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필요한 일
“시, 신 병장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십니까!”
괴물을 아군으로 들인다는 얘기에.
당연히 반발도 많았다.
그나마 괴물의 처분에 조금 망설이던 광일이는 물론.
서수혁 상병은 아예 목소리를 올렸다.
‘뭐, 그럴 만도 한가.’
당장 아리엘라를 부대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이용하는 이유가 뭔가.
그녀가 우리 부대원을 살해하기까지 한 괴물이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은 더하지.’
이 녀석들과의 전투에서 다치거나 죽은 병사는.
뱀파이어 토벌전보다도 많다.
저 알을 보자마자 터트리려고 한 것 역시.
그만큼 부대원들에게 있어서는 처리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신 병장님……!”
“살아남은 인간의 숫자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
“…….”
우리가 보낸 라디오로 인해.
앞으로 죽어 나갈 인간의 숫자는 꽤나 줄었겠지.
하지만.
‘우리 부대만 해도. 멸망의 날이 시작되고 첫날에 죽은 인원이 가장 많았으니까.’
그런 우리조차.
군부대라는 특이성이 있었기에, 그나마 사상자가 적은 편이었던 거다.
어떤 방어 시설도.
총도, 수류탄도 없었을 바깥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심했을 터.
대략적인 추측이기는 하다만.
멸망의 날 초기.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인류의 9할 정도는 사망했겠지.
‘교황 역시…… 살아남은 인간은 1할도 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나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 강력한 능력을 덕지덕지 가지고 있던 교황.
그가 세계를 굽어보았다며 말한 증언에 따르면.
남아 있는 인간의 숫자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우리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어.”
저 오르크들이.
그들만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저 맥이나, 두 수인 사범. 그리고…… 다른 녀석들만으로는 안되는 거냐.”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하는 민재 형.
‘다른 녀석들’이란 뱀파이어들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사실, 이런 고민이 처음이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식으로 병력을 늘린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 왔으며.
실제로 그렇게 합류하게 된 이계의 병력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참 부족하지.”
“…….”
까망이도.
서환과 미호도.
‘결국은 하나의 개체에 불과하지.’
개개인의 전력은 물론 엄청나다.
서환과 미호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노하우는 군단원들의 수준을 몇 단계는 끌어올려 주었으며.
까망이가 철물들을 최대한으로 섭취한 뒤.
본연의 전력을 발휘했을 때, 얼마나 강할지는.
나조차도 짐작 가지 않을 정도.
이들은 충분히 활약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멸망이…… 전 세계를 뒤덮은 것이라면.’
이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결국, 소수의 개인에 불과한 이들이니까.
‘그나마 숫자로는 뱀파이어들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 주고 있기는 하다만.’
아리엘라의 힘은 다른 생명체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힘.
이 힘은 상당히 사이(邪異)한 것이다.
내 [특별 소스]도 그렇지만.
남을 조종하는 힘이란 것은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사기 딱 좋은 것이었다.
언제 자신이 조종당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훗날, 부대원들의 괴물에 대한 반감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쉽게 드러내기는 힘든 종류의 능력이다 보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밖으로 드러낼 수 있으면서도.
수없이 많은 적을 상대하게 될 우리에게.
충분한 병력이 되어 줄 수 있는 이들.
“종족 하나를…… 통째로 들여온다.”
“시, 신 병장님…….”
저 알 안에 있는 태아들은 악마에 의한 강화가 일어나기 전에 대족장이 낳은 아이들이라던가.
우리가 싸웠던 녹색갈기 부족에 비하면 전투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며 숫자를 불릴 수 있는 종족.’
개개인의 전투력이 조금 달릴지언정.
우리 인류만으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한다 한들.
한계가 생길 수 없는 것이 바로 ‘병력’의 숫자.
그 숫자를 채워 주는 데에는.
그 무엇보다도 뛰어난 이들이다.
“반발이 심할 겁니다…… 신 병장님.”
“뭐, 그렇겠지.”
지금 이곳에 있는 조장들만 해도 그렇다.
나와 함께 오랫동안 싸워 왔고, 그만큼 나를 신뢰해 주는 이들.
그런 그들임에도.
이렇게 경악하며 반대 의견을 낼 정도니까.
“설마. 네 요리를 사용해서 설득하려 한다든가.”
“아니. 그러면 안 되겠지.”
부대의 생존을 위해.
방향성을 바로잡는 일.
이런 일은.
결코, 강압적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
“시간을 들여서 최대한 설득할 거야.”
“말은 쉽게 한다만,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
“그렇겠지. 하지만 뭐, 군 생활을 하면서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
제대로.
모든 부대원에게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인정받도록 노력해야겠지.
“뭐, 저는 찬성입니다.”
처음 내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당황했던 모습이었으나.
내 말이 끝나고 나자.
전광일 상병은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 괜찮은 거냐?”
“솔직히 말하면 저놈들은 저도 맘에 들진 않죠. 하지만, 다른 괴물들을 모두 들여오는 게 아니라 저 태아들만 키우는 거 아닙니까? 그 정도라면 상관없습니다. 게다가…….”
슬쩍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큰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녀석.
“신 병장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분명 잘 될 테니까요.”
“……고맙다.”
광일이가 그렇게 넘어간 반면.
서수혁 상병은 꽤나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서수혁 상병.
그가 이내 입을 열고 물었다.
“이번 선택. 혹시 알량한 자비심에서 나온 건 아니겠죠?”
“자비심이라.”
“저 괴물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몰입해 버렸다든지, 그런 이유라면.”
“설마.”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착한 놈은 아니다.
“우리에게 이득이 될 거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다. 믿어도 좋아.”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결국.
세 명의 조장 모두.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고.
-네놈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그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괴물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종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지?”
-그…… 그렇다. 내가 한 조언이 종의 멸망을 불러왔으니…… 그 위기를 벗어나는 것 또한 내가 책임져야 할 일.
우리 군단과 대립했던 부족의 괴물.
“그럼, 이렇게 하자.”
난 그 녀석에게 다가간 뒤.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일단, 네가 할 수 있는 일들과 네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뱉어라.”
-갑자기, 무슨……?
“주술사라고 했지? 흠. 천문에 관련된 노하우나 기술도 많겠네. 게다가 정령도 사용한다며? 정령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가지고 있을 거고. 흠. 생각보다 쓸 만한 게 많겠는데?”
-그러니까, 무슨 얘기를……!
“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씨익.
“네놈들의 종족이…… 뭘 먹는지.”
-……?
어떤 식문화를 가지고 있고.
무슨 요리를 좋아하는지.
“전부 다.”
그리하면.
네 종족을, 멸망에서 구원해 주마.
* * *
강원도 남부.
그곳에 반쯤 파괴된 건물.
“……뭐라고 한 거냐, 지금.”
“그게 믿기 힘드시겠지만.”
흰 눈이 쌓여 묘하게 황폐한 분위기를 주는 그 건물의 안에서.
한 남자가 부하에게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 군인들이 멀쩡한 것 같다고?”
“예에.”
보고를 받은 남자.
악마 계약자들을 이끄는 수장.
원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곳으로 간 동지들이 배신해서 계약을 실행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있나?”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만, 그럴 확률은 낮을 겁니다. 인도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 사람들 모두가 인류를 위해서 제 몸과 영혼조차 바칠 각오를 한 사람들이었지.”
스스로 생각해도 멍청한 질문이었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원준.
“……그러니까 더 이해가 안 가는 거야.”
그는 관리를 하지 않아 길게 늘어진 머리를 거칠게 쥐어뜯으며.
다시 한번 부하에게 말했다.
“그 군인 놈들의 거점 근처 군부대, 수십 곳!”
“…….”
“수십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괴물들을 풀어놓는 작전이었다. 그런데, 피해가 아예 없다고?”
“……예.”
콰앙!
머리를 쥐어 싸매던 사내.
그가 벽을 때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씨X……!”
“…….”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나?”
분노한 원준의 고함에 부하들은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정보 맞나?”
“맞을 겁니다.”
“그 근처에 몰래 보낸 동지들 모두가 같은 말을 했어요. 피해를 입었다거나, 크게 당황한 듯한 모습은 없다고…….”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원준이었으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부하들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도 그럴 게.
군부대에 자리 잡고 있는 괴물들은 평범한 괴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런 괴물들을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를 해방시키는 작전이었다.
심지어 불시에!
기습이나 다름없는 공격.
그런 공격을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 내다니.
‘아니,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이번 임무를 맡은 희생정신으로 무장해 있던 동지들.
그들이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생겨 임무 수행을 포기했다고 믿는 쪽이 차라리 현실성이 있을 정도.
아무리 저들이 강하다고 한들.
그 괴물들을 모두 토벌했을 수는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계약을 수행하기도 전에 적들에게 발각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동지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뭔가의 방법으로 그 접근을 파악하고 계약하기도 전에 제압했다면…… 작전이 실패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요.”
괴물을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모를까.
실패했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들이 [계약]을 통해 불러낼 수 있는 괴물은 군부대의 괴물들에 비하면 약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 가정이 인도자의 마음을 진정시키진 못했다.
까드득…….
“차라리 동지들이 임무 수행을 포기한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분노한 사내.
원준은 치아가 부서질 정도로 턱을 악물며 중얼거렸다.
“소중한 동지들이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시도한 공격이란 말이다.”
“……인도자님.”
“그게, 이렇게 허무하게 무로 돌아가다니.”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사내.
한동안 말은 없었지만.
내쉬는 숨에는 묘한 슬픔이 젖어 있었다.
“저 군인 놈들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잠시 뒤.
조금은 진정된 원준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회심의 공격이 실패한 상황이다.
악마 계약자들을 이끄는 수장.
원준은 다음 상황에 대처할 책임이 있었다.
“일단은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했다는 건 눈치챘을 겁니다.”
“그야 그렇겠지. 멀쩡하던 괴물들이 갑자기 풀려난 셈이니까.”
“그리고, 정상적인 집단이라면…… 공격에 대한 보복을 나서겠죠.”
“보복이라.”
원준의 명령에 따라, 군인들의 다음 대처를 예상하는 부하들.
하지만.
“그래도 뭐,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눈빛에는.
그렇게까지 큰 위기감은 없었다.
“저놈들은 저희가 누군지, 어디 있는지도 모를 테니까요.”
“동지들이 군부대에 도달하기 전에 발각되었다고 한들, 분명 [계약]을 통해 적들을 공격했을 겁니다.”
계약의 대가를 지불한 계약자들은.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정보를 캐고 싶어도 캘 수가 없었겠지.
“혹시 나중에 그 군인들과 저희가 접촉하게 된다고 해도, 모르는 척 잡아떼면 그만이니까요.”
“……그렇지.”
부하들이 하는 말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
혹시 나중에 군단과 마주할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계약자들은 외견상으로 평범한 인간과 똑같으니까.
상대의 직업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니고서야 그들을 의심할 수는 없겠지.
“정말, 혹시나! 녀석들이 저희를 공격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은…… 주인님이 보내 주신 하수인들에게 보호받고 있으니.”
그들이 계약하고 섬기는 존재.
악마.
그가 계약자들을 위해 보낸 하수인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그래.
부하들이 하는 말이 틀리진 않았다.
틀리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불안하단 말이냐.’
원준은.
머릿속에 자리 잡은 불안감을 쉽게 떨쳐놓을 수 없었다.
* * *
“그래, 여기가…….”
그 무렵.
입가에서 흰 숨을 내쉬며, 근처 도시로 진입하는 남자.
“우리를 공격한 괘씸한 놈들이 있는 곳이다…… 이거지?”
그리고.
-조심하라. 악마의 하수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한 괴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