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뭔데 이거
악마와의 계약.
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하게 느껴진다만.
‘결국,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사회생활 하던 인간들이었겠지.’
그런 인간들이.
자기 목숨을 가볍게 바쳐야 하는 계약을 맺는 것은 물론.
심지어 그 계약을 통해 군인들을 공격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그렇지, 고작 몇 달 만에 그렇게까지 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세상이다.
조금 이기적으로 변하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약탈자로 변한 인간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오히려 흔한 세상이니까.
군부대인 우리를 공격한 것 역시 마찬가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 필요한 물건들을 얻고자 공격을 감행한 것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자기 목숨을 바쳐 가면서 계약을 맺는다니.”
저들이 뭘 목적으로 존재하는 단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최우선 목표는, 자신의 생존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있다는 뜻이다.
그 무언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정상은 아니지.’
먼저 공격을 당한 판이다.
맘 같아서는 그 위치를 알아낸 즉시 병력을 출격시켜도 이상하진 않겠지.
하지만.
고작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을 인간들이다.
이건 내 직감이긴 하다만.
그런 녀석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이유.
그렇게까지 해서 뭘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
‘만약 세뇌를 당한 거라고 한다면…… 마냥 토벌해야 할 만한 대상은 아니니까.’
알아 둬야만 할 것 같았거든.
게다가…….
“맘에 안 든단 말이지.”
자랑은 아니지만…….
아직도 가끔씩 멸망의 날이 떠오른다.
내 눈앞에서 허무하게 죽어 나간 후임들.
괴물에게 목이 뜯겨 나가며, 온갖 장기가 흩뿌려지는 그 광경.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인간의 죽음이란 건.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추하고, 구역질 나는 것이었다.
“입맛 떨어지게 말이야.”
그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지금까지 개같이 고생해 왔던 거다.
그런데 그런 죽음을.
가볍게 선택하는 인간들이 있다니.
그건 좀.
“짜증 나잖냐.”
* * *
스르륵…….
[특성 – 환경 동화]
특성의 효과로 인해 투명해진 몸을 이끌고.
적들이 자리 잡고 있을 도시.
그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들이밀었다.
사각…….
‘음?’
별생각 없이 접근하고 있었으나.
발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높게 쌓인 눈이 보였다.
환경 동화는 주변 환경에 녹아들게 해 줄 뿐.
눈을 밟아도 흔적이 남지 않는 건 아니다 보니.
‘눈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건데.’
이곳의 인간들이 오가는 길에는 어느 정도 눈이 청소가 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런 곳도 많지 않아 보이는 상황.
‘그렇다면, 흠.’
마침.
이런 상황에 쓸 만한 기술을 하나 익혀 둔 상태였다.
그림자 속에 들어 있던 요리 도구들.
그 안에서 커다란 철판구이용 철판 하나를 꺼내 든다.
‘전투에서는 방어용으로 용이하게 써먹었지.’
요리할 때도 쏠쏠하게 잘 쓰고 있는 박 씨 할아버지표 철판.
그 도구를 바라보며.
스킬을 발동했다.
[보조 셰프]
허공을 날아다니는.
보이지 않는 ‘보조 요리사’를 소환하는 능력.
‘이기는 한데.’
어떤 특성이든 스킬이든 간에.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 사용법은 무궁무진한 법.’
보이지 않는 보조 셰프.
그가 허공으로 철판을 들어 올리고…….
나는.
“읏차.”
그 위로 몸을 올렸다.
허공에 떠 있는 철판.
그 위에 올라선 나.
즉.
‘비행술.’
안 그래도 얼마 전.
나보다 덩치가 큰 괴물을 상대로 엄청나게 고생했었잖냐.
내 전투법은 나와 비슷한 체형의 적들을 상대로는 상당히 유용하지만.
덩치가 커지면 한없이 무력해지기도 한다.
‘[요리사의 눈]으로 약점을 파악해도, 찌를 수가 없는 곳에 있으면 답이 없으니까.’
보조 셰프의 공격력과 정확성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나마 지난번 적은 독을 통해 해결했으나.
그런 방법이 먹히지 않을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그래서 생각했었다.
내가 직접 공중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
‘마력도 엄청나게 많이 들고, 전투에서 쓰려면 훨씬 머리가 아파지지만.’
아무튼.
허공에 몸을 띄울 수 있는 비행술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전투 상황도 아니고.
눈만 안 밟으면 그만이니 그렇게 높이 날아오를 필요도 없는 상황.
내 몸에 맞닿은 요리 도구들은 내 몸의 일부로 취급되는 것일까.
[환경 동화] 특성 역시 공유되는바.
나는 은신을 유지한 채로.
저공비행을 하며, 도시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잠입하던 중.
쿠웅…….
주변에서 느껴지는.
무언가 거대한 존재의 기척.
‘흡.’
나는 숨을 죽이며, 기척이 느껴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식재료 감별(강화)]
[헬 나이트]
기사 같은 형체의 검은 그림자.
3미터가 넘는 거구의 괴물이 육중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엄청 강해 보이는구만.’
[전투력 측정기]에 나타나는 색은 초록색.
지난번에 만났던 거대한 괴수와 같다.
아리엘라와 같은 보스급 몬스터의 바로 아래 단계.
지금의 우리 부대라면 처리할 수야 있겠지만.
결코, 만만하지는 않은 수준.
‘저런 괴물을 퍼 주면서 꼬드겼으니…… 녹색갈기 부족이 혹할 만도 하지.’
그 후로도.
주변을 지나다니는 괴물들을 몇 마리씩 발견했다.
‘역시, 상당한 전력이다.’
처음 만난 그 녀석도 엄청나게 강해 보였지만.
그에 비견되는 개체가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상당히 강한 것은 물론.
숫자도 상당하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붙게 된다면…… 상당히 고전하게 됐겠지.’
하지만.
그 정보는 보르진이 가져오기도 했고.
뭣보다.
[특성 - ‘요리사의 눈’이 발동됩니다.]
[고급 요리 비결 - ‘헬 나이트 조리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한때는 고결했으나, 악마에게 혼을 바쳐 타락해 버린 지옥의 기사, 헬 나이트입니다.]
[긍지 높던 영혼은 지옥의 겁화 속에서 담금질되어 그 빛을 잃었고, 지금은 이지를 잃은 채 일그러진 갑옷에 얽매여 있는 상태입니다.]
[손질을 위해서는 우선 단단한 껍질을 제거한 뒤, 내장이라 부를 수 있는 부분을 위주로…….]
보르진조차 알지 못했을 정보 역시.
내 눈을 통해 확인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방어에만 투입되는 병력이라고 했으니, 지금까지 얌전했던 건가.’
지난번 군부대의 괴물들의 해방되었을 때.
그놈들과 함께 이곳에 있는 괴물들이 공격해 들어왔다면.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막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어디까지나 악마가 빌려준 방어용 병력이라고 했으니.
외부로 돌리지 못하는 괴물들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우리로 따지면 방어에만 특화된 용아병하고 비슷한 느낌.’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방어용 괴물들이라고 한들.
‘우리가 이 녀석들을 토벌해야 한다는 건데.’
아니.
저 괴물들뿐만이 아니겠지.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 이곳의 인간들도 그놈의 계약이란 걸 해 댈 테니까.’
지금 돌아다니고 있는 상당한 숫자의 괴물들.
그 이상의 적들이 우리를 막아설 것이라 봐야 한다.
‘꽤 버거운 토벌이 되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쪽으로 진입하고 있자니.
저벅…….
아까 느꼈던 괴물의 것과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느껴지는 기척.
이번에도 역시 숨을 죽이고 몸을 낮췄지만.
방금과는 달리.
“후우…….”
나타난 것은, 악마의 하수인이 아니었다.
한숨을 내쉬면서 걷고 있는 평범한 인상의 남자.
즉.
‘인간이다.’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
[직업 : 악마 계약자]
내가 여기에 찾아온 목적.
악마 계약자였다.
* * *
“하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언가 고민이 많은 듯.
한숨을 내쉬면서 이동하고 있는 인간.
‘방심하면 안 된다.’
평범해 보이지만.
저래 보여도 무려 악마하고 계약을 한 인간이다.
악질 중의 악질이라는 뜻.
‘모르긴 몰라도, 저번에 토벌했던 약탈자들하고 비슷한 놈이라고 보면 되겠지.’
왜 한숨을 내쉬면서 돌아다니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최대한 놈들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나는 남자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끼이익…….
어느 건물 앞에 도착하자.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남자.
‘안쪽까지 따라 들어가는 건…… 좀 힘들겠지?’
쉽게 들키지 않을 자신은 있다만.
건물 안은 아무래도 좁으니까.
지금 타고 있는 철판이 어디 부딪힐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면, 흠.’
어느새 건물 안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남자.
그리고 계단에는 창문이 연결되어 있었다.
‘밖으로 간다.’
약간의 저공비행은 철판을 타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했지만.
비행하고자 하는 높이가 높아질 경우.
내 무게 때문인지 마력의 소모량이 극단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뭐.
이것도 방법은 없지는 않아서.
[보조 셰프]
또다시 스킬을 사용하자.
이번에는 내 눈앞에 나열되는 요리 도구들.
나는 그중 하나의 손잡이 위로 발을 올려놓았다.
보조 셰프로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물건의 숫자는 지금 내 능력으로는 10개 정도.
발에 힘을 싣자 보조 셰프가 다음 발판이 되어 줄 요리 도구를 내 앞에 가져다주었다.
내 움직임에 따라 자동으로 허공에 계단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
‘요리 도구를 밟는다는 게 영 꺼림칙하긴 하지만.’
손잡이나 뚜껑의 윗부분 등.
그나마 문제가 없는 부분을 밟으며 위로 떠 오른다.
전투에 사용하기는 힘든 방법이지만.
그냥 허공으로 떠오르기만 한다면 마력 소모도 적은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피식.
‘새삼 생각하는 거지만, 나도 참 별짓이 다 가능하게 되어 버렸네.’
아무튼.
나는 벽면 너머의 남자가 계단을 오르는 기척에 맞춰 보조 셰프를 밟으며.
한 단계씩 하늘로 올랐다.
이윽고.
원하는 목표 층수에 도달한 듯.
어느 호실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
‘흠?’
나는 그에 맞춰 약간 옆으로 이동.
그가 들어간 방의 창문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창문 너머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더 숫자가 많은데?’
마력 소모가 큰 [보조 셰프]를 취소한다.
건물의 외벽에 나 있는 작은 돌기 같은 것에 매달린 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의사는 있다고 하던가요?”
“아니.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아.”
그런데.
거기서 들려온 대화가 조금 의아했다.
‘의사?’
무슨 소린가 싶어서 보니.
그들 한가운데에 웬 아이가 누워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의사가 한 명도 없다니. 이게 말이 돼요?”
“그게. 한 명도 없지는 않았다는군.”
“네? 그게 무슨 소리…….”
“아쉽게도 모두 지난 작전에 투입돼서…… 계약을 해 버린 모양이야.”
“……아아.”
……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상황 자체는 파악이 되는데…….’
아무래도 아픈 아이가 있고.
그 아이를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저러고 있는 모양.
‘병이야 뭐, 겨울이니까. 걸릴 수도 있지.’
여름과 더불어 가장 많은 질병이 돌아다니는 시기.
아마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펼쳐지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소규모 그룹이라면 몰라도, 이 녀석들만 한 규모의 단체가 병 하나 치료를 못 한다고?’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보아하니.
사람의 숫자가 그렇게 적은 것도 아니다.
괴물들이 보호해 주는 영역만 해도 상당하고.
대부분이 [악마 계약자]라는 직업으로 각성한 상태.
나름대로 신체 능력도 뛰어날 테니, 약재를 얻는 게 힘들지도 않을 터.
의사야 운이 나빠 없다고 치더라도.
사제 같은 힐러 계열 각성자가 한 명만 있어도…….
“이럴 때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지는군.”
“그게 무슨 소리에요.”
“평범한 각성자들은 사제 같은 직업이 병도 치료할 수 있다잖나. 반면 우리는, 이 직업이 아니면 저 괴물들의 보호도 받지 못하니.”
한숨을 내쉬는 사내.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이들이 이러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 괴물들이 지켜 주는 것은 악마와 계약하기로 한 녀석들뿐.
즉.
‘다른 직업군은 한 명도 없다는 건가.’
자연히 모두가 같은 직업을 선택하게 되고.
이들 중에는 사제와 같은, 힐러 계열의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 것.
상황은 대충 이해가 간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그, 내가 예상했던 풍경이 아닌데?’
우리를 냅다 공격한 적들의 본거지다.
당연히 악질만 모여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악당들이 어두운 장소에 모여서 ‘큭큭…….’거리며 나쁜 일을 모색하고 있다거나.
그런 광경이 나오는 게 인지상정.
거기서 이 녀석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아낼 생각이었다만.
‘이건 좀.’
병에 걸렸는데, 치료를 못 해서 발을 동동 굴리는…….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
아파하는 아이를 보고.
생각에 잠기는 어른들.
“……어차피 오래 살기는 힘들 거야.”
그 와중에.
중년인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평범한 감기 같은 게 아니란 건 다 알잖나. 나름대로 약을 먹여 봤는데도 효과가 없었으니.”
“…….”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한 병이겠지만, 우리로서는 그럴 능력이 없지. 아마 곧 죽을 거야. 그럴 바에야, 차라리.”
말을 하던 남자는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빠르게 계약을 진행시키는 게 좋지 않겠나.”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가장 처음에 예상했었던 악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계약.
이라고 하면 별거 없는 것 같지만.
[스킬 - 계약]
[악마와의 계약을 이행합니다.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대가에 걸맞은 요구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보르진에게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저 대가는 목숨.
즉.
‘어차피 죽을 아이니까 목숨을 바쳐서 이득을 보자, 뭐 이런 거냐?’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인상이 찌푸려짐과 함께.
역시 내가 생각했던 악랄한 놈들이 맞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려던.
바로 그 순간.
“아저씨!”
중년 남성의 말에.
다른 이들이 크게 놀라며 반발했다.
“아직 아이란 말입니다!”
“애면 뭐 어쩌라고. 어차피 우리 모두 계약을 할 것은 각오하고 온 거 아니었나?”
“그건, 그렇긴 하지만.”
“이미 목숨을 바친 이들도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 어른이든 애든 살고 싶은 건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을 거라니.
‘내 눈앞에서 죽은 그 녀석들은 아주 시원하게 목숨을 바쳐 버리던데.’
마지막에 가서 절규하기는 했으나.
뭐라 말을 걸어 볼 틈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괴물을 소환했었지.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 아닌가. 이 아이도 그럴 각오가 되어 있으니 각성에 성공한 것일 거고.”
“…….”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얘기가 계속해서 오간다.
“우리가 협박당해서 이 직업을 가진 건 아니잖나. 응? 혹시 여기에 목숨이 아까운 사람 있나?”
“그건, 알고 계시잖습니까.”
내 입장에서는 목숨은 당연히 아까운 것.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저희는 목숨 따위는 아깝지 않다는 거.”
내가 처음으로 발견했던 한숨을 쉬며 걷고 있던 남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뭔 개소리야.’
내 입장에서는.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계약을 이행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이 애도 마찬가지일 거구요.”
“그렇다면…….”
“하지만 그건 희생을 하기 위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여야만 합니다.”
“뭐?”
중년인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저희가 죽음을 각오했다고 해서 저희 삶이 값싸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음?”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내던지리라 각오하긴 했지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저희는 최대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저희의 희생이 가치를 지닐 수 있을 테니까요. 값싸게 던져진 삶은……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니.”
“…….”
“이 아이처럼 죽어 가고 있는 아이를 죽기 전에 빠르게 희생하고 가라는 식으로 내몬다니. 그런 건 옳지 않습니다. 저희는 아직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군.”
사내의 설득에.
작은 한숨을 내쉬는 중년인.
“미안하네. 내가 조금 성급했던 것 같아.”
“아, 아뇨! 이런 상황이니까요. 다들 조금씩 다급해진 거겠죠.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과하실 일은 아니에요.”
중년인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사내.
그가 방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아무튼! 당장 의사를 구하는 건 실패했지만, 인도자님에게 이 아이에 대한 얘기를 전하기는 했습니다.”
“인도자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는데요?”
“당장은 방법이 없지만. 최대한 수단을 마련해 보겠다고 하시더군요. 아마 조만간 무언가 조치를 취해 주실 테니 다들 믿고 기다리도록 하죠. 계약을 이행하기 전까지는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말입니다.”
“후우. 알겠어요.”
“어쩔 수 없지. 일단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 최대한 간호를 해 보는 수밖에.”
“그럼, 각자 일하러 갑시다. 아까 보니 물이 거의 다 떨어졌더군요. 식수로도 사용하는 물이니까, 바로바로 보충을…….”
그렇게.
뭔가 비장한 대화를 나누더니 훈훈하게 해산하는 인간들.
‘아니 그래서.’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뭔데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