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상성 (2)
강철 군단에는 아주 극소수긴 하지만.
어린아이나 노인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노인이라면 모를까.
어린아이들에게 위험한 일을 맡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그중에도 또 극소수의 예외가 있었으니.
-저도 싸우고 싶어요.
그게 바로 그녀.
이수연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불과한 그녀였으나.
본인의 강력한 요청으로 인해.
그녀는 온갖 위험한 전장에서 계속해서 싸워 왔다.
탄약대대 탈환전, 뱀파이어 토벌전, 인제군 공략전, 침식이계 다스무르, 비마나 방어전, 녹색갈기 공략전 등…….
언제나 묵묵하게 전투에만 전념했기에, 특별하게 눈에 띈 적은 없으나.
그 모든 전투에서, 언제나 건실하게 1인분 이상의 역할을 해낸 그녀.
군단에서 벌어진 온갖 굵직한 전투들.
그중에서, 그녀가 빠진 전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각성자 : 이수연]
[직업 : 중급 전사 Lv.25]
그녀의 레벨은 군단에서도 상위권.
심지어는 423대대 출신의 병사 몇몇보다도 앞설 정도였다.
안 그래도 군단의 정예병으로서 인정받던 그녀.
그런 그녀의 능력에 더욱 날개가 붙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이 아이는…….
-무재를 지녔구나.
어느 날.
군단장이 데려온 두 명의 수인족.
-무재…….
다른 세계에서 온.
무예 교관들과 만나면서였다.
-그게 뭔데요?
* * *
명령을 받은 13분대는 최대한 빠르게 군단장이 말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건…….”
그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전투의 흔적.
그리고.
“이 시체들은 대체…….”
“한바탕 전투가 있었던 것 같군요. 그것도 최근에.”
괴물들의 시체였다.
시체의 흔적을 살펴본 병사들이 말했다.
“[거완 혼마르] 입니다.”
“혼마르라. 약점을 모르는 상태에선 꽤나 까다로운 괴물 아닌가?”
“글쎄요. 그렇다기엔 이 녀석들 꽤나 일방적으로 당한 것 같은데요.”
“상처의 크기를 보니 인간이 한 짓은 아닙니다.”
이 학살을 벌인 것은 괴물이라는 뜻이다.
딱히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다.
괴물들끼리 영역을 두고 다투는 일은 흔하다.
괴물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은 좀비 정도뿐.
문제가 있다면…….
“……발자국 숫자가 조금 이상한데요.”
“응? 그게 무슨 의미야?”
흔적을 살피던 병사 중 한 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혼마르의 발자국은 많은데 다른 발자국이 너무 적어요.”
“뭐?”
“이 흔적대로라면, 저 수십 마리의 괴물을 몰살시킨 건…….”
한쪽 팔이 기괴할 정도로 거대한 오랑우탄을 닮은 괴물.
[거완 혼마르]는 결코 쉬운 적이 아니었다.
신영준 병장이 알려 준 약점이 없다면.
군단원들이라도 고전해야 할 꽤나 까다로운 상대.
“한 마리라는 뜻이 되거든요.”
그런 괴물 수십 마리를 혼자서.
그것도 압도적으로 학살한 괴물이 있다는 것.
즉…….
“……토벌 명령이라는 건 그 녀석을 잡아야 한다는 건가?”
“서, 설마요. 이 흔적대로라면 저희가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에요.”
일개 분대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다들. 지금 군단장님이 보낸 명령 좀 보십쇼.”
“흐음. 부대원들을 군부대 쪽으로 파견 보내고 있군.”
“이만큼 강한 괴물이 뜬금없이 나타났다는 것도 그렇고, 이거 혹시.”
“자, 잠깐만요. 설마.”
부대원들은 결코 멍청하지 않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
그리고 군부대.
“맙소사.”
“군부대에 자리 잡고 있던 괴물들이 풀려났다는 겁니까……?”
그 연관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미친. 군부대에 자리 잡은 괴물들은 엄청 강하잖아.”
“아무리 분대장님이 있어도 그렇지, 우리 분대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리가…….”
당황한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군부대에 나타난 괴물들은 다른 평범한 괴물들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하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군부대의 토벌을 실시한 적이 있었던 군단이었으나.
그 역시, 총력에 가까울 정도의 전력을 투입했기에 공략이 가능했을 정도.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일단은 후퇴하죠. 정말 군부대의 괴물이 풀려났다면 최소한 서너 분대, 거기에 전차 화력도 지원받아야……!”
그런 괴물을 일개 분대가 처리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명령이니까.
분대원들의 판단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좋은 의견이지만 따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예?”
이수연 분대장의 시선이.
군부대 주변의 숲 안쪽을 향했다.
“저 녀석이 우리를 그냥 보내 줄 것 같지는 않거든요.”
“……!”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악마와도 같은 형상을 한 거대한 괴물이었다.
-……그륵.
날렵해 보이는 몸.
피부를 뒤덮고 있는 날카로운 갑각.
칼날처럼 날카롭고 거대한 손톱.
그 손톱에는 괴물들의 살점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꿀꺽.”
악마와도 같은 외견에서 풍기는 위압감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
그뿐만이 아니라 풍기는 마력량도 상당했다.
“제기랄.”
“이미 조우해 버렸으니, 어쩔 수 없군요.”
전투를 앞두고 불만을 내비칠 만큼 어리석은 군단병은 없다.
병사들은 금방 전투태세를 취했다.
군부대에 자리 잡고 있던 괴물들이 매우 강력하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정황상 저놈이 바로 그 괴물일 확률이 높겠지.
심지어 그들이 방문한 곳은 군단 본부.
그곳을 점거하고 있던 괴물이 평범할 리가 없다.
‘아무리 분대장님이 강하다고 하신들.’
‘……이기긴 힘들 거다.’
이번 전투의 핵심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도망칠 수 있는 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 * *
‘데스클로’
단 다섯 마리로 12군단의 본부를 전멸시킨 괴물이자.
지금, 13분대의 눈앞에 나타난 괴물의 이름이었다.
‘데스클로’는 날 때부터 사냥꾼의 운명을 타고난 종족이다.
그 신체 기관 중 사냥에 특화되지 않은 부분이 드물 정도.
까아아앙!
그중에서도 특히
그를 사냥꾼의 입장에 세워 준 것이, 바로.
“저 갑각은 대체……!”
“우리 공격에 흠집도 안 나다니!”
갑각.
데스클로의 갑각은 비정상적으로 단단하고 견고했다.
대부분의 공격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을 정도.
단 다섯 마리가 보병대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 있었다.
지금은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데스클로지만.
그마저도, 군부대에 속박된 탓에 더 이상 사냥감을 찾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서로를 사냥하려 했기에 생긴 결과일 뿐.
수천 발의 총알도, 군부대의 온갖 화기도.
그 갑각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보통의 경우, 이런 단단한 갑각은 관절부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
[강철가죽 리자드]가 대표적인 예시겠지.
하지만, 이 ‘데스클로’의 경우는 그마저도 해당하지 않았다.
전신을 완벽하게 뒤덮은 갑각.
거기에 빈틈이라고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강철의 신체.
“다들 후방 지원으로 물러나세요.”
그렇기에.
그 갑각을 뚫지 못하는 존재들은.
모두 사냥감에 불과할 뿐.
“제가 합니다.”
……이었을 텐데.
콰직!!!
-크라아아아아아아아악!
언제나 사냥꾼의 자리에서 군림했던 괴물, 데스클로.
그 괴물의 구강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확실히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단하네요.”
그 비명을 만든 것은.
데스클로의 반도 안 돼 보이는 크기의 인간.
“제가 아니었으면 흠집도 내기 힘들었을 정도라니.”
그녀가 휘두르는.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할버드였다.
-끄륵……!
처음 이수연이 휘두른 공격을 보았을 때.
괴물은 가소롭다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거대한 무기라고 한들.
그의 갑각에 부딪히면 오히려 무기가 부서져 나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콰직!
-키에에에엑!
또다시 공격이 적중하자.
총알조차 견뎌내던 단단한 갑각이 맥없이 부서져 나간다.
‘데스클로’는 그 갑각을 파괴할 수 없는 적에게는 무적이나 다름없는 괴물이다.
다만, 반대로 말하면.
그 갑각에 의존한 싸움을 오래 해 온 나머지.
‘……의외로 전투 수행 능력 자체는 뛰어나지 않은 건가?’
결코, 약한 편은 아니었으나.
굳이 따지자면, 무예를 익히기 전의 각성자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강력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
전투 실력은 싸움 자체를 안 해 본 짐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갑각을 파괴할 힘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처치할 수 없는 적은 아니야.’
물론.
그 갑각을 부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저 리자드의 비늘보다도 단단할 정도였으니까.
‘이만한 갑각을 부술 수 있는 건…… 아마, 군단에서도 셋 정도.’
군단 최강의 전사.
전광일 상병이라면 분명히 가능하겠지.
군단의 최강자.
신영준 병장이라면, 새끼손가락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이수연은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이 바로.
‘나.’
콰직!!!
이수연 분대장.
분대장이라는 지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거대 길드인 군단.
그 군단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자리.
-그 천살성과 비교하면 조금 모자람이 있다만.
-그와 비교하는 것이 실례 아닙니까.
-그렇지. 이 아이는…….
전사들을 상대로 무예를 가르치는 두 무예 교관.
그들이 그녀를 보고 내린 감상은 간단했다.
-천재로구나.
군단원들은 그 재능이나 성정에 따라 무예를 지급받는다.
전광일 상병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B에서 A급 정도의 무예를 배우는 것이 일반적.
그 이상의 무예를 익히는 데 성공한 이는 극소수였다.
상급의 무예가 요구하는 재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니까.
[무예]
[대력금강부 S+]
[Lv.2]
이수연 분대장이 바로 그중 하나이자.
그냥 S도 아닌 S+급의 무예를 익히는 데 성공한 인물이었다.
‘힘은 강하지만…… 짐승처럼 휘두를 줄만 알 뿐.’
강대한 마수의 손톱이 휘둘러지지만.
지금은 멸망해 버린 세계.
그 세계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정수를 몸에 익힌 이수연이다.
괴물의 공격은 그녀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저 갑각도.’
아무리 군단의 장인들이 만들어 준 할버드라고 한들.
본래라면 더 단단한 갑각을 부수는 건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특성 - 중급 무기 강화]
20레벨에 도달하면서 얻은 특성의 힘으로.
그녀의 할버드는 데스클로의 갑각보다도 단단해진 상태.
‘단단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콰아아아앙!
그 일격의 위력만큼은.
군단 최고의 전사라는 전광일 상병에게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
-크륵!
물론.
데스클로 역시 무척이나 강력한 괴물.
숨겨 둔 수가 없지는 않았다.
괴물의 몸 안을 내달리던 마력이 구강 안으로 모여들고.
그곳에 존재하는 작은 기관을 자극했다.
그러자.
-콰아아아아아아!
그 입에서부터 강렬한 화염이 쏟아져 나온다.
강철조차 녹이는 불꽃.
광범위한 고열의 화염은, 단 다섯 마리의 괴물이 대규모 부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화염? 그렇다면……!”
[스킬 - 다스무르의 파도]
그에 맞서.
군단의 분대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스킬을 발동했다.
[침식 이계 - 다스무르]
그 던전의 공략은 지나칠 정도로 험난한 것이었으나.
거기서 높은 공헌도를 달성한 이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졌다.
이수연의 왼손에 물방울이 하나 자리 잡는가 싶더니.
이내, 물로 이루어진 장벽을 만들어 냈다.
평범한 물이었다면 결코 막을 수 없었을 강력한 화염.
그러나.
[끝없는 바다의 신]이 기거했던 바다.
비록 이제는 몰락해 버린 세계라고 한들.
신의 축복을 받았던 바다의 파도는.
파아아악!
-크륵……!?
그 강력한 화염을 막아 내기에.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괴수가 쏘아 낸 화염이 물의 장벽에 맞닿자.
뜨거운 수증기가 전장을 가득 메운다.
“크윽!”
“아, 뜨거……!”
갑작스러운 수증기에 병사들은 당황했으나.
정작 그 파도를 만들어 낸 인물.
“……별거 없네요.”
이수연의 몸에는.
작은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크르륵……!
여전히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데스클로]가 사냥꾼으로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신체 가속]
[관절 초연장]
[폭발 가시]
[지면 유영]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강력한 효과를 지닌 특성들.
그 특성들을 활용해 적을 사냥하고자 한 괴물이었으나.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우연히도.
정말 운이 좋게도!
이수연이 가지고 있던 특성과 스킬들은.
그 하나하나가, [데스클로]의 특성에 대해 완벽한 상성을 이루고 있었다.
-……크르륵.
그렇게 비장의 수단마저 모두 소비해 버리자.
한때는 사냥꾼이었던 괴물은…….
콰직!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이내.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 *
“대, 대단하십니다! 분대장님!”
“저희 공격은 통하지도 않았는데…….”
전투가 종료되고 난 뒤.
분대원들은 그들의 분대장을 향해 선망의 시선을 보냈다.
어린 나이의 분대장.
처음에는 불만을 품은 부대원들도 있었으나, 오랜 시간 작전을 함께 하며 신뢰가 쌓여 온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그 신뢰는 이제 하늘을 찔러 버릴 정도로 치솟은 상황.
“군부대를 점거했다던 괴물이 저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처치되다니!”
하지만.
그 엄청난 일을 해낸 당사자.
이수연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느라 그들을 신경 써 줄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데스클로]는 강력한 괴물이었다.
본래라면, 군단의 분대가 다섯 개씩 덤벼들어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한 전력으로 따지면 나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강적.’
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전력과는 별개로.
이번 전투는 이수연의 압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내 능력과…… 완벽에 가까운 상성 관계.’
단단한 갑각과.
그것을 부술 수 있는 공격력.
강력한 화염과.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파도의 방벽까지.
그 후에 나타난 다양한 능력 역시 마찬가지.
그 모두가 이수연이 가지고 있던 특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의 차이가 확실함에도 불구.
그것을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상성 차이.
‘내게 이곳으로 향하라고 한 건…… 군단장님의 메시지였지. 하지만 그렇다는 건.’
그렇기에.
이수연은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었다.
‘군단장님은 내가 이 괴물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걸…… 알고 계셨다는 거야?’
괴물의 등장이야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다고 치자.
저 산 위에 있다던 ‘무당’이라는 이가 위기를 종종 알려 주곤 했으니까.
약점 역시 마찬가지.
군단장의 ‘눈’이라면.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혜안……? 아니. 그 정도가 아니잖아, 이건.”
지금은 아마도 먼 곳에 있을 그가.
괴물이 나타날 위치는 물론.
그 괴물을 쓰러트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수연을 선택하고.
파견하기까지 했다는 것.
‘예언…….’
감탄을 넘어서.
경악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정말, 같은 인간이 맞으신 건가?”
그리고.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다른 곳에도 있었다.
* * *
12군단 휘하의 어느 부대.
-키히히힉!
그곳에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 괴물.
홉 고블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들 무기! 개좋다!
-자유까지 얻었으니…… 세계 정복 드가자-!!!
평범한 고블린들보다도 뛰어난 지능과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괴물.
그들은 군부대에 비치되어 있던 화기의 사용법을 깨달았다.
그들이 나타난 부대는 상당한 소규모 부대였다.
홉고블린들 역시 본래는 그렇게까지 강력하진 않던 괴물이었으나.
군부대의 화기를 접수한 뒤에는 얘기가 달라졌다.
뛰어난 지능으로 복잡한 화기의 사용법도 금방 익혀 버린 괴물들.
안 그래도 인간에 비하면 강력한 몬스터.
그런 몬스터가 인간들이 쌓아 올린 무력의 상징, 군부대의 무기마저 손에 넣은 지금.
다른 대규모 부대에 나타난 괴물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케, 케륵?
-이 총! 왜 안 나가냐!
하지만.
-고장? 고장?
-인간들 무기, 머 이래 허접하냐!?
-아니, 얼마 전에 검사했다! 고장일 수 없다!
자유를 얻게 된 뒤.
처음으로 만나게 된 인간종을 향해 총을 겨눈 홉고블린들이었으나.
그 총알이 발사되는 일은 없었다.
“흐하하하하하!”
[각성자 : 박권창]
[직업 : 하급 방화범 Lv. 19]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웃는 한 남자.
한때 423대대에 머무르던 군인들을 휘하에 두기 위해 접근했으나.
오히려 격퇴당한 뒤, 군단의 영원한 기수 열외 막내가 된 남자.
박권창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특성이 바로.
[하급 화염 간섭]
“총이란 것은 결국은 화기!”
-케, 케륵?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화염과 폭발은 내 간섭을 벗어날 수 없다!”
총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홉고블린들은.
그냥 고블린보다 조금 강한 수준에 불과하다.
“막내 아저씨. 수고했어요.”
“예! 나머지는 선임 분들한테 맡기겠습니다!”
군단병들이 무기를 꺼내고 달려들자.
손쉬운 학살이 시작되었다.
* * *
군부대에서 해방된 괴물들.
객관적인 전력만 보면.
각각의 장소에 보내진 부대원들은 그 괴물들의 상대가 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군부대를 점거한 괴물들은 그만큼 강력한 존재들뿐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토, 토벌 완료.”
“……어, 고생하셨습니다?”
“뭐야. 이렇게 쉽게 쓰러질 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강력한 괴물들이.
자신보다 약할 터인 군단병들에게 속속들이 토벌당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
그들의 군단장이 파견을 명령한 분대와 부대원들.
그들이 각지의 괴물들에게, 완벽하게 가까운 상성 관계였기 때문.
그렇기에.
토벌에 성공한 병사들은 승리의 기쁨을 취할 여유도 없었다.
믿기 힘들다는 듯 중얼거리는 이들.
“군단장님은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계셨던 거지?”
* * *
“다음은, 겉으로 보기엔 붉은점박이광대버섯과 같이 보이지만 속은 족제비눈물버섯과 같은…….”
“야이 씹……! 이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병사들이 경악하며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신영준 병장은 수수께끼를 풀며 곡소리를 내는 중이란 것은…….
“……아, 혹시 그건가? 아니면 큰일인데. 쓰읍. 몰라, 맞겠지. 뭐!”
아주 극소수의 병사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