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04화 (204/227)

204화 주술사

“이거, 오랜만에 보는 것 같소.”

“그러게 말입니다.”

이창수.

[복수자들]이라는 이름의 길드의 수장이자.

우리 부대의 간부급들과 비슷한 레벨의 강자다.

그가 이끄는 길드, [복수자들]과는 여전히 자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묘양사]와 더불어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길드니까.

다만.

그 리더인 창수가 직접 우리를 찾아온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간만에 보니 반갑군요.”

“하하. 그동안 여러모로 바빴다 보니.”

그 이유가 뭔가 했더니.

길드장으로서 여러모로 여유가 없었던 모양.

‘사실 내가 이상한 거긴 해.’

나는 김 중위에게 대부분의 업무를 짬 때리고 있어서 그런 거지.

원래 길드장이란 게 엄청 바빠야 정상이긴 하다.

고맙습니다, 김 중위님…….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고생해 주십쇼.

“……중요한 분인 건 알겠습니다만.”

하지만.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일 적인 얘기는 그것과는 별개다.

“지금은 회의가 진행 중이니 조금 나중에 다시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수혁 상병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내 요리를 통해 나름대로 전우애를 각성해 버린 녀석이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부대원들을 향한 것.

그나마 다른 부대원들의 경우.

군단원이 아니더라도 같이 싸웠던 이들이라면 전우로 보는 경우가 많다만.

서수혁 상병은 그 기준이 꽤나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나마 우호적인 세력의 수장인만큼 온건한 태도기는 하다만.

회의를 방해한 사실 자체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는 녀석.

“음…… 그 회의 내용 말인데.”

“?”

각성자들의 신체 능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진다.

군단에 협력하면서 나름의 장비까지 얻은 지금.

창수의 능력은 우리 부대의 간부들과 비슷한 수준.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조금 들어 버려서 말이오.”

그 신체 능력은.

청력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아주 대놓고 선을 넘으시는군요.”

창수의 말에.

그를 바라보는 서수혁의 눈매가 무척 날카로워졌다.

“남의 회의 내용을 멋대로 엿듣다니.”

“그러니까. 그 부분은 나도 미안한데…….”

“미안하면 어서 나가십-”

“그게 내 방문 목적하고도 겹치는 것 같아서 말이오.”

……응?

갑자기 나온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창수를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내용 말인데.”

그러자.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여는 창수.

“어쩌면 내가 해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거든.”

* * *

회의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

나와 간부들은 창수의 뒤를 따라 어딘가로 이동을 시작했다.

“지난번 던전의 보스. 기억하시나?”

창을 어깨에 걸친 채 어딘가로 우리를 안내하던 창수.

그가 우리를 슬쩍 뒤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던전의 보스라.

“그 교황 얘기로군요.”

“맞아. 나는 한동안은 그놈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지. 하지만…….”

다스무르의 교황.

나와 창수는 그 교황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

더 나아가, 교황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고.

“그놈들도 결국은 이 세상의 피해자에 불과했어.”

“…….”

그거야.

나도 잘 알고 있다.

그 어인들은 결국 자신들의 세상에서 우리와 같은 일을 겪은 뒤.

처참하게 패배.

소수의 생존자들만이 도망쳐 온 난민들에 불과했음을…….

‘직접 경험해 봤으니까.’

슬쩍 얼굴을 살피니.

우리를 안내하던 창수의 얼굴에 조금은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교황을 죽인 거, 후회하십니까?”

“……설마. 그 물고기들을 몰살시킨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틀린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오. 그 녀석들을 죽이지 못했다면, 언젠가 우리가 물속에 빠져 죽어 버릴 운명이었을 테니까. 다만.”

창수의 길드.

[복수자들]은 우리 길드와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우리 길드는 적극적으로 점령전을 추진한다.

힘을 키우고, 영토를 늘리고.

그렇게 확보한 세력을 안정화시키는 데에 주력하는 게 군단.

이유는 간단했다.

이 세계가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스템]이 우리에게 점령전을 수행할 것을 권하고 있으니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은, 힘과 세력을 키울지언정.

‘점령전’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길드가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점령을 위한 활동은 일절 수행하지 않는다.

“그 녀석들만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지 뭐요.”

[복수자들]이라는 그 이름대로.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복수.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원인을 찾아…… 복수한다.’

세상을 이렇게 만들고.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아 간 원인.

단순히 사람을 살해한 괴물을 사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가는 이들.

그게, 창수와 그를 따르는 인간들.

[복수자들]이었다.

“하지만 뭐. 알잖소. 세상이 이 꼴이 난 원인을 알아보려고 해도 워낙 답도 없는 문제여서 말이지.”

“그거야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알 만한 이들을 찾아다녔소.”

“……알 만한 이들이요?”

그건 또 뭔 소리래.

‘우리 길드만 해도 이 일대에서 가진 정보로는 최고 수준일 텐데.’

군단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 자체도 상당한 것은 물론.

정보 습득 숙련을 가지고 있는 상인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정령사와 무당을 통해 주변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한다.

그런 우리 길드가 모르는 문제.

그걸 알 만한 이들을 찾아다녔다니.

“그런 걸 아는 사람들이 있을 리가…….”

“응? 아아. 설명을 제대로 못 한 것 같군. 그야, 당신들도 모르는 일을 아는 사람은 없겠지.”

이윽고.

창수가 우리를 끌고 도착한 곳은.

도시의 바깥에 있는 한 작은 창고 같은 건물.

“사람은 말이야.”

“……예?”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 있는 것은.

-……크륵.

번들거리는 녹색 피부.

짐승 같은 울음소리.

빼빼 마르고 거대한 형체.

“그래서 찾아온 게 바로 이 녀석이오.”

“…….”

그 형체를 본 나와 부대원들.

그 시선이 창수를 향해 고정되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안 그래도 창수를 고깝게 보던 병사.

서수혁 상병이 총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이 일대가 어떻게 확보한 안전 구역인데.”

“어, 어어. 일단 진정하시오.”

“그 안으로…….”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 녹색 피부는 분명.

“괴물을 끌고 와……!?”

녹색갈기 부족.

얼마 전까지 우리와 전쟁을 치르던.

바로 그 괴물이었으니까.

* * *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시라니까.”

“날 잘 몰라서 하는 말인가 본데…… 난 지금 어느 때보다 냉정한 상태입니다.”

“사람한테 총을 겨눠 놓고 무슨……!”

창수를 향해 총구를 겨눈 서수혁 상병.

그를 바라보는 눈빛도, 말투도 모두 베일 듯 날카로워져 있었지만.

‘저 말이 또 거짓말은 아니란 말이지.’

서수혁 상병은 기본적으로 감정 변화가 적은 편이다.

지금도 아마 꽤나 냉정한 상태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딱히 그게 좋은 의미는 아니다.

흥분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침착하고 냉정하게.

창수의 머리통을 쏠 준비를 한 것.

“요, 요리사 양반. 이 사람 좀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창수.

하지만…….

“수혁아.”

“예. 상병 서수혁.”

“이상한 짓 못 하게 감시하고, 쏘더라도 죽이진 마라.”

“충성.”

아쉽게도.

나 역시 창수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요리사 양반……!”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서수혁 상병의 태도 쪽이 훨씬 이해가 간다.

‘지금 상황은…… 창수를 신뢰하고 있는 나도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니까.’

물론.

저런다고 무턱대고 총을 쏠 녀석은 아니다.

쏘더라도 내게 확인을 받은 뒤에야 움직이겠지.

“무, 무슨……!”

“조용히 하십쇼. ……우리도 우호적인 길드를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총구가 자신을 향하자.

창수는 얌전히 두 손을 든 채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후우. 알겠소. 다만, 내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한 건 아니란 점만은 알아주시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저 구석에 앉아 있는 괴물을 유심히 관찰했다.

[식재료 감별(강화)]

그러자.

특성이 발동했다.

[녹색갈기 오르크 주술사]

[신선도 - 중상]

녹색갈기 부족…….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계속해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바로 그 괴물.

‘살아 있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만 있는 건가.’

괴물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듯.

거친 숨소리를 흘리며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몸은 두꺼운 철제 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으며.

입에는 철에다가 각종 천을 두른 재갈이 물려 있었다.

-크르……흑…….

결박된 상태에서 거친 숨을 내쉬는 녀석.

빼빼 마른 몸을 봤을 때 이미 눈치채긴 했지만.

전사가 아닌 주술사 쪽이었다.

‘주술사라.’

전사들에 비하면,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은 드문 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한이 없냐 하면.

그건 또 그렇지도 않다.

‘인간들을 노예로 다룬 건 이 녀석들이 주체라고 했었지.’

그런 괴물이…… 지금.

내 앞에서 버젓이 살아 있다니.

“하.”

권속으로 삼아 버린 아리엘라를 제외하면.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상황.

“창수 씨.”

그리고.

이놈을 여기로 끌고 온 것은 바로 저 남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야 할 겁니다.”

* * *

“……안 그래도 설명하려고 했소.”

내 시선에 약간의 분노가 담긴 것을 눈치챈 듯.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여는 창수.

내가 살짝 눈짓을 하자.

서수혁 상병이 총구를 슬쩍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창수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우리는 처음부터 우호적인 관계로 시작했었지. 그래서 몰랐던 것 같군. 당신들. 생각보다 살벌한 구석이 있었어.”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창수.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답했다.

“뭐. 이런 세상에서 유하게만 굴어서 살 수 있겠습니까.”

“하아. 그게 당연한 거겠지. 내가 당신들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군.”

서수혁의 기세에 꽤나 압도되어 있던 것일까.

흘러내리던 식은땀을 닦아 낸 창수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크흠. 당신들도 알고 있겠지만 저번에 당신들을 도와 이 녀석들과 싸움에서 승리하고 난 뒤, 우리는 바로 전선에서 물러나지 않았소.”

“일단 그런 얘기를 듣기는 했었죠.”

첫눈이 내리고,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게 되자.

우리는 일단 내부를 정비하기 위해 전선에서 살짝 물러났다.

‘태준이 녀석의 점성으로도 그게 맞다고 했었으니까.’

길드의 규모가 커진 만큼.

겨울에 대비해서 이래저래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으니까.

“우리도 겨울나기 준비야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여유가 있었거든.”

하지만.

창수의 길드는 군단이나 묘양사 등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다 보니.

저런 세력 정비 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던 것 같다.

“사실 그것도 당신들의 도움을 받은 덕에 가능한 거긴 했지만 말이오.”

“그거야 뭐. 저희도 대가는 제대로 받았으니 문제 될 건 없죠.”

“아무튼. 그렇게 겨울에도 조금 여유가 있다 보니, 우리는 매일같이 몬스터들의 토벌에 나섰소. 처음에는 레벨링이나 하려는 생각이었지. 당신들에 비하면 아무래도 우리 길드원들은 능력치가 좀 모자란 편이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렇게 싸우다 보니까, 이 녀석들 중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녀석들이 있는 거요. 아주 드물기는 했지만 말이지.”

“……아아.”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놈들.

그런 녀석들이 있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었다.

내 그림자 속에 있는 아리엘라도 그렇고.

인제군청을 점령하고 있던 고블린들 역시 비교적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했지.

거기에 분명…….

‘녹색갈기 부족 중에도 인간을 노예로 다루기 위해 한국어를 배운 녀석들이 있었다고 했던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계의 괴물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의 목적은.

어째서 괴물들이 우리 세계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으니.

이들의 활동 목적을 생각해 본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생포하려고 한 거군요.”

“음. 쉽지는 않더군.”

이계에서 온 괴물들.

그 괴물들에게 직접 궁금한 점을 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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