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뽕 뽑기
-그륵…… 정말로 믿어도 되는 건지…….
“거 참 사람 말 못 믿네.”
녹색 피부의 괴물이 불평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저 말을 반복하고 있으니 슬슬 귀찮아질 지경이어서.
-쉽게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잖나.
이 녀석은 기본적으로 녹색갈기 부족의 주술사.
어쩌다 보니 생포된 포로일 뿐.
정확히 따지자면 엄연히 적이다.
꽁꽁 묶어 두고 강제로 요리를 먹이는 식으로 정보를 캐내기도 했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속박에서는 풀려난 상태.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이 날뛰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크륵, 약점을 잡힌 상태에서 나눈 약속이니까. 너희가 배신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뭐, 그렇긴 하지?”
녀석의 약점을.
우리가 쥐고 있었으니까.
‘저 녀석이 어떻게든 숨기려고 한 거대한 알.’
그건 우리 부대원들이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 알 안에 든 옛 동족들을 부활시키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동원하려 한 녀석으로서는.
내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리고.
사실 그게 전부도 아니지.
저 녀석이 그 알을 아끼는 이유는.
그 알을 통해 몰락한 부족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함.
그렇다면.
-네 명령을 따르기만 한다면 종의 재흥을 약속해 준다니…….
“거 참, 해 준다고 해도 난리네.”
그 수단과 방법.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거지.
“단. 빠른 시일 내에는 어려울 거다.”
-왜지?
“너희랑은 감정의 골이 좀 있거든. 최대한 시간을 두고 해야 할 작업이니까.”
그동안의 전투는 물론.
사실상 강원도 서북부의 인간들 대부분은 저 녀석들에게 살해당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리엘라마저 그 존재를 숨기고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간을 살해하고 노예로 쓴 당사자들과 동료가 되라고 한들.
쉽게 들어먹을 리가 있나.
그래.
‘이 녀석의 종족이 결국 다른 종족과 동맹을 맺지 못했던 것처럼.’
녹색갈기 부족은 거기서 결국 잘못된 선택을 했다.
원한을 잊지 못하고 그들만의 싸움을 한 결과.
악마에게 종족을 팔아넘기게 되고 말았지.
그렇게 멸망한 사례를 알게 되었으니.
반대로, 멸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대충 감이 오잖냐.
‘최대한 많은 전력을 긁어모은다.’
내가 마음에 드는 존재든 아니든 간에.
상대가 우리와 싸웠던 적대 세력의 후손이든.
뭐든 간에.
그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면.
뭐든지 할 것이라고, 한참 전에 다짐해 두었으니까.
“단. 지금 내전을 벌이고 있다는 네 동족까지 받아들이는 건 무리다.”
-그건, 이해한다…….
부대원들의 반발이 상당하겠지.
하지만.
‘저 알은…… 적어도 우리와 싸운 당사자는 아니야.’
그 종족의 아이에 불과한 존재.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 동원해야 하는 법이다.
부대원들의 반발 역시.
어떻게든 뚫어 내야겠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음?”
-……너도 다른 동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종족 간의 원한을 신경 쓰고 있는 것 아닌가.
보르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우리 종족은 매우 빠르게 숫자를 늘릴 수 있다. 그렇게 늘어난 이들이 너희를 적대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그야. 확신할 수는 없지.”
-그런데 어떻게.
“음, 그건…….”
저 알에서 태어난 놈들이 우리를 적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업 비밀이다.”
방법이 없지는 않거든.
내 직업은 요리사.
그러니까…….
“애들은 먹을 거로 꾀는 게 최고거든.”
-……?
“그런 게 있어, 인마.”
그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한 듯했으나.
내 말을 들은 보르진은.
-서로 목숨을 빼앗아 온 다른 종족을…… 받아들일 수가 있단 말인가.
충격받은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우리도…… 그럴 수가 있었단 말인가.
“…….”
-대족장이시여. 족장께서는, 거기까지 생각했던 것입니까…….
……뭐.
아무튼, 이런 식으로.
마침 내가 생각하고 있던 전력 증가 방침과.
저 보르진의 목적이 맞물렸다는 거다.
사실.
저 녀석이 바라는 대로 그 알을 어디서 평화롭게 키울 수 있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밥 몇 번 먹여 주면 우호적인 관계로 성장시킬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그렇게 끝내 버리기엔 좀 아깝잖냐.’
갑은 이쪽이고.
저쪽이 을이다.
“일단 그렇게 됐으니.”
저 녀석은 꽤나 실력 있는 주술사.
저 알들이 부화하기 전까지는 이쪽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약속한 대로 실력 좀 보여 주실까?”
-……그륵.
최대한 뽕은 뽑아 줘야 하지 않겠어.
* * *
갑작스럽게 이뤄진 공격.
본래라면 누가 어째서 공격한 건지도 알 수 없어야 정상이었겠지.
하지만.
-그대들 중에는 천문에 관련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는 것 같더군.
“아, 태준이 말이구만.”
-……그건 토착종의 이름으로 들리는데. 설마, 우리 부족의 눈을 가린 존재가 단 한 명이었단 말인가?
우리 부대에는.
먼 거리에 있는 일도, 별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물론.
그런 녀석의 능력으로도 강원도 남부라는 대략적인 정보밖에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좀 예전 얘기고.
-그자의 능력은 분명 상당하나…… 다른 주술사들과 함께 대응하면서 느껴지는 점이 몇 개 있었다.
“응?”
-뛰어난 능력에 비해, 생각보다 천문에 관한 노하우가 적은 것 같더군. 우리가 그의 천문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부분이 컸지.
“……어, 그 말은 설마.”
-내가 가진 지식이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꽤나 상세한 지역까지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무당 개사기.”
그래 봐야 완벽하게 위치를 특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애초에.
우리 부대의 정보 탐색은 무당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정령사라! 흠. 대지의 정령과는 조금 종류가 다른 듯하나 본질은 비슷하군.
“그렇다는 건.”
- 당장은 물의 정령인 듯하지만, 보아하니 다른 속성으로 변동할 조짐도 있어 보이고…… 이쪽도 내 도움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
생체…… 아니.
정령체 드론을 파견.
“정말이네요. 그 괴물이 말한 방법대로 했더니 방울이의 활동 범위가 늘어났어요. 말씀하신 위치도 발견했고요.”
“……정령사 개사기.”
“네? 방금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위치를 특정해 내면 그만이란 거다.
그나저나.
“평창이라.”
“유명한 곳에도 자리 잡았군요.”
놈들이 자리 잡은 곳은 꽤나 유명한 장소였다.
과거.
올림픽 등으로 인해 많은 건물이 지어졌던 장소.
어째서 저런 곳에 자리 잡았는지도.
대충은 짐작이 갔다.
‘저기. 막상 올림픽이 끝나고 나니까 빈 건물이 되어 버렸다고 했지.’
빈 건물이 많은 곳이라는 것은 즉.
괴물들의 먹잇감이 없는 만큼, 괴물들도 적다는 뜻이다.
괴물들에게 살해당한 인간이 적은 만큼.
좀비도 적은 곳일 것이고.
‘건물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바리케이드이기도 하니까’
쓸 만한 시설이 안전하기까지 하니.
차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그리고 그건 즉.
반대로 말하면…….
“저 녀석들도 안전한 방어 시설이 필요하다는 거지,”
“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인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악마 계약자라는 이름.
꽤나 살벌하기는 하다.
실제로 몇몇 병사들에게 그 존재를 설명했을 때.
그 이름에 약간 위축되는 녀석들도 있었지.
하지만.
‘그래 봐야 같은 인간.’
결국은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안전한 설비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신세.
그렇다면.
조건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조건은.
-……그 약속, 꼭 지켜야 할 것이다.
나를 노려보고 있는 저 괴물.
보르진이.
차곡차곡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 * *
“……멀기도 하지.”
뭐, 그렇게 해서.
나는 비마나를 떠나, 먼 곳까지 찾아온 상태였다.
‘우리가 관리하는 영역에서 한참을 떨어진 장소.’
위치를 특정해 낸 것은 다행이었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는 일은 당연히 엄청난 고생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처럼 많은 병력이 함께 움직일 경우.
무조건적으로 주변의 어그로가 끌리게 되어 있다 보니.
“오늘은 어디까지나 탐색만 한다.”
탐색을 위해 나와…….
저기 있는 저 녹색 괴물.
-그륵.
지팡이에 몸을 기댄 늙은 주술사.
보르진과 단둘이 이곳을 찾아오게 된 것.
-나로서는 믿고 따를 수밖에 없겠군.
그가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빼자.
털썩.
그 몸이 바닥에 털썩 떨어지듯 주저앉았다.
늙은 주술사.
창수의 길드에게 포획당해 있을 때는 몰랐다만.
애초에 지팡이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늙어 있던 괴물.
하지만.
그 괴물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젊은 몸 따위는 필요 없었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은 노인이.
흙을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정령이여…….
정령.
나도 아직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존재지만.
이 정령의 힘을 빌리는 존재들은 몇몇 봐 왔다.
우리 길드의 정수아 역시 그 당사자니까.
정수아와 계약한 정령, 방울이.
그 정령은 드론으로써 훌륭한 정찰을 해 주었지만.
문제는 그 정령이 겁이 많은 성격이다 보니.
강력한 적이 머물고 있는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그리고.
-이 땅의 기억을 보여다오…….
대지의 정령을 다루는 주술사.
그 정령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도 우리와는 다른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괴물.
보르진의 정령술은…….
정수아의 것과는 달랐다.
“뭐가 보이나?”
-으음.
정령을 직접 그곳에 보내지지 않더라도.
땅의 기억을 읽음으로써.
적진을 정찰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읽을 수 있는 기억에는 제약이 있다고 했지만.’
아무리 오래돼도 1주일 이상 된 기억은 읽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정수아의 정령과 달리, 실시간 정찰 같은 것은 사용 불가능했다.
유효범위도 훨씬 더 좁다던가.
정수아의 정령술과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우위라기보다는 서로 일장일단이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륵…… 역시나.
이번 같은 경우에는.
보르진의 정령술이야말로 제격이라는 거다.
기억을 모두 읽은 듯한 보르진이 눈을 뜨며 말했다.
-이미 경고했던 대로다. 많은 하수인이 자리 잡고 있군.
“쯧.”
굳이 이 녀석과 여기까지 온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저 계약자들은 어차피 곧 싸우게 될 적.
그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협력을 약속받은 뒤.
보르진이 가장 먼저 알려 준 정보는 바로 이것.
-그 악마 추종자…… 그대들은 계약자라고 부르던가?
“뭐, 명칭이야 중요하지 않으니까 넘어가고.”
-음. 그곳에는 이미 상당히 많은 하수인이 소환되어 있을 것이다.
“……엥?”
적들의 본진에.
이미 엄청나게 많은 괴물이 있다는 것.
“그 하수인이란 녀석들은 본인들의 목숨을 바쳐야 소환해 준다며? 그렇게 많은 목숨이 바쳐졌다는 건가?”
-조금 다르다. 저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하수인들은 정확히 말하면 저들이 빌린 것에 가깝지.
“빌려주다니?”
-소중한 계약자들이 자신에게 목숨을 바치기도 전에 엄한 곳에서 죽어 버리면 악마의 입장에선 손해니까, 그 전까지는 계약자들의 안위를 지켜 줄 수 있을 정도의 하수인들을 보내 주는 것이다. 우리 역시 그 덕을 많이 보았지
“…….”
뭐라고 할까.
‘무슨 악마란 녀석이 하는 짓이…… 마케팅 회사 같냐.’
노하우가 넘치는 마케팅 회사의 고객 관리 느낌.
그나저나, 하수인들이라.
“그건 어둠의 정령 같은 녀석을 말하는 거겠지?”
-그대를 제거하기 위해 소환된 어둠의 정령을 말하는 것이군. 그것은 분명 강력한 하수인이긴 하지.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개체의 말살에만 특화되어 있는 존재다. 악마의 하수인들은 그 종류가 훨씬 다양하지.
내가 저 알들을 부화시켜 주겠다 약속한 탓일까.
호칭이 묘하게 공손해진 녀석.
-저곳에는 그대가 모르는 존재가 훨씬 많을 것이다. 물론…….
심지어는.
-그런 존재들에 대한 정보는 내가 모두 해결해 주도록 하지.
자기 공을 내세우려고 하는 모습까지.
하지만.
‘해결해 [준다] 라…….’
여기서는 선을 그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서 경고해 두는데.”
-음?
“기어오르지는 마라.”
-…….
내 시선에 담긴 적의를 느낀 것일까.
얌전히 고개를 숙이는 녀석.
“네가 가져온 알의 아이들은 죄가 없지만, 네 죄가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럴 의도는 아니었…….
서환과 미호.
그리고 까망이는 적어도 인간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었다.
‘이 녀석이 다른 인간들한테 해 왔을 짓을 생각하면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하지만.
아리엘라와 이 녀석은 다르다.
그렇기에.
아리엘라는 내게 모든 것을 귀속 당하는 형벌에 처해졌으니까.
이 녀석 역시.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괴물.
은근슬쩍 기어오르려고 하는 꼴은 용서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의도가 맞았다.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내 입지를 키울 수만 있다면 부족의 아이들을 키울 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녀석들에 대한 대우는 내가 알아서 한다. 앞으로는 조심해.”
-주의하겠다.
하지만…….
쓸 만한 괴물인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악마와 계약했던 종족의 일원이자…… 결국, 그 악마 계약자들을 밀어낸 전쟁에서 승리한 쪽.’
우리가 가지지 못한 그 악마의 하수인들에 대한 지식.
그 경험이 우리한테 들어오게 된 셈이니까.
원한에 눈이 멀어 그대로 목을 쳤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경험과 능력이.
-경고하자면, 정보를 알려 주더라도 그 하수인들을 상대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응?”
-저 하수인들은 그 강함 자체가 상당하니까. 아무리 정보를 안다고 한들, 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니다. 우리 부족 역시…… 약해진 상태였다고 하나, 내부에 생겨난 악마 추종자들을 없애기 위해 많은 피해를 입어야만 했으니까.
하긴.
그 과정에서 대족장이라는 양반도 죽었다고 했으니까.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암만 정보를 알아봐야.
기본적인 강함이 크니 쉽게 처치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얘기.
뭐 이해는 한다.
이해는 하는데.
“그건 걱정 안 해도 될걸.”
-……?
지난번에 당한 습격.
잘못하면 그대로 우리 군단이 와해될 수도 있었을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우리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니거든.’
큰 위기일수록.
이겨 냈을 때 얻는 건 많은 법이잖냐.
단순한 힘 대 힘의 싸움으로만 갈 수 있다면.
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뭐, 그건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런가…… 너희 토착종들에게는 아직 남은 수단이 있나 보군.
“대충 그런 셈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 다음 질문이 있는데.”
-음?
“저 안에 있다는 하수인 중에…… 은신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걸 가진 녀석은 있나?”
-흐음.
눈을 감는 보르진.
정령의 기억 속에서 본 하수인들의 목록을 되새기는 듯 보인 그가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그런 존재는 없을 것 같군.
“오, 그래?”
-그런데, 이건 왜 묻는 거지?
“아니. 잘 됐다 싶어서.”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적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또 하나는
“저 새끼들이 뭐 하는 놈들인지. 좀 궁금하잖아.”
우리의 적.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거든.’
내가 만난 악마 계약자가 한 말.
{너희는 너희가 선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보르진이 한 말.
{그들은 뭔가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악마 계약자, 듣기만 해도 살벌한 이름.
아마 정상적인 사람들일 확률은 낮겠지.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인간이었을 이들.
그들이 왜 저런 적들이 되어야만 했는지.
어째서, 같은 인간끼리 싸우는 상황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누구는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그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목숨을 가볍게 바치는 계약 따위를 맺었는지.
“어디 한번 알아보자고.”
나는 전투 식량 하나를 베어 물었다.
[특성 : 환경 동화가…….]
-토착종들은 원래 그렇게 재주가 다양한 것인가……?
주변에 쌓인 눈에 맞추어.
내 몸이 새하얗게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