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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19화 (219/227)

219화 생존 욕구 (2)

[원소 요리]

내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그에 따라서 냇물의 흐름이 뒤바뀌고, 출렁인다.

흐르던 물이 인간과 춤을 추는 듯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경.

하지만.

‘끄윽…… 죽겠네…….’

정작 그 광경의 주인공인 나는.

진짜로 죽을 맛이었다.

원소 요리는 결코 쉬운 요리가 아니었다.

평소에 하던 일반적인 요리와는 달리.

인간인 내 입장에서는 요리보다는 마법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개념.

“그래도……!”

다만.

지난번, 민재 형의 번개를 요리함으로써.

한 차례 경험을 쌓아 둔바.

“두 번째는 조금 더 나을 거다……!”

이번 요리는.

지난번보단 나아져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파앙!!!

내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주변의 냇물 속으로 파고든다.

냇물 속에 존재하던 마력.

그 마력이 내 마력과 동조해 변화해 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위에 살짝 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소스를 조금 첨부한다.”

군단의 주방.

그 주방장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 레시피.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요리가 완성되었다.

“후욱!”

힘겹게 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나자.

흐르고 있던 냇물의 일부분이 내가 만든 [요리]로 변한 것이 보였다.

냇물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흘러내려 가려는 요리.

하지만…….

‘이 양으로는 조금 모자라지.’

결과적으로는, 저 계약자들 모두가 마셔야 하는 물.

이미 떠 놓은 물도 꽤 있을 테니.

저 물을 모든 계약자가 마시게 하기 위해선, 적어도 며칠은 냇물에 내 요리가 흘러야만 한다.

여기에 쭈구려 앉아서 계속해서 요리를 해야 한다면…….

몇 날 며칠을 이 짓을 반복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

그런 식으로 간다면 솔직히 진짜 죽어 버리지 않을까 싶다만.

다행히도.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오병이어.”

[스킬 - 오병이어가 발동됩니다.]

빵 다섯 조각과 두 마리의 물고기.

그걸 통해, 수천을 먹여 살린 신화 속의 기적.

그 기적이.

내 손 아래에서 현현되고.

[복사할 양을 선택해 주십시오.]

“내 마력이 허용하는 한. 최대로.”

몸 안의 마력이.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가볍게 말했지만.

지금의 내 마력량은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안 그래도 높았던 깡 스탯.

거기에, 지난번 [다스무르의 정수]를 섭취함으로써.

안 그래도 높았던 마력이 한없이 강해져 버렸다.

게다가…….

[무예 - 식食이 요리에 반응합니다.]

[스킬 발동에 필요한 마력이 최적화됩니다.]

내 요리에 호응하는 무예.

그 무예가 마력 소모량을 최적화시켜 주기까지 했으니.

이윽고…….

평범하게 흐르고 있던 냇물.

그 수량이.

파아아아아아악!

급격하게 늘어난다.

평범하게 흐르던 냇물은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를.

내가 만든 요리가 대체하게 될 정도로!

‘특별한 재료를 넣지는 않았으니. 능력치 상승 효과 등은 거의 없겠지.’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소스의 효과는 절대적이다.

[전쟁 요리사의 짙은 생존 욕구의 냇물]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목숨을 최우선으로 삼게 되는.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

‘생존 욕구.’

그 짙은 감정이.

냇물을 타고 적진을 향해 흘러 들어갔다.

* * *

사내가 악에 받친 표정으로 소리친다.

“네놈……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뭐긴, 요리지.”

이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스킬은 각각 1가지.

사냥하면 그 사냥감을 바쳐서 능력치를 얻는 [봉헌].

그리고 그렇게 능력치를 키운 자신을 바쳐서 원하는 소원을 비는 [계약]이다.

그중에서도 문제는 후자.

영혼을 바쳐 가며 악마에게 소원을 빌 수 있는 스킬.

사용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대가가 자신의 목숨이라는 점에서 쓰레기 같은 스킬이겠지만.

그 소원에 맞서게 될 입장에서는, 꽤나 두려운 스킬이기도 했다.

‘위기의 순간이 온다면, 분명 계약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렇기에.

저 냇물에 며칠은 흐르고도 남을 정도의 요리를 만들어 흘려보낸 거고.

아무리 악마 계약자니 뭐니 했지만.

내가 직접 본 이 녀석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었으니.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생활할 수 없는 법.

그 수원을 차지했으니.

당연하게도, 이곳에 있던 모든 인간들은 내 요리를 먹게 된 상태라는 것.

‘차라리 독 같은 거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겠지.’

위험한 세상이다.

평범하게 마시던 물이 언제 위험하게 바뀔지 모르는 일.

만약 저 냇물에 탄 게 독이었다면.

그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 순간, 바로 경계를 시작했을 것이다.

물 역시, 새로운 공급처를 찾으려 했겠지.

하지만.

내가 만든 건, 조금 요리되었을 뿐.

지극히 평범한 물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통보다 조금 더 맛있을 물?’

의심할 여지 따위는 없다.

게다가, 그 안에 담긴 것은 생존 욕구.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온 상황이 아니고서야.

굳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니까.

자신들이 특별 소스를 먹었다는 자각조차 없었겠지.

“……그나저나.”

계약자들이 몰려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자.

지난번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진다.

“꽤 금방 다시 만나게 됐네.”

방의 허공에.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존재감.

‘악마.’

바로 직전까지 계약이 진행되고 있었을 터.

그 계약의 대가로써, 인간들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이곳에 강림해 있었다는 거겠지.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아주 그냥 개무시를 해 주셨지.’

산맥에서 처음 녀석을 보았을 때.

저 녀석은.

나 따위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는 듯.

조금의 흥미도 보이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를 거다.

“그래…….”

아득히 멀리서 느껴지던 지난번과 달리.

조금은 더 가까이 느껴지는 존재감.

[…….]

내가 입을 열자.

그곳에 있는 녀석의 시선이 내게 내려 꽂히는 게 느껴졌다.

“기껏 입맛 다시고 있던 먹잇감들을 빼앗긴 기분은 어떠신가?”

아마도…….

인간 따위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여길 수 있을 초월적인 존재.

[신력이 초월적인 존재의 적의를 감지합니다!]

그런, 규격을 벗어난 존재의.

분노에 찬 시선이 내리꽂힌다.

‘……크흐. 많이 화났나 본데.’

그저 시선을 받았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온몸의 살이 떨리고.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지지만.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 하나.

‘짜릿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통쾌했다.

* * *

[신력이 초월적인 존재의 적의를 감지합니다!]

‘큭큭. 뭐야, 너도 화를 내는 존재였냐?’

화가 날 만도 하긴 하다.

그도 그럴 게.

이곳에 있던 인간들은 녀석에게 영혼과 육신을 제공할 예정이었다.

즉.

‘저 녀석에게 있어선, 먹잇감.’

세상에서 가장 화나는 일이 뭐겠냐.

열심히 요리해서 먹기 직전까지 온 요리.

그 요리를 눈앞에서 빼앗기는 순간이겠지.

녀석이 먹으려고 준비해 뒀던 인간들.

그들이 영혼을 바치려는 것을.

내가 막아 버렸다.

[스킬 - 계약]

[악마와의 계약을 이행합니다.]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대가에 걸맞은 요구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 계약을 수락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악마라고 했다.

그야말로 불공정 계약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만.

이 스킬이 가진.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요구를 제시하는 것도 악마라는 말은 없단 말이지.’

결국.

그 계약 당사자가 ‘목숨이 아까워서’ 원하는 요구를 하지 못 하게 된다면.

계약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

[초월적인 존재가 계속해서 적의를 내비칩니다!]

허공에 느껴지는 존재감 역시 그 사실을 눈치챈 듯

분노에 찬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후욱. 괜찮아.’

이런 짓을 하려고 했을 때.

쫄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딱 봐도 뭔가 대단해 보이는 존재.

그런 녀석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노려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할 테니까.’

녀석이 적의를 내비치건 말건.

내 몸에는 작은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얘기지.

애초에.

뭔가 다른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 녀석이라고 한다면.

‘계약이니 뭐니 하는 귀찮은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대단하신 존재라고 한다면.

직접 강림해서 방해되는 존재들을 쓸어버리면 그만이다.

그게 귀찮다고 한다면.

저 강력한 하수인들을 무한정으로 내려보내도 되겠지.

막말로, 어둠의 정령이 한 마리라서 이겨 낼 수 있었던 거지.

수십, 수백 마리가 내려온다면 답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

대충 짐작은 간다.

서환의 세계.

그곳의 강자들이 봉인당한 채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이 세계의 법칙은…… 규격 외 존재들의 개입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이게 이 세계를 침공받게 한 어떤 존재의 의지인지.

아니면, 침공받은 세계.

지구가 침략자들에게 저항하는 결과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은 지상에 개입하지 못한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후욱.’

그럼에도.

내려다보는 시선에 담긴 적의는 상당히 따가웠다.

아마도 신이라 부를 만한 격을 가진 존재.

그런 이가 적나라하게 내비치는 적의였으니까.

그런데.

지난번보다 가까운 곳에서 녀석을 마주했기 때문일까.

[특성 - 식재료 감별이 발동합니다.]

[스킬 -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스킬이 발동했다.

[악마종 - 악마]

[전 우주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대한 차원인 지옥의 주민, 악마입니다.]

[악이라는 개념 그 자체이자, 그로부터 파생된 생명체들로서, 그 개념이 존재하는 모든 차원에 간섭할 수 있는 강대한 힘을 가진 종족입니다.]

[특정 개념에서 파생된 존재는 그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들은 거짓말을 할 수 없으며, 한 번 맺은 계약을 어길 수 없습니다.]

[그 힘과 특성상 몇몇 이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실제로 그만한 격을 갖추고 있는 만큼 희귀도가 굉장히 높은 식재료입니다.]

[악마의 살점은 강력한 힘이 담겨 있는 식재료로써, 많은 호사가들, 특히 같은 악마들이 자주 찾는 최고의 식재료기도 합니다.]

[손질을 위해서는 우선 그 업의 굴레를 베어 낸 뒤, 다중차원에 걸쳐 있는 개념을 박리시킨 후…….]

떠오르는 문구를 보면서.

나는 조금 어이없어졌다.

‘저 녀석도…… 요리할 수 있는 대상이란 거냐?’

눈앞에 떠오르는 여러 메시지들.

심지어는 손질법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업의 굴레를, 뭐?’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손질법이라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새삼스럽게 궁금해진다.

저 손질법과 요리법.

대상에 대한 정보.

내 특성과 스킬로 얻어지는 정보이기는 하지만.

명백하게 나보다 격이 높은 상대에게도 발동하는 것은 물론.

나로서는 알 수 없을 지식을 자연스럽게 얻게 해 준다.

‘이 지식을 적은 건 대체 누구지?’

마치.

누군가가 미리 적어 둔 정보를 알려 주는 것처럼.

특성이 발동한 점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뭐라고 해야 하나.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 요리하지 못할 뿐.’

저 녀석도, 결국은.

언젠가 내 손에 요리될 재료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난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기로 했다.

[초월적인 존재의 시선이…….]

‘어쩌라고.’

지난번엔 녀석이 내 시선을 무시했지만.

이번엔 내가 녀석의 시선을 무시하며.

눈앞에 서 있는 사내.

[각성자 : 최원준]

[직업 : 악마 인도자 Lv.28]

아마도.

이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안녕하십니까?”

“네놈…….”

이빨을 까드득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남자.

하지만.

그래 봐야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제기랄, 다들! 계약은 안 해도 좋다!”

내가 다가가자.

사내는 다급하게 뒤에 있는 인간들에게 소리쳤다.

“그래도 저항은 해 봐야 하지 않겠나! 다들 무기를 들고……!”

음.

이 상황이 와서도 포기하지 않는 기세는 인정해 줄 만하다.

하지만.

“무, 무기를 들라니…….”

“……그러다가 총 맞으면 어떻게 하라고.”

“뭐?”

계약자들이라고 해서, 전투 능력이 없지는 않겠지.

[특성 - 봉헌]

[사냥한 적의 몸과 영혼을 악마에게 바침으로써,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나름대로 성장용 특성 또한 지닌 녀석들.

그렇게 성장해서 하는 짓이 자살특공대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럭저럭 평범한 각성자들 수준의 전투 능력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래 봐야 평범한 각성자 수준이겠지.’

여기 있는 인간들이 모두 고레벨이라고 한들.

우리 군단보다 강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 전투를 지켜본…… 본인들이겠지.’

자신들에게 심어진 생존 욕구를 깨닫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누구보다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그들은…….

“우, 우리는 항복하겠소!”

“목숨만은 제발……!”

이렇게 되어 버린다는 거다.

“……너희들.”

그 모습을 보며.

약간 절망감에 빠진 듯한 사내.

난 그런 사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방금 같은 상황에서 저항하자는 말을 꺼냈다, 라…….’

솔직함의 요리를 먹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저항에 성공했던 보르진과 마찬가지로.

어지간히 정신력이 강하지 않고서는

목숨의 위협이 생길 수 있는 일을 제안하지 못했을 터.

‘괜히 이 녀석들의 수장이 아니란 건가.’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한참 신경 쓰였던 일을 이제야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

나는 녀석에게 다가간 뒤.

철컥…….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녀석의 미간을 향했다.

‘솔직함의 요리는 지금은 먹일 수 없다.’

[절대미각]의 효과를 받는 나를 제외하면.

요리의 효과가 적용되는 건 하나뿐이니까.

하지만.

[생존 욕구]의 요리가 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면.

“목숨이 아깝다면 대답해라.”

“크윽.”

녀석은.

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을 터.

“어째서……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까지 악마를 섬긴 거냐.”

어째서.

목숨을 던져 가면서까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섬긴 건지.

낱낱이 뱉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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