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05화 (205/227)

205화 녹색갈기 부족 (1)

“생포하려고 한 거군요.”

“음. 쉽지는 않더군.”

꽤나 고생이 심했는지.

고개를 휘휘 내젓는 창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괴물 자체가 드문 편이기도 하고, 가능하다고 해도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지능이 뛰어난 놈들은 훨씬 더 적었거든.”

“그래서 녹색갈기 부족을 찾으러 간 거군요.”

“바로 그거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괴물이 있는 것까진 좋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괴물이 흔할 리가 없는 일.

그런 괴물을 찾는 것 자체가 고생이었을 테지만.

녹색갈기 부족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위치도 확실한 것은 물론.

인간을 노예로 쓰기 위해 언어를 익혔다고 했으니.

의사소통이 될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단 거다.

“말했다시피, 꽤나 힘든 일이었소. 애초에 언어를 배운 놈들은 주술사뿐이더군. 숫자 자체가 평범한 전사들에 비하면 드물지. 거기에, 모든 주술사가 언어를 익힌 것도 아니었어.”

“그야. 모든 주술사가 노예를 다루려고 투입되진 않았을 테니까요.”

“그것뿐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 녀석들은 무슨 자존감이 그렇게 강한지…….”

혀를 내두르며.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창수.

“전사든 주술사든 간에, 잡히기만 하면 뭘 캐묻기도 전에 바로 자살을 시도해 버리는 거요.”

“……쯧.”

괴물들의 얘기긴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불쾌한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살이라니.’

아무리 자존감이 강하다고 한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지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괴물들.

사고방식이나 감성 역시 우리와는 꽤나 차이가 크다는 거겠지.

‘……불쾌하다.’

이 불쾌함의 이유는.

조금은 짐작이 간다.

‘내가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유형의 인간이라서.’

쉽게 목숨을 내던지는 녀석들을 보면.

한없이 불쾌한 기분이 드는 거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행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면…….

열등감이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렇게 고생을 해 가며 겨우겨우 생포하는 데 성공한 게 바로 저 녀석이오.”

“용케도 성공하셨군요.”

“음. 이유는 모르겠는데 외곽 지역을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더군.”

“예? 혼자서요?”

창수의 그 말에는 조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주술사는 후방지원직.

인간으로 따지면 마법사 쪽에 가까운 녀석이다.

‘전위…… 전사들과 함께 활동해야 할 주술사가 왜 혼자서?’

아니.

그 부분도 신경 쓰이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다.

나는 의문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창수를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응? 어떻게, 라니. 그야 보면 알지 않소. 지나가는 주술사를 붙잡아서 어떻게든 자살하기 전에 입에다가 재갈을…….”

“그게 아니라. 어떻게 녹색갈기 영역 내부를 돌아다닐 수 있었냐는 겁니다.”

“어.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와의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나.

녀석들은 상당히 큰 세력을 이루고 있다.

안 그래도 아리엘라에 의해 영토 내부에서 큰 곤욕을 치른 녀석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지금은 영토 내부의 방위에도 엄청난 신경을 쏟아붓고 있어야 정상이다.

‘창수의 길드도 나름 크다고는 해도…… 적진 내부를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는 아니야.’

그런데 그 내부를 마음대로 헤집고 돌아다닌 것은 물론.

저쪽에서도 귀중한 재원일 것이 분명한 주술사들.

그 녀석들을 납치하려고 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얘기를 들어 보면 한두 번도 아닌 것 같다.

아마 많은 시행착오 끝에 성공한 게 바로 저 괴물일 터.

“그런 짓은 우리 길드도 힘들 것 같은데요.”

그야, 아예 불가능하진 않겠지.

부대의 정예 병력들을 데리고 간다면 가능하긴 할 것이다.

‘그런 짓을 하는 순간 바로 발각돼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게 뻔하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지.’

그렇다 보니.

의아해질 수밖에 없단 말이지.

“어떻게 하신 겁니까, 대체.”

“……으음?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그렇게 말하셔도 말이지.”

나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다만.

창수 쪽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말을 듣자.

그제서야 이 문제를 인식한 듯.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창수.

“……생각보다 그냥 돌아다닐 만하던데?”

“예?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이상하게 들리는 건 이해하는데, 정말로 그뿐이오. 돌아다니기 어려웠으면 애초에 우리도 진입을 못 했겠지.”

그야 그렇긴 하다만.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아리엘라처럼 단신으로 몰래 숨어든 것도 아니고.

창수의 그룹원들은 최소한 수십 명 단위로 움직였을 터.

자신들 영토 내에서 그렇게 대놓고 움직이는 적대 세력을.

저들이 그냥 놓쳐 주었다고?

‘설마, 우리가 그때 준 피해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던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들 영역 내부에서 납치하고 다니는 적이다.

그런 적들을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뭐. 말했다시피 나는 진짜로 아는 게 없소. 그러니…….”

어깨를 으쓱이더니.

괴물에게로 다가가 그 녀석의 몸에 손을 올리는 창수.

“그런 자세한 부분은 이 녀석한테 물어보면 되는 것 아니겠나.”

-크륵……!

창수에 손길이 닿는 순간.

거친 숨소리를 쉬며 기절해 있던 괴물의 눈이 떠졌다.

-끄륵……! 끅……!! 크륵……!!!!

시선에 적대감을 가득 담은 채.

창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녀석.

재갈을 물고 있음에도 거친 말을 내뱉으려는 게 대놓고 보일 지경이었다.

“카하하. 뭐. 보면 아시겠지만 날 아주 죽일 듯이 싫어하는 놈이오.”

“……그래 보이는군요.”

신체 능력이 약한 편인 주술사라 결박을 풀어내지는 못하는 듯 보이지만.

전사였다면 금방이라도 사슬을 깨부수고 창수를 향해 몸을 날렸겠지.

“아무튼, 납치하는 데 성공한 건 좋았는데. 문제가 하나 있소.”

“문제요?”

“이놈. 도무지 입을 열 생각을 안 하더군.”

“흠. 대화가 안 통하는 건 아닙니까? 언어를 익히지 않은 주술사도 많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건 확실히 아니라고 할 수 있어. 말이 통한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확인이 된 상태거든.”

“……? 이 녀석은 말할 생각을 안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어떻게…….”

“아. 그게.”

조금 말하기 애매한 얘기인 것일까.

볼을 긁적거리는 창수.

‘……아.’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정보를 얻기 위한 납치였으니까.

우리 부대는 조금 예외다만.

납치한 대상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가장 효율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은.

‘고문 정도겠지.’

남들에게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고문을 거친 결과.

말이 가능한 것만큼은 확인한 건가 싶었으나.

“생포하려고 할 때, 우리를 향해 아주 쌍욕을 해 대더군.”

“아.”

아무래도.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조상님까지 불러와서 화려하게 모욕하는데…….”

“…….”

“요즘 중고등학생들도 그 정도로 화려하게 욕하긴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 아주 달변이더군.”

외국어를 배울 때도 욕부터 배워진다더니.

그런 점은 괴물도 마찬가지란 건가 보다.

“그나마 다행인 점도 있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재갈을 풀어도 자살하려고 하진 않더군.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뭘 캐물으려고 해도 도통 대답을 안 하니…….”

“흐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고문 정도인데 자존심 강한 이 녀석들이 고문한다고 정보를 뱉을 것 같지도 않아. 차라리 자살을 택하면 택하겠지. 거기서, 당신들이 떠오른 거요. 그 던전에서 활약했던 당신네들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았거든.”

그렇게 말을 마친 뒤.

슬쩍 서수혁을 바라보는 창수.

“설명은 대충 이 정도인데. 어떤가, 총 맞을 정도는 아닌 것 같지?”

“……흥. 다행이로군요. 저희도 우호 세력을 잃지 않게 됐으니.”

“하하. 한마디도 안 지시는군.”

어쨌든.

창수가 이 괴물을 데려온 이유는 알게 되었다.

“이 녀석에서 뭔가 정보를 빼 보라, 이겁니까.”

“음. 당신들도 궁금해하는 게 있는 것 같던데, 인간이 아닌 괴물들이라면 뭔가 아는 것도 있지 않겠소?”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조금은 회의적이었다.

‘쓸 만한 게 있을는지.’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아리엘라는 녹색갈기 부족의 일부를 지배하에 둔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리엘라는 이 녀석들의 언어까지 습득했지.

‘뭔가 쓸 만한 정보가 있었으면 그때 얻을 수 있었을 거다.’

결국 그렇게 지배했던 괴물들은 모두 토벌당해 버린 탓에.

뭔가를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리엘라는 나름대로 녀석들에게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는 놈들의 기지가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등.

녹색갈기 부족의 대략적인 정보를 이미 습득해 둔 상태.

게다가…….

그때 아리엘라가 느낀 바에 따르면.

‘이 녀석들 생각보다 문명의 수준이 높지는 않은 편이란 말이지.’

이 녀석에게 뭘 캐묻는다고 한들.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해 봐야 얼마나 많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만.

“뭐……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해 보죠.”

“조심하시오.”

나는 녀석의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인 뒤.

“일단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

입에 물려 있는 재갈을 풀고 말했다.

“이름.”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내가 이름을 묻자.

알 수 없는 언어로 괴성을 질러 대는 녀석.

“…….”

얼마나 거칠게 소리치는지.

가까이 앉아 있던 내 얼굴이 녀석의 침으로 도배가 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빡!

“말이 좀 심하네.”

-크륵……!

나는 녀석의 머리를 세게 한 번 때려 준 뒤.

입에 다시 재갈을 물렸다.

-……주인님?

‘응?’

얼굴에 묻은 괴물의 침을 닦아 내고 있자니.

그림자 속에서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저는 몰라도, 주인님은 저 녀석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으실 텐데. 욕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들으신 거죠……?

‘아니. 못 알아들었는데?’

-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욕이라는 건 분위기로 대충 알 수 있으니까.’

-…….

그림자 속에서 어이없어하는 기척이 느껴진다.

어찌 됐든.

순순히 답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녀석.

“하하. 뭐, 계속 이런 상태였다고 보면 되오.”

“한국말로는 안 들렸습니다만.”

“아마 우리 대화를 들어서 그런 걸 거야. 원하는 말을 해 주기는 싫다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이지.”

“아아. 뭐, 대충은 알겠네요.”

그나저나.

흐음.

“창수 씨.”

“음?”

“이 녀석, 오는 길에 밥 같은 건 먹였습니까?”

굳이 힘을 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으로 해 보겠다고 한 거.

조금 더 시도해 봐도 나쁠 건 없겠지.

“아니. 반항이 너무 거세서 뭘 먹일 생각도 못 했지. 그건 왜?”

“그건 잘하셨네요.”

“……?”

자존감이 강한 데다가.

적들이 원하는 바를 이뤄 줄 바에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용기까지 가지고 있으시다고?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한번 보자고.’

딱 대라.

세상 누구보다 수다스러운 놈으로 만들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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