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10화 (210/227)

210화 멀티.

녹색갈기 부족의 주술사.

보르진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은 뒤.

“……뭐, 그렇게 됐다.”

나는 그에게서 얻은 정보를 조장급 병사들에게 공유했다.

그중에 중요한 것은 악마 계약자에 대한 정보.

그리고…….

“이게 바로 그 알인데.”

주술사, 보르진.

그가 투명화 주술까지 걸어가며 애지중지하고 있었던.

[원시 오르크 유체]

커다란 알이었다.

“저 알들은 정체가 뭐랍니까.”

“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녀석들 멀티를 까려고 한 것 같다.”

“멀티요?”

“어, 그게 뭡니까?”

멀티.

전략 게임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용어지만.

그런 전략 게임들 자체가 꽤 옛날에나 유행했던 것이다 보니.

‘수혁이랑 광일이는 게임 같은 걸 할 것 같지는 않은 성격이긴 하지.’

게임을 잘 모르는 병사라면 모를 수도 있겠다 싶다.

‘주력인 본진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그 외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확장 기지’를 뜻하는 말.’

그 확장 기지를 짓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곳에서 추가적인 자원을 얻기 위함.

우리의 경우에는, 인제군을 떠나 춘천에 거점을 마련한 게 그 사례겠지.

그리고 또 다른 경우는.

‘본진이 망해 버렸을 때.’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기지가 필요해졌을 경우다.

“부족이 멸망하려고 하니까, 새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한 거다.”

부족에 찾아온 멸망의 위기.

종족의 멸망을 막기 위해.

보르진은 저 알을 가지고 부족의 영토를 탈출했다.

‘악마의 힘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오르크.’

악마와의 계약 당시.

악마의 능력으로 부족원들의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시 대족장은 보르진에게 따로 명령을 했다고 한다.

‘대족장이 낳은, 가장 재능이 넘치는 아이들.’

그 아이들만큼은.

어떤 외적인 힘에도 영향을 받지 않도록 따로 봉인을 해 달라고.

그리고 언젠가 부족에 멸망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 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려 한 것.

실제로 그 위기가 찾아오자.

보르진은 착실하게 그 명령을 이행하려 했다.

어딘가 안전한 곳에서 저 아이들을 키운 뒤.

저 아이들을 기반으로 오르크 족의 새로운 시작을 노렸다고.

문제는…….

“그렇게 탈주하려던 중, 창수 씨네 그룹한테 걸려 버린 거지.”

“운도 더럽게 없는 놈이군요.”

보르진은 꽤나 능력 있는 주술사 같기는 하다만.

부족을 떠나 홀로 개인 활동을 한다고 하면.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니까.

‘오히려 저 녀석 입장에서는 어이없을 만도 해.’

아무리 외곽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녹색갈기 부족의 영역이었던 곳.

그런 곳에서 뜬금없이 습격을 받아 버린 거니까.

“과연…… 그렇게 된 거였군요.”

사정을 모두 듣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난 것은 서수혁 상병이었다.

“그럼…….”

“응?”

갑자기 왜 일어나나 했더니.

철컥.

총을 들고 알을 향해 겨누는 녀석.

“일단 이건 처분하는 걸로 하겠습-.”

“자, 잠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녀석.

나는 급하게 손을 뻗어 그 총구를 내렸다.

“……?”

“왜 그러십니까, 신 병장님?”

그러자.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병사들.

“처분 안 하시는 겁니까?”

그중에서도 특히.

총구를 붙잡힌 서수혁 상병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일단은 기다려 봐.”

“기다리라니…… 저 주술사야 정보를 더 캐낼 게 있으니 살려 둔다 치더라도.”

잠깐 보르진을 경멸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녀석.

“이 알들은, 뭐 정보를 얻을 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럼 살려 둬서 좋을 게 없는 거 아닙니까? 혹시라도 탈출에 성공하면 다른 곳에 또 다른 적대 세력이 자라나는 걸 방치해야 하는 꼴이 될 테니.”

꽤나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하는 서수혁 상병.

사실 이 녀석은 언제나 냉정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는 했다.

문제는.

“그러게 말입니다.”

“영준아? 무슨 생각이 있는 거냐?”

다른 조장들은 물론.

민재 형마저 서수혁 상병과 같은 의견이었다는 것.

‘……뭐, 결국은 괴물의 새끼니까.’

대부분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처치하는 게 당연한 존재라는 거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예외가 있기는 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죽이는 건 조금 꺼림칙하긴 하군요.”

“예에?”

“아니…… 이건 괴물이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전광일 상병.

“저 녹색갈기 부족이야 우리 적이 맞지. 저 주술사 녀석도 인간을 노예로 삼았던 녀석이니 처리하는 게 맞다고 보고. 하지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아이까지 처리하긴 좀 그렇다, 이거냐?”

“뭐, 조금 찜찜하다는 거죠.”

그 말에.

민재 형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미친 소리군.”

꽤나 거친 말투.

얼굴에서는 화난 피X츄 특유의 전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고작 찜찜하다는 이유로 군단의 위험을 감수하자는 거냐?”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에는 군단에 피해가 올 수 있는 일 좀 해 달라고 부탁하던 양반이 무슨…….’

새삼스럽지만.

착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민재 형은 감성적인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성적인 인간이다.

‘대부분의 사안에서 서수혁 상병과 민재 형은 같은 결론을 지지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난번 라디오 송출을 제안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민재 형은 내 요리의 효과를 알고 있다는 거.’

다른 부대원들이라고 모두가 감정 없는 싸이코패스는 아니다.

다른 인간들에 대한 일이 걱정되는 것은 모든 부대원이 마찬가지지만.

걱정해 봐야 답이 없는 일.

나는 내 요리를 통해 그 불안감을 잠재우고 있었다.

하지만.

민재 형은 내 요리의 효과를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요리의 효과가 조금 덜 적용될 수밖에 없다 보니.

나와 더불어서.

내 요리를 통한 멘탈 케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유이한 부대원이었다.

남들보다 훨씬 더 주변에 대한 걱정을 끊을 수 없는 입장.

그렇기에 사람들을 위한 라디오 송출을 제안하게 된 것.

그리고.

사실 이쪽이 메인이다만.

두 번째 이유는.

‘라디오 송출은…… 인간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라디오를 송출해서 괴물들에 대한 정보를 뿌린다고 한들.

그 정보를 괴물들이 듣고 활용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라디오를 들은 이들 중 일부가 잠재적인 적이 될 수 있다고 한들.

그들 역시 모두 인간이니까.

반면.

‘이 알을 남기는 건 괴물에게 득이 되는 일.’

다른 병사들이 당연히 처분해야 된다 생각하는 것 역시.

이상할 것 없는 일이란 거다.

-……부럽군.

“응?”

그렇게.

조장들이 대화하는 얘기를 보고 있자니.

쇠사슬에 묶인 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괴물.

보르진이 입을 열었다.

“부럽다니. 뭐가.”

[솔직함]의 효과가 끝난 순간 입을 다물었던 녀석이 갑자기 한 말.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해진 나는.

슬쩍 녀석을 곁눈질하며 물었다.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사실이 부럽다.

“응?”

-네놈들은…… 나와 저 아이들의 처우를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이니까. 심지어는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네놈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 나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그게 뭐, 그렇게까지 부러워할 일인가?”

-……멸망이 눈앞까지 찾아온 우리에게는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으니까.

“…….”

싸움에서 패배한 이들의 말로란.

그런 것이다.

생명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

삶과 죽음조차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입장.

마냥 남의 얘기로 들리지는 않았다.

우리 역시.

한 번 삐끗한다면 저 녀석들하고 같은 입장에 처할 수도 있는 셈이니까.

다만…….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라.”

녀석이 한 말 중에서도.

이 부분만큼은 조금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권이 아예 없던 건 아니지 않나?”

-무슨 소리냐.

내가 가볍게 대꾸하자.

괴물 녀석은 자존심 상한 듯 나를 바라보고.

“……신 병장님?”

“저 녀석하고 무슨 얘기를.”

조장들의 시선도.

나를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왜. 너희 세계에 괴물들이 나타났을 때, 악마하고 계약하는 것 말고도 방법은 있었다며?”

-……말했을 텐데, 모두 현실성이 없는 방법뿐이었다고! 비록 부족을 멸망으로 몰고 갔다고 한들…… 그때 우리에게 있는 선택지는 그게 유일했단 말이다……!

악마와의 계약을 주선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 녀석.

그런 만큼 나름대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당시에는 악마와의 계약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모양.

“글쎄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 녀석들이 어쩌다가 멸망하게 됐는지.

대충 들어 본 바에 의하면.

‘기회가 없지는 않았지.’

분명 선택지는 있었다.

이 녀석들은 그걸 선택지라고 여기지 않았을 뿐.

[다른 종족들과 동맹을 맺는 건, 어떻겠나.]

그 대족장이라는 녀석이 한 말.

지금은 죽어 버렸다는 양반이지만.

새삼 생각해 보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살아 있었다면 군단에도 엄청난 위협이 되었을 놈이다.’

단순히 대주술사나 대전사 같은 놈보다 강해서가 아니다.

저 판단력이야말로.

녀석이 거대한 부족을 이끌 수 있었던 이유겠지.

“일단 아까 설명했던 대로.”

그렇기에.

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들은 자기네 세상이 멸망하자 괘씸하게도 우리 세상으로 도망쳐 온 놈들이다.”

“그건 듣긴 했습니다만.”

“그 얘기는 갑자기 왜 하는 거냐, 영준아.”

“그러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멸망을 겪고.

패배해 버린 놈들.

지금 한창 멸망을 겪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미 처참하게 실패해 버린 이 새끼들은, 절대 따라 하면 안 되는 우수한 반면교사란 말이지.”

-……우리를 모욕할 셈인가!

내 말이 모욕이라고 여긴 것일까.

분노한 채 나를 노려보는 보르진.

그래.

이렇게 뛰어난 반면교사가 눈앞에 있는 거다.

거기서 배우는 게 없다면.

이런 세상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도 없겠지.

“너희도 알다시피 이 주술사 놈은 인간을 노예로 다루던 놈이다.”

“…….”

“나 역시 바로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야.”

아니, 솔직히 말하면.

바로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계속해서 들고 있다고 해야 맞겠지.

‘이 녹색갈기 부족이라는 놈들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거든.’

우리와 적대했던 것은 물론.

인간을 노예로 쓰기까지 했다.

그들 세계에서 그들이 걸어온 역사 역시…….

내 입장에서는.

한없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내용뿐이었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지금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이를 악물고 해내야만 하는 법.

“저 알 안에 있는 아이들은.”

방금 전.

서수혁 상병이 터트리려 한 알을 가리키며 말한다.

“태어나지도 못한 만큼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

“……신영준!”

민재 형은 내가 하려는 말을 눈치챈 듯.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았다.

“이 미친 새끼…… 설마!”

다른 병사들에 비해.

민재 형이 더 빠르게 내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하나겠지.

‘민재 형은 뱀파이어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이미 내 아래에 들어온.

괴물들에 대해서.

‘부족원들의 목숨을 가볍게 바쳐 대는…… 그딴 짓은 참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 녹색갈기 부족이라는 놈들이 한 짓 중.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

그 마지막 대족장이라는 녀석이.

보르진에게 내린 명령.

“다들 반대로 생각해 보자고.”

“예?”

“이 녀석은 저 알을 통해 새 땅에 멀티를 짓고, 새 시작을 하려고 한 거다.”

본진이 망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일꾼을 보내.

새로운 멀티를 짓는 행위.

사실.

전략 게임에서는 비매너로 여겨지는 행위이기도 하다.

패배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추하고 비굴하게 저항하는 모습.

썩 보기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략 게임에서 그랬을 뿐.

‘내가 봤을 때는 꽤 마음에 드는 짓이거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후의 순간까지 개같이 추하게 발버둥 치고자 하는 의지.

씨익.

“그렇다면 그 멀티.”

우리 부대에 들어오기 위한 자격은…….

충분히 충족되었다.

“우리가 먹어도 되는 거 아니야?”

“……예에?”

그냥 버리기에는.

조금 아깝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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