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대회의
콰직!
-크륵…… 크륵…… 그르륵!!!
“뭐, 뭐야?”
내 질문을 들은 녀석은.
대답을 하기는커녕.
자연스럽게 벌려지려는 자신의 입을 향해 주먹질을 시작했다.
-끄……륵……!
주먹질로도 모자랐던 것일까.
양손에 핏줄이 설 정도로 힘을 줘 가면서.
자신이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틀어막기 시작하는 녀석.
머리가 터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힘을 주는 그 모습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함]의 요리가 저런다고 막아지는 게 아닐 텐데.’
자기 입을 자기가 막는다고 해서 입을 다물 수 있을 정도라면.
애초에 이 요리로 입을 여는 적들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특별 소스]는 입을 열게 하는 힘이 아니라 감정을 바꾸는 힘이니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저런 식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려는 행위.
그 자체를 떠올리지도 못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지금 저렇게 입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는 건…….’
내가 먹인 [솔직함]의 요리의 효과를…….
어느 정도 견뎌 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미친. 정신력이 얼마나 높은 거야.’
아니 그보다.
대체 뭘 하려 했길래.
내 질문에 저렇게 입을 닫는단 말인가.
“사람이 물었으면.”
그 답을 알아내는 방법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스륵.
“대답을 해야지.”
“그, 그륵-!”
녀석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막고 있는 그 손을 치워 주면.
그걸로 충분.
“자. 다시 말해 볼까?”
“나, 나는 부족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다. 대주술사였던 쿠르단조차 타고난 마력이 나보다 앞서 대주술사의 자리를 얻었을지언정, 나보다는 나이가 어리다.”
“엉?”
입을 막고 있던 방해물이 사라지자.
그렇게 말하기 싫어하던 녀석임에도 불구.
입이 스스로 움직이며 내가 원하는 정보를 뱉기 시작했다.
“우리 부족은 평균 수명이 짧은 만큼…… 오래 살아온 부족원의 지혜를 존중한다. 지금은 죽어 버린 대족장 역시 자주 내게 조언을 구하고는 했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그에게 악마와의 계약을 권했던 그날…… 나는 대족장에게서 한 가지 임무를 부여받았다.”
……뭐?
방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악마와의 계약을…… 권했다고?’
녹색갈기 부족을.
멸망까지 몰고 간 바로 그 선택.
그걸 제안한 녀석이.
‘너였냐?’
바로.
이 녀석이었다는 거다.
* * *
이계의 존재.
그로 인해 초원을 내달리던 생명들은 멸망의 위기에 직면했다.
오랜 전쟁 끝에.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 위기를 이겨 낼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된 이들.
결국.
[대회의에 참가하라.]
오르크 족은 물론.
오르크 족의 영토이자 초원신이 비호하는 땅.
초원에 거주하는 모든 종족들.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위기가 닥쳐 왔을 때, 모든 초원의 생명들이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
[대회의]의 개최를 위해.
그곳에 모인 이들은.
각자가 생각한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조금 힘들지언정, 우리 부족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젊은 나이에 녹색갈기 부족의 대전사 자리에 오른 강력한 전사.
카르가라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난 부족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륵, 카르가라의 말이 옳다!
-초원신의 비호를 믿고 계속해서 투쟁하다 보면 승자는 우리가 될 터!
카르가라와.
그를 추종하는 전사들.
그들은 계속해서 괴물들과 전투를 벌일 것을 주장했다.
-……말이 주장이지.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지만, 계속 패전만이 반복될 뿐 아닌가.
하지만 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적었다.
결국, 카르가라의 주장은 현상 유지를 제안한 셈.
그런 제안이 먹힐 리가 없었다.
-초원의 영토가 너무 넓은 것이 문제일 수도 있소. 부족원들을 한곳으로 모은다면…….
-그건 우리와 교감하는 정령이 줄어들고, 초원신의 영역이 줄어든다는 뜻 아닌가. 아무리 전선을 압축할 수 있다고 한들, 우리 힘이 약해진다면 결국 큰 차이는 없을 터.
-그럼 이런 방법은 어떻…….
초원의 모든 생명들이 모여 머리를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중.
효용성 있어 보이는 대책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회의가 길어지자.
진중한 표정으로 회의를 지켜만 보던 거구의 오르크.
대족장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다른 종족들과 동맹을 맺는 건 어떻겠나.
초원의 생명들의 정점에 선 자.
대족장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말.
-예?
-우리는 초원을 내달릴 수 있는 힘과 숫자가 있고, 저들은 우리에게 없는 성벽과 영역을 지킬 수 있는 기술이 있지. 둘이 합쳐질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
-…….
대족장이 말을 마치자.
그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이….
말문이 막힌 채 대족장을 바라보았다.
-그, 그게.
-뭐라고…… 해야 할지…….
한창 시끄럽게 진행되던 대회의였으나.
그 회의장이 긴 정적에 휩싸인다.
숨 막히는 정적이.
한참을 이어지고.
-……하하! 대족장께서도 농담을 하실 때가 있군요.
주술사들의 수장.
대주술사 쿠르단이 다소 어색한 웃음으로 정적을 깼다.
-노, 농담?
-아아. 하긴. 당연히 농담이었겠지!
다른 종족.
이라고 부르긴 했으나.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
다른 종족이라 함은 ‘원수’를 부르는 여러 말 중 하나에 불과했다.
터무니없이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대립하고, 전쟁하며.
살해해 왔던 이들.
그들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은 이계의 존재들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종족들.
그 차이는.
그저 어느 쪽이 강하냐일 뿐.
증오의 정도는…….
그 둘이 동등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래. 그런가.
쿠르단의 말에.
대족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맞아. 농담이었네.
허허롭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긴 회의에 다들 지쳐 가는 것 같길래,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한 걸세.
-아아! 과연!
-대족장께서는 농담하시는 법을 좀 배워야겠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시길래, 당연히 진담인 줄로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그렇게.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은 채로 회의가 길어지고.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초원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이자.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지식과 현명함으로는 대주술사조차 한 수 접어준다는 주술사.
-보르진?
보르진이 입을 열었다.
-이는 제가 아주 어렸을 적, 부족에서 가장 나이가 많던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그대가 어렸을 때라니, 얼마나 옛날이란 건가.
-그 노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들 중에는…… 초원신보다 강대한 존재도 있다고 하더이다.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며.
-……그게 무슨?
-초원신께서는 그동안 우리를 잘 보살펴 주었으나, 이계의 존재들에게서 살아남을 만한 힘을 주지는 못하고 계시지요. 그렇다면.
그 세월만큼의 지혜를 쌓은.
누구보다 현명한 주술사.
-다른 이를 섬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모든 부족원들이 귀를 기울였다.
* * *
-그, 그날. 우리 부족은 초원신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
-악마와의 계약은 준비가 필요하니, 다음 날 진행하기로 되었지. 나 역시 계약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날 밤, 대족장이 나를 불렀다.
“왜…… 부른 거지?”
-부, 부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내 조, 조언대로 초원신을 버릴 수는 있다. 버릴 수는 있으나!
종을 이끌던 수장.
대족장으로서는.
-대족장께서는, 악마와의 계약이, 부족에 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염려하셨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다른 방법도 마련해 두어야만 했다.
-당시에는,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내리는 임무를, 거절하지는 않았지.
“……임무?”
-내, 내가 혼자서 활동한 이유는.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었. 지….
대체 무슨 임무였길래.
이 녀석이 목숨을 바쳐 가면서 숨기려고 했단 말인가.
지금도.
[솔직함]의 효과에 대항해 저렇게 대답을 늦추고 있단 말인가.
-부족이 큰 전쟁에서 패배하고…… 사방에는 강력한 외적이 자리 잡았다.
“……?”
-주술사들의 수장은 우리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간 악마와 손을 잡고 있었으며, 부족원들은 단합하지 못한 채 내전을 벌이기 시작했으니…….
이에 대한 결론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부족에…… 아니. 초원의 종족들에게 멸망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판단했다.
전쟁의 패배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확실한.
멸망의 전조.
-대족장의 명령을 수행할 때가 온 게지.
“그 임무가 대체 뭐길래.”
내가 그렇게 묻자.
최대한 명령에 거부하려는 듯 떨리는 손.
-아, 악마와의 계약은. 종의 순수성을 헤치고, 우리 종을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으니.
하지만.
그 손은 무력하게 그의 등을 향하고 있었다.
-종에 멸망의 위기가 찾아올 경우……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 손이.
등으로 향하자.
-종의 원형을, 보존하라.
스르륵…….
어떤 주술이 걸려 있었던 것일까.
지금까지는 투명한 채 보이지 않았던 물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랗고 투명한 구체형의 물체.
그 형태는 뭐라고 할까.
‘……알?’
무언가의 알에 가까워 보였다.
[식재료 감별(강화)]
투명한 알.
너무 투명한 나머지 그 안쪽이 미세하게 비쳐 보였다.
[원시 오르크 유체]
수십에 달하는 작은 형체들이.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오르크 족은 악마와의 계약으로 인해 힘을 얻었지만, 종 자체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악마의 영향을 받아 갈색의 피부는 기괴한 녹색으로 물들었으며, 덩치가 커지고, 가죽은 두꺼워지고, 어금니 역시 비대해졌습니다.]
[주술사들은 강대한 마력을 얻은 대신 지능이 줄어들었으며, 전사들은 강한 힘을 얻은 대신 이전보다 광폭해졌습니다.]
[당연히 그 맛도 크게 변해 버린 바!]
[기존의 맛을 선호하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듣는다면 환호할 만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본래라면 멸종했어야 했을 원시 오르크.]
[그중 일부가 특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
[악마와의 계약으로 순수성을 잃어버린 현재의 오르크 족과 달리, 본래의 순수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원시 오르크 족의 유체입니다.]
[알을 낳지 않는 종족이 대지 정령의 도움을 받아 알을 만들었습니다. 알 속의 태아들은 봉인된 상태로, 봉인이 해제될 때까지 성장하지 않으며 그 순수성을 유지합니다.]
[사실상 멸종에 가까운 매우 희귀한 식재료입니다!]
[뼈가 굵고 살이 적어 먹을 수 있는 부위는 적지만 맛은 나쁘지 않은 편으로…….]
“…….”
-……크륵.
[최후의 대족장, 고엔의 피를 이은 개체에 여러 가지 주술이 가해진 상태입니다.]
[바람직한 환경만 주어진다면, 이들을 양식함으로써 옛 오르크 족의 재흥을 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종족 멸망의 위기.
커다란 알.
그 안에 꾸물거리는…….
수십 개의 자그마한 형체.
‘이 녀석들, 한 번에 수십의 아이를 낳는다고 했었지……?’
이 녀석이 하려던 짓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 뭐냐.
옛날에 유행했던 전략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씩 나오는 상황이기도 했으니까.
‘본진이 완전히 망해 버려서 회생의 여지가 없을 때.’
몰래 다른 곳에 일꾼 한 마리를 보낸 뒤.
그곳에 새로운 기지를 세움으로써.
재기를 노리는 것.
“멀티.”
악마의 힘으로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태아들.
그 태아를 가지고 최대한 먼 곳으로 도주한 뒤.
그곳에서 저 아이들을 키워…….
‘새로운 부족을 일으키려 했다.’
멸망하고 왜곡된 종족의 터전을 벗어나.
다른 안전한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한 것.
다만, 게임의 경우.
저렇게 몰래 보낸 일꾼이 적에게 들킬 때도 왕왕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뭐, 얄짤없이 사냥당하는 게 보통이었지. 아마?’
그리고.
그런 점은 현실과도 큰 차이는 없겠지.
-부, 부탁한다.
멸종의 위기에 처한 종족.
그 종족의 원형을 어떻게든 존속시키기 위해.
-부, 부족의 멸망은. 내가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
-이 임무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손으로 이뤄 내야만 한다……!
저 늙은 주술사가 택한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었다.
-나 같은 늙은이는 얼마든지 죽여도 좋다. 부족의 전사들과 주술사들을 몰살시키는 것 역시 패배의 대가로 받아들이겠다. 그러니……!
아리엘라의 말에 따르면.
마력을 타고난 마수들은 흉포하고 자존심이 강하다던가.
실제로.
녹색갈기 부족은 평범한 방법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었다.
아리엘라가 [권속]으로 만드는 방법 정도가 아니고서야.
창수의 말처럼 제압당할 바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녀석들.
심지어 이 녀석 역시.
[솔직함]의 요리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에 저항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바로 그랬던 녀석이 지금은.
쿠웅!
고개를 숙이고.
바닥이 파일 정도로 강한 힘으로 머리를 처박으며 말했다.
-이 아이들의 목숨만은, 살려다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종의 원형을 보존하라.
아무리 명령의 내용이 그랬다고 해도 그렇지.
‘그 수단이라는 거에…….’
무릎 꿇고 빌기도 포함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