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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03화 (203/227)

203화 꿈

힘겨운 식당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려고 하자.

-전역도 며칠 안 남았는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러게 말이다.

취사병 맞후임.

준혁이 녀석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역하시면 뭐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

맞후임의 질문은 전역을 얼마 안 남겨 둔 병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할 법한 생각이었다.

사회 나가면 뭐 하지.

-일단은 가족들부터 찾으러 가야지.

당연히 나도 생각이 있기는 했다.

-다른 지역에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게 됐지만, 엄마 아빠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으니까. 일단 그 일부터 정리하고 그다음에는 왜 세상이 이 꼴이 났는지를 차근차근…….

-흐음. 그러시군요.

-……뭐야?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맞후임.

준혁이 녀석은 사회에서 일식 요리를 배우다가 들어온 녀석이었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회생활을 빠르게 시작한 탓일까.

식당 일도 잘하고, 성격도 싹싹한 편이었지만.

묘하게 현실적인 지적을 자주 하곤 했지.

-가족분들이 살아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뭐 인마?

어이없는 후임 녀석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저도 이렇게 죽어 버렸는데.

준혁이의 시체가.

나를 보고 있었다.

‘…….’

눈알 한쪽은 빠진 채 덜렁거리고.

전신의 살점은 짐승의 이빨 자국으로 거칠게 헤집어져 있었다.

목에서는…….

떨어져 나오면 안 될 무언가가 떨어져 나와 덜렁거리고 있는 모습.

잊어버릴 수가 있나.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준혁이의 모습.

‘……과연.’

슬쩍 뒤를 돌아보자.

취사반 막내.

용준이가 내장을 흩뿌리며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이 꿈인가.’

멸망의 날 이후.

질리도록 보았던 꿈이다.

정말로 쓰레기 같은 꿈.

-저랑 막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렸는데…… 특별할 것도 없는 병장님 가족들이 살아 있을 거라고 믿으십니까.

그나마.

징그러운 꼴로 말을 걸며 돌아다니는 두 후임은 양반이다.

이 꿈의 정말 개 같은 점은.

꿈이란 걸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깨어 나올 수가 없다는 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글쎄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라.

꿈이 깰 때까지.

이 녀석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것뿐.

-기억나십니까? 그때, 병장님이 저한테 시킨 심부름을 본인이 직접 하셨더라면 죽는 건 제가 아니라 병장님이었겠죠.

-그야 뭐. 그랬겠지.

-요리사라? 좋은 직업을 얻으셨군요. 근데 생각해 보면…… 그 직업. 원래 요리를 배웠던 제가 가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것도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악의에 받친 말을 내뱉는 녀석이었지만.

그 말투와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병장님이 살아남으신 건 운이 좋아서입니다.

생전의 녀석이 내게 화를 내거나 소리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나로서는 녀석이 내게 화를 내는 꼴을 상상하기 힘든 거겠지.

-그 운이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글쎄.

-아마 오래가진 않을 겁니다. 수인들의 세계도, 다스무르도 멸망했잖습니까. 병장님의 가족도. 병장님도. 모두 언젠가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겠죠.

-그렇게 되려나?

-아니. 그보다 심할 수도 있겠군요. 그 둘은 어떻게든 이곳으로 도망이라도 칠 수 있었잖습니까. 차원 이동이라니…… 저쪽 세상에는 대단한 존재들이 많았으니 가능했을 짓.

-그래. 나는 그런 식으로 도망칠 수도 없겠지.

-결국, 모두 다 죽어 버릴 겁니다. 병장님도. 그 가족들도. 다른 부대원들도…… 모두가.

음….

어차피 꿈속이다.

저 녀석도 내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겠지.

-야.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보니.

잠자코 들어주고 있었다만.

-그래도 그렇지. 선임한테 말이 좀 심한 거 아니냐?

맞후임이란 놈이.

말본새가 그게 뭐야.

-……예?

당황한 듯 주춤거리는 준혁이 녀석의 시체.

그래.

부끄럽지만.

이 녀석의 추악한 죽음을 봐 버린 탓에.

난 아직도…….

죽음이란 게 너무나도 두렵다.

-너랑 막내한테는 아직도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미안한 것과 이건 별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너희 같은 꼴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더라고.

나는 실수를 할 때는 있을지언정.

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를 생각은 없거든.

다시 한번.

차근차근 맞후임과 막내의 시체를 눈여겨본다.

살면서 처음 봤었던.

상상 이상으로 추하고…….

지금 봐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이 꼴을 보기 싫어서 지금까지 발버둥 쳐 왔으니까.’

인간의 죽음.

“……후욱.”

잠에서 깨어나자.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침대는 푹 젖어 있었다.

“…….”

눅눅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마른세수를 하며 생각한다.

‘저딴 꼴이 되어 버린 인간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그래.

그러기 위해서라면.

“고생을 좀 많이 해야겠지.”

어떤 수단이든 간에.

어떤 지독한 방법이 되었든 간에.

동원할 수 있는 수는 모두 동원해서.

어떤 추잡한 형태로든.

반드시 살아남아 보일 것이라고.

* * *

군부대에서 풀려난 괴물들.

그 괴물들에 대한 뒤처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

“군부대에 사람들 보내고, 통신망을 재건하는 건 좋은데…… 인력이 좀 모자라겠는데요?”

“일단 군단원들을 각 부대로 보내고 그 주변에는 생존자들을 정착시키는 거로 하자고. 라디오를 내보낸 뒤로 몰려온 생존자들이 꽤 많잖아. 군부대는 대인원을 수용할 설비도 충분하니까.”

비마나로 복귀한 나는.

간부들과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뭐. 당장 처리는 이 정도면 될 것 같군.”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이득을 봐 버렸어. 그 괴물들의 부산물만 해도 생산직들이 좋아 죽으려고 하더군.”

자칫하면 우리를 포함한 일대의 인간들이 전멸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전투였지만.

다행히도 태준이 녀석 덕분에 잘 정리가 되었다.

“확실히 대단한 일이긴 합니다.”

그건 분명 엄청난 일이고.

실제로 엄청난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일에 감탄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신 병장님.”

“어.”

“저희 이번 습격이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아직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서수혁 상병.

그가 팔짱을 끼며 나를 바라보았다.

“잘 해결된 건 다행이긴 한데, 이 부분은 제대로 설명을 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야 야. 병장님한테 예의 좀…….”

“예의는 예의고. 일은 일이지. 광일이 형은 조용히 있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는 녀석.

그 모습을 보며.

“여전하네.”

“예?”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의아해하는 서수혁 상병.

“여전하다니, 무슨 소리십니까? 말투가 좀 그렇게 느껴졌다면 사과하겠습니다만 딱히 저번처럼 하극상을 일으킬 생각은…….”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

“그냥 대단하다 싶었거든.”

423대대에서 복귀한 뒤.

부대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경외감.’

엄청나게 대단한 무언가를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었다.

“……?”

이 녀석은.

나를 바라보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이 녀석만 그런 것도 아니긴 하지.’

광일이나 수혁이, 민재 형 등.

부대의 간부급 인사들은 내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그뿐.

지적을 해야 할 때는 지적하는 등.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부대 초창기 때부터 이래저래 고생했던 사이라서 그런가.’

나를 우러러보기보단.

그냥 능력이 좀 뛰어난 인간으로 봐 준다.

사실.

군단장을 향한 태도라고 보기엔 건방지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가끔 선임한테 뺑이 치라느니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저런 태도가 더 마음에 들었다.

나를 무슨 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중압감이 느껴진다면.

나를 인간으로 봐주는 시선.

그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할까.

“……넌 계속 그렇게만 있어 줘라.”

“……?”

뭐. 그건 내 개인적인 일이고.

지금은.

부대의 일을 얘기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크흠. 질문에 답을 해 주자면 나도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그건 뭐냐, 저희한테도 비밀이란 겁니까?”

“아니. 그런 거면 나도 좋겠는데.”

애초에.

아는 것 자체가 별로 없단 말이지.

“이번 습격이 있을 거란 것만 해도 나도 태준이 녀석을 만나고 나서야 들었거든.”

그 외에는.

글쎄.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습격을 일으켰던 인간들도 몇 명인가 직접 보기는 했지.”

“……!?”

그 얘기에.

이상아 조장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이, 인간이라고 하신 거에요!?”

“……아.”

그러고 보니.

나야 423대대에 찾아온 인간들.

그들이 본래라면 대대에 있었을 괴물들을 해방시키려 한 모습을 직접 보았다.

자연스럽게 범인이 인간이란 것도 알고 있던 상태였지만.

‘무려 군부대의 괴물들을 해방시킨 일이니까.’

보통은 인간보다는 좀 더 강력한 존재.

못해도 다른 강력한 괴물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기는 하다.

“그 인간들한테 알아내신 건 없습니까?”

“그래. 영준이 너라면 알아낼 수 있는 게 있었을 텐데.”

“그게……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녀석들을 생포한 뒤.

[솔직한 감정]을 한바탕 먹여 주는 데 성공했다면.

일이 조금은 간편해졌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생포하기도 전에 죽어 버리더라고.”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가며.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괴물을 소환했으니까.

그 괴물이 우리를 처치하는 데 실패하자.

허공을 향해 절규하며 먼지가 되어 버린 인간들.

인간이 다른 존재의 손에 놀아난 결과.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꼴은…….

솔직히.

매우 보기 불쾌했다.

“뭐, 아무튼.”

어떻게든 이겨 냈으니까 다행이지.

그 인간들이 소환했던 괴물도 그렇고.

다른 군부대에서 풀려난 괴물들도 그렇고.

태준이 녀석이 없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야 할 공격이었다.

“궁금한 점은 많았는데,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안 그래도 갑갑한 참이었지.”

이만한 공격을 우리 부대에게 가한 자들.

그들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건, 치명적인 사실.

‘정상적인 놈들은 아니야.’

나와 부대원들의 손에 제압당한 순간.

녀석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가며, 우리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소환했다.

‘목숨을 바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욕구.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생존 욕구일 터.

그 녀석들은 그 생존 욕구를 부정하는 짓을 저질렀다.

세뇌라도 당해서 생존욕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뭔가 대단한 목표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바치려고 한 건지.

나로서는 하나도 알지 못하는 상태.

“내가 아는 건…… 녀석들의 직업이 악마 계약자라는 거.”

“악마라니.”

“그리고 또 하나는.”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부대를 떠나기 전, 태준이 녀석이 남겼던 말이다.

“정보를 가진 이가 알아서 찾아올 거라고…….”

그때.

“조, 조장님들?”

회의 중인 방.

그곳에 한 병사가 보고를 위해 찾아왔다.

“무슨 일이야?”

“그게, 손님이 한 분 찾아왔습니다.”

“손님?”

“지금은 회의 중이니까, 조금 나중에…….”

“그게, 저도 그러려고 했습니다만 그 손님이 워낙 급한 일이라고 해서요.”

……?

그야, 우리 부대를 찾아오는 손님들 중.

급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

‘어지간하면 병사들 선에서 정리했을 텐데.’

굳이 여기까지 보고하러 온 이유가 대체 뭔가.

조금 의아해했으나.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게. 저분이어서요.”

병사의 말이 끝나자.

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오랜만이오.”

“……아!”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든 경장을 두른 채.

등에는 기다란 창을 멘 남자.

노련한 사냥꾼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은 물론.

몸에서 풍기는 마력이, 상당한 강자임을 증명했다.

우리에겐 꽤나 익숙한 얼굴.

병사가 손님을 쳐내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손님이.

‘우리 군단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니까.’

다스무르 안에서 만난 그룹의 리더이자.

지금은 그 그룹을 길드 규모까지 키운 남자.

‘……태준이 녀석이 분명 정보를 가지고 올 자가 있다고 했었지.’

우리 부대의 최대 동맹 세력 중 하나.

[복수자들]의 수장.

“당신들하고 급하게 상의해야 할 문제가 있거든.”

창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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