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군가 제창
-크륵…… 다녀왔는가.
“어어.”
약간의 정찰을 끝마친 뒤.
나는 보르진이 기다리고 있던 외곽 지역으로 복귀하고, [환경 동화]를 해제했다.
-그래. 원하는 정보는 얻었는가.
“아니 이게…… 얻었다고 해야 하나.”
-그륵?
적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간 잠입이었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의문만 늘어난 거 같은데?’
악질만 모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저곳에 모여 있는 인간들은…….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악마와 계약이니 뭐니를 했다는 것 치고는.
지독할 정도로 인간적인 모습만 보게 되었다.
‘저 녀석들이 인간적이라고 해서,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야.’
애초에.
누군가의 목숨을 바쳐 가면서 무언가를 이루려는 모습.
나란 녀석은.
그런 걸 기분 좋게 봐줄 수 없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목숨을 바쳐 가면서 이루려고 한, 목적이 무엇이냐.’
그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정상참작을 해 줄 생각은 있다.
그 이유라고 해 봐야.
악마란 녀석에게 세뇌를 당했다거나.
아니면 무언가 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
그럴 경우, 당연히 거리낌 없이 토벌하려 했으나.
‘저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 녀석들이, 그런 이유로 목숨을 바칠 것 같지는 않아.’
직접 확인해 본 바로는.
세뇌같은 것이라고 하기보단, 뭐랄까.
‘사명감.’
보르진이 말한 것과 비슷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 아파지네, 제기랄.’
맘 같아서는 몰래 잠입해서 한 명쯤 납치해 온 뒤.
이거저거 묻고 싶다만.
“나름대로 체계는 또 잡혀 있는 것 같았단 말이지.”
누구 한 명이 사라지는 순간.
저들의 경계심만 늘리게 되는 꼴이 되겠지.
조만간 전투가 벌어질 터.
그때를 생각하면 섣부른 행동은 좋지 않았다.
‘아니…… 토벌전도, 그냥 싸워서 토벌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야.’
저들이 그냥 악인이었다면.
범죄자들을 토벌할 때처럼 가볍게 처치하고 끝났을 일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본 저들은 그런 종류의 악인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인간의 숫자가 적은 상황.’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제거하기에는…….
“하나만 묻자.”
-음.
그것도 조금.
아깝잖냐.
“전투가 시작된다면, 저 녀석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 다른 하수인들을 소환하겠지?”
-그럴 확률이 높다. 추종자들을 토벌할 때 가장 힘든 점 역시 그런 부분이었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가진 의문은 해결되지도 못한 채.
저 사람들은 그대로 악마에게 영혼을 바쳐 버릴 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건가?
“……안쪽에서, 꽤 많은 추종자들을 봤거든.”
내가 직접 두 눈에 담은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여러 건물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만 봐도.
저들의 숫자는 꽤나 상당한 편이었다.
최소한 길드 단위의 단체.
-크륵…… 그건 좋지 않군.
“음?”
-말했다시피, 악마는 기본적으로 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하수인들을 내려보내지. 하지만, 그 하수인들 자체는 큰 위협이 아니었어.
“그러면, 뭐가.”
-습격을 당한 추종자들.
그 추종자들이 딱히 엄청나게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히.
-우리 부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 습격을 받는 순간, 부족의 배신자들은 목숨을 바쳐서 강력한 하수인들을 소환했다. 그것이야말로, 배신자들을 상대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지.
“그 정도라고?”
-그 정도가 아니다. 최후의 순간에 한곳에 모여 있는 추종자들 수백 명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소환한 하수인들…… 그 강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
-그로 인해 우리는 대족장을 잃었지.
안 그래도 토벌전이 쉽지도 않을 텐데.
확실히 악인인지도 모르는 인간.
그 인간을 제물로 바쳐서 강한 하수인들이 소환된다니.
‘그건 안 되지.’
안 그래도 그 악마란 녀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문을 해결하기도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
악마 녀석 좋을 짓만 해 줄 수는 없는 일.
“……다른 방법은 없는 거냐?”
-말했지 않은가. 우리도 저들을 설득해 보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노라고.
“…….”
-저들을 토벌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알고 있지만, 그 외의 방법은…… 나 또한 알지 못한다.
하긴.
그런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녹색갈기 부족이 그렇게 허무하게 멸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녀석들은 그 방법을 몰랐기에 멸망했다.’
녹색갈기 부족의 역사는.
우리 군단에게 있어서는 반면교사로써의 역사.
이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유용하게 사용하되.
절대로 그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그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아 답답해지려던 찰나.
저벅…….
‘응?’
건물에서 나온 인간들이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 흐르는 냇가로 향하더니.
그곳에 있는 물을 떠서 옮기는 인간들.
‘그러고 보니 물을 채운다고 했었나.’
영화에서나 보던 종말 상황이라면.
물 한 방울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야 정상이다만.
지금 세상은 그런 종류의 멸망과는 조금 달랐으니까.
식량은 여전히 구하기 힘들지만.
딱히 핵폭탄이 터진 것도 아니고.
전염병이 심하게 돈 것도 아니다.
냇가의 물 정도는.
과거처럼 마실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 부대도, 다른 생존자들도.
아무렇지 않게 냇가 같은 곳에서 물을 구해 마시곤 했다만…….
“……아.”
그 모습을 보니.
이 상황을 괜찮게 해결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이.
한 가지 떠올랐다.
“일단은 복귀한다.”
-뭔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괜찮은 건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으음.”
내 직업은 요리사.
그러니까 뭐, 뻔한 방법이다만.
“요리를 좀 해 봐야겠어.”
-그륵?
* * *
“여전히 불안하신 겁니까?”
“음? 아아. 그렇긴 하지.”
계약자들의 수장.
원준은 여전히 묘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너무 예민하신 것 같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아무래도 지난번 작전에서 동지들이 많이들 희생하고…… 그러고도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시잖습니까. 별일 없을 거라는 거.”
그런 원준과 달리.
부하들은 원준의 걱정이 지나친 것이라 생각하며 위로했다.
그가 지나치게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보니.
최근 분위기가 영 싸늘했던 것.
“……그래.”
그런 얘기가 계속되자.
원준 역시 슬슬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우리 존재를 알 수 있을 리가 없고…….’
설령, 그들을 공격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한들.
‘주인님께서 내려 주신 하수인들이 있는 한, 큰 문제는 없을 테니.’
확실히 부하의 말대로.
지난번, 동지들이 대량으로 희생한 작전.
그 실패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버린 것 같았다.
“걱정시켜서 미안했다.”
“아뇨,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지고.
“그럼 일단 정기 보고 좀 하겠습니다.”
“음.”
“저번에 말씀하셨던 의사를 찾는 건은 조금 늘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근처에 다른 생존자들은 얼마 남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나…… 그래도 계속 찾아보긴 하도록. 우리는 따로 힐러가 없으니까 의학 지식을 가진 동지는 있어야만 해. 초창기에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게 아쉽군…….”
이 일 역시 원준을 머리 아프게 하는 부분이었다.
조금 특별한 직업이라고 하나, 그들 역시 각성자.
어지간한 잔병에는 면역이 있었기에, 그동안은 의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아예 병에서 면역이 되는 것은 아닌지라.
겨울이 찾아오자, 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
‘함께 목숨을 바치기로 한 동포들이다.’
그들이 허무하게 죽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게 인도자의 역할이라고 원준은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박동욱 씨 얘깁니다만, 얼마 전에 박동욱 씨에게 [계약]을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아아. 그랬지”
“지금, 그 계약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뭐?”
그런데.
다음으로 들려온 소식은 원준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동욱 씨는…… 누구보다 우리 대의에 열정적인 사람이었을 텐데?”
“맞습니다. 사실 이틀 전에 처음 명령을 전달받았을 때만 해도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왔다고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습니다만…….”
“갑자기 바뀌었다는 건가?”
“예.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고 건물의 벽을 붙잡으며 저항하고 있다더군요.”
“……그게 무슨?”
그들의 직업은 [악마 계약자].
그리고 이 직업은 그냥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일 텐데.”
평범한 각성과 달리.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직업.
하지만, 그렇다고 얻는 방법이 쉽지는 않다.
악마에게서 계약에 대한 정보를 듣고.
언제가 되었든,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직업.
얼마 전.
동욱이라는 사내는 다음 작전의 수행인으로 지목되었다.
어떠한 장소로 향한 뒤.
그곳에서 ‘계약’을 진행함으로써.
훗날 그들의 주인에게 도움이 될만한 포석을 깔아 두는 작전.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임은 분명하지만.
동욱은 대의를 위해서 언제든지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던 남자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뭔가 이상하군.”
심상치 않은 일.
원준은 불안감을 느꼈다.
“예. 저희도 원인을 모르겠더군요.”
“이건…… 내가 직접 상담해 보는 걸로 하지. 동욱 씨가 있는 건물이 어디였지?”
“아. 저 쪽입니…….”
원준은 직접 그를 만나 봐야겠다고 판단하며 몸을 일으켰다.
부하가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찰나…….
굉장히 뜬금없게도.
-이 강산은…… 내가 지키노라…….
“……?”
멀리서.
노랫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어?”
“이게 무슨 소리…….”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원준의 부하들이 당황하며 창가로 다가간다.
원준 역시.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려던 순간.
콰앙-
하고.
노랫소리에 섞여서.
폭발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어?”
폭발음이 들려온 곳은.
마침 그의 부하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바로 그쪽.
삐이이이이익-
창문 밖에서부터.
무언가 붉은 궤적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보이고.
이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게, 무슨!?”
주변의 영역에 착탄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당신의 그 충정…….
당황한 원준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바라보았다.
정체불명의 궤적이 날아온 방향.
그곳에는.
“전차…….”
수십 대의 전차가.
그 무한궤도를 회전시키며, 엄청난 속도로 전진해 오고.
그 옆을.
땅이 울릴 정도의 진동과 함께 군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하늘 보며 힘껏 흔들었던 평화의 깃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들 모두가 우렁찬 목소리로 군가를 외치고 있었다는 것.
[피어 - ‘강철군단의 전쟁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의아해할 틈 따위는 없었다.
[길드 - ‘강철군단’의 전투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길드 - ‘강철군단’에게 일시적으로 특성, ‘중급 용맹’, ‘하급 굳건’, ‘최하급 견고’가 부여됩니다.]
[전장의 ‘강철군단’을 제외한 모든 종족의 능력치가 저하됩니다!]
[전장의 ‘강철군단’을 제외한 모든 종족의 저항력이 감소됩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
그제서야.
원준은 저들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군단……!”
우렁찬 군가와 함께.
군단의 진격이 시작되고.
퍼버버버버벙…….
타다당…….
멀리에 설치된 각종 포대가 불을 내뿜는다.
과거.
인류가 수천 년의 전쟁을 통해 쌓아 올린 폭력의 정수.
분당 수십, 수백…….
수천 발에 달하는 포화가 하늘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