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생존 욕구 (1)
“대가로는, 그러니까. 우리의……! 모…… 목ㅅ…… 목수……우…….”
희생을 각오하고.
눈을 감은 채, 한곳에 모여 앉아 있던 계약자들.
“……목수?”
“뭐라는 거야…….”
그들은 이상한 분위기에 고개를 들며.
말을 더듬고 있는 그들의 인도자를 바라보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지금?”
“그, 그게. 대가를, 말해야…… 하는데.”
“……인도자님. 설마!”
그 분위기에.
몇몇 계약자들이 눈에 불을 켜며 분노했다.
“이제 와서 죽음이 두려워지신 겁니까!”
단 몇 마디의 말만 더하면.
계약이 이행된다.
그런데 거기서 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인도자.
그 이유라고 해 봐야, 하나뿐 아니겠는가.
“그, 그런 게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제기랄!”
이제 와서.
죽음이 두려워졌기 때문이겠지.
“그,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잘만 희생시켰으면서!”
“막상 자기가 희생할 때가 되니까 무서워서 못 하겠다, 이거 아니오!”
방금 전까지 숭고한 분위기 속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계약자들.
그들이 크게 분노하며 소리쳤다.
심지어는.
퍼억!
“어이가 없군! 그렇게 무섭다면 내가 대신 해 주지.”
인도자로서.
그들 계약자를 이끌던 사내.
원준의 몸을 거칠게 밀치며, 다른 계약자가 몸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주인님과 계약한 데다가,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아서 인도자라 부르고 따라 줬더니…… 이딴 허접한 인간이었을 줄이야.”
“그,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니까!”
“당신 명령을 듣고 죽은 다른 사람들이 불쌍하군. 비키기나 하쇼!”
원준을 밀치고.
그 자리를 차지한 또 다른 사내.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그곳에 있을 자신들의 주인을 보며 소리쳤다.
“계약이오! 소원은 똑같소. 저 군대를 전멸시켜 주시오!”
[대가는?]
“뻔하지! 나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당당하게 소리치던 사내.
“사, 사람들의…….”
“……?”
“모, 목…… 목…….”
그런 그가.
어느 순간 말을 잇지 못한다.
“……계속 말 안 해요?”
“모, 목…… 크흠. 목이 말라서 그런가. 잠시…….”
자신이 말을 이어 가지 못하는 이유가 목이 타서 그렇다고 생각한 남자.
그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옆에 있던 물병을 쥐고, 급하게 들이켰다.
벌컥…… 벌컥…….
“후우!”
물병에 들어 있던 물을 모두 들이킨 사내.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곳에 있는 우리 모두의 목…….”
그러나.
그 말꼬리가 다시금 늘어나기 시작하고.
“모…… 모…….”
“모?”
“……못 해! 아니, 안 해!”
갑자기 그런 소리를 외치면서.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내.
“아, 안 한다니?”
“제기랄, 내가 미쳤었지. 이딴 계약을 하려고 하다니.”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럼 미친 짓이지, 아니오!?”
방금 전.
인도자를 밀치면서 훈계한 바로 그 인물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인류의 구원이고 뭐고, 내 알 바냐고!”
“……!?”
“결국, 내 목숨이 가장 소중한 거 아뇨! 그걸 바치라니, 미친 짓이지 이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다 알면서 함께했던 주제에!”
“지금까지의 내가 미쳐 있었던 거지. 내 소중한 목숨을 가볍게 날릴뻔하다니.”
희생을 각오한 채.
진중하게 기도하던 이들.
“제기랄, 결국 희생이 무섭다는 거 아냐!”
“다 같이 희생하기로 했으면서 그렇게 목숨이 아깝냐!?”
그 숭고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싸움이 난 시장판처럼 급격하게 변화하는 분위기.
그 모습을 보며.
‘뭐, 뭔가 이상하다.’
인도자.
원준은 식은땀을 흘렸다.
‘나는 분명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을 텐데.’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저 군대를 전멸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목숨이 아까워지다니?’
대가로, 우리의 목숨을 바치겠다.
그 말을 하면 끝난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살면서 느껴 본 적 없을 정도로 강력한…….
‘생존 욕구.’
그렇기에.
원준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세상이 이 꼴이 되기 전에도.
삶에 대한 미련이 그렇게 크지 않던 그였다.
그런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해서 대업을 망치다니.
분명 스스로 느낀 감정이거늘.
감정이 아닌 이성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라고 계속해서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히.
척, 척…….
징 박힌 무거운 가죽 군화가.
건물의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네놈들……!”
그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며.
인도자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엉?”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
군단과 계약자들이 서로 눈을 마주하게 된 순간.
“뭐긴 뭐야.”
가장 앞에 서 있던 요리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요리지.”
* * *
보르진은 말했다.
악마가 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내려보내는 하수인들.
그 괴물들은 숫자는 많을지언정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다고.
‘악마는 계약을 하는 존재지, 퍼 주는 존재가 아니니까.’
저들은 어디까지나 계약자를 지키기 위해 보내 주는 ‘보너스 상품’ 같은 것.
메인에 비하면 약할 수밖에 없다는 거겠지.
확실히 그 말대로.
바르가스트나, 헬 나이트 등.
생각보다 강한 괴물들도 있었지만.
그 외에는, 민재 형의 마법 한 번에 쓸려 나가는 등.
악마가 공짜로 내려보내 주었다던 하수인 중에는.
비교적 약한 괴물이 많았다.
‘……아니, 이건 민재 형이 너무 강해진 건가?’
민재 형만 그런 것도 아니지.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생각보다 강해진 부대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분대장급 병사들은 원한다면 군단을 나가 하나의 길드를 차려도 충분할 정도니까.
거기에, 여러 군부대에서 나온 장비들.
전쟁에 특화된 그 장비들을 모조리 꼴아박았으니.
우리가 너무 강해진 거지.
저들이 약한 건 아니겠지만…….
뭐, 아무튼!
저 계약자들을 토벌할 때 진짜 문제점은.
평소에 깔려 있는 그 하수인들이 아닌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저 녀석들이 목숨을 바쳐 소환할 괴물들.’
그렇게 소환된 괴물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무려 녹색갈기 부족의 대족장도 그렇게 소환된 괴물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까.
여러 군부대의 장비들을 가져와 개량하고.
온갖 하수인들의 약점을 미리 파악해 놓은 우리 부대라고 한들.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없겠지.
게다가…….
‘아직 걸리는 게 많아.’
저쪽의 인간들 역시.
그냥 죽게 내버려 두기에는 조금 찜찜한 부분이 많기도 하고.
그렇다면 뭐.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거 아니겠냐.
“소환하지 못하게 하면 되는 거 아냐?”
-……크륵.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그딴 방법이 있다면 우리가 하지 않았을 것 같나?
보르진은 내 말을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치부했다.
-토착종들은 내 종족의 지능을 야생동물 비슷한 수준으로 착각하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거야 뭐…… 크륵크륵거리고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소환을 막는 것 자체가 가장 좋다는 것 정도는 부족의 태어난 지 1주일 된 아이에게 물어도 안다!
1주일이라니.
성장이 빠르다고는 들었는데, 1주일부터 말도 가능한 거냐…….
-문제는, 그 소환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불가능하다니. 왜?”
-막는다고 해 봐야 물리적으로 입을 틀어막는 것 정도 아닌가. 그런 식으로는 저들의 계약을 막을 수 없어.
그건…….
‘나도 경험해 봐서 알지.’
처음으로 만났던 악마 계약자.
그들은 우리 부대원들에게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입도 금방 틀어막았지.
하지만.
녀석은 입이 막힌 상태에서 ‘읍읍……!’ 거리는 소리만으로도 계약을 진행했다.
괴물이 소환되었고.
그 녀석들은 허무하게 먼지가 되어 버린 결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
솔직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결국은, 저들이 계약을 시도하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하지만…… 이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었던 내용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악마의 추종자들은…… 신념을 가지고 있어.
“신념이라.”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지. 그것이야말로 정의라고…… 그륵. 대체 어떤 식의 세뇌를 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어미의 말조차 듣지 않았다.
“……흐음.”
-그대는 우리 종족을 살려 주기로 했으니, 진지하게 조언하지. 저들이 소환할 그 강적을 어떻게 토벌할지를 연구하는 쪽이 효율이 좋을 것이다. 소환을 막는 것은…… 입을 열기도 전에 목을 베는 것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불가능해.
그 말에.
나는 보르진의 얼굴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악마 계약자들과 싸워 봤으며.
그로 인해 종이 멸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한들.
결국, 토벌에 성공한 종족의 생존자.
이 녀석이 가져다준 정보는 꽤나 유용했다.
실제로, 내가 저 안에서 발견한 괴물들의 외모를 설명하자.
그에 대한 정보나 약점까지 모두 알려 줄 정도였으니까.
‘[요리사의 눈]으로 얻은 정보와도 일치하고, 오히려 더 좋은 정보들도 많았지.’
종족의 생존을 위해서.
우리에게 전적으로 협력하기로 결정한 녀석.
이 녀석이 하는 조언 역시 정보와 마찬가지로 꽤나 유용할 터.
어느 정도는 존중해 줄 생각이었으나…….
“흐음. 그건 좀 아니지.”
-그륵?
이 부분만큼은.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너도 우리 부대에 협력하기로 한 이상. 알아 둬야 할 게 있다.”
소환을 막는 게 불가능하다고?
맙소사.
하여간 이래서 군인 정신이 없는 놈이랑은 대화가 안 돼요.
“안되는 게 어딨어.”
-……?
“될 때까지 해 보는 거지.”
불가능이라 여겨지는 일이라고 한들.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는 건, 군바리의 마인드가 아니다.
악으로 깡으로 계속해서 시도하다 보면…….
의외로, 불가능하단 것도 쉽게 가능한 경우가 꽤나 많은 법이거든.
-토착종이여, 나는 네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뭐, 지켜만 보라고.”
그렇게.
나는 길드 메시지를 통해 부대원들에게 토벌 작전을 명령한 뒤.
“아까 봤던 냇물이…… 아.”
계약자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
그곳으로 이어지는 냇가를 하나 발견했다.
졸졸졸…….
수량이 많지는 않아 보이는 냇물.
하지만, 애초에 살아남은 인간의 숫자가 적으니까.
수도 시설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 지금.
이 정도면 상당히 유용한 물 공급원이다.
그리고 동시에.
‘저 녀석들도 먹고 마시는 인간이란 말이지.’
이 근처에 자리 잡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유일한 식수 공급처.
너무 가까운 곳에서 작업을 시작하면 들킬 수도 있으니.
최대한 먼 곳까지 이동한 뒤.
찰랑…….
두 손을 담가.
흐르는 냇물을 조금 떠서 마셔 보았다.
“크흐.”
한겨울의 냇물.
속이 시릴 정도로 시원한 맛이 위장을 스치고 지나간다.
자연 속에 흐르고 있는 냇물은 그 자체로도 꽤나 맛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래 봐야 결국은 원재료.
“좀 더 맛있어질 여지가…… 충분하단 말이지.”
씨익.
기분 좋게 웃은 나는.
흐르는 물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얼마 전.
민재 형이 말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본래 지구에는 마나 따위는 없었지.’
하지만.
멸망의 날 이후.
세상에는 마나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온갖 사소한 부분에도 마나가 침투해서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허공에도.
어쩌면, 내 몸속 세포의 사이사이에도.
그리고.
‘냇가를 흐르고 있는 이 물에도.’
그리고.
마나는 맛을 가지고 있다.
그 맛을 더욱더 끌어올리는 것이 마나 요리.
그 마나 요리의 분파가, 바로.
“원소 요리.”
[스킬 - 원소 요리를 발동합니다.]
차가운 물 속에 두 손을 집어넣으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파르르르륵…….
흐르고 있던 냇물의 흐름이 멈추고.
내 손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요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