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토벌전 (1)
우리의 근거지인 춘천에서부터 평창까지의 거리는 상당한 편이었다.
이만한 거리의 적을 토벌하려 하는 것 자체가 꽤나 힘든 일.
그렇기에.
이번 전투에서 모든 적을 토벌할 수 있도록.
우리 부대는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동원해야만 했다.
“행진 중에 군가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군가는 멋진 사나이!”
“멋진! 사나이!”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뭐.
군가 제창이었다.
-우리 부족의 문화를…… 이렇게 따라 하다니.
이 특성은 본래 [녹색갈기 부족]의 것이었다.
소속원 모두가 힘차게 노래를 부름으로써 발동되는.
일종의 [피어]
다수 대 다수 간의 싸움에서.
이런 종류의 광역 버프가 가지는 의미는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거든.
‘이거 때문에 미필 부대원들한테는 군가를 가르치기까지 해야 했지…….’
일병 시절.
갓 전입해 온 후임들한테 대대가를 가르치던 기억이 조금 떠올랐었다.
“끄윽. 이거 꼭 해야만 하는 겁니까?”
미필 출신의 부대원들 입장에서는, 이 군가가 꽤나 민망한지.
불만 섞인 소리도 조금씩 새어 나왔다만.
아무튼, 뭐.
중요한 건 하나겠지.
“효과가 그만큼 대단한데, 당연히 해야지!”
[길드 - 강철군단의 모든 능력치가…….]
[길드 - 강철군단에 특성이…….]
고작 달리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무척이나 확실했다는 것.
그뿐만이 아니다.
[지휘의 함성 - 돌격 명령이 울려 퍼집니다.]
“전군 앞으로!”
‘중급 지휘관.’
김 중위의 각 잡힌 명령과 함께.
부대원들의 몸에 강력한 버프가 적용되고.
[광기의 함성]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전광일 상병의 광기 섞인 으르렁거림으로 인해.
병사들의 눈빛에 적들을 멸하기 위한 미세한 광기가 깃든다.
그리고.
[코스 요리 - 항마의 빛]
사악한 적을 상대할 때는.
든든한 식사가 필수적인 법.
[단체 특성 - ‘군단의 기운’이 적용됩니다.]
[각각의 버프 효과에 시너지가 부여됩니다.]
그 모든 버프가 한 차례 더 강화되어 적용되는 지금.
모든 부대원들은 평상시의 2배.
아니, 3배에 가까운 강함을 손에 넣었다.
“끄르르륵……!”
가공할 만한 버프가 몸을 뒤엎자.
군가를 부르던 병사 중 몇몇이 입에서 게거품을 물기 시작한다.
딱히 아파서 저런 건 아니고.
이제 꽤 많이 겪어 본 증상.
“시, 신 병장님.”
“빨리…… 싸우게 해 주십쇼.”
“참아, 이것들아.”
몸 안에 넘쳐 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어진다는 거다.
“전 장병, 진입 준비 완료됐습니다!”
“식사도 다 마쳤고 다들 싸우고 싶어서 안달 난 상태입니다.”
병사들의 보고에 뒤를 돌아보자.
수십 대의 전차와 전투 차량.
그리고 전차들의 뒤로.
겨울에 맞게 긴 야전상의를 맞춰 입은 군단의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군기가 가득 찬 자세로 군가를 부르는 병사들.
그런 병사들을 보며.
나는 전투 식량 하나를 대충 입에 베어 문 채 가볍게 말했다.
“자, 들어가자.”
“예!”
눈으로 뒤덮인 겨울의 세계.
그곳에 웅장한 전쟁노래가 울려 퍼지고.
움직이는 장벽.
전차의 무한궤도가 눈밭을 가로지르며 전진한다.
“전군, 적들을 제압하라!”
“충성, 충성, 충성!!!”
인간을 초월해 버린 병사들.
그들이 전차보다도 빠른 속도로 적진을 향해 나아간다.
“군단의 승리를 위하여!!!”
“끼에에에에에에엑!!!”
군단의.
승리를 위하여.
* * *
“이, 인도자님!”
갑작스러운 적의 습격.
[악마 계약자]들은 당황한 채.
그들의 수장.
원준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무, 무슨 일입니까 이게!”
“……적습이다.”
“적습이라니. 우리 위치를 어떻게 알고……?”
계약자들은 그 특성상 흔적이 쉽게 남지 않는다.
영혼을 바쳐 계약을 진행하는 시점에서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그들이니까.
그 순간이 두려운 이들도 많았으나.
적에게 들킬 일이 없다는 점에서는 강점으로 여겨졌던 부분.
‘이곳은 주인님의 은총이 자리한 곳. 탐색 계열의 특성으로도 정확한 위치를 찾기는 힘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정확하게 그들의 위치를 찾아왔다.
대략적인 위치를 [천문관]이 알아내고.
정확한 위치는 [정령사]가 알아낸다는.
군단의 정보 수집 체계를 모르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괜히 군인이 아니란 건가.”
그저.
살아남은 군부대.
“그럴 확률이 높을 것 같군요.”
“보아하니 전차도 운용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군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력으로.
무언가 방법을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추측할 뿐이었다.
“저, 전차라니.”
“분명 소규모 부대 한두 개가 살아남은 것일 확률이 높다고 하지 않았소!”
몰려드는 전차.
그뿐만 아니라, 저 멀리에는 포화를 내뿜고 있는 견인포의 모습도 보였다.
멸망 이후 꽤나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괴물들도, 군부대의 포화에 마냥 무력하게 패배하지는 않았으나.
파바바바바바바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압도적인 화력은 충분히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소규모 부대 한두 개의 화력이 아니지 않나!”
“……확실히.”
저건 평범한 전차대대나, 포병대대 하나를 털어서 나올 만한 양이 아니었다.
여러 군부대가 합동 작전을 펼치는 듯한 모습.
단순히 전쟁 병기가 많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전쟁용 병기들은 상당한 양의 자원을 요구하며 그 효율은 최악.
저만한 전차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기름과 자원들이 필요할 터.
‘이미 많은 군부대를 탈환한 상태였다는 건가? 아니면, 애초부터 살아남은 군부대가 많았다든가?’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군부대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멸했다.
운 좋게 저들, 군단이 있는 영역만은 여러 군부대가 생존했다든가.
그런 가능성까지 생각하게 되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단이 보유한 전쟁 병기의 양은 저것의 반의반도 되지 않았다는 것.
그들이 군부대의 괴물들을 해방시키고.
그 괴물들을 아무런 피해도 없이 처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텅 비어 버린 군부대의 무기와 자원들.
그것들이 군단의 품으로 들어갔으리란 사실까지는.
애초에 ‘군부대의 괴물을 해방한다.’는 작전부터가 실패했을 것이라 생각한 그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이, 이게 대체.”
“저, 전차에. 견인포까지……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이 이렇게 되자.
갑작스러운 공격에 계약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뭐, 위치를 들킨 건 뼈아프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겁니다.”
그렇게 당황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간부급 인사들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주인님이 내려 준 수호자들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아아.”
“그러고 보니 그랬지.”
악마.
그 존재는 계약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약간의 투자를 결정했다.
어떠한 영혼도 대가로 받지 않으면서도.
지상에 내려보낸 강력한 괴물들이 바로 그것.
‘겉으로 보이는 숫자보다 훨씬 많은 하수인들.’
지금 그들이 점거하고 있는 이 일대는.
엄청난 숫자의 하수인들이 도사린 마경이나 다름없었다.
“저기 보십시오. 마침 하수인들이 출전하잖습니까.”
“오오……!”
그 말대로.
적들을 요격하기 위해 어두운 그림자를 두른 괴물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 봤을 때는 소름 끼치기 그지없었지만.
이렇게 보니 든든하기 그지없는 모습.
특히, 그 사이에서 가장 앞장서고 있는 것은…….
거의 건물만 한 크기의 거대한 괴수였다.
[바르가스트]
그들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때.
군단의 군단장을 고전시키기까지 했던 괴물.
“주인님이 보내 주신 하수인들 중에서도 맷집으로는 손꼽히는 괴물이지요.”
“그, 그렇군요.”
“저 녀석이 나선 이상 전차의 화력이라고 해도 별 의미는…….”
기름 같은 것이 번들거리는 피부는 징그러워 보일만도 했으나.
그 거대한 크기와 힘.
보호받는 입장에서는 한없이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다.
그런데…….
콰아아아아아앙!!!
-크, 륵……!
“!?”
전진하는 전차가 불을 내뿜자.
그 거대한 몸이 크게 흔들린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방금 말을 꺼낸 간부를 향했다.
“부, 분명 방금 전차의 화력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이럴 리가 없는데.”
평범한 계약자와 달리.
높은 지위를 지닌 그들은 나름대로 하수인들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다.
[중급 악마 계약자 Lv.22]
[특성 - 중급 마魔 지식]
그 특성이 알려 주는 바에 따르면.
저 하수인의 맷집은 전차의 포격도 견뎌 낼 수 있어야만 했다.
즉.
‘평범한 전차가 아니란 건가?’
거기서 끝났다면 다행이겠지만.
불행히도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원 하차!”
포화를 내뿜은 전차.
그 전차에 올라타 있던 병사들이 전투의 개시와 함께 차량에서 내려온다.
그리고는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드는 병사들.
그나마 총을 든 병사들은 괜찮았다.
문제는.
‘지팡이?’
군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무 지팡이 같은 것을 든 병사들.
그들이 군기가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화염탄 투척!”
화염탄이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던진 것은 일반적인 군부대의 화염탄은 아니었다.
[파이어볼]
콰아아아아아앙!!!
-고오오오오……!
군단의 마법사들이 강력한 범위 공격을 가하자.
커다란 덩치를 가진 괴수, 바르가스트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 모습을 본 사내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거대한 괴수를 상대하는 모습에서 처음 보는 괴물을 상대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래.
마치…….
‘바르가스트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처럼……!’
전투를 지켜보던 사내의 생각은 어느 정도 정확했다.
최근에 군단에 합류하게 된 한 괴물.
-크륵…… 네가 만난 괴수는 바르가스트라 한다.
악마의 하수인들과 혹독한 내전을 치렀으며.
큰 상처를 입은 끝에.
그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종족의 생존자.
-분명 강대한 마수지만, 광범위한 화염에는 비교적 무력한 하수인이지.
그의 종족이 수없이 많은 목숨을 바쳐 가면서 쌓아 올린.
악마의 하수인들에 대한 지식이…….
군단의 품으로 들어왔다.
* * *
전차와 각종 포대 등.
군부대의 화력을 동원한 결과.
계약자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
그 외곽의 괴물들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고 있던 병사는 생각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계약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저 하수인들이 보호하고 있는 일대에서도 중심부.
상당히 많은 건물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자연스럽게.
전투는 시가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아무리 군단이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시가전에서는 그 화력이 어느 정도 퇴색되기 마련이다.
높은 건물들 하나하나는 마치 중세의 성벽 같은 역할을 한다.
그 하나하나가 화력을 막아 주는 방벽이 되어 준다는 것.
괜히 ‘시가전은 보병의 지옥’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군단병들은.
과거의 군인들과는 조금 달랐다.
콰아아앙!
“이쪽은 정리됐습니다.”
“계속해서 진입한다!”
원거리 화력 지원이 없다고 한들.
하나하나가 인간을 초월한 전사들이었으니까.
순식간에 이루어진 습격.
요리를 배불리 먹고.
[지휘의 함성]에, [전쟁노래]의 영향까지 받은 지금.
군단 병사들은 엄청난 속도로 적 내부로 침투하고 있었다.
그때.
철그럭…….
멀리서.
철이 서로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고.
“저 녀석은…….”
“군단장님이 조심하라고 했던 녀석이다.”
앞에서.
거대한 기사 같은 형체의 하수인이 나타났다.
[헬 나이트]
대로를 점거하고 선, 육중한 갑옷의 기사.
비록 그 크기는 다른 거대한 괴물에 비하면 작은 편이라고 하나.
몸에서 풍겨 오는 존재감은 결코 그 정도가 아니었다.
실제로.
“커헉……!”
몇몇 병사들이 무기를 쥐고 덤벼들었으나.
쉽게 처치할 수 없었다.
-명계의 기사들은 뚜렷한 약점이라 할 것이 없다.
본신이 강함은 물론.
뚜렷한 약점도 없는 강적.
“제기랄!”
“기습적으로 시작된 전투니만큼, 빠르게 침투하는 게 중요한데……!”
적들이 어떤 탐색 수단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
군단은 전투 준비를 끝마치자마자 쉬지 않고 달려와서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기습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최대한 빠르게 적을 제압하려 했으나.
갑작스러운 적에게 시간을 끌리게 된 순간.
쿠우우웅…….
병사들의 뒤에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그 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
“전 상병님.”
거구의 병사가.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내가 맡는다.”
“예, 예!”
명계의 기사는 다른 괴물에 비해 작다고 한들 그 크기는 3m가 넘었다.
그에 맞서 다가가는 병사에 비하면 머리 하나 이상은 큰 괴물.
하지만…….
‘무슨 존재감이……!’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거대한 적조차 작아 보이게 만들 정도!
“후욱.”
숨을 크게 들이쉰 전사가.
기사를 향해 몸을 내던지고.
그에 맞서.
지옥의 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군단, 의……!”
이마에는 핏줄이 서고.
이가 악물리며.
온몸이 짙은 광기에 물들어 간다.
하지만.
“승리를…… 위하여!”
광기가 온몸을 덮을 정도로 넘실거리고 있음에도.
적을 향해 도약하며 소리 지르는 단어에는 단 하나의 실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