이거냐?’

어이가 없었다.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더더욱 내가 423대대를 찾아왔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태준이 녀석과 레이더 반원들은 부대의 사정을 잘 모르니까.’

정확히 말하면.

‘멸망의 날’ 이후.

산맥을 떠나간 부대원들이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누가 새롭게 전우가 되었고…….

‘누가 어떤 식으로 살다가 죽었는지.’

이곳에만 처박혀 있던 태준이 녀석은.

알지 못한다.

‘설명해 주는 저 문구들을 들어 보면…… 아마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서들.’

즉.

우리 부대가 가지고 힘과 관련된 일일 터.

아무리 무당같은 직업인 천문관이라고 한들.

길드 메시지 정도를 제외하면, 부대의 세부적인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녀석.

그런 부분에 대해 알 수 있을 리가 있나.

반면.

‘나라면…… 가능하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부대원들과 친근하게 지낸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얼마 전에는 전 부대원을 상대로 한 면담도 거쳤다.

내 요리를 먹어 줄 고객들.

언제 내 ‘전력을 다한 요리’를 먹여야 할지 모르는 상대들이니만큼.

그 상세 정보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편.

“제기랄, 어쩌겠냐. 내가 해야지.”

우리 부대의 모든 역사를 함께한 나라면.

이 녀석이 뱉고 있는 말들을 해석할 수 있다.

“신 병장님! 말씀하신 노트랑 펜! 가져왔습니다.”

“고맙다.”

녀석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계속해서 노트에 메모하며.

그게 어떤 의미인지.

뭘 전달하려 하는 건지 해석했다.

‘처음 말한 건…… 작았으나 급격하게 커진 도끼…….’

처음에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만.

그 뜻을 분석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이거 설마 그건가?”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지만.

최대한 집중하자,

[셰프 : 전 부대원들은 집중.]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임무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했소.”

군단의 규모가 커지고.

그 부대원들은 대부분 각자의 업무에서 바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전투직들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변의 순찰 및 몬스터들의 토벌.

[비마나] 근처의 경우는 용아병들이 해결해 준다지만.

그 용아병들의 ai가 심히 구린 수준이다 보니.

먼 지역의 순찰이나 토벌을 나가는 건 쉽지 않았다.

“끄으. 간만에 장거리 임무였네. 힘들어라.”

“하하. 순찰 임무만 맡는 것도 지루하니,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아요?”

그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군단의 병사들.

“임무는 잘 끝나서 다행인데, 비마나로 복귀하려면 내일은 되어야겠네요.”

“서두르면 밤에는 도착할 수도 있을 테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테니, 이 근처에 공병들이 마련해 둔 초소가 있습니다. 오늘 밤은 거기서 묵도록 하죠.”

그리고 지금.

그런 병사들 중 한 분대가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중이었다.

“헤헤. 그러면 난 수연이랑 같은 방 써야지~.”

“으읍…….”

그중 한 부대원이.

아직 어려 보이는 소녀의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세력을 확장하면서, 여러 종류의 인간들을 받아들이게 된 군단.

그 구성원은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아이를 가리지 않았다.

지금 대화를 나누는 것은 30대 초반 정도의 여성.

그리고 아직 중·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였다.

“가, 같은 방 쓰면 늦게까지 잠 못 자게 하잖아요……. 내일도 바쁠 텐데 오늘은 따로 써도…….”

“그러면 외롭잖아. 응? 언니랑 같이 자자~.”

자기 볼을 가지고 노는 여자를 향해.

볼멘소리를 하는 소녀.

“외, 외로워서 그런 거라면. 으음.”

“맘 약해서 거절 못 하는 거 봐. 귀여워라~.”

멸망의 날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도 많았으나.

군단에 가입하고.

배급되는 요리를 먹다 보니 여러모로 마음에 안정이 생긴 이들.

임무를 끝내고 돌아가는 분위기는 꽤나 편안한 것이었다.

“복귀하기 전까진 작전 수행 중이나 다름없소. ……조금은 조용히 하시오.”

“네엥~.”

다만, 아직 작전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 만큼.

얼굴에 큰 상처가 새겨진 중후한 분위기의 중년인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쪽에 마련된 초소는 방이 많은 것 같더군. 전원에게 개인실이 주어질 거요. 굳이 같은 방을 쓸 일도 없을 거란 말이지.”

“체엣.”

장난스럽게 아쉬워하는 여자.

그렇게 부대의 행군이 계속되고.

“그, 감사합니다.”

잠시 뒤.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던 소녀가 중년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음? 뭐가 말이오?”

“아까, 제가 곤란해 보여서 도와주신 거잖아요?”

그 말에.

별거 아니라는 웃음을 짓는 중년인.

“고마워할 필요는 없소. 이런 일을 하는 게 내 역할이니까.”

“그래도 고마운 건 사실인걸요.”

“수연 양은 수연 양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으니, 나도 내 역할에 충실할 뿐이지.”

그 소녀의 이름은 이수연.

과거.

한 마트의 창고에서 펫푸드를 주워 먹으며 숨어 지내던 중.

식량을 찾아 마트를 뒤지던 군단에게 발견되어 합류하게 된 한 남매가 있었다.

이수연.

그녀는 당시 발견된 남매 중 누나 쪽이었다.

“……대단하네요. 저는 아저씨같이 분대원들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중심을 잡고, 배려해 주고…… 이런 일은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요.”

“나야 뭐 나이를 꽁으로 먹은 건 아니니까, 이 정도 눈치는 당연한 거지. 내가 봤을 땐 수연 양이 더 대단해. 아직 어린데도 제대로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거니까. 나하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한 거요.”

“그건 아니에요.”

“음?”

칭찬을 하고자 했던 중년인이었으나.

중년인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이수연.

“각성자는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다고 군단장님도 말씀하셨으니까요.”

“허어.”

최근에는 정예화를 노리기 시작한 군단.

이제부터는 새로운 군단원 수용을 엄격하게 진행하기로 바뀌었다지만.

그전까지는 들어오고자 하는 이는 마다하지 않았었다.

그런 만큼.

아직 나이가 어린 군단원의 숫자도 결코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임무 위주로 맡게 된 게 사실이기도 하지.’

아무리 각성자는 나이가 상관없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린아이를 전투에 내모는 건, 어른의 입장에서도 힘든 일이니까.

하지만.

“도와주신 건 고맙지만 제가 어리다고 특별히 더 신경 써 주신다거나 그러실 생각이라면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거 참. 내가 실수를 했군.”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나이의 소녀.

이수연 그런 배려를 원하지 않았다.

과거.

힘을 가지지 못한 탓에 어두운 공간에 처박힌 채.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어야만 했던 시절.

그녀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에 잠에서 깼던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차라리 싸우다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런 꼴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만 했다.

힘을 키우고자 하는 그녀에게.

어리단 이유에서의 배려 따윈 쓸데없는 것에 불과한 것.

“시, 실수랄 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단 거죠.”

“하하. 수연 양은 참 다부지군그래. 수연 양을 보다 보면 내 딸들이 생각나.”

그 얘기에.

멀리서 걷고 있던 30대의 여인이 가까이 다가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에요? 중석 아저씨. 딸도 있었어요?”

“음? 내가 말 안 했던가? 지금은 미국에 유학 가 있네. 그곳은 어떻게 됐을지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똑 부러진 애들이었으니까. 잘 살아 있을 거라고 믿고 있지.”

“중석 아저씨의 딸이라니……. 으음, 상상이 잘 안 되는데요?”

“다행히도 나보다는 아내를 닮은 편이라서. 둘 다 상당히 귀엽다네.”

“궁금하긴 하네요. 그래도 뭐, 우리 수연이보다 귀엽진 않겠지만!”

“제, 제가 또 왜 나와요……!”

애초에 장난을 치고 싶어서 대화에 끼어든 것인 듯.

다시금 수연의 볼을 만지작거리는 여인이었으나…….

띠링.

“?”

그들의 눈앞에.

메시지 한 줄이 나타났다.

[셰프 : 전 군단원들은 집중하라.]

정확히 말하면.

길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건…….”

길드 메시지.

이걸 송신할 수 있는 인물은 군단의 간부급 인사들밖에 없다.

그들 간의 개인 메시지나 간부들만 볼 수 있는 메시지 또한 존재하지만.

바로 이렇게.

모든 부대원들이 볼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가능했다.

“군단장 명령입니다.”

“……!”

메시지를 보자.

방금 전까지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이.

냉정하게 무기를 쥐고 일어서는 병사들.

“어떤 명령이 내려올지 모르니 다들 집중하세요.”

“……충성!”

군단장의 명령이 내려짐과 동시에.

방금까지의 가벼운 분위기는 어디 갔냐는 듯.

냉철한 눈빛으로 명령을 내리는 분대장.

분대원들 역시.

긴장된 낯빛으로 그 명령을 따랐다.

그리고 곧.

추가적인 명령이 내려왔다.

[셰프 : 13번 분대. 12군단 휘하 324대대가 위치한 곳으로 향한 뒤, 해당 지역에 나타난 몬스터를 토벌하라.]

“13분대라니. 이건.”

“저희 얘기로군요.”

내려온 명령은.

다름 아닌, 그들 분대를 향한 것이었다.

“이제 막 복귀하려는 참이었는데. 이거 참.”

약간의 불평이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13분대의 분대원들은 작전 수행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굴에 큰 상처가 새겨진 중년인.

박중석이 입을 열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분대장님.”

그가 말을 건 대상은.

“……전 분대원.”

“충성!”

방금 전까지 볼을 꼬집히고 있던…….

작은 소녀였다.

“작전 준비에 들어갑니다.”

* * *

“박중석 부분대장.”

“예. 부분대장, 박중석.”

“군사 지도 꺼내고 324대대로 가는 최단 경로 파악하세요.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야 할 테니, 서두르세요.”

“충성.”

명령을 받은 중년인.

박중석이 군사 지도를 꺼내 드는 것을 확인한 뒤.

이수연은 다음 부대원을 호명했다.

“최성아 분대원.”

“충성. 분대원, 최성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녀의 볼을 꼬집으며 장난치던 여인.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부름에 응답했다.

“경로가 파악되는 대로 달릴 겁니다. 미리 버프 사용해 두세요.”

“알겠습니다.”

아까 전까지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목에 건 십자가를 꺼내 들며 부대원들에게 버프를 뿌리는 사제.

“군단 본부라.”

“가깝군요.”

대기 중이던 부대원들 중 몇몇이 불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평범한 몬스터 토벌 임무라면 다행이겠습니다만.”

“하필이면 군부대 근처라…….”

“군단장님이 직접 명령한 일인 것도 그렇고, 심상치 않은 일일 것 같은데요. 저희만으로 해결 가능한 임무일지…….”

군부대와 인접한 곳에서 펼쳐지는 임무.

잘못하면 그 군부대에 자리 잡고 있을 강력한 괴물의 시선을 끌게 될 수도.

아니…….

그 괴물 자체가 토벌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일.

군부대에 자리 잡은 괴물들은 특히나 강력하며.

아무리 군단이라고 한들, 평범한 분대 하나가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불가능한 임무라면 가능하게 만들면 될 뿐인 일입니다.”

“…….”

하지만.

그들의 분대장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불안해하는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을 잇는 그녀.

“정 무서우면 뒤에 숨어 있으셔도 됩니다.”

“분대장님……!”

“저희가 그 정도로 겁쟁이는 아닙니다.”

“군부대에 인접한 토벌 임무인걸요. 두려워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과거.

평범한 생존자였던 시절의 그녀는, 한 자루의 소방 도끼만을 들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운 좋게 손에 넣는 데 성공했던 낡은 소방 도끼.

한때는 그 소방 도끼를 이용해.

동생과 함께 자살할 생각까지 품었던 그녀였으나.

각성을 거치고.

수없이 많은 전투를 통해 성장한 지금.

그녀는.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철그럭…….

평범한 인간은 들 수조차 없을 것 같은.

지나칠 정도로 거대한 도끼창.

그 무게가 톤 단위에 육박하는 할버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분대원들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움직이세요.”

장식용으로 사용된다면 모를까.

실전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육중한 무기.

“어려운 임무가 있을 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 토벌 임무도.”

이수연은.

자신의 몸보다도 거대한 그 할버드를 가볍게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제가 해결합니다.”

분대원들을 향한 그 말에는.

끝없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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